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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3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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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36화

파계 6권 - 11화

 

 

 

 

 

‘인정해야 하나?’

 

실상 본능이 시킨 것뿐이다, 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짓이었다.

 

최소한 오칠의 말을 듣고 머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이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걸 목운교는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조언이 필요하냐는 오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거부한다고 해도 말을 할 오칠이었으니까 말이다.

 

“목 소저는 급합니다.”

 

“……?”

 

“너무 마음이 앞서고 있다는 말입니다. 평범한 회풍무류검법에서 그래도 특징을 찾는다면, 원과 원을 이으며 원만하고 차분하게 상대의 공세를 막고 공격으로 이어간다, 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목 소저는 그 원을 그리기 위해 너무 급하게 검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평범한 회풍무류검법이라는 말에 기분이 상했던 목운교는 진짜 자신이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곧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고갯짓에 오칠은 웃었다. 그녀가 드디어 자신의 말을 듣고, 그에 대한 표현을 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이제 오칠의 의도대로 목운교가 슬며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으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흐릿한 검기를 이용해서 그려나간 원형의 빛이 사라지기 전에, 또 다른 원형의 빛을 그려내며 그대로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목운교는 흠칫했다.

 

오칠은 그녀가 검법을 수련하며 했던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이 바로 마음을 급하게 만든 겁니다. 흐름을 좇기보다 성급하게 마음이 앞서고, 또한 마음을 따라 동작이 앞서가고 있는 것이죠. 즉, 차분하게 움직여야 할 검로(劒路)가 오히려 성급하게 움직이면서 원형의 모양을 흐트러트리고 있는 겁니다.”

 

목운교의 눈동자는 저도 모르게 오칠을 향해 고정되었다.

 

오칠이 하는 말이야말로 그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조언이고, 꼭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걸 안 것이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오칠을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목 소저는 잘 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의 검이 너무 느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래요. 난 내 검이 너무 느리기 때문에 연속적인 원형을 그려나가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대답까지 하는 목운교가 참으로 예뻐 보인다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오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마음이니 아무리 해도 원이 제대로 완성되어지지 않고, 목 소저는 지금껏 계속해서 실패감만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제 목운교는 스스로 조언을 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칠은 더욱 흡족해하며 말을 이었다.

 

“결론은 단순합니다. 회풍무류검법은 이미 목 소저의 몸에 굳은살처럼 박혀 있습니다.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몸이 절로 반응할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냥 펼치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지적한 점을 신경 쓰면서 해야 합니다. 세밀한 부분에선 부족한 점이 많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드리죠.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목 소저도 이만 쉬는 것이 좋을 겁니다. 무리한 수련은 오히려 몸에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목운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오칠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을 떠났다.

 

“…….”

 

목운교는 다시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회풍무류검법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왠지 이제부터는 완벽하게 펼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회풍무류검법을 알고 있는 거지?”

 

문득 목운교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오칠에게 검법의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같은 인군의 후기지수들 중에 그녀가 어떤 검법을 수련하는지 알고 있는 이도 없었다. 아니, 열혈군 전체를 보더라도 그녀의 검법을 알고 있는 이가 있을까 의문스런 일이었다. 그녀가 상대적으로 친했다고 생각했던 이들조차 그녀가 익힌 검법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아마 그녀가 처음 열혈군에 들어오면서 작성한 기록서 외에는 그녀가 익히고 있는 검법의 이름이 드러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검법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특이성이 없었다. 또한 그녀도 굳이 자신이 무슨 검법을 익혔는지 말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칠이 그 이름을 알고 있었던 걸까?

 

‘물어봐야겠다.’

 

분명 오칠은 내일도 나타날 것이다.

 

목운교는 그때 직접적으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칠이 대답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남자에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목운교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리 사교적이지 못한 자신이 오칠에게 하는 것처럼 스스럼 없이 화를 내고 소리친 상대는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는 더더욱 먼 대화 상대였다.

 

“아!”

 

목운교는 화들짝 놀랐다.

