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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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6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39화
파계 6권 - 14화
치칭―
황급히 가슴 앞쪽으로 검을 빗겨 들어서, 츠바사의 검을 막아낸 장문인은 그대로 반격을 시도하려고 했다.
“윽!”
한데, 장문인은 손목으로부터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장문인의 검은 츠바사의 검에 얽힌 것처럼 바짝 붙어 있었고, 그러한 얽힘을 풀면서 검을 휘두르려고 했던 장문인의 손목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심하게 뒤틀려버린 것이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
츠바사의 음성이 장문인의 귓가를 간질이듯 스쳐지나갔다.
‘언제?’
언제 츠바사가 자신을 지나 뒤쪽에 선 것인지 장문인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 그의 목에 가느다란 혈선을 만들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츠바사는 장문인의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검객이었고, 장문인은 그저 의문만 갖은 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풀썩.
깨끗하게 잘린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이어서 머리 없는 장문인의 신형이 젖은 짚단처럼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츠바사는 승리를 만끽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죽어버린 장문인을 보는 츠바사의 눈동자는 언뜻 슬퍼 보였다.
‘난 무엇이 다른가.’
해적이 되었지만, 다른 목적을 갖고 있기에 진정한 해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자신은 무엇이 다른가.
그가 살았던 섬 마을을 약탈하던 해적들과 목적을 위해 해남파를 유린하고 그 장문인을 죽인 자신은 무엇이 다른가.
‘다르면 어떻고, 같으면 어떠한가.’
나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정도(正道)가 아니었다.
츠바사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그에게 검을 전수해주셨던 분이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정도(正道)가 어디 있던가.
츠바사는 얼굴을 보지도 못했던 나라님(王)이란 놈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 그분이 억울하게 돌아가셨던 그날 그렇게 생각했다. 그분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결국 그분이 그렇게 돌아가신 순간, 그 가르침의 의미는 모두 죽은 교훈이 되어버린 것이다.
“…….”
덥석.
츠바사는 잘린 장문인의 머리채를 잡아 위로 들어올렸다.
매끈하게 잘려진 목 아래로 핏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하지만 츠바사는 개의치 않고 더욱 높이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해남파 장문인은 죽었다―!”
그 외침을 기점으로 한 시진 뒤, 남해 전통의 강자인 해남파(海南派)는 무림에서 사라졌다.
제60장. 흙을 닦아내고 빛을 내기 시작한 진주(珍珠)
연무전.
열혈군 내부적으로 세 달에 한 번씩 각 군에서 세 명을 뽑아 비무를 벌이는 행사. 삼 년 전에 처음 만들어져 말 그대로 무예를 연습한다는 처음의 취지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연무전을 생각하고 현실화시킨 군장들조차도 얼마 안 있어 그러한 순수함을 유지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내부적으로 벌어지는 비무라고는 해도 가지각색의 수준 높은 무공을 수련한 열혈군 후기지수들의 비무를 보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을까.
그래서 백천맹의 많은 사람들이 안목을 높이겠다는 핑계로 구경을 하면서 연무전은 단순히 무예를 연습하는 수준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많은 이들의 앞에서 승리를 한다는 것은 명예를 높이는 것이고, 그러한 명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무림인에게, 특히 한창 혈기왕성한 후기지수들에겐 자신의 이름을 드높일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천지인의 세 군에서 인군은 질적인 수준 미달로 인해서 그러한 명성을 얻기 위한 경쟁 구도에서 곁따르는 노릇을 하는 무리로 전락해서, 연무전은 누가 보더라도 천군과 지군만의 실력 겨루기가 되고 말았다.
어쨌든, 이러한 연무전의 인기는 매우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연무전의 범위를 확장하여 백천맹 전체적으로 일정 시기마다 비무 대회를 여는 것이 어떠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말만 나오는 수준이었고, 실행 가능성도 매우 적었다. 그러한 비무 대회가 잘못 방향이 틀어지게 되면 각 문파들의 추상적인 서열을 외형화시킬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분명 지금 이상으로 문파 간의 경쟁 관계가 커지고, 파벌 싸움이 벌어지면서 백천맹에서 화합과 협력이란 말이 나오기는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흑천맹이라는 막강한 경쟁 세력이 있는 현 무림 정세에서 그렇게 균열을 일으켜 힘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비무 대회를, 총수를 비롯한 백천맹의 운영자들이 용납할 리가 없는 것이다.
