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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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38화
파계 6권 - 13화
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타타.
해적들과 여족은 숲을 박차고 나와 정문까지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십 장의 텅 빈 대지를 내달렸다.
좌우로 포진하고 있던 공병악과 냉음설도 무력단을 이끌고 숲을 뛰쳐나갔다. 함성은 없었지만, 천여 명이 땅을 밟아가는 소리는 함성 이상의 커다란 박력을 발산했다.
텅 빈 대지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적의 공격에 대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해남파에서 고의로 나무를 베어내고 만든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지금은 그에 어울리는 경계무사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족과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몇 년 동안 큰 격돌이 없었던 만큼 해남파는 이전만큼의 경계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삼십 명 정도의 경계무사 정도면 여족의 공격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인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산발적이고, 소규모적인 여족의 공격에 대비한 숫자일 뿐이었다.
모두 합쳐 천육백여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의 적들이 거센 파도처럼 세 방향에서 밀고 들어오는 것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인 것이다.
“저… 적이다―!”
“종을 울려―!”
높은 담벼락 위를 따라 넓게 포진한 삼십여 명의 해남파 무사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천여 명의 적들을 바라보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땡땡땡― 땡땡땡― 땡땡땡―!
세 방향에 매달아놓은 세 개의 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무사들은 빠르고 즉각적으로 내부로 경고를 전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적들을 감히 막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무… 물러난다!”
“여길 마…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미친 자식, 할 수 있으면 해봐!”
경계무사들의 수장이 황급히 도망치자, 다른 경계무사들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종을 울리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 경계무사들은 저 안쪽에서 달려 나오는 동료들과 합류하기 위해 담벼락 위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실수였다. 적은 인원이라도 높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아등바등 담벼락을 올라오려는 해적들을 올라오지 못하게 막고, 동료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겁에 질려서 그러한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늦은 상황.
벌써 담벼락을 오른 해적들에 의해 정문이 열리고, 차례로 진광지옥대에 의해 동문이, 태산지옥대에 의해 서문이 열리면서 적을 막기 위해 쌓은 해남파의 높다란 담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멍청한 놈들!”
해남파 장문인은 겁에 질려서 자리를 이탈하여 마주 달려오는 경계 무사들을 향해 노한 외침을 토해냈다.
원래는 단번에 무사들의 목을 쳐버리고 문파의 기강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정문과 동문, 서문을 통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적들의 숫자를 보고는 장문인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명의 무사라도 살아남아서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어디서 이리 많은 놈들이!”
내원에서 같이 뛰어나온 장로 하나가 장문인의 심정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침입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까지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는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적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바다에 깔린 그들의 배와 각 항구마다 있는 무사들, 그리고 그들 해남파의 보호를 받고 있는 곳의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적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해남파에 소식을 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설마!’
장문인은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들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그들과는 오랜 적이면서도 해남도에서 같이 공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족의 영역이라면 저렇게 많은 적들이라 해도 소리 소문 없이 접근해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족이 어떤 인간들인가.
그들 여족은 한족과의 오랜 영역 싸움으로 인해서 같은 여족이 아니라면 적이라는 철저한 공격 성향을 가지게 된 민족이었다. 천여 명이나 되는 무리가 자신들의 영역을 지나가는 데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을 놈들인 것이다.
“사부님!”
아주 순간적인 의문에 빠져들었던 장문인은 그의 첫째 제자가 지르는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생각할 틈이 없다!’
적이 어디서 어떻게 왔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적들은 해남파 내부로 들어왔고, 바로 코앞에서 무기를 들고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는 싸워야 한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삼 인씩 짝을 이루어 적들을 상대하라―!”
장문인은 역시 장문인이었다.
적들의 숫자에 놀라기는 했지만, 그 행색을 재빨리 살피고 얻은 결론은 적들이 어떤 정식 문파의 무사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척 보아도 해적들의 몰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해적들은 결코 자신들의 적수가 될 수 없음을 확신했다. 그렇다고 숫자도 많은, 그리고 나름대로 싸움에는 이골이 난 해적들을 가볍게 보아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삼 인씩 짝을 이루라고 명령을 내렸다. 가장 안정적인 최소의 숫자로 서로를 지켜주면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협력 싸움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장문인의 결정은 옳았다. 해남파 내부에 있는 무사들은 그 무공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천 명에 가까웠다. 적들에 비해서는 적었지만, 무인들만 천 명이 된다는 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무인들이 짝을 이루어 정식 무공을 배우지 못한 해적들을 상대하니 곧바로 우세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악!”
“아악!”
문도들을 조율하고 있던 장문인의 시선이 급작스럽게 좌우로 돌아갔다.
정문을 통해 밀고 들어오는 해적들을 조금씩 밖으로 내몰고 있는데 갑자기 좌우에서 비명이 마구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
장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좌우에서 터진 비명들의 주인은 해남파의 문도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문도들을 비명에 울부짖게 만드는 자들은 해적들과는 다른, 문도들을 무공 실력으로 압도하는 자들이었다.
그것도 그 숫자가 수백이었기에 양쪽의 방어진은 급속도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장문인은 좌우에서 쳐들어오는 놈들 역시 해적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해적들과는 달랐다. 옷차림은 해적처럼 꾸며놓았지만, 검과 도를 휘두르는 동작과 기세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정확하고, 매서웠다. 문도들의 목을 자르고, 사지를 베고, 가슴을 찌르면서도 무덤덤하기까지 한 저 냉철한 표정만 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어떤 무림 세력이 해적들을 돕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망막해졌다. 좌우가 무너지면서 정면에 있는 해적들의 공세도 커져갔다. 그리고 간간이 눈에 띄기 시작하는 여족들의 모습이 그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여족이 저 해적들에게 협조하고 있다는 것은 장문인이 혹시,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적들이 여족의 영역을 통해 해남파를 공격해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문인은 그들이 여족을 어떻게 설득했나, 하는 의문 같은 것은 떠올리지도 않았다. 지금은 저들을 막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사제들은 각기 좌우로 가서 문도들을 도와라!”
