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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1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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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16화

파계 5권 - 16화

 

 

 

 

 

판옥선이 결정적으로 기존의 배들과 다른 점은 이 층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선이나 안택선은 단지 배 가장자리에 노를 배치해서 끄는 형식이지만, 판옥선은 이 층으로 만들어서 가장 아래쪽을 방으로 만들어 노를 젓고 배를 움직이는 비전투원들이 있는 자리로 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비전투원의 희생을 최소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위층에 전투원들을 배치하고, 지휘관이 지휘하는 누각을 세워서 판옥선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판옥선은 크기에 따라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맹선에는 전체 정원이 비전투원과 전투원을 합해서 최고 삼백 명이상까지도 탈수 있고, 중맹선은 팔십 명 내외, 소맹선은 삼십 명 내외의 승선 인원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은 조선의 대맹선보다 약간 크기를 줄인 대맹선이기 때문에 각 배마다 이백 명씩 승선하여 배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판옥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군.”

 

공병악은 이제 배에 대한 궁금증을 접고 판옥선에 대해 매우 해박하게 설명하는 사내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구나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니고, 나이가 든 늙은이도 아닌데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는 것과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 왜놈의 겉모양을 했다는 점이 그러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김만해라고 합니다. 조선인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마이 츠바사라고 불립니다. 그 뜻이 날개라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손님께서도 츠바사라고 불러 주십시오.”

 

자신을 김만해이며 이마이 츠바사라고 소개한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가, 아! 무림의 인사는 다르지요? 하면서 어색한 포권의 자세를 취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인사를 받았다고 공병악의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알게 된 것은 사내가 김만해라는 이름의 조선인이지만 이마이 츠바사라고 불린다는 것뿐이니까.

 

“이곳에서의 위치는 무엇이오?”

 

“아, 제 소개가 너무 간소했던 모양이군요. 저는 독룡방의 선박 기술자고, 미력하나마 책사를 맡고 있습니다.”

 

책사(策士).

 

책략을 잘 쓰는 사람, 계책에 능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흔히 모사(謀士), 혹은 군사(軍師)라고도 부른다.

 

‘그럼 이자가 독룡방의 명성을 만들어낸 머리겠군.’

 

공병악은 좀 더 날카로운 눈으로 츠바사를 바라봤지만, 그저 그렇게 쳐다본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뭔가 다른 점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공병악의 눈에는 시원스럽게 생긴 얼굴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면서 이곳 산두의 풍경과 날씨가 어떻다느니, 요즘 물이 좋아 고기가 잘 잡힌다느니 하는 별 의미 없는 말이나 늘어놓는, 왜의 이름을 가진 평범한 조선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는 왜 묻지 않는 것이오?”

 

공병악이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이었다.

 

배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응당 물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는 것이다.

 

“하하하! 그거야 저희 방주님과 만나시게 되면 다 알게 될 것인데 무엇이 급해서 제가 묻겠습니까. 저는 다만 두 분이 무이산에서 오신 손님들이고, 우리와 어떤 협상을 하고자 한다는 점만 숙지하고 있으면 되는 일이지요.”

 

“책사치고는 참 무성의하네요.”

 

냉음설이 매혹적이지만 슬며시 비틀려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책사로서 머리가 좋지 않다는 뜻도 될 것이고, 츠바사는 그런 냉음설의 보이지 않는 비아냥거림을 알아채고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해적 무리의 책사가 다 그렇지요. 이곳에서 머리 쓰는 일이라곤 어떤 배를 골라 어떤 곳에서 공격할까, 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제가 똑똑할 것이라 생각하신다면 그건 참으로 큰 오해지요. 더구나 이처럼 아름다운 낭자에게 그렇게 오해를 받는다면 저로서는 더욱 서글픈 일이구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책사보다는 선박 기술자로서 더욱 인정을 받고 있답니다.”

 

능글맞아 보이기까지 한 츠바사의 표정에 냉음설은 진정 재미있어 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특히 조선에서 여인에게 쓴다는 낭자라는 표현이 냉음설에겐 생소한 것이라 그에 대해 묻고 대답하면서 두 사람은 꽤나 오래 사귄 사람들처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병악은 냉음설처럼 편히 대화를 나누며 웃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표정은 이전보다 조금 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교활해. 너무 교활해서 도리어 평범해 보이는 자야.’

