파계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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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5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21화
파계 5권 - 21화
“단창이 무기인가?”
상관현표는 가소롭다는 듯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빼들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엇갈리자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도로 분리되었다. 그는 그의 별호가 말해주듯 쌍도를 무기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깟 단창 하나로는 날 상대할 수…….”
츠랑.
상관현표의 말문이 막혔다.
단창이라 생각했던 것이, 듣기 좋은 쇳소리와 함께 한 장에 이르는 장창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만족하시오?”
노백은 길어진 조화창을 앞쪽으로 늘어트리며, 석 장의 거리를 벌리고 서 있는 상관현표를 직시했다.
가면의 뚫린 구멍으로부터 빛나는 강렬한 눈동자를 마주 보면서 상관현표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처럼 상대는 강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장창을 손에 쥐면서 더욱 노련하고 매서운 기세를 뿜었고, 그건 그의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상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데…….’
상관현표는 백색의 가면을 쓰고, 길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창을 쓰는 무림인에 대해서 기억해보려 했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저 오칠이란 자도 그렇지만, 이 가면인도 그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분명 너무나 특징이 강한 모습인데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연상되는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관현표는 쌍도를 앞으로 빗겨드는 자세를 취하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은?”
“노백.”
“별호는?”
“없소.”
“정체가 밝혀지길 원하지 않는 건가?”
“언제까지 묻기만 할 거요? 이제 그만 싸웁시다.”
* * *
노백은 스스로가 원한 싸움이 아니었기에 길게 끌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먼저 공격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하시오.”
땅에 늘어트리고 있던 조화창을 당겨 양손으로 굳건하게 움켜잡았다.
그리고 앞발을 내미는 순간, 조화창은 하나의 선이 되어 상관현표의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빠르다!’
칭―
쌍도를 엇갈려 창끝을 막은 상관현표는 앞으로 뿌리치듯 창날을 밀어내고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지만, 어느새 당겨졌다 다시 찔러오는 창날을 막아야만 했다.
칭―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창의 길이를 빼고서라도 두 장의 공간이 더 있었는데, 그러한 공간적 제약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무지막지한 속도로 찔러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찡―
좀 더 둔중한 충돌음과 함께 상관현표의 두 어깨 근육이 크게 일렁였다.
온힘을 다해서 엇갈린 쌍도를 고정시키지 않으면 그대로 창끝에 밀려 공간을 허용하고 말 것이었다. 그런데 밀고 들어오기만 하던 창끝이 갑자기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치치치치치치칭!
마치 도면을 꿰뚫기라도 하겠다는 듯 맹렬히 회전하는 창끝과 마찰되면서 터져 나오는 시끄러운 쇳소리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귀를 틀어막고 분분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바로 코앞에 있는 상관현표만큼 괴로운 이는 없을 것이다.
‘빌어먹을!’
상관현표는 가문 비전심공인 순양첨의기(純陽沾衣氣)의 공력을 극성으로 운용하여 청각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쌍도에 공력을 주입하여 도면이 상하지 않게 강도를 높이고, 앞으로 디딘 발끝에 힘을 주면서 재빨리 몸을 뒤로 빼냈다.
채엥―
바닥을 밀어내는 힘으로 빠르게 물러났지만, 창끝은 한 번 더 도면을 찌른 뒤에야 공세를 멈췄다.
하지만 상관현표는 노백이 공격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창을 거두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노백은 처음 그 자리에 서서 앞으로 내밀었던 발을 뒤로 물리며 느긋한 시선을 그에게 보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상관현표의 주관적인 판단일 뿐, 노백은 여유롭게 그를 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오칠과 달랐다. 어떤 싸움에서든 그는 최선을 다했다.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술과 힘을 발휘하여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은 차분하게 상대를 살피고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가벼운 격돌을 통해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
노백은 차분한 눈길로 처음보다 몇 배는 더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상관현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왼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틈새를 찾으려는 걸 보고 창대를 꽉 움켜잡았다. 순간, 상관현표의 몸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처럼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그가 매우 긴장된 상태라는 뜻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군.’
