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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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29화
파계 6권 - 4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같이 나가서 식사라도 하지 않겠소? 마침 내가 어떤 분과 저녁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이참에 다 같이 식사를 하며 친분을 다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소만.”
“형님!”
노백은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로서는 지금처럼 여인과 함께 있는 자리가 불편하고 어색한 적이 없었고, 그런 분위기를 지속시키고 싶지도 않은데 오칠은 그런 노백의 심정과는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칠은 그 심정이 노백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몇 마디의 말로 무시해버렸다.
“어허! 노 아우, 어찌 감사를 하겠다고 찾아온 손님들을 이처럼 무성의하게 돌려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오칠은 지금껏 자네가 배우며 실천해왔던 공자의 말씀을 잊지 말라느니, 하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며 노백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백은 그런 오칠의 가식적인 모습에 치를 떨었지만, 오칠의 속내가 어떤지를 알 수 없었기에 대꾸도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지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거부의 말도 내뱉지 못한 채, 오칠을 선두로 해서 다 같이 목운교의 거처로 향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맹에 머무신다고 들었어요.”
노백은 마치 어미를 찾은 망아지인 양, 옆에 바짝 붙어 선 녹명원이 영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그 누이인 녹선향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노백에 대한 궁금증이 꽤나 가득해 있어서, 녹명원 이상으로 노백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녹선향에게선 뭔가 달콤한 향기가 나는지라 노백은 숨을 내쉬는 것도 꽤나 버거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오 장문인께서는 인군에서 견학을 하신다고 들었지만, 은공께서는 한 달 동안 무엇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개인적인 수련을 할 생각이오.”
노백은 한 달 동안 천면무극단공의 공력을 운용해 낙화천공창법을 완벽하게 펼치고, 탄섬보까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한 달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겠지만, 그러한 마음으로 해야 자신을 다그칠 수 있고, 실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은공께선 무공이 그리 높으신데도 열심히 수련하시는군요!”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없다는 듯한 녹명원의 말에 노백은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나의 무공이 높다는 걸 네가 어찌 아느냐?”
“보았으니까요. 전 그때 은공의 창술이 입신지경에 올라 있는 것을 이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우선 그 은공이란 말은 그만 해라. 그리고 나의 창술은 입신지경과는 거리가 멀다.”
“듣기로는 은공… 아니, 노 대협께선 연환쌍도 상관현표 소협도 가볍게 패배시켰다고 들었습니다.”
노백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소문이 퍼졌기에 상관현표를 가볍게 패배시켰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가볍게 이기지 않았다. 난 최선을 다한 끝에 간신히 패배를 면했을 뿐이다.”
“어찌 되었건 노 대협께서는 강하시지 않습니까. 전 지금껏 그렇게 대단한 창술은 본 적이 없습니다.”
녹명원이 노백에게 갖는 존경심이란 거의 맹목적이었다.
그리고 노백은 어떤 말로도 그런 녹명원을 설득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강함과 무공을 단련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말해주었다.
“강함이란 끝이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공이란 자신을 단련하고, 스스로의 단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수련과 같은 것이지. 도인이 도를 좇아 도력을 키우는 것과 같다.”
“그럼 노 대협께선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하시는 겁니까?”
“모든 무인들은 다 똑같지 않겠느냐.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를 보기 위해 단련하지. 하지만 난 아니다. 과거의 나도 같은 이유로 수련하긴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난 나보다 강한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그에 근접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노 대협보다 강한 사람이라구요?”
녹명원은 그게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지만, 노백은 그에 관해 대답해주지 않았다.
“현재의 내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늘 저 앞에는 그보다 더 강한 것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자신이 강하다고 자만하고, 나태해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
그러면서 노백의 시선은 그들보다 한참을 앞장서 걸어가는 오칠을 행했다.
