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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18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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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18화

파계 5권 - 18화

 

 

 

 

 

“사매!”

 

물러나 있던 공병악의 당혹스런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해적들이 나뒹군 이유가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다는 무형의 장력 미녀소수인(美女素手印)에 격타되었기 때문임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냉음설은 공병악의 외침을 듣고도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석 장 거리나 떨어져 있는 야마오를 향해 더욱 빠르게 활짝 펼친 손바닥을 내뻗었다.

 

“아무도 나서지 마!”

 

난데없이 동료가 쓰러지자 분노한 해적들이 냉음설을 향해 공격하려는 걸 야마오가 소리쳐 막았다.

 

지금 냉음설은 그의 상대이고, 그런 두 사람 사이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

 

냉음설이 펼친 손바닥을 완전히 내뻗은 순간, 야마오의 하나뿐인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뭔가 달라졌다.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의 육감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라고 그의 머릿속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찌직!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인 야마오의 왼 팔뚝이 찢겨지며 핏물이 흘러내렸다.

 

‘뭐지?’

 

의문이 생겼지만 지금 야마오는 어떤 무형의 힘을 피하기 위해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급했다.

 

“악!”

 

야마오의 뒤쪽에 있던 해적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분명 뭔가가 냉음설의 손바닥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야마오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일반적인 싸움에서라면 절대 눈을 감지 않겠지만, 냉음설의 공격은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심안(心眼)밖에 없다.

 

가게류를 전수해주었던 그의 스승이 강조하던 마음의 기술.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한쪽 눈을 잃고 나서야 조금씩 깨달아가던 마음의 눈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펼쳐야 한다는 걸 야마오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차핫!”

 

눈을 감은 채 좌우로 움직이며 가까스로 무형의 장력을 피하던 야마오가 갑자기 기합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쾅쾅!

 

순간, 야마오의 양쪽에서 폭음이 터지며 땅이 움푹움푹 패여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는 무형의 장력을 잘라낸 것이다.

 

“흥!”

 

냉음설의 코웃음 소리와 함께 다시 보이지 않는 장력이 야마오를 향해 쏘아져갔다.

 

하지만 이미 뭔가 흐름을 읽은 야마오는 지체하지 않고 검을 위로 그어 올렸다.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다시 무형의 장력을 베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랍군!’

 

공병악은 진정 감탄했다.

 

사매가 익힌 미녀소수인은 말 그대로 무형장(無形掌)이었다.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장풍인 것이다. 한데, 해적의 우두머리가 그 장풍을 베어버리고 있었다.

 

어떻게?

 

공병악도 알지 못했다. 그가 익힌 검과 야마오가 익힌 검은 전혀 다른 흐름을 원천으로 한다. 왜놈들은 내공이라는 걸 익히지 않고 그저 근력으로 검을 휘두른다는 것부터 자신들과 달랐으니, 무형의 장력을 인식하고 베어내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병악은 아무런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도 저렇게 폭발적인 돌진을 하고 자신감을 보이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냉음설의 미녀소수인은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공병악은 냉음설이 이대로 패배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미녀소수인을 펼치고 있었지만 그 장력에 소요원음신공의 강력한 기운까지 담고 펼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쨍―

 

“윽!”

 

보이지 않는 장력을 연속으로 베어내며 앞으로 전진하던 야마오의 신형이 갑자기 위로 튕겨 올라가는 검과 함께 우뚝 멈춰 섰다.

 

그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검에 전해지는 강력한 힘에 막혀 앞으로 걸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점점 자신의 검술에 확신을 가져가던 야마오를 당혹케 만들었다.

 

‘왜?’

 

똑같이 흐름을 읽고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지금까지 잘라지던 무형의 기운이 이제는 검을 튕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봐주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겠지?’

 

더할 수 없이 매혹적인 냉음설의 미소는 야마오를 향해 소리 없는 조롱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는 소요원음신공의 공력을 장력에 담게 되면 공병악의 말을 무시하고 야마오를 죽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껏 자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척으로 다가온 야마오를 그냥 둘 수 없어서 장력에 소요원음신공의 공력을 담아 전진을 막아야만 했다.

