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3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34화
파계 6권 - 9화
‘대체 이게 뭐야?’
홀로 남겨진 오칠은 기분이 묘했다.
능진철이 그에가 가르침을 주어 감사한다는 말을 했고, 아마도 자신의 어떠한 말과 행동이 그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능진철이 어떤 가르침을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오칠로서는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조금 전까지 그를 휘어잡고 있던 분노를 가라앉히는 기묘한 현상을 발생시켰다. 마치 여초홍이 느꼈던 것처럼 분노에 대한 필요성을 상실했다고나 할까.
‘저 자식을 박살내야 하는데…….’
오칠의 시선은 많은 구경꾼들 중에 섞여 있는 목당민을 향했다.
목당민은 여초홍과 능진철을 가볍게 패배시킨 오칠의 무위에 꽤나 당황해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소문으로만 들어왔기에 오칠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고, 내심 무시하는 마음까지 먹었던 그 자신의 생각이 참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뭔가 자신이 실수라도 하지 않았나, 여초홍과 문제가 있기 전에 벌떡 일어났던 오칠의 안색이 좋지 않았던 것이 혹시 자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향한 오칠의 시선에도 저리 화들짝 놀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좋아, 일단은 참아주지. 목운교와 네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네놈 하는 짓을 좀 더 지켜보고 나서 처리해주겠다.’
오칠은 희미해진 분노를 지금 다시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목당민 같은 빌어먹을 놈을 신경 쓰는 것보다는, 사라져버린 목운교를 찾아서 위로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결론을 지었다.
“대단하십니다, 오 장문인!”
“오 장문인, 이 윤 모는 진정 감탄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오 장문인의 무명을 직접 목도해보니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 부족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이 오칠과 친분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뜬금없이 인사를 건네는 것보다, 한창 승리에 들떠 있을 사람에게 아부를 하며 인사를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 못한 것은 오칠이 승리에 도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오칠은 사람들의 속 보이는 아부에 기뻐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가식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오칠은 자신 외에는 가식을 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평소의 마음가짐대로라면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욕을 하고, 주먹을 날려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다시는 그 자신에게 가식적인 인사를 건네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세상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냉철한 이성을 다시 되찾은 상태였다. 목운교로 인해 극한 감정에 휩싸였던 아까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과찬입니다. 그보다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오칠은 적당한 응수로 술을 대접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뿌리치고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백천맹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이거 참.”
오칠이 자신에게는 아무 말도 않고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황당해 하던 노백은 그의 옆에 있는 녹선향에게 자신들도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녹선향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노백은 녹선향의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엽다고 생각한 자신의 내심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입을 열었다.
“형님도 없고, 목 소저도 없으니까 가자는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걸요? 전 지금 무지 배가 고파요.”
녹선향의 옆에 있던 녹명원까지 허기진 배를 쓰다듬으며 먹고 가자고 했다.
사실, 노백도 배가 고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대로 허기진 배를 외면하고 돌아가야 할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노백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난 돈이 없소.”
노백은 자신이 돈이 없다는 것이 지금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다는 것을 통감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이 가면을 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녹선향을 만나고 나서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두 번이나 했다는 것에 더욱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역시 모든 표정을 가릴 수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 노백의 심리 상태를 녹선향은 눈치 채지 못했다. 다만, 그녀는 지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을 뿐이었다.
“노 대협께 감사하고자 찾아왔는데 어찌 돈을 내시라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그런 걱정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요.”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 오 장문인께서는 목 소저를 찾아간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 노 대협께서 거처로 돌아가신다면, 오히려 그 두 분을 방해하는 것만 되는 거죠.”
녹선향은 그렇게 노백을 설득했고, 노백은 녹명원까지 가세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염 소저 등과 섞이지 않기 위해 일 층에 자리를 마련하여 음식을 시켰다.
그렇게 오칠과 목운교가 없이 세 사람은 맛있게 음식을 먹으며, 이러저러한 대화까지 곁들여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제58장.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조언(助言)
“…….”
백천맹으로 들어선 오칠은 곧바로 목운교의 숙소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의 숙소엔 등불도 켜져 있지 않았고, 안에 누가 있는 기척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오칠은 감각을 사방으로 뻗쳐보았다. 아니, 혹시 연무장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 방향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누가 있군.’
지금 시간은 어느덧 해시(亥時:밤 9~11시) 초였다.
그리고 지금 시간에 인군 연무장에서 누군가 수련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밤은 홀로 비전무공을 수련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럴 경우엔 보다 확실한 비밀 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 연공실을 이용하니까 말이다.
오칠은 목운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망설임 없이 연무장으로 날아올랐다.
‘역시.’
연무장에 목운교가 있었다.
오칠이 지난밤에 보았을 때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목운교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검법은 당연히 가전무공인 회풍무류검법이었다. 그런데 목운교의 모습은 그때와는 달랐다.
‘뭐가 그렇게 가슴에 쌓여 있는 거냐?’
오칠은 목운교가 마치 한풀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검을 휘두른다고 생각했다.