노백이 근접하고자 하는 강함은 오칠이었다. 감히 추측할 수도 없는 강함. 그건 단순히 무공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냉철하고, 무감각하기까지 한 정신. 오칠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그런 힘과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뭐, 목운교에 한해서는 왠지 감성적으로 변해버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인으로서 오칠은 가장 완벽한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 장문인께서는 누구를 찾아가시는 건가요?”
노백이 녹명원에게 해준 말을 듣고 내심 감탄하고 있던 녹선향은 노백의 시선이 오칠에게 향해 있음을 깨닫고 물었다.
“목운교라는 분이오.”
“목운교… 목운교… 아! 인군의 목 소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녹선향도 목운교를 알고 있었다.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 데다, 속해 있는 군도 달라서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열혈군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소.”
“그러면 오 장문인과 목 소저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나요?”
“나도 잘 모르오.”
오칠과 목운교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남에게 이야기할 권한은 노백에게 없었다.
그건 아주 개인적인 일이었고, 오칠의 드러나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에 함부로 발설해서도 안 될뿐더러, 오칠이 목운교에게조차 아직 말하지 않은 사실을 타인에게 발설할 수도 없었다.
‘이상하네.’
녹선향은 노백의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그녀는 목운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열혈군에서 어떠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었다. 크게 어울리는 사람 없이 그저 홀로 열심히 하는 존재. 여자가 무공에만 열중해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를 자아내기는 하지만, 그 무공이란 것이 크게 뛰어나지 않아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존재. 그러한 존재가 목운교였다.
그런데 일순간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오칠이 그런 목운교와 아무런 친분도 없이 저녁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이 녹선향에게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한 녹선향의 호기심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목운교나 오칠이 아니라,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말투와 행동이 더할 수 없이 정심해 보이는 동생의 은인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었다.
노백.
녹선향은 도대체 어떠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기에 노백이 얼굴을 가리고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앞으로 알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사실, 그녀가 남자에게 이처럼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고, 그건 동생의 은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게 어떤 감정에서 생겨난 관심이든 녹선향은 노백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제가 은시를 구경시켜드릴게요.”
“……?”
녹선향의 난데없는 제의에 노백은 어리둥절해했다.
녹선향도 자신의 그런 적극적인 제의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애써 당당하게 보이려 노력하면서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냥 수련만 하시다 가신다는 것은 너무 서글픈 일인 것 같아서요. 여행의 묘미는 그곳의 풍경을 구경하고, 정취를 느끼며, 음식을 먹어 보는 것이잖아요.”
노백은 자신은 여행을 온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그는 수련을 위해서 오칠을 따라온 것도 아니었고, 거의 도피와 다름없는 이유 때문에 여정에 동참한 것이니, 오히려 여행에 가까운 목적으로 이곳 은시에 온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녹선향의 말대로 은시를 구경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했다. 물론 그 자신도 모르는 속내에선 녹선향과 같이 다녀보면 좋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건 노백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내였고, 그래서 녹명원까지 나서서 구경하자고 말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여튼, 저 남자의 자존심이란.’
오칠은 뒤에서 들려오는 노백과 녹선향의 대화를 들으며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바로 저런 모습이 남자와 여자가 친분을 다져가는 일반적인 모습이었고, 그런 달콤한 관계를 시작하게 된 노백의 딱딱한 대응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래도 녹선향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기에 다행이지, 녹선향도 노백과 같은 성정이었다면 두 사람은 결코 저러한 시작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오칠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일이 발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남녀의 관계란 어느 한쪽이 용감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오묘한 것이니까.’
그래서 오칠이 목운교와 내기를 했고, 이렇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다 왔군.’
백천맹 화제의 인물인 오칠과 백천맹 삼대미인 중 한 명인 녹선향이 섞인 일행을 기묘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질리도록 받으며 도착한 목운교의 숙소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아마도 목운교와 그리 친분을 가진 사람이 없어 이 근방을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고, 지금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이 식사를 하기 위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똑똑.
“…….”
반응이 없었다.
오칠은 안에 없나? 하는, 그리 설득력 없는 생각을 하며 감각을 높였고, 곧 숙소 안에는 목운교가 있으며 아주 느릿하게 문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끼익.