 

오칠은 나쁜 남자였다. 그녀가 소중히 생각하는 가전검법을 무시한 남자였다. 자신의 잘난 외모와 능력을 믿고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남자였다.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그런 남자를 생각한다는 것은 그녀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목운교는 서둘러 상념을 지웠다.

 

“돌아가야겠다.”

 

씻고, 내일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칠이 지적한 점을, 아니 조언해준 점을 생각하며 수련해야 했다.

 

목운교는 그는 나쁜 남자고 그를 싫어하지만, 그가 검법에 대해 조언했던 것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제59장. 점점 모양을 갖추어가는 패도(覇道)

 

 

 

 

 

백천맹 내부 남서쪽.

 

지군 숙소와 그 연무장 너머엔 은밀한 연공실이 있었다. 백천맹 곳곳에 건설된 여느 연공실과 같은 용도이긴 하지만, 그곳은 지하에 만들어져 있었다. 특별히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철저하게 비전무공을 수련할 수 있게 만든 연공실이었다.

 

풍귀도(風鬼刀).

 

지하로 네 장이나 파고 들어가서 만든 그 연공실 입구에는 풍귀도란 별호를 가진 중년의 남자가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걸극. 약간 마른 몸매에 왼쪽으로만 길게 머리카락을 기른 그의 모습은 허리에 차고 있는 묘도(苗刀)만큼이나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만큼 그는 뛰어난 도객이 분명했으며 풍귀도란 별호는 바람처럼 빠른 도를 구사한다는, 무림에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명성이 함축된 별호였다.

 

그런데 그렇게 명성이 높은 걸극이 왜 연공실 입구에, 마치 경비무사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일까?

 

걸극은 십삼 년 전까지만 해도 도객으로 이름이 높은 낭인이었다. 명성과 돈을 좇기보다, 강자를 찾아 비무행을 하는 순수한 무인이었다. 하지만 십삼 년 전, 환도신군 상관승에게 도전했다가 패하고, 그에게 감복하여 수하가 된 뒤로 그는 더 이상 낭인이 아니었다.

 

걸극은 호남 석문의 패자 창천도문의 우호법이었다. 지위로만 보자면 장로에 버금가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위와는 달리 걸극은 스스로를 상관승의 충복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군의 명을 받고서 장남인 천환도(千幻刀) 상관석표의 호위를 맡고 있는 중이었다.

 

쿠쿠쿠쿠.

 

“……!”

 

주위의 경계를 살피면서 명상에 잠겨 있던 걸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묵직한 소리를 지르며 열리는 연공실의 입구 안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어둠에 잠긴 연공실 내부가 그의 눈에는 보이는 걸까?

 

“…….”

 

입구를 막고 있던 석문이 열리고, 어두침침한 내부에서 수염을 무성하게 기른 사내가 걸어 나왔다.

 

옷도 걸레처럼 해어지고, 머리도 온통 헝클어져 있었지만, 그러한 모습보다는 당당한 걸음걸이와 헝클어져 얼굴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눈빛이 더욱 시선을 잡아끄는 사내였다.

 

상관석표.

 

연공실을 나온 사내는 상관석표였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반년의 폐관을 풀고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우호법님.”

 

상관석표는 먼저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걸극에게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가 문주의 아들이긴 했지만 걸극은 우호법이면서 문주가 의형제처럼 여기는 인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의숙부를 대하듯 먼저 인사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인사를 받는 걸극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원래 걸극은 입이 무거운 인물로, 문주 앞에서가 아니라면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니 상관석표는 그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고 해서 기분이 불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폐관을 풀고 숙소로 돌아간 뒤에 그의 동생이 싸움 중에 큰 부상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걸극이 아무 말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넘어 화까지 났다.

 

“우호법님, 왜 진작…….”

