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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15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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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15화

파계 5권 - 15화

 

 

 

 

 

공병악은 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 실력이 죽은 대사형에 필적하는 고수였다.

 

검으로만 따지자면 위지무성조차 인정하는 검객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교주의 자리를 탐낸 적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릴 때부터 위지무성의 심복처럼 행동했고,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위지무성은 그러한 공병악에게조차 내심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니, 참으로 신중하고 냉철한 자라 아니할 수 없었다.

 

“독룡방(獨龍幇)입니다.”

 

무리의 가장 선두에서 길을 인도하던 무사가 냉음설의 상념을 일깨웠다.

 

곧 그들이 헤쳐 나가던 산림이 사라지면서 저 앞으로 굵은 나무로 만들어진 목책이 넓고 길게 둘러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공병악을 시작으로 사십여 명의 무리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계속 경공을 전개했다가는 해적들이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흥! 모양은 그럴듯하군.”

 

냉음설은 튼튼한 모양의 목책을 보고 해적들이 근거지를 제법 잘 정비해놓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얼굴에 그려져 있는 비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혈천신교의 위대함에 해적들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하찮은 존재들이라고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멈춰라!”

 

공병악 등의 무리가 목책에서 십여 장 정도 가까워지자 목책 위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제지하는 고함이 들려왔다.

 

“왜놈들이 한어도 할 줄 알아?”

 

목책에서 들려온 말은 조금의 어색함도 없는 한어였고, 그래서 냉음설이 의아하여 묻는 것이었다.

 

“해적들이 모두 왜놈은 아닙니다. 드물긴 하지만 저들 중에는 한족도 있고, 조선족까지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노예로 잡혀왔다가 해적이 된 자들이지만 말입니다.”

 

“그래?”

 

안내 무사가 냉음설에게 설명을 하는 사이, 공병악의 명령을 받은 무사 하나가 앞으로 나가서 자신들은 무이산에서 왔다고 소리쳤다.

 

“귀방의 방주께선 우리가 보낸 서찰을 받으셨을 것이니, 안으로 연락해보시오!”

 

“기다려라!”

 

그 말과 함께 목책 위에서 이십여 명의 사내들이 몸을 드러내 공병악 등에게 활을 겨누었다.

 

“저 활은 뭐야?”

 

냉음설은 자신들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활이 이상할 정도로 커다랗다는 것에 더욱 황당했다.

 

그들이 든 활은 몸체보다 더 길어서 오히려 부실해 보였다.

 

“왜놈들의 활은 대나무로 만드는데, 길이가 한 장이나 됩니다. 그런데 멀리 날아가지도 않고, 정확도도 별로죠.”

 

무사는 냉음설이 묻는 시선을 보냈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풀어놓았다.

 

“그런데 뭐 하러 그런 활을 쓰는 거야?”

 

“자존심입니다. 그들은 작은 활은 약하고, 큰 활은 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사는 곳에서 그렇게 좋은 활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보들이네.”

 

냉음설은 왜놈들의 무식함에 코웃음 쳤다.

 

“하지만 저들도 잘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뭔데?”

 

“칼입니다.”

 

“칼?”

 

“예. 왜도는 매운 좋은 칼이죠.”

 

무사는 자신이 아는 왜와 왜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들도 목책 안에서 대답이 나오기까지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에 무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왜는 섬이기 때문에 기병이 없습니다. 왜의 무사는 목적지까지 말을 타고 가서 내려서 싸우는 보병 전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죠. 뭐, 말이 드물기 때문에 영주나 장군들 외에는 타고 다니는 자들도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왜에선 영주들끼리 싸우기 때문에 엄청난 수의 군사로 전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칼 자체도 말 위에서 쓴다거나 전쟁터에서 쓰기에는 특이한 형태인 것이다.

 

왜도는 약간 휘어진 형태로, 찌르기와 베기를 겸용하는 양손 검이다. 타격 범위가 상체로 한정되어 있고, 상체를 베기에 적합하며 상대가 호구를 차지 않고 창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대결을 펼칠 경우 승리할 확률이 굉장히 높은 것이다.

 

또한 칼을 뽑아 상대를 치는 속도를 높이기 위하여 제일 적당한 길이로 만들어져 있기도 한데, 즉 휴대하는 칼의 용도에 맞게끔 발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왜놈들의 대부분이 몸집이 작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처음 보았을 때는 매우 큰 칼을 차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왜도는 쇠를 접고 또 접으면서 망치로 두드리는 방법으로 만듭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칼의 강도는 우리 것 이상으로 뛰어나죠. 꼭 명검을 만들겠다는 장인의 정신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좋은 칼이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섬에서 싸우기만 하며 산다는 왜놈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칼이군.”