 

공병악이 내린 츠바사에 대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번 교섭이 잘 성사된다면 교주에게 이자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둘 생각이다.

 

“저기 계시는군요.”

 

츠바사가 가리키는 방향엔 십여 명의 무리가 땅바닥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공병악은 그들 중에 누가 독룡방의 방주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독룡방은 말 그대로 방주가 외눈이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었고, 십여 명의 사내들 중에 한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자는 한 명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거 참, 술을 자제하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도통 제 말을 듣지 않으신답니다. 냉 낭자 앞에서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제가 인정을 못 받고 있는 책사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셈이지요.”

 

“그래도 선박 기술자로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내쳐질 걱정은 없잖아요.”

 

그 짧은 시간의 대화를 통해 친한 사이가 돼버린 냉음설은 츠바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츠바사는 사람은 하나라도 잘난 구석이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추켜세웠고, 두 사람은 그렇게 낄낄거리며 또 웃어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공병악은 오늘 밤 이곳에서 지내기라도 한다면 아마도 저 두 사람은 한 침상에서 지금의 대화를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방주님, 무이산의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츠바사는 먼저 앞으로 걸어가 누가 다가오던 상관없다는 얼굴로 술을 마셔대고 있던 독룡방의 방주, 구니마쓰 야마오에게 공병악과 냉음설을 소개했다.

 

“앉으시오.”

 

왜인 특유의 왜소한 체구에다가 소매 없는 옷차림, 거기에다가 장검을 차고 있는 외눈의 사내 야마오는 그의 앞쪽 땅바닥을 가리켰고, 그곳에 앉아 있던 사내들은 모두 일어나 야마오의 좌우로 가서 앉았다.

 

‘한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군.’

 

즉, 야마오가 칼질만 할 줄 아는 단순한 왜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타국의 땅덩어리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조선인인 김만해를 기용하여 츠바사란 이름까지 지어주었으니 평범한 왜놈일 리 없는 자였다. 인재를 알아보고 활용하는 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한잔 하겠소?”

 

야마오는 공병악 등이 찾아온 용건에 대해 묻지는 않고 먼저 술부터 권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술 항아리를 들어 두 개의 잔에 따르고 그 잔을 수하에게 시켜 공병악뿐만이 아니라 냉음설에게까지 건네었으니, 꼭 마셔야 한다는 압박을 하는 것이었다.

 

“얼른 마시고 내게도 주시오.”

 

“…….”

 

공병악은 이 술에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그냥 쭉 들이켰다.

 

옆에 있는 냉음설도 공병악을 따라 술을 마시자 야마오의 수하라는 왜놈이 안주랍시고 물고기를 생으로 큼직하게 조각낸 것을 담은 나무 접시를 내밀었다.

 

“그건 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중원에서 날고기를 먹듯이 왜에선 생선을 날로 먹는 거죠.”

 

츠바사가 빙긋이 웃으며 설명하며 먹어도 괜찮을 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병악과 달리 츠바사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 냉음설이 먼저 회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어 씹었다.

 

“밋밋해.”

 

“원래는 뭔가 찍어 먹을 것이 있어야 하는데, 진정한 왜인은 생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 하지만 냉 낭자도 자꾸 먹다 보면 그 나름대로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냉음설은 이후로 회를 먹을 생각이 없었기에 츠바사의 이야기를 무심하게 흘려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역시 회를 한 점 집어먹은 공병악은 나에게도 술을 따라야지, 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야마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술잔을 건네었다.

 

“이제 찾아온 용건을 말해보시오.”

 

공병악이 건넨 술잔을 비운 야마오는 두 팔을 뒤로 기대고는 마치 깔아보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우리와 같이 중원을 칩시다.”

 

공병악은 야마오의 행동을 보고 그가 말을 빙빙 돌리는 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중원? 명을 치자는 거요?”

 

“정확히는 무림을 치자는 것이오.”

 

“무림? 아~ 해남파와 같은 곳을 말하는 거군.”

 

“그렇소.”