 

‘날 가지고 논 거였나?’

 

야마오도 이제 깨달았다.

 

냉음설의 미소와 더불어 그녀의 두 팔을 잘라서라도 제압하려고 했던 자신을 공병악이 끝까지 방관하고 있었던 의미를.

 

“아호(멍청이)!

 

야마오는 분에 겨워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냉음설이 무슨 수법을 쓰던지 반드시 베어버리겠다고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어디 한 군데쯤 망가지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냉음설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칠 성에 이르는 소요원음신공의 공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손바닥이 더욱 하얗게 변해갔다. 그러나 공간을 격하고 야마오를 향해 쏘아지는 장력은 여전히 소리도, 형체도 없었다.

 

“타핫!”

 

야마오는 장력이 쏘아져온다는 걸 알고 힘껏 기합을 내지르며 번쩍 쳐들었던 검을 산을 쪼갤 것처럼 내리쳤다.

 

쩡―

 

빈 공간에 정지해버린 왜검을 중심으로 강력한 타격음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견뎌내려고 했던 야마오의 전신을 진동시키며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이번엔 못 막는다!’

 

냉음설은 진정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장력을 쏘아보냈고, 그 무형의 강력한 장력은 검을 휘두를 수도 없는 자세로 밀려나고 있는 야마오의 활짝 열려진 가슴으로 날아갔다.

 

샤아악― 콰쾅!

 

“……!”

 

냉음설의 매혹적인 눈망울이 동그랗게 커졌다.

 

저 뒤쪽에 있던 공병악도 내심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야마오를 막아서고 냉음설이 쏘아 보낸 장력을 잘라버린 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양의 검을 아래로 비껴들고 있는 츠바사에게 고정되었다.

 

츠바사가 들고 있는 검은 공병악과 냉음설이 지팡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뽑아든 것이었고, 도처럼 한쪽에만 날이 있으면서 검처럼 폭이 좁고 긴 몸체를 가진 칼이었다.

 

그리고 공병악은 츠바사가 조선인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저 검이 조선의 검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내렸다.

 

“이제 그만 하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츠바사는 담담하게 냉음설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냉음설은 츠바사처럼 담담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녀의 강력한 장력이 막혔다는 충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만드는 것은 방금 벌어진 일이 아니라, 츠바사로부터 느껴지는 위압감이었다.

 

츠바사의 검은 분명히 땅바닥을 향하고 있는데도 냉음설은 미간과 심장, 그리고 그 밖의 요혈 등을 날카로운 기운에 위험스러울 정도로 자극받고 있었던 것이다.

 

‘심검?’

 

냉음설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마음이 가는 곳에 이미 검이 가 있다는 경지.

 

손에 검을 쥐고 있지 않아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상상 속의 경지가 바로 심검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의 경지를 고작 해적들의 책사 따위가 이루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한 것이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그녀의 요혈을 자극하는 이 기운이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는 대답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검기, 혹은 기세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느낌이 달랐던 것이다.

 

그녀도 모르는 검의 경지일까?

 

아니면 조선 검객은 모두 이렇게 기묘한 능력을 가진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공병악은 츠바사가 보여주는 이 기묘한 능력에 대해 어찌 생각할지가 무척 궁금했다.

 

“냉 낭자.”

 

잠시 상념에 빠졌던 냉음설은 츠바사의 부름에 그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츠바사가 그녀를 압박하는 것은 이제 그만 하지 않으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무력 시위였다. 그리고 츠바사는 분명히 그만한 능력을 가진 사내였다.

 

‘재밌는 사내야.’

 

냉음설이 츠바사에 대해 느끼고 있던 친근함은 호감이라는 직접적인 감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소요원음신공의 기운을 거두고 앞으로 뻗고 있던 손을 내리며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군요.”

