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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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6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10화
파계 5권 - 10화
“형님?”
노백이 톱을 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오칠은 대답도 않고 계속 사람들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다가 박도를 집어 들었다.
“그걸로 뭐 하시게요?”
“뭘 하긴, 나무를 자르려고 하는 거지.”
“하지만 박도로 어떻게 자릅니까?”
밑동만 잘라내는 것은 박도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죽이 말한 대로 일정한 길이와 넓이를 맞춰서 나무를 조각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노백의 말에도 오칠은 전혀 개의치 않고 박도를 가만히 들어 나무의 몸통에 가져다댔다.
“어!”
“아!”
이틀 만에 삼백 그루의 나무를 잘라왔던 오칠이 이번에는 무슨 놀라운 일을 하려는 것인가, 하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탄성을 터트리며 하던 일을 멈췄다.
오칠이 들고 있는 박도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맺히더니 손짓에 따라 나무를 매끄럽게 잘라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강인가?’
광죽은 오칠의 모습을 보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감탄했다.
도강(刀罡).
검강의 또 다른 모습이며, 도에 평생을 바친 도객들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경지였다. 그런데 고작 약관을 넘은 듯한 젊은이가 그러한 경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펼치며 나무를 잘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당금 무림 세력 중에서 저러한 경지를 이룰 만한 아이를 키울 곳이 있었던가?’
광죽은 그의 기억에 존재하는 무림 문파들을 떠올려보았다.
있었다.
무림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한 명문 정파들은 물론, 그 역사는 짧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공을 바탕으로 강력한 힘을 구축한 사파들 중에서도 저 정도의 기재를 만들어낼 역량을 갖춘 문파들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할 수는 있지만 광죽은 아직 그러한 인재가 나타났고, 또 키워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또 진정 저러한 경지의 인물이 나타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능력은 있으나 성공하는 기재는 너무도 드문 법이었다. 경지라 하는 것은 단순히 그러한 역량을 갖춘 배경에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뤄나갈 수 있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가장 완벽한 기재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리 젊은 나이에 도강을 펼칠 수 있는 경지를 이룬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또 그러한 능력을 일에 응용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 또한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그 문파는 앞으로 무림 제일문이라 자신할 수 있게 되겠군.’
광죽은 그 자신이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라 일컬어지는 소림사의 대표 고수이면서도 그런 생각이 얼토당토않은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짧은 만남일 뿐이고, 오칠이 그 능력을 모두 드러내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광죽은 오칠에게 진정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배경이나 출신 등등의 것들에 대한 의문이 가득하여 진정 무림에 이로운 인물인가, 라는 판단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말이다.
“야~ 나는 무림인에 대해서 많은 말을 들어보았지만, 저처럼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은 들어보지 못했어!”
“나도 마찬가지일세.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대단한 저 능력을 어찌 나무 자르는 것에 사용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 정말 저 젊은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림인들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구만.”
사람들은 너도나도 오칠에 대한 말뿐이었다.
그가 마을의 아이를 폭우가 쏟아지는 강에서 구해왔다는 것부터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이제는 도강이라는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대단히 높은 경지를 펼쳐 집을 짓기 위해 사용하고 있으니 그에 대한 말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도 도강을 이렇게 사용할 줄은 몰랐다고.’
오칠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필요하기 때문에, 또 가장 알맞게 사용할 수 있기에 도강을 펼쳐 나무를 자르고 있는 것이지만, 잠시 달리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기는 짓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신중하게 생각하면 그리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다.
무공(武功)이란 무엇인가?
무공의 근본적인 목표는 자신의 단련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든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인간이 고안해낸 매우 폭력적인 방법의 한 가지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무공의 쓰임새는 무엇인가?
물론 여전히 자신의 단련이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방법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왜 나는 그렇게 단련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달리 할 말도 없고, 설득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칠은 무엇이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어야 진정 의미를 갖는다고 믿었다.