 

무사의 말이 다 끝나자 공병악이 입을 열었다.

 

자신이 검객이기 때문에 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관심 있게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쟁만 하니까 강도 높은 칼이 어울리는 게 아닌가요?”

 

냉음설은 공병악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뒤엉켜 싸우는 전쟁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러니 전쟁에선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대량 생산으로 만든 칼이 더 어울린다는 거다.”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냉음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수긍했다기보다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이해했다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이 이상 칼에 대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냉음설은 해적 따위가 자신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듯 그 예쁜 콧등을 찡그리며 목책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왜도에 대해 들으며 보낸 시간은 촌각에 불과했다. 다행히 곧이어 목책 위에 사람이 나타났기에 그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누가 대장이냐?”

 

앞쪽 머리는 모두 밀어버리고, 뒤와 옆의 머리를 가운데로 틀어 올려서 마치 새우 꼬리와 같은 왜놈 특유의 상투머리를 한 해적이 목책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독룡방의 수뇌들 중에 한 명이 분명했고, 겉모양뿐만이 아니라 어색한 한어만으로도 왜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장만 들어와라!”

 

해적의 외침에 공병악은 이야기하던 무사를 향해 자신과 냉음설을 가리켰다.

 

그리고 곧 그 무사는 해적에게 공병악과 냉음설이 들어갈 것이라고 소리쳤다.

 

“좋다!”

 

왜놈 해적은 공병악 등에게 잠시 살피는 시선을 던지다가 나머지 무사들에겐 목책으로부터 열 장 이상 물러나라 소리치고, 공병악과 냉음설만 들어올 수 있게 목책의 커다란 문을 살짝 열어주라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이렇게 겁이 많은 놈들이 쓸모가 있을까요?”

 

냉음설이 고개를 내저으며 비웃음을 지었지만, 공병악은 역시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교주에게서 독룡방을 포섭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으니까 말이다.

 

“들어가자.”

 

 

 

 

 

* * *

 

 

 

 

 

목책은 한 겹이 아니었다.

 

내벽을 구성하는 나무도 외벽을 구성하는 나무보다 더욱 굵었으며, 그 안으로 두 겹이나 더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즉, 이곳 독룡방의 방주는 매우 겁이 많은 자이거나, 혹은 모든 일에 조심을 기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독룡방의 방주는 매우 호전적인 인물이라 했는데…….’

 

공병악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독룡방은 광동성 근방에서 활동하는 해적들 중에서 가장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가장 유명한 해적 집단이었다.

 

숫자는 대략 오백 정도에 불과하지만, 개개인의 실력과 흉포함이 다른 해적들을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해남도를 근거지로 하여 주변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해남파의 깃발을 걸고 있는 배까지 약탈 대상으로 삼고 있겠는가.

 

그만큼 그들은 겁을 모르는 족속들이고,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정신 나간 놈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이 근거지 주변을 세 겹이나 되는 목책으로 둘러싸고 있다니, 공병악은 그가 알고 있는 독룡방의 정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방주의 측근 중에 그런 자가 있는지도 모르지.’F

 

어떤 무리이건 명성을 얻으려면 힘만 가지고는 소용이 없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등을 판단하고, 가장 위험성이 적으면서 크게 이름을 얻을 수 있게 계략을 짜는 머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해남파에게 적으로 지목된 독룡방이 아직까지 멀쩡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 그들의 근거지가 드러나지 않게 술책을 쓴 자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 우리가 독룡방의 근거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어떤 자가 고의로 흘렸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은밀한 움직임으로 복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혈천신교에 대해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알았다고 해도 독룡방이 멀리 떨어진 혈천신교에 무엇을 얻을 게 있을 거라고 정보를 흘렸겠는가.

 

‘역시 혈령대인가?’

 

혈령대(血靈隊).

 

정보를 탐색하고 수색하는 등등의 일을 맡고 있는 교의 집단이다. 추적, 암살 등에 능한 자들로만 구성되었는데, 처음 창립 당시엔 교 내부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전대 교주가 쓰러지고 나서 위지무성이 혈령대의 명령권을 가지게 된 뒤로 갑자기 은밀하게 모습을 감추는가 싶더니, 이제는 누가 혈령대의 대원인지조차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지금도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위지무성의 명령만을 들으며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이 되어서 활동하는 것이다.

