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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0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5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109화

파계 5권 - 9화

 

 

 

 

 

과거 오칠은 소림 제일의 고수이자, 방장의 사숙이기도 하며 수년 째 탁발승으로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의 이름이 광죽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소림 제일고수의 모습이 이리 왜소하고 초라하다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지만.

 

어쨌든 오칠은 광죽이 자신에 대해 모를지라도 자신이 소림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무공을 보이지만 않으면 알아챌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네 녀석은 거기에 왜 있었던 거냐?”

 

오칠은 그 물음에 대꾸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배를 타고 가다가 수적을 만나 물에 빠졌다고 순순히 말해주었다.

 

“이 녀석은?”

 

광죽이라는 이름의 중은 오칠의 옆에서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노백을 가리켰다.

 

그 눈빛은 가면을 쓰고 있는 녀석이, 더구나 등에는 단창까지 매고 있는 녀석이 참으로 의심스럽기 그지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거친 물살을 헤쳐 오다 보니 진이 빠져 그렇습니다.”

 

역시나 있는 그대로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광죽은 그 이상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더니, 이제는 전혀 의심할 것이 없다는 듯 무덤덤하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찻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이가 자신에 대해 한 말을 곱씹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날아 물 위를 박차는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자신이 아이의 형을 찾으러 간 사이에 나타난 광죽은 분명 아이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까.

 

‘하여튼 늙은이들이란.’

 

나이도 좀 들고, 뭔가 대단한 내력을 지닌 듯한 늙은이들은 왜들 이렇게 모두 신비를 가장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소림 제일고수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땡중이라 칭하는 것부터가 신비롭게 보이려는 한 표현인 것이다. 더구나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행동과 표정을 보면 괜히 욕을 한 바가지 내뱉어주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었다.

 

왜?

 

그냥 그 모습이 진실을 감춘 채 보여주는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는 이유 없는 괴팍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꼴사납게 너무 폼을 잡는다는 말이다.

 

‘그래도 귀찮게 이것저것 묻지 않아서 다행이군.’

 

오칠은 광죽의 초라하게 비쩍 마른 옆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조금 뒤, 아이의 부모가 가져온 나물밥을 먹고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나흘이나 비가 쏟아진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그 하늘은 온통 질척한 황톳빛으로 가득한 장강의 물결이나, 날카로운 발톱에 할퀴어진 것처럼 부러지고 찢겨진 대지의 처참한 모습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평화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하늘이 아니라 땅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내심 그렇게 맑고 쾌청하며 평화로운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피와 땀을 흘리며 이뤄놓은 것들이 모두 망가져버렸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절망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자연 재해는 매년은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 꼴로 그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이 외에도 그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드는 요건들은 세상에 너무나 많았으니까.

 

그러니 이 정도에 절망한다는 것은 시골 어촌 사람들에겐 사치스런 감정에 불과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없기에 언제 어느 때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아니, 그것은 신념이라기보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일 뿐이었다. 너무도 당연하게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일부분이다.

 

‘나완 상관없지.’

 

오칠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하늘이 관조하듯 대지를 바라보는 것처럼, 오칠도 역시 모든 것을 그저 관조하며 보길 원할 뿐이다. 그래서 비가 그치면 어촌 사람들과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오칠을 광죽이라는 땡중이 가로막아 섰다.

 

“돕고 가.”

 

“저한테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네 앞에 서 있는데 당연히 너한테 말하는 것이지, 또 누구한테 말하겠냐?”

 

오칠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싫은데요.”

 

“왜?”

 

“갈 길이 바쁩니다.”

 

“안 바쁜 거 알아. 그러니까 집 짓는 것만 돕고 가. 길어야 열흘이다.”

 

“왜 안 바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전 집 짓는 능력도 없습니다.”

 

“네놈이 안 바쁜 것은 척 보면 알아. 그리고 집 짓는 능력이 없으면 배우면 돼. 분명 네놈이 힘을 쓰면 일이 한결 수월해질 거다.”

 

광죽은 끈질기면서도 집요했다.

 

그리고 막무가내였다.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오 형님, 돕고 가죠.”

 

오칠의 시선이 그의 옆에 선, 나흘 동안 안정을 취하고 이제는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가면인, 노백에게 쏘아지듯 날아갔다.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것도 다 노백의 쓸데없는 짓거리 때문인데, 또다시 초를 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백은 슬며시 시선을 외면하면서 오칠의 끓어오르는 분노를 무시했다.