대부분이 장로이거나, 혹은 무력단 단주의 지위를 맡고 있는 장문인의 사제들은 명령을 받고 진광지옥대와 태산지옥대가 공격해오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무공 실력은 좌우에서 공격해오는 자들이 뛰어나지만, 분명 적들의 수장은 정면에 있을 것이다.’
장문인의 추측은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결론이었다.
어떤 무리의 수장이든 우두머리는 가장 많은 무리를 이끌고, 그 힘을 과시하기 위해 정면을 공격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지금과 같은 때에 그러한 냉정을 찾아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이가 지금 이곳의 해남파 문도들 중에서 몇 명이나 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차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장문인은 첫째 제자만 자신을 따르게 하고 다른 제자들은 밀리고 있는 곳의 문도들을 도우라고 명했다. 그리고 저 무지몽매하고, 숫자만 믿고 쳐들어온 해적들에게 다시는 해남파를 무시할 수 없도록 공포심을 안겨 주리라 마음먹었다.
양쪽에서 오는 적들은 장로들과 제자들을 보냈으니 어느 정도 시간을 끌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우선 해적들을 처리하고 좌우에 있는 적들을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가자!”
첫째 제자는 장문인의 외침에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그 뒤를 따랐다.
아니,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장문인이 채 얼마를 움직이지 않고 우뚝 멈추는 바람에 그도 어쩔 수 없이 움직이던 다리를 정지시켜야 했다.
“웬 놈이냐!”
장문인의 앞에는 왜의 상투 머리를 한 사내가 막아서고 있었다.
“츠바사라 하오.”
놀랍게도 야마오가 아닌 츠바사였다.
독룡방의 힘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선 해남파의 수장을 먼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 츠바사는 처음부터 무리의 선두에 서서 싸움을 하고 있었고, 가장 먼저 해남파 장문인을 발견하고 막아선 것이었다.
“죽고 싶으냐!”
장문인은 먼저 기세로 츠바사를 제압하기 위해 웅혼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장문인의 앞을 막아선 츠바사는 전혀 굽히지 않은 모습으로 지팡이처럼 보이는 검을 뽑아들어 앞으로 겨누었다.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물렁하지도 않은, 가장 자연스러운 격검 자세에 장문인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지 않은 자다.’
경지에 오른 검객이다, 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장문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첫째 제자가 앞으로 나섰다.
“감히 누구 앞을 막아선 것이냐! 함부로 해남파에 발을 디딘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분노가 가득한 고함을 지른 첫째 제자는 검을 뽑아드는 동시에 츠바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장문인이 제자를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목을 베어주마!’
첫째 제자가 펼치려는 검법은 반수검(反手劍)이었다.
해남파의 대표 검법 중에 하나로 좌수로 펼치는 검법이며, 일반 중원의 검학과는 상리가 완전히 어긋난다고 알려진 만큼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검법이었다.
몸을 날려 츠바사의 지척으로 파고든 첫째 제자는 왼손으로 해남파 특유의 역검을 잡아 검을 휘둘렀다.
사악―
위로 그어 올리고, 다시 아래로 내리긋는 연속적이고 빠른 공격이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그는 검을 위로 그어 올린 채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너무도 허망한 죽음이었다.
“……!”
장문인은 그의 눈앞에서 널브러진 채 바닥을 핏물로 물들이는 제자를 보고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의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 못해 덕담을 나눌 시간도 없다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성급하게 죽인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츠바사는 첫째 제자를 죽이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빠르게 앞으로 달려들어 장문인의 정면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이놈!”
그깟 찌르기에 내가 당할 것 같으냐, 하는 의미가 함축된 장문인의 노성이었다.
자식처럼 아끼던 첫째 제자가 눈앞에서 죽었다는 분노 가득한 노성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츠바사의 저 단순한 찌르기에서 느껴지는 무서울 정도의 섬뜩함에 저항하기 위한 노성이었다
츠앙―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소름끼치는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장문인은 자신의 검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게 해남파의 무기는 중원의 무기보다 더 두껍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날카로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조심스럽게 무기를 관리하기 때문에 처음 만들어진 그때의 날카로움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데, 그런 그의 검이 상대의 얄팍한 두께의 검에 부딪쳐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약하다고?’
장문인이 놀라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무기가 나쁘지 않다면 자신의 힘과 기술이 밀렸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상대가 뛰어난 검객임을 알면서도 장문인은 자신이 츠바사보다 약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차핫―!”
장문인의 힘찬 기합성과 함께 그의 검이 유성추월검(流星追月劍)의 격렬한 초식을 따라 앞으로 휘둘러졌다.
“…….”
좌우의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격렬한 검의 움직임을 츠바사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로 쏘아보았다.
그리고 검을 앞으로 찌르며 살짝 좌우로 흔들었다.
치치치창―
짧고 빠른 충격음과 함께 격렬하게 휘둘러지던 장문인의 검이 유성추월검의 검로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 한쪽으로 밀려났다.
‘어떻게?’
장문인은 황급히 검을 당겨 올리며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정면으로 휘둘러져 오는 츠바사의 검은 그런 생각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게 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가슴 요혈을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