도강이란 것이 상대의 무기를 깨부술 때나 상대의 사지를 자르고 목숨을 빼앗을 때나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손쉽고도 빨리 나무를 자르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라면 또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무공이란, 도강이란, 또 여러 가지 어떠한 무공들이건 사용하는 이에 따라,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목표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무공이 어떤 한 가지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걸 오칠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필요할 때 펼치는 것이 무공이고, 지금은 나무를 자르는 데에 그 능력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엄청나게 빠르다!”
사람들은 오칠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톱질로 하는 것에 비할 바 없는 속도였고, 그 잘리는 단면의 매끄러움과 정확도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우리도 더욱 힘을 내자고!”
“그래! 이러다가는 집을 짓는 일을 저 젊은이가 몽땅 다 해버리고 우리는 체면도 세우지 못할 것 같단 말이야!”
사람들은 오칠이 고작 이틀 만에 수백 그루의 나무를 잘라오고, 이제는 엄청난 속도로 그 나무를 집을 짓는 재료로 만드니, 곧 다른 일까지 손을 뻗치게 될 것이라며 일을 하는 데에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칠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그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주는 무림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늘 밖에 하늘이라는 말이 있다.
무림인들은 그들 보통 사람들에게 바로 하늘 밖의 하늘에 살고 있는 이들과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사는 세상도, 사는 방식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까지도 다른 무림인들은 보통사람들에게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이런 시골 어촌 마을에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달랐다.
그들로서는 생각도 못하는 기술을 쓰기는 하지만 역시 그들과 다름없이 땀을 흘리고, 일을 한다는 것이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오칠은 일을 하고, 그를 보며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끼고, 장강의 범람으로 피폐해진 마을엔 절로 활기가 돌았다. 그리고 그렇게 집을 짓는 가운데 하루가 저물어갔다.
제48장. 향설주(香雪酒)와 서봉주(西鳳酒)
왁자지껄.
절반쯤 지어진 마을 한편으로 여섯 개의 불꽃이 타오르고, 그 주위로 십여 명씩 둘러앉은 마을 사람들은 기대감과 즐거움 가득한 대화를 나눈다.
지글지글.
불꽃의 일렁임 속에서 깨끗이 털이 뽑힌 멧돼지들이 기름기를 뚝뚝 떨어트리며 익고 있다. 그 크기만 해도 엄청난 여섯 마리의 육중한 멧돼지들.
사람들은 오랜만에 기름진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이런 녀석들을 잘도 잡아왔구나?”
광죽 스님은 옆에 앉아 있는 오칠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다.
능숙한 사냥꾼들도 잡기가 쉽지 않은 커다란 멧돼지를 두 시진 만에 여섯 마리나 잡아온 오칠의 능력에 감탄한 것이다.
반면에 오칠은 광죽 스님이 감탄을 하든 어쩌든, 많고 많은 자리 중에서 왜 하필이면 자기 옆에 앉아 있느냐는 듯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계속 빤히 쳐다보니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한동안 산에 살았던 적이 있어서 멧돼지의 이동 습성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산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냐?”
“예. 잠시 동안이었습니다.”
사실, 산에서 지낸 시간만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었으니 잠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해 자세히 말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다 익은 것 같은데 먹읍시다.”
오칠은 나무로 멧돼지를 쿡쿡 찔러보더니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젊은이 먼저 드시오.”
마을 사람들은 예의를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구해주고, 마을을 재건하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오칠이 멧돼지까지 잡아왔으니 우선 그부터 먹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소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큼직한 앞다리의 뿌리 부분을 칼로 찔러 우지직 뜯어내고는 그걸 광죽에게 내밀었다.
“먼저 드십시오.”
중에게 고기를 권하다니.
오칠은 광죽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걸까?
하지만 놀랍게도 광죽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앞다리를 받아들었다.
“중이 시주를 사양해서는 아니 되는 법이지.”