여하튼 그러한 속사정이 있는 중에도 연무전의 인기는 백천맹 내부에서 최고였다. 그러하기에 지금 천군 연무장에 수백에 이르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구경을 한다고 몰려 있는 사람들 중에는 백천맹 내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유지들과 뒷돈을 찔러 넣으면서까지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소문에는 이 연무전을 두고 내기 도박까지 벌인다는 말까지 돌았다. 물론 아무도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삼 년 동안 일 년에 네 번을 꼬박꼬박 벌이는 비무를 두고 내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고, 그러한 내기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믿는 것은 삼 년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천군 연무장에서 세 달 만에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연무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왁자지껄.
웅성웅성.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떠들어대는 소리로 천군 연무장은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흰옷에다가 각각 가슴에 금, 은, 동으로 글씨를 새긴 젊은이들이 연무장에 나타나자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고, 장내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처럼 들려올 만큼 고요함에 잠겨들어 갔다.
“연무전을 시작하기 전에 이 자리에 모여주신 모든 분들에게 당부 말씀을 드리겠소이다.”
천군, 지군, 그리고 인군의 후기지수들이 각각 세 방향으로 흩어져 자리를 잡고 앉자, 연무전의 공정한 진행을 부탁받은 백천맹의 대내부총관(對內副摠管) 남번섭이 앞으로 나왔다.
“연무전은 우리 정파의 앞날을 짊어지고 갈 후기지수들이 서로의 무예를 나누고, 발전을 도모하고자 만든 비무전이오. 하니,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시오. 승부의 결과와 그 의미는 연무전에 참가한 당사자만이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시리라 믿소이다.”
남번섭은 군장들에게 들었던 연무전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연무전 결과에 대해서 그 누구도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당부에도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당장에 백천맹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입맹할 수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는 꽤나 엄중한 경고까지 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라면 모두 이 연무전의 대결 방식을 아시리라 생각하오. 그러나 공정을 기하기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소. 각 군에서는 각 군을 대표하는 세 명의 후기지수를 우선 선별하고, 바로 이 자리에서 소속을 구분하지 않고 섞은 이름표를 뽑아 비무자를 정할 것이오.”
소속에 따라 순서와 상대를 정할 수도 있으나, 연무전은 소속 경쟁이 아니라 개개인의 경쟁과 발전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러한 투표 방식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소속 경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연무전의 영광은 최후 승리자에게 있고, 그 최후 승리자가 속하고 있는 군이 최고의 군으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자, 그럼 첫 번째 대표를 뽑겠소.”
남번섭은 이름표가 들어간 상자에 손을 넣어 하나의 표를 집어 들었다.
“천군(天群) 일옥 스님.”
웅성웅성.
남번섭의 호명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일옥 스님이라면 백천맹 삼대미인 중 하나라는 그 열화검을 말하는 건가?”
“당연하지! 그 열화검이 아니라면 누구겠어!”
열화검(烈花劍) 일옥.
아미파 장문인의 세 번째 제자 신분으로 백천맹 열혈군에 들어왔고, 열혈군에서 여중제일고수로 평가되고 있을 정도로 강한 고수였다.
그리고 열화검이란 별호는 검이 매섭고, 비구니이면서도 꽃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졌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연무장 중심으로 걸어 나오는 흰색 가사를 입은 빼어난 미모의 여승을 향해 눈이 빠져라 집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군(地群) 종상원 소협.”
남번섭의 호명에 지군 무리에서 체형이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사내가 양손에 금빛으로 찬란한 륜을 들고 걸어 나왔다.
“금륜공자다.”
금륜공자(金輪公子) 종상원은 만금종가(萬金宗家) 가주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리고 만금종가는 섬서성(陝西省) 북쪽 부현(富縣)에 위치한 상인가문으로서, 섬서성은 물론 산서성(山西省)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엄청난 금력을 지닌 가문이었다.