“목 소저, 약속대로 찾아왔습니다.”
척 보아도 그리 내켜 하지 않는 얼굴로 문을 연 목운교를 보며 오칠은 밝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노백 등을 차례로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목 소저. 괜히 두 분 사이에 끼어든 것이 아닌가 해서 죄송스럽네요.”
녹선향의 말에 목운교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목운교는 모든 남성들의 우상 중 한 명인 녹선향이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수년 동안 열혈군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인사 한 번 나누지 않았던 상대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아니에요. 단순하게 저녁 식사만 하는데 끼어들고 말고가 어디 있겠어요.”
목운교는 두 사람 사이라는 말을 꽤나 불편해하는 듯했다.
사실, 목운교는 어쩔 수 없이 내기를 했고, 결국은 지기까지 해서 오칠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그녀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어쨌든 오칠은 노백 등과 함께 목운교를 찾아옴으로 해서 어느 정도 그녀의 좋지 않은 기분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얻었다.
오칠이 목운교와 이야기할 기회는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목운교의 마음을 어느 정도 풀어지게 했고, 그녀가 오칠을 상대로 말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밝게 이야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니까.
“어디로 갈 건가요?”
목운교가 녹선향을 대할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얼굴로 묻자 오칠은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그와 노백이 처음 은시에 와서 묵었던 객잔으로 가자고 했다.
그 자신이 먹어본 경험과 열혈군의 인물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면 음식도 괜찮은 것 같고, 서봉주의 맛도 꽤 훌륭했으니까.
“목 소저가 단골로 삼은 곳이 있습니까?”
“없어요. 오 장문인께서 말한 곳으로 가죠.”
녹선향이 보기에는 왠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차갑게 말하는 목운교의 대꾸에 오칠은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갑시다.”
그렇게 다섯 명의 일행은 객잔으로 향했다.
물론 그들이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관심 어린 시선을 보냈고, 일행은 그러한 시선 속에서 적당하고 소박한 대화들을 나누며 객잔에 도착했다.
* * *
“여긴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군요.”
객잔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녹선향이 그렇게 말하자, 오칠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자주는 아니었어요. 맹 내의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은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객잔을 자주 이용하죠.”
값이나 음식의 질이 모두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칠은 그래서 목운교에게도 물었다.
“목 소저도 와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목운교는 맹 밖으로는 잘 나오지도 않는 데다, 이전에 같이 어울렸던 이들은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점이 있어서 그곳만 이용했었다.
그래서 목운교는 수년 동안을 백천맹에 있었으면서도 이 객잔엔 처음 와본 것이다.
“…….”
목운교의 대답에 녹선향 등은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모두가 애용하는 곳을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데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오칠은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하는 이들과 달랐다. 목운교가 왠지 홀로 떠 있는 섬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슬프긴 했지만, 그 기분을 침묵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내가 목 소저와 처음으로 이곳에 왔다니, 기분이 나쁘지 않군요.”
누가 들어도 목운교와 남다른 의미를 갖겠다는 말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목운교는 냉담하게 무시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오칠이 저급하다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참으로 이상하구나.’
속사정을 모르는 녹선향은 오칠과 목운교의 관계가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목운교와 오칠은 무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부터 현격하게 차이가 났다. 오칠은 저리 젊은 나이에도 거대 문파의 수장으로서 무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단한 인물이었고, 목운교는 수년을 맹에 있었으면서도 열혈군에서조차 존재감이 작은 인물이었다.
남녀의 차이는 제쳐두고, 부드럽고 예의 바르게 말을 거는 오칠의 모습과 그러한 관심에 시종 냉담하고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목운교의 모습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상하게 여기고 의문이 들어도 그 속사정을 모르는 녹선향으로서는 어떠한 해답도 얻을 수 없었다. 이중에서 오칠과 노백을 제외하고는 목운교조차 상황의 기묘함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