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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42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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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42화

파계 6권 - 17화

 

 

 

 

 

“…….”

 

흥분과 그에 따른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 자리에 앉으려던 목운교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오칠과 시선이 마주쳤다.

 

“좋은 검이었습니다, 목 소저.”

 

오칠은 그녀의 긴장감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처음의 차분한 표정 그대로였다.

 

주변을 가득 채우는 흥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무관심하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목운교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 그가 가장 기뻐해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자신이 아낌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오칠이 매일 밤 검을 수련하는 그녀를 찾아와 조언을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

 

목운교는 그제야 비무 중에 그녀에게 전음을 보낸 사람이 오칠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칠의 지적과 조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오칠이란 존재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어.’

 

목운교는 오칠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오칠도 웃었다. 목운교의 미소는 크고 환한 웃음이 아니라 입가에 살포시 그려지는 작은 웃음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오칠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의미가 담긴, 오칠에겐 더할 수 없이 예쁜 미소였던 것이다.

 

한데,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즐거운 감정을 교환하고 있는 때에 난데없이 하나의 음성이 연무장을 크게 울렸다.

 

“천환도 상관석표가 이곳에 자리한 모든 분들에게 한 가지 허락을 구하겠소이다―!”

 

연무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군의 무리들이 모여 있는 곳 뒤쪽으로 훤칠한 키에 매서운 눈빛을 가진 사내, 천환도 상관석표가 서 있었다.

 

“상관 대협께서 출관을 했다는 말은 들었소. 하지만 무슨 허락을 구하겠다는 것이오?”

 

유신명은 이렇듯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말을 하는 상관석표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군장님들께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지금 제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상관석표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며 말을 하자 유신명도 굳은 표정을 풀고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이곳에 계신 한 분께 비무를 청하는 것입니다.”

 

“비무?”

 

유신명에게 향해 있던 상관석표의 눈이 주변을 쓱하고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인군 제일고수라고 알려진 상관석표의 매서운 눈빛을 받자 당혹해했다. 특히 천군의 후기지수들은 상관석표를 비롯한 지군의 후기지수들과 편치 않은 사이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들 중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꺼림칙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염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이었다.

 

“창천도문의 상관석표가 무적 정의파 오 장문인께 감히 비무를 청하오이다!”

 

 

 

 

 

제61장. 누구나 가질 수는 없는 명성(名聲)

 

 

 

 

 

간은 어느덧 신시(申時:오후 3~5시) 중순에 이르러 있었다.

 

태양은 서쪽으로 저물어가려 하고, 늦가을의 바람이 시원스럽다기보다는 서늘하게 느껴질 그러한 때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연무장에 가득해 있는 수백의 사람들은 그러한 서늘함을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주변을 달구기 시작한 묘한 열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감각은 그 열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난데없이 상관석표에게 비무 신청을 받은 오칠에게 말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냉화검 여초홍 여협과 비천폭풍검 능진철 소협에게 가르침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군의 무리에 앉아 있는 능진철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여초홍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듯 아미를 찡그렸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먼저 나하고 싸워보자며 소리를 쳤겠지만, 그녀도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겠다는 듯 아무 말도 않고 꾹 참고 있었다.

 

“그러니 오 장문인께서 이 비무에도 꼭 응해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요청하는 상관석표의 음성이 조용한 연무장을 묵직하게 울려나갔다.

 

‘뭐야, 저놈은?’

 

드디어 마음을 열려 하는 목운교와 이제부터 어떻게 지내볼까, 하는 생각에 가슴 가득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오칠은 와락 짜증이 났다.

 

하지만 수백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려 있고, 특히 목운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는데 짜증을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대해서 소문만 들어왔던 사람들이 사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오칠의 외모에 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상관 대협이라 하셨소?”

 

“그렇습니다.”

 

“솔직히 너무 갑작스럽게 받은 비무 신청이라 나는 조금 얼떨떨한 심정이오.”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후배에게 지도한다고 생각하시고 받아주십시오.”

 

‘후배?’

