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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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30화
파계 6권 - 5화
웅성웅성.
일행이 들어선 객잔엔 오칠과 노백이 처음 은시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사람이 많았고, 시끌시끌했다. 그들이 앉을 자리가 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한데, 오칠 등이 들어서면서 객잔 안이 순식간에 침묵으로 돌변하여 녹선향과 녹명원, 그리고 목운교를 당혹시켰다. 손님들의 대부분은 맹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단번에 오칠이 누구인지, 그 일행이 누구인지를 알아챈 것이다.
그러나 오칠은 그러한 시선 집중에 매우 익숙해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간단하게 무시할 수 있는 철면(鐵面)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행에게 자리 잡고 앉자고 눈짓을 했다.
“이 층에 자리가 있나?”
일 층의 갑작스런 정적에 멍해 있던 점소이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오칠의 물음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점소이가 그렇게 정신을 차린 순간, 장내는 다시 웅성거리고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원래의 순수한 시끌벅적함과 다른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떠들면서도 그들의 이목을 여전히 오칠을 향해 던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층에 말입니까요?”
점소이는 그렇게 되물으면서 동시에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이 층은 이미 초저녁에 자리가 다 찼습니다. 그러니 그냥 일 층에서……?”
점소이는 말을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꼭대기에서 오칠을 부르는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저희와 합석하세요!”
오칠이 바라보니 같은 인군에 있는 염 소저였다.
오칠 등과 같은 시간에 수련을 끝냈는데, 더구나 꽤 지쳤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이 층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인지 의아한 일이었다. 더구나 일 층의 모든 손님들이 쳐다보는데도 개의치 않고 소리치는 저 대담함이란 오칠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적극성 때문에 더욱 염 소저의 제의를 외면하고 싶었다.
‘같이 있어봐야 귀찮기만 하지.’
녹선향 남매야 노백과 잘해보라고 데려온 것이지만, 염 소저는 이야기가 달랐다.
더구나 그녀의 뒤로 빠끔 얼굴을 드러내는 인군의 여인들을 보며 오칠은 더더욱 같이 합석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오칠이 그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염 소저는 어느새 계단을 내려와 목운교와 녹선향에게 친한 척을 하며 합석하지 않을 수 없게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남자가 때에 따라 늑대로 돌변하는 것처럼 여자도 순식간에 여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군.’
때론 여인의 재빠른 대응에는 오칠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물론 목운교만 아니었다면 염 소저의 저 깜찍한 행동을 개의치 않고 무시해버렸겠지만, 역시 목운교에게 못난 인상을 주기 싫은 오칠은 어쩔 수 없이 염 소저 등과 합석하기 위해 이 층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아하!’
이 층으로 올라선 오칠은 어떻게 염 소저 등이 이렇게 인기 만점인 객잔 이 층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로 염 소저 등에게 관심을 가진 지군의 남자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오칠은 그 지군의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널찍한 탁자로 다가가기도 전에, 목운교의 표정이 자신을 대할 때보다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는 걸 감지했다.
“오랜만이오, 목 누님.”
무리에서 한 명의 미청년이 일어나서는 목운교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리고 오칠은 그 미청년 때문에 목운교의 표정이 굳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이유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경 보주가 알려준 정보에는 이런 상황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더구나 목운교가 친절하게 설명해줄 가능성도 전무했다.
그래서 우선 저 미청년이 누구인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오칠은 염 소저가 소개하기도 전에 먼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무한 무적 정의파의 장문인 오칠이라 하오.”
장문인의 신분을 가진 자신이 소개했으니, 너희들도 얼른 자신에 대해서 떠들어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어디 문파 소속이고, 어떤 별호를 가졌는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차례로 늘어놓았다.
‘목당민… 이놈이 목당민이었군.’
오칠은 미청년이 자신을 소개하는 말을 듣고서 그가 누구인지 기억해냈다.
목당민.
목운교의 양부인 산서금검문(山西金劒門) 문주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리고 과거 문주가 목운교를 며느리로 삼기 위해 맺어주려고 했던 아들이 바로 목당민이었다.
‘근데 왜 저렇게 째려보는 거야?’
모두 다섯 명의 남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대충 흘려듣던 오칠은 목당민이 보내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에 의아해했다.