 

“하지만 내가 당신들을 도와서 뭘 얻을게 있을까? 난 바다에서 사는 것이 좋고, 저 안쪽의 땅덩어리는 전혀 관심도 없는데 말이야.”

 

“얻을 것이 있소.”

 

“…….”

 

“우리를 돕는다면 방주는 남해의 왕이 될 것이오.”

 

“왕? 어떻게?”

 

야마오는 관심이 간다는 얼굴로 설명을 요구했다.

 

“독룡방이 광동, 광서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을 제압해서 세를 불린 뒤에 해남파를 무너트리면 남해에서 독룡방에 대적할 세력은 아무도 없게 될 것이오.”

 

야마오의 옆에 앉은 사내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한어를 알아들을 줄 아는 자가 다른 동료들에게 공병악의 말을 설명해주었고, 그 말을 들은 왜놈들이 코웃음을 치며 떠들어대는 말의 요지는 해남파를 무너트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해남파가 어느 정도로 강한지 아시고 하는 말씀이신가요?”

 

츠바사의 물음에 공병악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무림에 있는 세력들을 모두 합한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소.”

 

자신들은 무림을 상대로 싸우려는데 해남파 하나가 문제가 될 것이냐는 말이다.

 

“하하하! 명쾌한 대답이군요. 하지만 그건 해남파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인들이 터를 잡고 있는 해남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문파 내에 있는 무사들은 천 명이나 되고, 그들에게 얽혀 있는 사람들은 해남도에 사는 한인들 전체라고 봐야 하지요. 그럼 그 숫자는 수천이 넘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광동과 광서의 해적들을 모두 제압한다고 해도 그 숫자는 많아봐야 삼천 정도에 불과할 것이고, 그런 숫자로는 해남파를 무너트리기가 어렵지요. 더구나 배를 통해 접근하려고 해도 해남파가 우리가 상륙할 때까지 보고만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야말로 상대를 너무 어렵게만 보는군. 머리를 잘라버리면 사지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법이오.”

 

“그 머리를 자르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이 너무 멀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될 것입니다. 해남파가 있는 여모봉까지 가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아십니까? 우선 해남도에 안착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어떤 난관에도 방법은 있게 마련이오.”

 

“물론 방법이야 있지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해남파의 시야가 미치지 못하는 문창(文昌) 쪽에 배를 안착하여 타 민족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르는 여족(黎族)의 영역을 지나서 여모봉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들키지 않고 해남파의 코밑에 당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비아냥거림이 아니었다.

 

츠바사는 오랫동안 해남파에 접근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지금 말한 것들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매우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츠바사의 말을 들은 공병악은 아무 말도 않고 흥미로운 시선을 주고 있는 야마오를 직시하며 그 방법엔 문제가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여족이 걸리는 듯한데, 그럼 우리가 그들을 해결하겠소.”

 

야마오는 고개를 저었다.

 

“여족은 미개한 자들이오. 하지만 자신들의 영역에서만큼은 우리보다 월등히 뛰어난 절대자들이오. 그들이 밀림에 숨으면 아무도 그들을 찾을 수 없고, 그들이 독침을 날리면 아무도 막아낼 수 없소. 그들이 그들의 영역에서 죽이겠다고 마음먹으면 누구도 죽음을 벗어날 수 없소. 그래서 해남파도 감히 그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오.”

 

독룡방 등을 비롯한 다른 해적들도 여족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결하겠소. 해남파는 그들을 두려워해도 우리는 여족이 두렵지 않소.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게 만들 것이오.”

 

“크크크!”

 

야마오가 웃었다.

 

공병악의 말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다른 해적들도 웃기 시작했다. 다만, 츠바사만이 담담한 표정으로 공병악과 냉음설을 살피고 있을 뿐이다.

 

“하나 묻겠소.”

 

웃음을 멈춘 야마오는 뭔가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공병악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의 하나뿐인 눈동자는 곧바로 공병악을 지나 냉음설을 노골적으로 훑어봤다.

 

“내가 당신들을 돕겠다고 하면 내 요구도 들어줄 거요?”

 

“어떤 요구냐에 따라 다르오.”

 

“예를 들면… 저 여자를 지금 이 자리에서 품에 안겠다는 요구는 어떻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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