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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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31화
파계 6권 - 6화
분위기가 다시 묘해졌다.
오칠에게 온통 정신이 쏠려 있던 여인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면서 목운교의 행동이 예의가 없다며 투덜거렸고, 노백과 녹선향 등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얼굴로 침묵했다.
그리고 오칠은…….
‘진짜 죽여 버린다!’
가슴에 꾹 눌러놓은 분노를 더 이상 억제하지 않았다.
드륵.
목운교처럼 오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탁자를 걷어찬 뒤 목당민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오칠은 그러지 못했다. 바로 뒤에 다가온 여초홍이 막 탁자를 걷어차려는 오칠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전에 한 번 봤었지요?”
“…….”
자신이 말을 건 시점이 결코 좋은 때가 아니라는 걸 여초홍은 알고 있을까?
당연히 모를 것이었다. 하지만 오칠은 여초홍이 눈치를 챘건, 안 챘건 알 바 아니라는 듯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했다.
“꺼지시오.”
자신이 지금 누군가에게 주먹을 날릴 것이니, 할 말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오시오, 하는 부가적인 설명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오칠은 그러지 않았다.
그 말투도 예의와는 멀리 동떨어진 것이었으니, 오칠이 지금 자신의 분노한 상태와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리란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여초홍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독한 모멸감과 수치심, 그리고 분노를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뭐라고요?”
예전과 달리 오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여초홍은 잠시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이번엔 수긍할 수 있는 대답이 들려오길 바랐지만, 그건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든 희망 사항이었다.
“꺼지라고.”
“무례하군요!”
“…….”
“그때의 일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난 큰마음을 먹고 한 걸음 양보하여 사과하고자 온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날 모욕할 수 있는 건가요?”
“사과 받아주지. 그러니 꺼져.”
오칠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말투가 꽤나 투박하고, 직설적이라는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의 말투에 염 소저나, 녹선향, 그리고 목당민 등이 매우 당혹스럽고 놀란 눈을 한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여초홍이 이대로 꺼져주고, 자신은 목당민을 향해 다시 분노의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꺼지지 않겠다면 어쩔 건가요?”
이 층 전체를 싸늘하게 식힐 수 있을 듯한 여초홍의 차가운 목소리가 오칠을 향해 내뱉어졌다.
오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 오칠은 자신이 여인을 상대로 주먹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즐거워야 했을 오늘의 저녁 식사가 이리 망쳐진 것에 대해서 하늘을 원망했다.
하지만 오칠은 그럼으로써 지금 이 자리에 목운교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누구의 이목도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해도 상관없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여자를 때린다느니 하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난 방해받는 걸 싫어해.”
오칠은 더 이상 경어나 예의를 따지지 않고 말했다.
“더구나 누구든 날 만만하게 보는 것도 싫어하지. 그런 대우를 받으면 난 매우 화가 난다고나 할까. 그러니 내가 그런 대우를 받았을 때 얼마나 난폭하게 화를 내는지 당신이 지금 알고 싶지 않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꺼져.”
오칠의 눈동자가 여초홍의 얼굴을 똑바로 직시했다.
그리고 그 고요히 가라앉은, 호수처럼 평온하기까지 한 눈동자에 맺힌 서늘한 기운을 보고 여초홍은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여초홍은 곧바로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신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그녀였기에 그 분노는 더욱 컸고, 상대가 누구라는 것은 그녀의 분노를 진정시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신이 어떻게 화가 났든, 지금의 내가 느끼는 모멸감에 비할 수는 없어! 무적 정의파? 흥! 그깟 신흥 문파의 장문인이라고 감히 나를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와! 당장 밖으로 나가서 한판 붙어보자!”
걷잡을 수 없이 치솟은 분노의 불길에 파묻힌 여초홍은 옆에 있는 의자를 걷어차며 빽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오칠은 피식 웃었다. 다짜고짜 덤비는 여자는 있었어도 이렇게 비무를 요청하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아마도 이곳이 백천맹의 본거지고, 여초홍이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정파의 품 안에서 자라나 어느 정도 형식과 예의를 중시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오칠은 여전히 화나 있는 상태이면서도 이렇게 당차게 나오는 여초홍의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래서 더욱 혼을 내주고 싶다는 이율배반(二律背反:모순되는 두 개의 동등한 주장)적인 마음을 먹고 있었다.
“형님.”
노백이 오칠을 부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눈빛은 참으라고, 이런 싸움을 해봤자 좋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오칠은 그런 노백의 눈빛에 동의했다. 더구나 상대는 여자였다. 그가 여자를 다루는 방식은 매우 은밀하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오칠은 화가 난 상태였다. 목당민을 향했어야 할 분노를 떡하니 막고 있는 여초홍을 그냥 무시할 수 없었고, 이제는 여초홍이 모르는 척 넘어가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럼 제가…….”
오칠의 의지를 읽은 노백은 자신이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무래도 오칠이 싸웠다가는 작은 사건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오칠은 한 문파의 장문인이고, 상대는 여인이 아니던가. 아무리 종남파의 일대 제자이고, 장문인의 직계라고는 해도 여초홍은 여인이었고, 문파의 수장인 오칠이 여인과 비무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좋게 비춰질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전에 있었던 백천맹 정문에서의 소란엔 오칠이 노백을 대신 나서게 했는데, 이번에 직접 싸웠다가는 더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것이었다. 이를테면 상대에 따라 싸움을 하는 소인배로 찍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백은 자신이 나서겠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노백을 물러나게 했다.
