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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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4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13화
파계 5권 - 13화
‘살수문이 등장한 걸까?’
금원종의 생각이 맞는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사실 흉수는 살수다, 라는 결론을 얻었을 때부터 일은 심각해졌다.
이백여 년 전 이후로 무림엔 살수문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청부를 하고 청부를 받는 자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신경 쓸 가치도 없는 하오배들이었고, 무림인들에게 위협이 될 정도의 제대로 된 살수문도 아니었다.
게다가 정사를 불문하고 지금의 무림은 살수문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백여 년 전, 마교가 등장했을 당시에 그들이 무림에 존재하는 모든 살수문들을 제압하여 교도로 거두었고(칠 대 배화교 교주가 그들 자신들이 살수들의 암살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하여 먼저 제압한 것이며, 실상은 교주가 살수들의 암살 행위를 경멸하였기 때문에 교주가 죽고 교가 정사맹에 반격을 당할 때까지는 살수들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 이후로 살수들의 효용 가치에 대한 시선이 달라진 것은 불문가지), 그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정사 문파에 매우 크나큰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 무림에선 살수들을 마교의 하수인들로 규정하여 지금껏 공적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니, 누가 감히 살수문을 만들어 힘을 키우려 했겠는가.
그런데 지금 그러한 살수들의 흔적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조직적이고, 큰 규모의 살수문 흔적이 말이다.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군. 내일 사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강을 거쳐 가야겠어.’
이미 시체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그곳엔 재물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갈 것이기 때문에 뭔가 나올 만한 것이 없을 테지만, 금원종은 한 번 살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오칠은 그런 금원종의 내심을 파악하고 슬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일로 귀찮은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금원종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켜 백천맹의 이목을 끌어온다면 혹시라도 은형대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수적들이 괴멸된 것이 자신과 싸웠기 때문이며, 천목보의 숨겨진 배경이 배화교라는 것까지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어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법. 오칠은 경모혁에게 이 일에 대해 서둘러 알리고, 해결책을 찾아 움직이게 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제 제대로 배나 채워야겠군.’
오칠은 금원종 등에 대한 관심을 접고 노백처럼 술과 음식에 집중했다.
금원종 일행도 현묘채에 대한 심각한 대화를 끝내고 금원종과 능소혜의 혼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시작했기에 일 층은 조금 전보다 약간 더 시끄러워졌다.
왁자지껄.
하지만 곧이어 이 층 계단 위로부터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과 발걸음 소리 등등의 소음이 순식간에 금원종 일행의 대화와 오칠이 음식을 씹는 소리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일 층을 뒤덮어버렸다.
“하하하!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니 좀 더 좋은 곳에서 마셔야 하지 않겠나!”
스물 후반의 제법 잘생긴 사내를 선두로 해서 대략 사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다 젊은 남녀였는데 허리춤이나 등 뒤, 혹은 보이지 않는 품속에 불룩하게 무기를 지니고 다니면서 자신들이 무림인임을 분명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은박으로 ‘지(地)’ 자를 흰옷 상의 가슴에 새기고 있어서 자신들이 열혈군 지군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기도 했다.
오칠은 목운교가 인군에 속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혹시라도 그녀가 있나 은근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들 무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오칠과 노백이 은시로 오는 여정에 차질이 생기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 놈만이 쓸데없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오~ 이거 대단하신 분들이 일 층에 계셨구려!”
사십 명에 이르는 지군의 후기지수들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구는 잘생긴 사내, 상관현표는 술기운이 올라 약간 불그스름한 얼굴에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제49장. 인연(因緣)
금원종을 비롯한 일행의 시선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젊은 남녀들에게로 향했다.
“상관 소협이구려.”
금원종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하지만 분명 그 미소는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닌, 매우 형식적인 것이었다. 타인을 대함에 있어 크게 차별을 두지 않는 성품의 금원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상관현표와 편치 않은 관계라는 뜻이기도 했다.
또한 같은 기치를 내건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모인 열혈군이 마냥 화기애애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도 됐다.
“이번에 능 소저와 혼인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금 대협. 축하드립니다.”
상관현표 역시 금원종 등에게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축하한다고는 했지만, 두 손을 번쩍 들어 포권을 취하는 과장된 표현이 그러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다. 게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말이 좋은 의도로 꺼낸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축하할 만한 혼인식에 저는 초대된 것 같지 않더군요. 무슨 착오라도 있었던가요? 아니면 대화산파에서 이번 혼례를 조촐하게 치르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라도 한 겁니까?”