초식을 펼친다기보다는 땀을 흘리기 위해, 무언가를 잘라버리기 위해 검을 움직이는 것처럼 그 모양새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 그렇게 검을 수련하려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목운교의 검법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오칠은 목운교의 검법에서 슬픔을 느꼈다. 무언가 그녀의 심장을 틀어잡고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목당민인가?’
그와 문제가 있어 객잔을 떠났고, 이곳에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당연히 그 원인으로 목당민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남녀 간의 흔해빠진 이야기들 중에 하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쪽으로는 박학다식한 오칠이 들으면 코웃음 칠 수도 있을 정도로 별게 아닌 이유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오칠에게는 너무 신경이 쓰였다. 그 이유가 손톱만큼이나 작고, 티끌만큼이나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해도 지금 목운교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게 어떤 이유라고 해도 결코 오칠에게 아무것도 아닌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물으면 말해줄까?’
오칠은 목운교가 그를 볼 수 없는 그늘진 어둠 속에서 한 걸음 밖으로 나오며 자문해보았다.
하지만 답은 뻔했다. 미운털이 박힌 자신에게 목운교가 사정을 말하고, 속내를 털어놓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경 보주에게 다시 한 번 조사를 해보라고 지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나, 그러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또한 알아낼 수 있다는 확신도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섭혼술로 제압해서 물어볼까?’
너무 궁금하고 신경이 쓰여서 그런 생각까지 떠올랐다.
그러나 목운교를 상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그냥 정면으로 밀어붙여보기로 했다.
“여기 있었군요.”
오칠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공허한 연무장엔 오칠의 음성이 큰 울림으로 퍼져나가 목운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목 소저가 갑자기 떠나서 걱정이 되더군요.”
“…….”
동작을 멈춘 목운교는 가만히 서서 오칠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마를 타고 주룩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얼굴 전체를 붉게 채우고 있는 열기에 짜증이 나서라도 살짝 움직일 수도 있으련만, 목운교는 마치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밤마다 이렇게 수련을 하는 겁니까?”
“…….”
“과거엔 나도 혼자 수련을 했죠. 하지만 혼자 한다는 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죠?”
조금씩 다가오는 오칠의 말이 듣고 싶지 않았던 걸까?
목운교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오칠은 말을 돌리지도 않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들로 주저리 떠들지도 않은 채, 솔직하게 물었다.
“그 목당민이라는 사람과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목 소저는 그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더군요.”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상관하고 싶은데요. 오늘 나와 내기를 하던 당신은 자존심 강하고, 당당했습니다. 난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목당민 앞에 있던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내 기분이 나쁠 정도였어요.”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했잖아요!”
목운교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도대체 오칠이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고작 오늘 처음 본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목운교는 그런 오칠이 싫었다.
그러나 오칠은 그런 목운교의 화난 모습에도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난 상관하고 싶다고.”
“당신이 뭔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상관하겠다는 거예요!”
“당신을 좋아하니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죠?”
목운교는 당황했다.
오칠은 그런 반응에 어깨를 으쓱였다.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이 마음에 들었고,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말도 안 돼요! 당신과 난 오늘 처음 만났어요!”
목운교의 말에 오칠은 내심 가슴이 씁쓸했다.
확실히 목운교는 오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오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목운교가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목운교가 알고 있는 유원엽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한 과거의 유원엽과 지금의 오칠을 동일 인물로 생각하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컸다.
그리고 사실, 목운교가 유원엽을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목운교는 유원엽의 첫사랑이었지만, 목운교에게 유원엽은 그저 원수의 자식일 테니까.
“시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아하게 되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다른 여인이 지금 오칠이 하는 말을 들었다면, 분명 몽롱한 기분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단번에 마음이 흔들리고, 오칠에게 반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목운교는 당황하긴 했지만, 오칠의 의도하지 않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예요!”
“목 소저에겐 말이 안 될지 모르지만, 내게는 말이 되는 소리입니다.”
“그만 가주세요! 수련을 해야 하니 이제 그만 가주세요!”
목운교는 확실히 당황하긴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오늘 처음 만난 남자가 좋아한다고 하는데 당황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들 중에는 목당민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운교는 그렇게 말하는 오칠이 어이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자신과 오칠이 무슨 사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난 당신에게 내 인생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왜죠?”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난 듣고 싶습니다.”
목운교는 한숨을 쉬었다.
오칠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으려고 했다. 저 아름다운 외모와 열정적이기까지 한 요구가 다른 여인들에겐 통할지 모르지만, 목운교 자신에겐 아니었다.
“난 수련을 해야 해요. 제발 날 방해하지 말고 돌아가 주세요.”
“그런 수련이라면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
“차라리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더 유익한 시간이 될 겁니다.”
목운교는 진정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자신의 수련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이런 사람이 있지?’
어떻게 좋아한다고 말한 여자의 수련이 무가치하다고 무시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도리어 칭찬하고, 용기를 줘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말이다.
‘아!’
목운교는 내심 깜짝 놀랐다.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오칠이 자신을 칭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다니……. 오칠이 무슨 말을 하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