 

“네놈이 알겠습니다, 하고 말할 때까지 계속 붙들고 늘어질 테니까 그냥 속편하게 돕고 가겠습니다, 라고 말해.”

 

“하!”

 

오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모두 통틀어도 이렇게 어이없던 적은 참으로 드물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늙은이가 왜 이렇게 거머리처럼 늘어지고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오칠은 결국 분노를 애써 내리누르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광죽의 막무가내식 협조 요청과 미운 시누이처럼 중간에 끼어들어 돕고 가죠, 하고 툭툭 내뱉는 노백.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불쌍한 표정 등등의 것들이 오칠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이다.

 

‘목운교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런 난관에 부딪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무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가라는 경모혁의 말을 들을 걸, 하는 생각까지 했다.

 

“뭘 하면 되겠습니까, 스님?”

 

오칠이 결국 승복하자, 노백은 앞으로 나서서 공손하게 물었다.

 

“흠, 일단 집을 지으려면 나무가 필요하니, 길고 반듯하게 자란 큰 나무로 골라서 한 삼백 그루 정도 잘라 와라.”

 

삼백.

 

넓고 큰 산에서 삼백 그루의 나무라면 머리에서 털 하나 뽑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크고 반듯하게 자란, 집을 짓는 목재로 효용성이 있는 나무 삼백 그루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넓고 큰 산에서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그걸 잘라서 가지를 치고 이곳까지 가져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노백은 가면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돕겠다는 마음은 가득했지만 꽤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에 잠시 당황한 것이다. 한데, 당황하는 노백과 달리 오칠은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삼백 그루면 되겠습니까?”

 

오칠은 그 이상은 필요 없죠? 하고 물었고, 광죽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오칠은 몸을 돌려 노백과 함께 산으로 향했다.

 

나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오칠은 보통 사람보다 빨리 찾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서둘러 일을 끝낼수록 빨리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아니 저 땡중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 *

 

 

 

 

 

오칠은 한곳만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한곳은 굵고 곧은 나무의 밑동이었고, 오칠은 손에 들고 있는 투박한 박도에 공력을 주입하며 노려보고 있던 부위를 향해 가차 없이 박도를 휘둘렀다.

 

스아악―

 

박도의 휘둘러지는 속도는 절대 빠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박도 특유의 투박함이나 묵직함도 없었다. 그저 가장 평범하다 생각되는 속도로 휘둘러지면서 둘레가 한 장에 이르는 나무의 밑동을 깨끗하게 잘라냈다.

 

“넘어 간다―!”

 

오칠의 옆에 있던 아이가 크게 소리쳤다.

 

우두두둑! 쿠쾅―

 

밑동이 깨끗하게 잘린 나무는 좌우에 같이 자랐던 나무의 가지들을 부러트리고, 자잘한 작은 나무를 밀쳐내면서 둔중한 굉음을 터트리며 비탈진 땅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주변에서 움츠리고 있던 십여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쓰러진 나무의 잔가지들을 작은 칼로 쳐내며 굵고 묵직한 몸통만 남게 만들었다.

 

물론 잘라낸 잔가지들도 정리가 되어 땔감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역시 대단하군.’

 

노백은 오칠로부터 넉 장 거리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지금껏 그렇게 놀랐으면서도 여전히 오칠이 나무를 일도에 잘라내는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일도(一刀)에 잘라낸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둘레가 한 장에 이르는 생나무를 아무런 비틀림도 없이 거울처럼 매끈하게 잘라내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노백을 놀라게 하는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충 이백 그루가 넘어가고 있지?’

 

오늘 반나절까지 친다 해도 고작 이틀이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노백 자신은 오십여 그루 정도밖에 잘라내지 못했는데, 오칠이 찾아내서 쓰러트린 나무는 이미 이백여 그루가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 속도라면 오늘 안으로 광죽 스님과 약속한 삼백 그루를 완전히 채우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저러니 삼백 그루를 잘라 오라는 말에도 담담했겠지.’

 

오칠이 저렇게 나무를 잘라내는 능력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집을 짓기 좋은 굵고 곧게 자란 나무를 찾아낸 것도 모두 오칠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지형을 살피고, 나무의 모습 등을 보더니 지체하지 않고 산을 타다 보면 딱 좋은 나무들이 있는 곳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성격이 안 좋아서 그렇지, 정말 세상에서 형님을 따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을 것이다.’