상관현표는 뒤를 돌아보며 그의 일행들에게 화산파에서 초대를 받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초대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상관현표는 참으로 당혹스럽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것 참 난감한 일이군요. 금 대협께서 우리를 싫어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해가 있는 듯하구려.”
상관현표가 하는 말을 모두 듣고 난 금원종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처음 지었던 미소 또한 지우지 않았다. 그가 매우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다만, 그런 금원종의 태도에 상관현표는 더욱 배알이 뒤틀렸지만 말이다.
“혼례식은 앞으로 두 달 뒤에나 있을 것이고, 초대장은 개인적이 아닌 각 문파로 가게 될 것이오.”
어느 문파건 당연히 그렇게 하는 일이다.
그러니 상관현표가 시비를 걸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군요. 저는 모르겠지만 제 형님과 금 대협께서는 남다른 친분을 가졌다 여겼기에 개인적으로나마 소식을 전해주시리라 믿었는데 말입니다.”
금원종의 미소가 씁쓸하게 가라앉았다.
상관현표가 지금은 폐관에 들어 있는 그의 형, 상관석표를 걸고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상관석표.
그는 삼 년 전까지만 해도 금원종과 꽤 돈독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였다. 하지만 열혈군 천군의 대표로 뽑힌 금원종과 지군 대표인 상관석표 간의 비무 한 번이 그들의 사이를 쪼개버렸다. 또한 형님, 형님 하며 따르던 상관현표도 지금처럼 변하게 된 것은 불문가지.
그렇다면 비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특별한 사건이나 사고는 없었다. 비무를 하게 되면 응당 내려지는 승패의 결론이 문제일 뿐이었다. 상관석표는 힘없이 패하고, 금원종은 완벽하게 승리했다는 결론 말이다.
그리고 그 이후, 삼 년 동안 있었던 세 번의 비무 또한 금원종의 승리로 이어졌기에 두 사람은 이전에 우정을 나누던 친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또한 평소 서로에게 경쟁심이 있었던 천군과 지군의 후기지수들은 더욱더 강한 경쟁 관계를 형성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관석표를 필두로 그 뒤에 있는 지군의 젊은이들이 금원종과 그 일행에 대해 꽤 날카로운 기세를 발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금 대협께서 내일 출발한다고 들었으니 혼례가 있는 두 달 뒤에나 다시 볼 수 있겠군요. 혹 저희 형님이 그때까지 폐관을 풀게 된다면 같이 가자 잘 설득하겠습니다. 물론 그날 금 대협과 못다 한 승부를 종결지어 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분명히 참석하겠지만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럴 의향은 없으신가요?”
“적당히 하고 그만 가시오.”
금원종처럼 인내심이 강하지 않은 능진철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능 형께선 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시오?”
상관현표는 금 대협을 대할 때와는 달리 노골적인 비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그건 능진철이 그의 형인 상관석표에게 패한 적이 있고, 얼굴의 상처도 그때 얻었다는 것으로 인해 능진철을 자신의 아래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은 한 번도 실력의 고하를 결하는 비무를 한 적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것만 봐도 상관현표가 보기보다 철이 없는 사내고, 자신의 배경이나 형의 위명을 믿고 날뛰는 부류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가 형편없는 무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그는 제법 괜찮은 도법을 펼칠 수 있는 무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재능이 형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쌍도를 쥐었고, 변화가 많은 가문의 도법보다는 강(强)을 중점으로 하는 도법을 선택할 정도로 생각이 깊고, 의지도 확고한 사내였다.
하지만 분명 그는 금원종에게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능진철에게도 뒤지는 실력이다. 그건 그 자신도 내심 인정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가 술을 마시지만 않았다면, 지금처럼 객기에 가까운 시비를 걸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금원종과 견줄 수 있는 그의 형과 무림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는 칠절신군(七絶神君) 중 환도신군(幻刀神君)인 그의 부친이 아니었다면 감히 화산파의 제자들을 조롱할 수 있는 배포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불만이 있다고 하면 어찌할 거요?”
가뜩이나 지강에서의 일로 기분이 좋지 않은 능진철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비무를 할 의향이 있다는 눈빛으로 상관현표를 쏘아보았다.