 

‘내가 데려온 수하들 중에도 있을 것이다.’

 

혈령대가 몇 명인지, 누가 대원인지도 모르니 속해 있다고 해도 알아챌 수 없었다.

 

즉, 교의 어떤 자도 위지무성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쪽이다!”

 

세 겹의 목책을 지나자 아까 전에 외벽 목책 위에서 방주의 말을 전했던 왜놈이 기다리고 있었고, 다짜고짜 따라오라 하고는 먼저 걸어가 버렸다.

 

“죽여 버릴까요?”

 

냉음설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생겨나고, 그녀의 눈동자는 달콤한 꿀을 바라보듯 앞서 걸어가는 왜놈의 등에 고정되었다.

 

“말이 서툴 뿐이다.”

 

그러니 참고 있으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공병악도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도 왜놈들을 눈앞에 아른거리는 파리만큼이나 하찮게 여겼고, 그런 왜놈이 자신에게 반말을 내뱉고 건방지게 걸어가는 모습을 참아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교주가 내린 임무를 자신의 분노로 망칠 수는 없었다. 아니, 어느 정도 책임감은 있었기에 참는 것이다. 그래도 교주에게 변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내심은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특하군.’

 

안쪽에는 부분부분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수십 채의 오두막이 있었다.

 

하지만 땅 위에 지은 것이 아니라 한 장 길이의 나무 기둥 네 개를 박아서 그 위에 지어져 있었다. 아마도 습한 남방 기후와 폭풍으로 인해 수면이 올라올 수 있는 바닷가라는 점을 감만하고, 땅을 타고 올라오는 해충을 막기 위한 방편인 모양이었다.

 

그러한 독룡방의 구조를 둘러보던 공병악의 시선이 선착장으로 향했다.

 

‘저게 독룡방의 해선인가?’

 

아주 멀리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거친 파도가 있는 연해를 움직여야 하는 배는 강에서 움직이는 배와 그 크기와 형태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병악은 이전에 해선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공병악이 보고 있는 세 척의 거대한 배는 이전에 보았던 배와 약간 비슷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사선(沙船).

 

현재 해로를 통한 외부와의 교역을 금하여 그 활동이 미미한 명(明)에서 사용하고 있는 해선을 사선이라고 불렀다.

 

배의 밑은 평탄하고, 돛대의 수는 배의 크기에 따라 두 개에서 다섯 개까지 있으며, 선두(船頭)와 선수(船首) 모두 네모난 형태였다.

 

게다가 배의 크기가 클수록 노가 적어서 저 정도의 크기라면 돛에 의지하기 때문에 양쪽에 각기 두 개 정도에 불과해야 하는데, 노의 구멍으로 봐서는 양쪽을 합쳐 스무 개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리고 배의 크기 자체만으로도 사선에 비해 크고, 딱 하니 집어낼 수는 없지만 뭔가 구조적으로 달라 보였다.

 

‘혹시 저게 왜의 해선이라는 안택선(安宅船)인가?’

 

공병악은 해적들 대부분이 왜놈들이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공 오라버니, 저게 무슨 배죠?”

 

옆에서 걸어가던 냉음설도 공병악과 비슷한 궁금증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공병악도 모르니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판옥선(板屋船)입니다.”

 

그런데 길을 안내하던 왜놈이 사라지고, 난데없이 지팡이를 든 사내 하나가 나타나 공병악과 냉음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판옥선?”

 

공병악이 들어본 적이 없는 배라며 되물었고, 얼굴의 생김새는 왜놈 같지 않았으나 머리 모양과 옷차림을 왜놈처럼 한 자가 빙긋이 웃으며 판옥선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판옥선은 조선의 배입니다.”

 

판옥선과 사선은 같은 평저선(平低船)이라는 점 때문에 비슷하게 보일 수 있으나, 구조적으로 보았을 때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판옥선은 돛의 모양을 간소화해서 앞뒤 전후좌우는 물론 회전까지 빠르게 함으로써 연해에서 효과적인 움직임을 갖게 했다. 또한 나무 못을 이용해서 시간이 지나면 바닷물에 의해 불어서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지게 했으며, 갑판에서 대포를 쏴도 반동에 끄떡없을 튼튼한 구조였다.

 

물론 지금 보고 있는 판옥선에는 대포가 실려 있지 않았다. 만약 대포가 실려 있게 되면 관의 대대적인 공격 대상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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