 

오칠은 하마터면 크게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나이로 따진다면 상곽석표는 오칠보다 더 많았다. 뭐, 무림에서의 위치, 처음 무림출도한 시기 등등의 사항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누가 선배고, 누가 후배인지 규명이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세부적으로 따져 무엇 하겠는가.

 

사실, 한 문파의 장문인과 명망 있는 문파의 후계자 정도로서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다. 그러니 선배니, 후배니 하는 상관석표의 말은 오칠이 비무에 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조금 과하게 예의를 차린 것뿐이었다.

 

‘기분 나쁜 놈이네.’

 

무엇보다 상관석표가 왜 비무를 요청했는지 빤히 그 의도가 보임에도 말을 비비꼬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곳 연무장에 있는 사람은 모두가 지금의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처음 상관석표가 나타나 누군가에게 비무를 청한다고 했을 때는 누구하고 싸우려는 거야? 하고 궁금해했지만, 그 대상이 오칠이란 말에 금방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상관석표가 폐관 중일 때 그의 동생인 상관현표가 오칠의 의동생에게 패하여 크게 다친 일을 두고 복수하려는 생각임을 말이다.

 

“제 요청을 받아주시겠지요?”

 

오칠이 아무 말이 없자, 상관석표는 응당 비무를 받아들일 것이라 믿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말해서 다른 사람들도 오칠이 당연히 받아들이겠지, 하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만약 오칠이 안 되겠소, 하고 말하면 마치 겁이 나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오칠은 사람들의 그런 생각에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자신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이라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남의 시선 같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래서 오칠은 지금은 별로 비무하고 싶지 않소, 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칠이 말을 하기도 전에 나서지 말아주었으면 싶은 인물이 끼어들었다.

 

“상관 대협께서 비무를 빙자해서 아우 분의 일에 대해 복수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형님이 아니라 나에게 비무를 청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되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열혈군의 사람이 아님에도 구경을 하겠다고 몰려든 무리의 중심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흰 가면을 쓴 사내가 일어나서 상관석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백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백을 보며 오칠은 한숨을 쉬었다.

 

“연환쌍도 상관 소협을 무릎 꿇린 백면객이다.”

 

“신창과 비견될 정도로 창술이 뛰어나다는 그 백면객이야.”

 

사람들은 노백이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듯 조그맣게 숙덕거렸다.

 

하지만 노백이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그 말들을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게 그런 별호가 생겼던가?’

 

백면객(白面客).

 

원래는 창술이 뛰어나다는 별호가 지어져야 했지만, 그 의미에 가장 적합한 신창(神槍)이라는 별호는 이미 유신명에게 붙어 있었고, 그래서 뛰어난 창술만큼이나 특징적인 흰 가면을 쓴 얼굴 때문에 백면객이란 별호가 노백에게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백면객 노백의 창술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변함없었고, 별호 뒤에 묻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신창 유신명도 흥미로운 시선으로 노백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 대협께선 뭔가 오해를 한 듯싶구려. 창천도문 본가에서도 내 아우의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기로 했소. 그런데 내가 어찌 본가의 결정에 반하여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겠소이까.”

 

사람들은 또다시 웅성거렸다.

 

창천도문에서 그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 것은 문주인 환도신군이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심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가문에 속한 사람이 비무에 패해 다치는 걸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건 무림이란 곳에선 매우 드문 일이었다. 특히 창천도문처럼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곳은 더더욱 가볍지 않은 사안인 것이다. 잘못하면 가문 전체의 위신이 추락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특히나 그 일은 문주의 아들이 얽힌 일이 아니던가.

 

“그 말 진심이시오?”

 

하지만 노백은 얼마 전까지 무림인이 아니었다.