 

“낭자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순간, 냉음설을 압박하던 기묘한 날카로움이 사라졌다.

 

츠바사는 화가 난 것인지, 낙담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야마오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하지만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약간씩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행위는 야마오를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니까.

 

“아직도 날 원하나요?”

 

한데, 냉음설은 그런 야마오의 속을 긁어놓기라도 하려는 듯 묻고 있었다.

 

한어를 알아들을 줄 아는 몇몇 해적들이 그녀의 물음에 화를 내며 소리쳤지만, 그녀는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야마오를 똑바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크크크!”

 

야마오가 소리내 웃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넣고 두 손을 들었다.

 

“포기하겠소. 당신을 한 번 품에 안을 때마다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냉음설은 깔깔거리고 웃으며 참 사내답게 포기한다고 칭찬을 건넸다.

 

“우리의 제의는 어찌하겠소?”

 

뒤에 있던 공병악이 앞으로 나서서 물었다.

 

그들이 이곳을 찾은 것도, 야마오가 냉음설을 품에 안겠다고 이리 난리를 친 것도 다 하나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였으니 당연한 물음이었다.

 

“하루의 시간을 주시오. 내일 답해드리겠소.”

 

공병악은 하루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여유가 있었기에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하루의 말미가 생겼으니 거나하게 술을 마셔봅시다. 이처럼 뛰어난 여걸을 만났으니 같이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지!”

 

야마오는 조금 전의 험악한 싸움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듯 수하들에게 술과 안주를, 그리고 여자를 준비하라 명을 내렸다.

 

‘처세가 좋군. 하지만 크게 될 자는 아니야.’

 

공병악은 야마오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리고 슬며시 시선을 돌려 츠바사를 바라보면서 진정 눈여겨보아야 할 자는 바로 왜놈의 이름을 가진 조선인이라는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갔다.

 

 

 

 

 

제51장. 문전혈투(門前血鬪)

 

 

 

 

 

사시(巳時:오전 9~11시) 초.

 

“날씨가 좋네.”

 

객잔을 나선 오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실상은 날이 좋아서가 아니라 드디어 목운교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네.’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오칠에게 너무나 낯선 감정이었다.

 

감정이 메마르기 전에도 그리 익숙했던 게 아니었고,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목운교와의 재회가 바로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 소저란 분을 바로 찾아가실 겁니까?”

 

백천맹을 방문하는 진정한 목적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노백은 오칠이 이런 표정도 짓는구나, 하며 내심 재밌어했다.

 

그리고 당연히 목운교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얼마나 대단한 여인이기에 오칠을 이곳까지 움직이게 만들고, 저리 들뜨게 하는 것인지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당연히 바로 만날 수는 없지. 일단 백천맹의 수뇌들을 만나서 조금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적당하게 상대해준 뒤에 견학이라는 핑계로 잠시 맹에 머물 생각이야.”

 

“맹에 머무는 동안 목 소저를 찾아서 자연스럽게 만나시겠다 그 말씀이십니까?”

 

“하하하! 너도 이제 좀 머리를 굴리게 되었구나. 아, 그리고 너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냐? 앞으로도 계속 노백이란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지 않겠어?”

 

“그대로 사용해도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왜?”

 

“일단 가면을 쓰고 있고, 가면을 벗어도 얼굴을 바꿀 수가 있는데 이름 하나 때문에 문제가 생길 리는 없을 테니까요.”

 

오칠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실종되었거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생사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분명히 죽었다고 알려진 자의 이름은 대부분 쉽게 잊히기 마련인 것이다.

 

게다가 노백을 제대로 기억할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

 

양친은 오래전에 고인이 되셨고, 형제도 없었으며 원래가 손이 귀했던 집안인지라 촌수도 매기기 힘든 아주 먼 친척을 빼고는 그가 유일한 가문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백과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부를 비롯해 모두가 역모에 얽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면 노백에게 친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칠이 유일하다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오칠이 노백의 사정을 전혀 동정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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