 

노백은 오칠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며 양손에 쥔 박도를 더욱 꽉 움켜잡았다.

 

“흐읍―”

 

길게 내쉰 숨을 다시 깊숙이 들이마신 노백은 오른손에 쥔 박도를 나무의 밑동을 향해 휘둘렀다.

 

샤악!

 

박도가 날카롭게 나무의 껍질을 베고 지난 뒤, 이어서 왼팔을 움직여 박도를 휘둘렀다.

 

샤악!

 

그리고 다시 오른팔이 움직이고, 다시 왼팔이 움직이며 박도가 나무를 베고 지나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샤삭! 샤삭! 샤샤샤샤삭!

 

너무도 빠르게 휘둘러지는 두 개의 박도가 나무의 자잘한 파편을 바닥으로 흩뿌리며 점점 안쪽으로 파고들어 나무의 허연 속살을 더욱 크게 벌렸다.

 

끼긱! 끼끼끼끼!

 

나무 밑동이 반 이상 잘려나가며 몸체가 앞으로 기울어지자 아직 잘려지지 않은 부위가 비틀린 신음을 지르며 부러져가기 시작했다.

 

“넘어 간다―!”

 

노백의 옆에 있던 아이가 크게 소리쳤고, 나무는 둔중한 굉음을 터트리며 비탈진 땅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아이들 십여 명이 달라붙어 잔가지를 쳐내고 말끔하게 몸통만 남겨두었다.

 

“후… 힘들군.”

 

노백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오칠은 나무 하나를 잘라내는 데에 촌각에 불과한 시간이면 가능했지만, 자신은 너무도 힘들게 잘라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지치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그가 하나의 나무를 잘라내는 사이에 오칠은 벌써 세 그루를 잘라내 쓰러트렸다.

 

하지만 노백은 오칠이 쉽게 잘라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힘을 쓴 것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기세를 날카롭게 세우고, 가장 완벽한 각도를 찾은 뒤에 일순간에 공력을 일으켜 도를 휘두르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심신을 극도로 지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대단한 거지.’

 

오칠에 대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그의 능력에 감탄만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노백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에나 힘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다른 나무를 향해 움직였다.

 

 

 

 

 

* * *

 

 

 

 

 

“이게 마지막이지?”

 

오칠은 그의 발 앞에 크고 긴 거체를 늘어트리고 있는 나무의 몸통을 내려다보며 노백에게 물었다.

 

“예. 이걸로 딱 삼백 그루입니다.”

 

“좋아. 그럼 들고 내려가자.”

 

오칠은 삼백 그루째인 거목의 끝자락에 섰고, 노백은 그 반대쪽에 섰다.

 

그리고 둘은 각기 거목의 양쪽을 잡고 가뿐하게 어깨에 짊어졌다. 장정 여덟 명 이상은 되어야 낑낑거리며 들 수 있는 거목을 그리 쉽게 드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놀라고 있었지만, 오늘 하루 동안 수백 번도 더 본 모습이었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듯한 표정이다.

 

거목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을 내려가는 오칠과 노백, 그리고 그들의 뒤로 십여 명의 아이들이 땔감으로 쓸 나무들을 등에 지고 행렬을 이었다.

 

뚝딱. 뚝딱. 뚝딱.

 

장강의 범람에도 어느 정도 안전할 수 있는 곳을 새로운 마을 터로 잡은 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뚝딱거리며 집을 짓는 것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광죽 스님이 매우 능숙한 손길로 집을 짓는 일을 조율하고 있었다.

 

“삼백 그루입니다.”

 

오칠은 노백과 옮겨온 나무를 지금껏 가져온 나무들이 가지런히 쌓인 곳에 내려놓고는 광죽에게 다가가 말했다.

 

“삼백 그루라고?”

 

“예.”

 

“그럼 이것과 똑같은 크기로 모두 잘라 놔라.”

 

광죽이 가리킨 곳에는 일정한 넓이와 길이로, 몇 가지의 종류로 해서 잘라져 있는 나무가 있었다.

 

오칠은 가만히 그 나무를 바라보다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과 노백이 나무를 잘라서 옮겨 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톱으로 잘라야 하는 모양입니다.”

 

쓱싹. 쓱싹. 쓱싹.

 

모두 열여섯 사람이 톱을 들고서 광죽이 말한 모양대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오칠과 노백에게도 하나씩 톱이 건네어졌다. 하지만 오칠은 톱을 받고도 나무를 자르지 않고 사람들이 하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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