 

무인이라고 말한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무공 외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무림인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더구나 신의를 거론함에 있어서는 인의대협(仁義大俠)이라 칭송되는 무림인들보다 더욱 고지식한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자리한 무림인들이 상관석표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 것과는 달리 노백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오 장문인께 비무를 청하는 것은 그런 복수심 때문이 아니오. 난 얼마 전까지 가문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 반년 동안이나 연공실에서 폐관을 하고 있었소. 그런데 내가 폐관을 풀고 나온 시점에 마침 오 장문인께서 열혈군에 견학을 목적으로 오셨다는 말을 듣고 가르침을 얻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오. 물론 내 아우가 다친 것이 내게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난 무림인이오. 무엇보다 무를 숭상하고, 더욱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오. 그래서 오 장문인께 비무를 청하는 것이오. 무한의 사파인들을 홀로 상대하고, 그들 모두를 굴복시킨 무공을 직접 견식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이오.”

 

상관석표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까지 흔들리게 만들 정도로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노백은 설득당하고 말았다. 상관석표가 진정 무인으로서 오칠과 비무를 하고 싶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내가 의심했던 것을 용서하시오. 상관 대협이 그런 마음으로 청한 것이라면 형님께서도 거절하시지는 않을 것이오.”

 

노백의 그 말을 듣고 상관석표는 내심 미소를 지었고, 오칠은 속으로 어이없어 했다.

 

‘저 자식을 그냥!’

 

차라리 끼어들지나 말지.

 

아우란 놈이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내가 왜 저놈과 의형제를 맺었을까!’

 

아무래도 노백과 의형제를 맺은 것은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이래서 자신이 산을 내려온 뒤로 인간적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망설이고, 조심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미 그렇게 관계를 맺어버린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것도 다 업보인 것을.

 

‘업보? 근래에 노스님 생각을 많이 했다고 이런 말도 자연스럽게 나오는군.’

 

오칠은 내심 한숨을 쉬면서 사람들을 지나 연무장으로 걸어 나왔다.

 

“아우의 말대로요. 상관 대협이 그런 마음으로 비무를 청한 것이라면 내가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오칠은 상관석표의 교활함에 이를 갈았다.

 

하지만 오칠은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군장들께서 이 비무에 공증인을 서주시겠다고 한다면 흔쾌히 응할 마음을 가지고 있소.”

 

즉, 군장들이 공증인이 되지 않는다면 비무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오칠이 군장들에게 공증인이 되어달라고 요청한 것은, 혹시라도 생겨날 불미스런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전 상관현표에 관한 일은 경모혁이 재빨리 창천도문에 손을 써서 무마시키기는 했지만, 또 사건이 터지면 정말 귀찮은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오칠은 적당하게 상관석표를 상대해주다가 단단히 망신을 주어도 뒷감당할 필요가 없게 하려는 것이다. 원해서가 아닌, 요청받은 비무를 군장들까지 공증인으로 해서 정당하게 이겨버리면 창천도문이라 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목운교와의 좋은 분위기를 깨고, 생긴 것 같지 않게 순진한 노백을 속여 비무를 해야만 하는 분위기로 몰아간 저 교활한 녀석에게, 자신이 그렇게 툭툭 건드려도 될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단단히 알게 해줄 생각인 것이다.

 

“군장님들께서 공증인이 되어주십시오.”

 

오칠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상관석표는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간다고 확신하며 유신명 등의 군장들에게 부탁했고,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구경하고만 있던 사람들도 공증인을 맡으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상관석표가 오칠에게 비무를 청하는 저의를 의심하고 있고, 어느 정도 짐작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왜 갑자기 흥분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림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 비무가 무슨 의도로 생겨나는 것인지, 혹은 이 비무로 인해 누가 다치고, 누가 득의의 웃음을 짓게 될지에 대해선 아무 관심도 없었다.

 

이들은 그저 쉽게 성사될 수 없는 두 사람의 비무가, 분명 대단한 대결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 이 비무가 지금 자신들이 보고 있는 이 자리에서 펼쳐지기를 원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무림인임을 부정할 수 없는 군장들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문제는 수습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 위험한 일이 발생할 것 같다 싶으면 그때 나서서 막아도 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이전 무적 정의파의 개파식에서 보았던 오칠의 무공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때의 경이적인 오칠의 무공이 자신들의 착각인지, 아닌지 분명하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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