노백은 상관현표가 애송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상관현표는 지금까지 많은 비무를 해왔을 것이다. 그가 속한 열혈군은 후기지수들이 모여 서로의 기량을 높이기 위해 창설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비무와 싸움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언제든지 물러날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벌이는 비무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싸우는 것은 그 기세부터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노백은 지금까지 그 어떤 비무도 물러날 수 있다, 라는 마음으로 해본 적이 없었다. 황제 앞에서 싸웠을 때도, 군부에 투신한 무림인들과 싸웠을 때도, 북경 근방에서 이름이 있는 무림인들을 찾아갔을 때도 이긴다, 꼭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상관현표에겐 그런 싸움이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실력의 고하를 겨룬다고는 해도 생사를 걸고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늘 마음속에 어느 정도의 여유를 둘 수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긴장 상태가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잠시라도 눈을 돌렸다가는 창끝에 꿰뚫릴 수 있는 급박한 상황의 싸움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있겠는가.
‘동정은 가지만, 봐주는 건 없다.’
노백은 늘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으며, 그가 고의로 만든 왼쪽 틈을 노리고 쌍도를 휘두르는 상관현표를 향해 조화창을 몽둥이처럼 크게 휘둘렀다.
쩡―
“윽!”
왼쪽으로 파고들기도 전에 휘둘러져오는 창대를 쌍도로 막은 상관현표는, 손아귀를 욱신거리게 만드는 강력한 충격에 신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대로 충격을 음미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에 바닥을 힘껏 차고 원래 움직이려고 했던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좋은 판단이오!”
노백은 감탄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토해냈다.
만약 오른쪽으로 움직였다면 다시 몽둥이처럼 휘둘러지는 창대에 얻어맞았을 것이고, 위로 몸을 띄웠다면 십여 개로 불어난 창끝에 찔려 몸의 어디 한 군데는 구멍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현표는 그런 노백의 말이 귀에 담겨지지 않았다. 그는 공격한다는 하나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들어차 있어서 그 누구의 말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상관현표는 그만큼 노백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합!”
빠르게 노백의 뒤쪽으로 돌아 멈춰선 상관현표는 쌍도를 위아래로 네 번을 연달아 휘둘렀다.
샤샤샤샥―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여덟 개의 날카로운 도기가 일어나 노백의 등을 향해 밀어닥쳤다.
텅―
노백은 창으로 바닥을 후려치고 그 반동으로 몸을 위로 띄웠다.
그리고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아 발 아래로 도기를 흘려보낸 뒤에 땅에 내려섰다.
“와!”
짝짝짝!
구경하는 사람들의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전보다 확실히 부드러워졌군.’
오칠은 이전에 그와 싸웠을 때보다 더욱 좋아진 노백의 움직임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천원무극단공(天元無極丹功)의 공력을 좀 더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피부가 겉으로 드러난 노백의 목덜미나, 손 같은 곳이 엷은 붉은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제 탄섬보를 사용해봐라.’
노백이 어떤 싸움에서든 최선을 다한다는 걸 알고 있는 오칠은, 그가 이제 자신에게 배운 탄섬보(彈閃步)를 사용할 것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노백의 움직임은 탄섬보를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자세를 취해가고 있었다.
‘위험하다!’
노백이 땅에 내려서자마자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치달려가던 상관현표는, 뭔가 가슴을 뜨끈하게 만드는 기묘한 느낌에 뛰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뒤로 다시 몸을 날렸다.
핑―
상관현표의 바로 코앞까지 창날이 왔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조금만 늦었어도 얼굴이 날아갔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두려움을 다독이기도 전에, 상관현표는 다시 왼쪽으로 다급히 몸을 날려야 했다.
핑―
“크!”
거의 본능처럼 움직였기에 상관현표는 소매를 핏물로 물들이는 작은 상처만 입고 창날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피한 방향에서 다시금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 상관현표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순간적인 절망.
그는 죽지 않기 위해서, 이전까지는 사용하리라고 절대 생각하지도 못한 나려타곤의 수법으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픽, 픽, 픽, 피피피픽!