그러나 금력에 비해 무림가로서는 아직까지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나름대로 많은 무인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뛰어난 무인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여 조금씩 무림가로서의 명성을 키우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돈으로 무공을 산다고 뒤에서 욕을 먹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힘이 커지면 누구도 문제를 삼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역시 돈이 많은 만금종가의 사람이라 연무 전용 무기에도 금칠을 해서 나오는군!”
연무 전용 무기는 날을 세우지 않고 사용하는 무기를 말하는데, 연무전 대표들은 보통 그런 무기를 열혈군에서 제공받아 사용한다.
하지만 본인이 원한다면 스스로 준비를 해도 무방한데, 어차피 만든 무기는 미리 검사를 받고 혹시라도 있을 부정(몰래 날을 세우고, 독을 바르는 등등의 일. 하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부정은 일어나지 않았다)에 대비하여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는 것이다.
여하튼 본인이 무기를 준비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무기에 금칠까지 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다. 설혹 종상원의 별호에 금륜이 들어가고, 본인의 원래 무기가 금칠이 된 륜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시, 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금륜공자 종상원의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시오.”
일옥과 종상원이 석 장의 거리를 벌리고 마주서자 남번섭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천군 연무장의 넓이는 다른 군의 연무장과 다름없이 좌우 오십여 장이었고, 원활하게 연무전이 진행될 수 있도록 그 모든 공간이 비무대로서 허용되었다. 즉, 협소한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경공이 특기인 후기지수들이 혹시라도 불리해지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한 것이다.
스릉.
일옥은 등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어 가슴 앞에 세웠다.
마치 합장을 하듯 검을 가슴 앞에 세우는 것은 불자로서 살생의 도구로 사용되는 검을 손에 들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였다.
다만, 그렇게 모양새를 잡는다고 해서 그 검의 쓰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먼저 손을 쓰시지요.”
비구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빼어난 미모만큼이나 아름다운 음성이었다.
그래서 종상원은 아주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이름이 일옥 스님께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는 만큼, 선공을 사양하지 않겠소.”
일옥이 여인이기는 하나, 구대문파 중에서도 이름이 높은 아미파의 여승이었다.
게다가 아미파 장문인의 제자로서 인정을 받았으니, 그 무공의 경지를 어찌 낮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서 종상원은 양손에 쥔 금륜을 위아래로 빗겨드는 풍륜이십사절(風輪二十四節)의 기수식을 취했다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몸을 날렸다.
스삭― 스사삭―
석 장의 거리를 줄이고 양손에 쥔 금륜을 좌우로 그어 올리자, 매섭게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날을 세우지 않았으니, 그 날카로움이 많이 상쇄되었을 텐데도 소리만 듣자면 감히 경시할 수 없는 매서움이었다.
그리고 일옥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검을 앞으로 휘둘러 금륜을 견제하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츠츠츠― 창창창―
두 개의 금륜과 검이 연달아 부딪치며 시끄러운 쇳소리가 빠르게 터져 나왔다.
‘역시 가벼워!’
종상원은 금륜에 전해지는 검의 느낌이 가볍다는 것에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날이 서지 않은 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힘과 기세가 싸움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종상원은 생각해왔다. 그리고 여태껏 대표로 참가했던 두 번의 비무에서, 지군의 다른 후기지수들과 해왔던 비무를 통해 그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실력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분명 다를 것이다. 자신의 풍륜이십사절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해졌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말이다.
차창―
‘좋아!’
일옥의 검이 금륜에 부딪치면서 마치 연검처럼 낭창거리며 휘어지자, 종상원은 이대로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타핫!”
힘찬 기합과 함께 손목을 둥글게 돌리자, 손목의 움직임을 따라 금륜까지 회전하기 시작했다.
스사사사사사―
종상원이 왼쪽으로 달려들며 휘두른 오른손을 따라 회전하는 금륜이 크게 반원을 그리고, 그 공격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위해 일옥의 신형이 우측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 순간, 종상원의 또 다른 금륜이 우측으로 돌아가던 일옥에게 회전하며 날아갔다.
“아!”
“저런!”
사방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날을 세우지 않았다고 해도, 저렇게 빠르게 회전하는 금륜으로부터 일옥이 안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일옥이 금륜에 맞았을 때에나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