자신이야말로 목당민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기는데도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여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있는데, 도리어 그러한 시선을 받고 있으니 의아한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오칠은 곧 목당민의 쏘아보는 시선의 의미를 깨달았다.
‘경쟁심인가?’
경쟁심.
물론 목운교를 사이에 둔 경쟁심은 아니었다. 목당민은 그 자신의 잘생긴 얼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보다 더 잘난 오칠을 보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었다.
‘옥면금검이라…….’
목당민의 별호가 옥면금검(玉面金劒)이었다.
잘생긴 얼굴과 가문의 무공인 건곤금검식 때문에 붙여진 별호인 것이다.
‘내게 붙여진 경천미공자(驚天美公子)만큼이나 유치의 극을 달리는 별호군.’
오칠은 자신에게 붙여진 별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목당민은 아닌 모양이었다.
도리어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날카로운 시선을 질리지도 않고 보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거대 문파의 수장이자, 대단한 고수라고 알려진 오칠에게 한 판 붙어보자고 보내는 도전적인 시선은 결코 아닐 것이니까 말이다.
“이리로 앉으세요.”
목당민의 시선에 코웃음이라도 쳐줄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오칠은 염 소저가 옷깃을 당기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 옆에 털썩 앉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인이 제 남편을 챙기는 것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칠은 목운교가 보았나 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목운교는 녹선향의 옆에 앉아서는 고개도 들지 않고 있었다.
‘그냥 혼담만 오갔다고 보기에는 과한 반응인데?’
오칠은 목운교가 너무 심할 정도로 목당민과의 마주침을 꺼려하고 있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목당민은 그런 목운교와 달리 너무 당당해서 오칠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왜?
저렇게 상반된 남녀의 모습은 남자가 우월적인 위치를 차지한 채로 두 사람이 매우 깊은 관계를 맺었을 때나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오칠은 짜증이 났다.
분명 경 보주가 알려준 정보에는 혼담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고 했었다. 더구나 목운교가 양부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고, 결국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까지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긴 아무리 세밀하게 조사한다고 해도 감추어진 진실은 쉽게 밝혀내기 어려운 법이지.’
특히 남녀의 은밀한 일이란 것은 그 당사자들 외에는 알기가 쉽지 않은 비밀이라는 걸 오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오칠은 계속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목당민의 시선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목당민은 오칠이 그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오해했지만, 사실 오칠은 자꾸 그 시선을 의식하다가는 화가 나서 목당민의 얼굴을 날려버릴지도 모른다는 폭주의 위험성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개를 돌린 것이었다.
“……?”
그런데 오칠은 또 다른 누군가가 그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아니, 모든 사람이 그를 주목하고 있었기에 무시하고 있던 시선들 속에서 익숙한 하나의 시선을 발견한 것이었다.
‘종남파였지?’
처음 은시에 왔을 당시, 약간의 감정적 대립이 있었던 종남파의 제자 여초홍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같이 있는 이들은 화산파의 능진철 외에는 모두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아마도 천군의 다른 후기지수들인 모양이었다.
‘저 여자는 왜 날 째려보는 거야?’
다른 시선들은 호기심과 궁금증, 혹은 경탄과 탄복, 또는 은밀한 의미가 담긴 시선들인데, 여초홍만은 목당민처럼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놈이나 저년이나 왜 이렇게 사람을 짜증나게 만드는 거지!’
일각 전까지만 해도 목운교와의 유쾌한 식사를 상상하며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의 오칠은 누군가 그에게 마른 나뭇잎을 던지기만 해도 불이 화르르 타오를 정도로 열이 받은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 장문인께서 인군에 견학 오신 것을 축하하려고 했었어요. 받으세요, 제가 한 잔 따라드릴게요.”
오칠의 속내도 모르고 염 소저는 술병을 든 채 노골적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엔 분명 자신에게 넘어올 것이라는, 바로 옆에 백천맹 삼대미인이라는 녹선향이 있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애교와 적극적인 공세에 오칠이 넘어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차 있었다.
오칠은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목운교를 힐끔 쳐다보고는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환대에 감사드리오.”