상관현표가 땅바닥을 구르는 방향을 따라 조화창의 날카로운 창끝이 연달아 파고들었다가 사라졌다.
“헉… 헉… 헉……!”
재빨리 바닥을 손으로 밀어내고 벌떡 일어난 상관현표는, 흙투성이가 된 몸을 내려다볼 생각도 못하고 노백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노백이 그로부터 넉 장 거리에 떨어져 있는 것을. 하지만 곧바로 노백의 모습은 번쩍이는 섬광처럼 사라져 두 장 앞에 나타났고, 상관현표의 미간을 향해 창끝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물러나지 마!’
상관현표는 자신의 마음속을 향해 힘껏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의지대로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겁쟁이처럼 피하기만 하다가는 언제가 저 창끝에 꿰뚫려 허망하게 쓰러질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으읍!”
상관현표가 힘을 발산하기 위해 짧고 강한 호흡을 내쉬자, 불끈 솟아오른 근육이 순양첨의기의 기운과 함께 어깨를 타고 팔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의 양손에 쥐어진 쌍도가 쏘아져오는 조화창의 끝을 십자 모양으로 내리쳤다.
처청―
상관현표의 얼굴 바로 앞에서 막힌 조화창은 순간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듯 휘청거렸지만, 어느새 다시 노백에게 돌아갔다 다시금 쏘아져왔다.
피픽―
하나의 점이라고 불러야 할 극강의 속도로 쏘아져오는 창끝을 뚫어질 듯 쳐다보며 상과현표는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그리고 두 팔의 움직임에 따라 두 개의 도는 공간을 갈라 정면을 날카롭게 휘저었다.
하지만 언뜻 형식이 없고 본능처럼 휘두른 듯한 그 동작은, 창천도문에서도 그만이 익힌 뇌전연환십팔도(雷電連環十八刀)의 절초였다.
다만 원래는 공격을 위한 초식이었던 것이, 지금은 방어를 하기 위해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쨍―
무엇이든 단번에 꿰뚫을 것 같던 창끝이 하나의 도와 부딪쳐 우뚝 정지했다.
그리고 두 개의 도가 계속해서 휘둘러지는 공간을 뚫지 못해 겁을 먹은 것처럼 창끝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창끝은 힘을 얻기 위해 아주 조금 후퇴했던 것일 뿐, 다시 앞으로 찔러 들어왔다.
쨍, 째째째째째째쨍―
찌르고, 찌르고, 찌르기를 반복하는 창끝과 휘둘러지고, 휘둘러지고, 휘둘러지기를 반복하는 두 개의 도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연달아 맞부딪쳤다.
‘지지 않겠다! 절대 지지 않겠어!’
이를 악물고 숨을 억눌러 참으며 뇌전연환십팔도의 초식을 계속해서 펼쳐내는 상관현표의 눈동자는 점점 붉어져갔다.
그건 오기와 분노, 그리고 승리에 대한 염원으로 생겨난 변화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 호흡을 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변화였다. 아무리 무림고수라고 해도 계속해서 숨을 참을 수는 없는 것이었고, 특히나 내공을 운용하고 근육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호흡을 통해 산소를 들이마셔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수일수록 참을 수 있는 호흡의 길이가 길어지게 되는데, 지금 상관현표는 그가 참아낼 수 있는 호흡의 한계에 다다라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더 이상 숨을 참을 수도, 아무리 양기가 덧씌워지듯이 올라와 내공이 끊이지 않는다는 대단한 순양첨의기라고 할지라도 이어질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빌어먹을!’
“하―!”
아주 짧은 호흡이었다.
최소한의 호흡을 통해 상관현표는 초식의 흐름을 계속해서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서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관현표가 펼치는 쌍도의 움직임 속에서 끊김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백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에 속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쌍도를 상대하는 창을 손에 쥐고 있는 당사자였다. 그의 눈은 보다 직접적이고 세밀하게 상관현표를 관찰하고 있었으며, 틈새를 찾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상태였다.
노백은 아주 짧은 호흡으로 인해 생긴 쌍도의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푹.
“끅!”
뭔가가 깊숙이 뚫고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억누른 듯한 신음이 터지고,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