광죽은 히죽 웃으며 앞다리를 크게 한입 물고는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오칠은 신비로운 척하는 중이라 육식을 하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다시 뒷다리 하나를 뜯어내 손에 들었다.
“이제 모두 드십시오.”
오칠의 말에 사람들은 와~ 하며 노릇하니 먹기 좋게 익은 멧돼지에 너도나도 손을 뻗었다.
“젊은이, 술 한잔 받으시게.”
마을의 촌장이라는 노인이 손에 작은 항아리를 들고 다가왔다.
“술도 있습니까?”
마을이 물에 잠겼는데 어디서 술이 난 건가, 하고 의아하여 물은 것이다.
“허허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술을 담가서 산에다 묻어둔다네.”
촌장이 가리킨 곳에는 족히 스무 개가 넘는 술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오칠이 사냥을 해오겠다는 말을 한 뒤 산에 들어간 사이에 촌장이 사람들과 같이 꺼내온 것이다.
꿀꺽꿀꺽.
마침 목도 마르고, 술 생각이 났던 오칠은 질그릇에 가득히 따라지는 술을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들이켰다.
“카~”
달짝지근한 맛에다가 입 안 가득 향이 진하게 남으면서 술기운이 확하고 올라왔다.
맛도 좋을뿐더러 매우 독한 술이었다.
“어떠냐?”
옆에 있는 광죽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물었다.
오칠은 중이 술맛을 알아서 뭐 하냐는 눈빛을 보내면서 아주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무슨 술입니까?”
오칠이 물음에 촌장은 찹쌀을 보리누룩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소흥주(紹興酒)라고 했다.
하지만 오칠을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알고 있는 소흥주의 맛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술의 색깔도 이처럼 맑지 않고 노란 빛을 띠었던 것이 오칠이 알고 있는 소흥주였다.
“젊은이가 마셨던 것은 소흥주 중에서도 아마 가반주(加飯酒)일 것이네. 가반주는 찹쌀의 양을 많이 하니 색깔도 노란빛을 띠고 있지. 그리고 이 술보다 달지 않고 씁쓸한 맛이 좀 더 강할 것이야.”
“그렇군요.”
“이 술은 소흥주 중에서 단맛이 강한 향설주(香雪酒)라네. 향설주는 다른 소흥주보다 더 독하고 단맛이 강하면서 또 향이 진하지. 우리 같은 촌부가 마시기에는 아주 훌륭한 술이란 말이야.”
촌장은 이런 시골 어촌에 사는 노인네치고는 술에 대한 지식이 꽤나 해박했다.
그래서 어찌 그리 잘 아시냐 물었더니, 과거 젊었을 적에 도심으로 나가서 배워온 것이 이 소흥주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했다. 모진 고생을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돌아왔지만, 딱 이 술 빚는 법 하나를 머리에 담아왔다는 것이다.
오칠은 촌장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향설주를 만드는 법에 대해 물었다. 원래 뭔가를 만드는 법은 쉽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지만, 촌장은 오칠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서 그가 알고 있는 술 빚는 법을 아주 소상하게 설명해주었다.
‘분주는 실패했지만, 이 향설주는 꼭 성공시켜야지.’
오칠은 그의 주점에서 자신이 빚은 술을 아무도 마시지 않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한마디로, 했다 하면 모든 걸 완벽하게 이뤄내는 팔방미인이라 자부하는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게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종삼이 만든 음식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술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주점을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담았다.
말 그대로 주점에는 술을 먹으러 와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헛고생만 하는가 싶었더니, 쓸모 있는 걸 배워가는군.’
오칠은 무한 제일 세력의 수장치고는, 그리고 무림이 두려워하는 마교(배화교)의 교주치고는 꽤나 소박한 기쁨에 만족감을 느끼며 손에 쥔 뒷다리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어느새 벌컥벌컥 향설주를 마셔대는 광죽과 노백에게 뒤질세라 열심히 술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