“나도 좀 풀어야겠어.”
57장.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誤解)
여초홍과 나란히 이 층 계단을 내려가는 오칠의 뒷모습을 보며 노백은 긴 한숨을 쉬었다.
‘풀어야겠다고?’
뭘?
노백은 오칠이 한동안 싸우지 않아서 굳은 몸을 풀어야겠다고 말하는 건지, 아니면 목운교가 좋지 않은 얼굴로 뛰쳐나간 것에 대한 분노를 풀겠다는 것인지 명확히 구분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인을 상대로 뭔가를 풀겠다는 오칠의 생각에는 절대 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오칠을 막을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오칠의 고집은 노백이 알기로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질긴 것이었으니까.
‘목 소저라면 막을 수 있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문제는 이 자리에 목운교가 없다는 것이었고, 설사 그녀가 있다고 해도 오칠의 행동을 막기나 할는지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왜 목 소저는 오 형님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우리도 내려가자고 말하는 녹선향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노백은 그런 의구심에 빠져 들어갔다.
오칠은 어떤 여인이 보더라도 매력적인 남자였다. 그 외모는 굳이 설명할 필요성조차 못 느낄 정도로 뛰어났고, 한창 뜨고 있는 거대 문파의 수장이며, 거기다 무공까지 극강에 이른 고수였다.
약간의 감정 결핍이 문제이기는 했지만, 목운교의 앞에서는 그런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만큼 감정이 넘치고 있으니, 그녀의 앞에서 오칠은 반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가 분명했다.
그런데 목운교는 오히려 오칠을 거부하고 있었다.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다. 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보는 듯 무심하기까지 했다.
물론 오칠이 예전부터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써먹곤 하던 작업의 기술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저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여인을 매혹시킬 수 있는 오칠이었기에 목운교의 반응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컸다.
아니,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오 형님이 더욱…….’
목을 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쉽게 넘어오지 않고 당장 품에 안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노백만의 생각이었다. 진정한 이유는, 그리고 당사자들조차 모를 수 있는 내면에 감추어진 진실은 끝내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노백은 섣부르게 판단하여 결론짓지 않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니, 그냥 오칠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고 있기로 했다.
시끌시끌. 와글와글. 웅성웅성.
객잔 밖으로 나간 오칠과 여초홍의 주위엔 이미 빼곡하게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다만 그들은 두 사람이 싸우려 한다는 걸 알고서 충분히, 자신들이 다치지 않고 두 사람의 싸움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서서 장내에 이목을 집중했다.
스릉.
오칠과 거리를 벌리고 대치한 여초홍은 검을 뽑아들었다.
그녀는 주변에 사람이 몰려와 있다는 것이 아주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오칠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에 집중도가 분산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오칠을 마주하고서 대적할 방법을 떠올리는 것에 온 힘을 기울여야 했으니까.
“무기는?”
여초홍의 물음에 오칠은 어깨를 으쓱였다.
“두고 왔어.”
“기다려주지.”
“필요 없어.”
“무기를 쓰지 않겠다는 거냐?”
“난 온몸이 무기거든.”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오만할 만하니까.”
“흥!”
누가 두 사람의 대화를 정파문의 수장과 구대문파 제자의 대화라고 생각할까.
하지만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런 대화의 방식이나, 예의에 개의치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얼마나 볼 만하게 싸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또 소문으로만 들어오던 경천미공자 오칠의 실력을 확인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구경꾼들은 더욱 기대에 찬 눈을 하고 있었다.
“각오해!”
여초홍은 더 이상 대화를 하는 것에 의미가 없다 판단하고 검을 들어 오칠을 향해 겨누었다.
‘그 오만하게 솟은 코를 부러트려주겠어!’
오칠에 대한 소문은 그녀도 많이 들어왔다.
홀로 무한 사파를 제압하고 정파문을 만들었지만, 과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고수라고 했다. 확실하게 어떤 무공을 성명으로 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룡천화장의 군자검을 패배시킨 것으로 볼 때 막강한 검객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알려진 명성만으로 보자면 여초홍은 결코 오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싸움이란 단순히 명성만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실력이 있기에 명성이 생기는 것이긴 하지만, 늘 그 명성으로 인해 승패가 결정되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초홍은 그러한 생각으로 오칠을 패배시키고, 승리를 거머쥘 생각이었다.
‘잘 보라구!’
여초홍은 구경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능진철.
늘 그에게 차갑게 구는 밉살맞은 남자였다.
처음 만난 그때부터 따스한 눈빛 한 번 주지 않은 남자였다. 모든 남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중에도 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남자였다. 그리고 여초홍 자신이 아니라, 구경꾼들 중에 있는 녹선향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초홍은 능진철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남자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여초홍이었기에 지금 이 싸움에서 이기고 말겠다는 의지를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었다. 이제 능진철이 자신을 달리 보게 만들겠다는, 녹선향이 아니라 자신에게 반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공에 광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능진철이었기에, 여초홍의 바람은 나름대로 가능성이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녀가 오칠을 이길 수 있느냐, 능진철의 마음이 뒤흔들릴 정도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순전히 여초홍 스스로가 헤쳐 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스스. 스스.
능진철을 염두에 둔 여초홍의 상념은 잠시에 불과했고, 그녀의 검은 순간의 상념을 넘어 오칠을 향해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쾌검이군.’
오칠은 그의 미간을 향해 거리를 좁혀오는 검극을 바라보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수도(手刀) 모양으로 펼친 손끝으로 바짝 다가오는 검극을 튕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