능진철이 표출하는 분노가 매우 강렬했기에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상관현표는 적당하게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술을 마셔서 평소보다 간담이 커져 있었다.
“하하하! 이거 능 형께서 한 성격 한다는 걸 내가 깜빡했군요. 하지만 너무 막 나가면 다치기도 한다는 것을 감안해야지요. 아, 듣기로 지강에 갔었다지요? 그럼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까?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을 겁니다. 우리 지군의 화 소협이 그 수적들을 힘도 못 쓰게 만들어서 능 형이 손을 델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요. 화 소협, 이리로 나와 우리가 들었던 영웅담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해주시오. 여기 천군의 분들은 못 들으셨으니……?”
화유상을 부르던 상관현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이 층에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바로 뒤를 따르고 있었던 화유상이 아직까지 일 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중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상관현표를 보고 있지도 않고, 매우 놀란 얼굴로 일 층의 중간쯤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화 소협?”
상관현표가 이쪽을 좀 보라는 듯 불렀다.
하지만 화유상은 듣지 못한 것처럼 대꾸도 않고 있었다. 당연히 금원종 등은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무슨 일인가 하여 화유상에게 집중되었다.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야?’
상관현표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으며 화유상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가와 같은 좋은 자리가 아닌, 어쩔 수 없이 앉아야만 할 그러한 자리에 놓여 있는 대부분의 탁자들이 비어 있었고, 그래서 화유상이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들은 누구야?’
상관현표의 시선에 먼저 걸리는 것은 하얀 가면을 쓴 사내였다.
가면엔 눈과 입만 뚫려 있어서 꽤 불편해 보였는데, 잘도 술과 음식을 먹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 단창을 매고 있는 것이 무림인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역시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정파인들은 얼굴을 가리는 경우가 드물고, 보통은 나쁜 짓이나 양심에 거슬리는 짓을 많이 하는 사파인들이 얼굴을 가리기 때문이다. 물론 얼굴에 보기 흉한 상처가 있다면 명성이 자자한 정파인이라 해도 가면을 쓸 수도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파의 중심인 백천맹에 감히 발을 들여놓을 사파인이 있을까, 하는 물음에는 역시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자는 별거 없어 보이는데…….’
덥수룩하게 풀어헤친 머리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기는 해도 턱 선이나 몸집이 젊은 사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것은 천으로 싸여 있어서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모양으로 봐서 아마도 단봉 같은 걸 테고, 그러니 그도 무림인이 분명했다.
“화 소협!”
사파인일지 모른다는 아주 미세한 가능성 외에는 별것 없어 보이는 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린 상관현표는 큰 목소리로 화유상을 불렀다.
그제야 화유상은 얼굴의 당혹감을 감추려 노력하면서 시선을 상관현표에게 돌렸다.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시오?”
화유상의 시선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상관현표도 알고 있었지만, 그 시선을 받는 자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술과 음식만 먹어대고 있으니 묻는 것이었다.
‘어쩌면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한 생각을 하며 상관현표는 화유상을 이리 오라고 말했다.
중간에 멈춰버린 금원종 등과의 작은 다툼을 마무리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데, 화유상이 급해 보이는 얼굴로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서는 뭔가 잊고 있던 일이 있다는 궁색한 변명을 대고는 다급하게 객잔을 떠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상관현표는 진정 당혹스러웠다.
금원종과 그 일행의 앞에서만이 아니라, 같은 지군의 동료들 앞에서도 자신의 꼴이 우습게 돼버린 것이다. 이제 능진철을 골려줄 방법도 마땅히 없어 더욱 난감해졌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금원종도 아니고, 능진철도 아니고, 화유상을 놀라게 하고 자신을 무시한 채 떠나게 만든 장본인들에게 향했다.
물론 화유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처리할 일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자리는 화유상이 수적들과 벌인 싸움을 좀 더 부각시켜주기 위해 마련한 것인데, 그러한 자신의 배려에 대해 이리 배은망덕한 행동을 했으니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당신들, 이곳에서 처음 보는 얼굴인데.”
좋지 않은 기분 때문에 상관현표는 처음부터 고압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뒤에서 다가오는 상관현표의 말을 들었음에도 오칠은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것에 열중했다. 그리고 이어서 서봉주를 마시는 것에 집중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상관현표가 다가오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애송이가 괜한 곳에 화풀이를 하려고 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