 

호위라는 임무에 맞게 뒤를 따라온 걸극에게 따지려고 했던 상관석표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심하기까지 한 걸극의 눈동자를 보고는 그 일에 대해 따지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걸극은 부친인 문주의 명을 받고 그의 호위를 맡고 있었을 뿐, 그 외에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걸극은 문주에게 감복하여 가문에 들어온 것이지, 그 외의 다른 누구도 그에게 명령이나 요구를 하고, 책임을 전가할 수 없으며, 또한 걸극 자신 역시 그러한 명령이나 요구에 부응할 마음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상관석표가 문주의 장남이고, 다음 대 문주가 확실한 소주(少主)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관석표는 걸극에게 따질 생각을 그만두고, 동생의 부상을 보고한 가문의 시종에게 물었다.

 

“석문에는 소식을 전했느냐?”

 

“예. 마침 오늘 석문에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시종이 건넨 서신은 개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상관석표가 폐관 중이었고, 걸극은 연공실 입구에 틀어 앉아 호위나 서고 있었으니, 서신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마 상관석표가 때마침 폐관을 풀고 나오지 않았다면 이 서신은 언제까지고 읽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보지도 않을 것이면서 왜 서신을 보내라고 했단 말인가.’

 

서신을 보내라고 명한 이가 걸극이었다고 했는데 확인도 하지 않다니.

 

상관석표는 걸극이 이해하기 힘든 괴이한 성품의 인물임을 새삼 깨달았다.

 

“……!”

 

한데, 서신을 읽던 상관석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문제 삼지 말라고?’

 

서신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동생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백천맹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창천도문에서는 이미 그 일을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는 것이다.

 

왜?

 

상관석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서신에는 공정한 싸움 중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무림에서 그러한 이유로 복수를 접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천목보 보주 경모혁이 재빨리 손을 써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다는 걸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문주인 상관승이 이 일에 대해서 오칠에게 직접 따지겠다는 생각으로 일단은 훗날을 기약했다는 걸 전혀 짐작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동생은 어디 있지?”

 

“작은 공자님은 거처에서 요양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안정을 찾았지만, 부상 당시에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기에 가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상관석표는 곧바로 자신의 숙소를 나왔다. 그리고 그의 출관을 모르고 있던 이들의 놀람 가득한 인사를 무시해버리면서 동생의 숙소에 당도했다.

 

“크… 큰 공자님을 뵙습니다!”

 

동생의 시중을 드는 시녀들이 깜짝 놀라 허리를 숙였다.

 

“현표는 어디 있느냐?”

 

“작은 도련님은 반 시진 전에 약을 드신 후로 계속 주무시고 계십니다.”

 

상관석표는 동생의 방으로 향했다.

 

“동생하고만 있었으면 합니다.”

 

주군으로부터 명을 받은 호위의 임무를 절대 등한시할 수 없다는 듯 뒤를 따르고 있는 걸극에게 양해를 구한 상관석표는 조용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는 빛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곳을 차단하여 캄캄해진 방에 가만히 서 있었다.

 

“…….”

 

어두웠지만 상관석표는 느릿한 숨결을 느끼고 동생이 침상에 누워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금세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동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야위었구나.’

 

거의 반년 만에 보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분명 동생은 부상으로 고생을 하여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그에게 사태를 설명한 시종의 말로는, 싸움 상대의 무기인 창이 아랫배에 박혔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행히 장기가 크게 상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에 이르렀을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러니 저리 야윈 것은 당연한 것이다.

 

상관석표는 의자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침상 옆에 놓고 앉았다. 그리고 잠든 동생의 수척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없는 동안은 얌전히 있으라고 했건만…….’

 

상관석표는 동생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 천군의 후기지수들과 싸움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했다. 무공이 낮지 않은 동생이었지만 경험은 미천했고, 실력 면에서도 능진철이나 고범열 등에게는 아직 부족하기만 했다. 그래서 폐관에 들기 전에 그렇게 당부를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렇게 누워 있다니.

 

듣기로는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묻지도 않은 채 동생이 먼저 도발했고, 싸움의 과정과 결과도 정당했다고는 하지만 상관석표로서는 이대로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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