오칠의 반응에 염 소저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표정은 긴장감에 물들었다. 오칠이 단번에 술잔을 비우자 다른 여인들까지 앞 다투어 오칠에게 술을 따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칠은 여인들이 따라주는 술을 모두 받아서 시원스럽게 마시고는 빙긋이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당연히 여인들은 넋이 나간 듯이 황홀경에 물든 표정을 지으며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여인들과 달리 남자들의 기분은 엉망으로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여자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비싼 돈을 들여 거나하게 차려놨더니 오칠이 고마운 표정도 없이 한 입에 집어삼키려 하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하하! 이거 소저들께선 저희들이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잔이 비어버린 지 오래인데 술을 따라주겠다는 분이 한 분도 없으시니 말입니다. 그럼 난 할 수 없이 우리 누님에게 부탁을 할 수밖에요. 목 누님, 이 동생의 잔에 술을 좀 채워주시겠소?”
내용만 음미하자면 붙임성 있는 동생이 누나에게 장난을 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목당민의 표정이나 말투, 그리고 자세는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열 받내!’
뭐, 다른 이들은 어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최소한 오칠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오칠이 보기에 목당민의 태도는 기루를 찾은 사내가 기녀에게 술을 따르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오칠은 기녀의 지위나 사회적 대우 등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가지진 않았다. 그냥 목운교가 목당민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을 뿐이었다.
‘저 새끼를 그냥!’
한동안, 아니 꽤나 오랫동안 오칠이 쓰지 않았던 쌍소리가 가슴에서 울컥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입 밖으로 내뱉으려 했다. 물론 그 쌍소리와 함께 주먹도 함께 날려서, 누가 보건 말건 목당민의 얼굴에 복구하기 쉽지 않을 상처를 입힐 마음까지도 굳게 먹었다.
하지만 오칠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던 목운교가 술병을 들어 목당민에게 따라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칠이 원래의 목적을 실행시키지 않은 것은 그러한 목운교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목운교의 눈 때문이었다.
붉게 충혈되어 있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 그 눈동자에는 목당민을 향한 원망과 증오, 그리고 자괴감 비슷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런 시선을 받고 있는 목당민이 저리 담담할 수 있는 것이 오칠에게는 신기할 정도로 목운교의 눈동자는 너무나 슬픈 빛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느낌은 오칠만 받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칠 외에 사람들은 목운교가 술을 따르기를 원한 목당민에게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분위기가 묘해지긴 했지만 목운교는 술을 따랐고, 목당민은 당당히 술을 마셨다.
“한 잔 받아 마셨으니 이제 제가 따라드리지요, 누님.”
순간, 오칠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어났다.
아주 순간적이고 곧바로 불꽃을 지웠지만, 오칠은 정말 분노했다. 오칠이 목운교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목당민이 알고서, 작정을 하고 수적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목당민은 그럴 의도가 없었다. 오칠이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목운교를 통해 다른 여인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오려는 생각이었다.
여인의 관심을 끌어오는 데 질투심 유발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목당민은 만만한 목운교를 이용해 이곳의 여인들을 유혹하겠다는 자신의 계획을 현실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상황은 목당민의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염 소저 등은 이제 완전히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어 오칠에게 집중시키고 있었고, 새로이 나타나 그를 흥분시킨 녹선향도 그의 동생과 합세하여 해괴한 가면을 쓴 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정신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목당민을 비롯한 다섯 명의 남자들은 처량하게도 여인들에게서 소외당해버린 것이다.
“안 드실 거요, 누님?”
기분이 틀어짐으로 인해서 생성된 목당민의 불쾌감은 온전히 그의 목소리에 담겨서 목운교를 질타하는 용도로 변모했다.
목운교는 그런 목당민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술잔을 입에 기울였다. 그리고 술에 익숙하지 않다는 듯 질끈 감은 눈을 하고서 단번에 마셔버렸다.
“하하하! 못 보던 사이에 술이 세진 모양입니다! 자, 한 잔 더 받으시오, 누님.”
하지만 목운교는 잔을 내밀지 않았다.
드륵.
목운교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녹선향에게 먼저 일어나겠다는 양해를 구하는 말을 하고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무슨 일이지?”
“목 언니는 왜 가는 거야?”
“목 소협, 언니가 왜 저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