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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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6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28화
파계 6권 - 3화
목운교.
산서금검문(山西金劒門).
역모로 죽은 병부(兵部) 정 오(五)품 각사낭중(各司郎中) 목오언의 여식.
신분이 복원된 후 산서금검문 현 문주의 양녀로 들어감.
금검표국(金劒?局)의 칠 할이 그녀의 소유.
가전무공 음령심법(陰靈心法)과 회풍무류검법(回風無流劍法)을 익혔으나, 실력은 이류.
공야 각주가 책자에서 찾은 목운교에 대한 정보였다.
“부족하군.”
오칠과의 어떤 관계를 유추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정보였다.
하지만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인재가 아닌 이상, 열혈군 후기지수들에 대해 기록해놓은 정보는 기본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목운교는 세 군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인군의 단원이었다. 그 실력도 미미하고, 특별히 튀는 별호조차도 없는 인물인 것이다.
“어떤 정보도 쓰임새가 있기 마련인데…….”
공야 각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천이각의 정보력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느껴오던 것이지만, 왠지 지금 이 순간은 그 부족함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왜?
작지만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그리고 그런 모든 정보를 총괄하고 관리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가 생각만큼 크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현 백천맹이 십장회에 휘둘려 구조를 정비하고, 필요한 만큼의 세력 팽창을 재빠르고 효과적으로 이루지 못한다는 근원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십장회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마복동의 인물이긴 했지만, 십장회는 의심할 것도 없이 현 정파를 구성하는 거대 문파들의 대표 집단이었고, 그들은 마복동의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백천맹을 확장하고, 힘을 구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견제가 계속되는 한 공야 각주가 원하는 어떠한 일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떤 불온한 세력의 등장으로 인해서 무림에 큰 혼란이 생기고, 위기가 닥쳐 현 정파 무림을 뒤흔들게 되지 않는 이상은 힘들겠지…….’
이를테면 과거 마교가 등장했을 때처럼.
“어쨌든, 목운교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겠어.”
공야 각주는 목운교에 대한 특별 조사 지시를 내리는 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세부적인 내용이 빼곡하게 적힌 명령서를 두 번이나 더 읽고 확인하고서야 다른 명령서들과 함께 포개놓았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선에 하나의 문서가 들어왔다.
“남해의 동향이라…….”
문서는 고작 한 장에 불과한 내용을 담은 짧은 소견 보고서였다.
천이각은 공야 각주가 원하는 만큼의 규모를 가지지 못한 만큼 그 정보력이 무림 전체를 균일하게 포괄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수로서 최소한의 동향이라도 파악하도록 했는데, 손에 들고 있는 문서가 그러한 최소 동향이 파악된 문서였다.
“해적들이 싸우고, 노족(老族)들이 잠잠해졌다고?”
쓱 훑어본 내용을 요약하자면 그러한 내용이었다.
순간, 공야 각주는 화가 났다. 고작 해적들의 동향을 살피라고, 무식한 야만족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라고 사람을 파견한 것이 아니었다.
소금물에 찌든 왜놈들에겐 관심도 없었다. 제대로 옷도 걸치지 않은 채로 온몸에 지저분한 문신을 하고서,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를 쫑알대며 문화라는 것과는 담을 쌓은 야만족이 조용하든 시끄럽든 그게 뭐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이게 천이각의 현실인가!”
공야 각주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해적들, 야만족들에 대해서 보고가 올라온 것은 그만큼 남해에는 감시할 것이 없고, 뭔가 다른 더 은밀하고 중요한 것에 대해 포착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최소 동향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 아래 중원을 감시하기도 벅찬 천이각의 인원을 저 남쪽으로 보내야 하는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십장회가 요구해서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십장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마교의 불씨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근거로 해서 천이각의 인원을 중원 밖 각지로 파견할 것을 요구했다.
공야 각주가 속해 있는 마복동(魔?洞)이야말로 마교에 대한 복수심을 기반으로 구성된 단체였고, 그런 마복동조차 이미 마교에 대한 기억을 거의 모두 지워가고 있는 지금과 같은 때에 십장회는 아직까지도 마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심한!’
“후~”
속에선 울화가 치밀었지만, 공야 각주는 긴 한숨으로 그런 마음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왜?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교에 대한 불안감이 없다면 이미 백천맹은 예전에 사분오열되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리 경쟁 세력인 흑천맹이 존재하고 있다 해도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천이각의 힘을 팽창시킬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공야 각주는 지금껏 수십 년간 생각만 하고 있던 포부를 현실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또한 천이각을 시작으로 백천맹을 매우 독립적인 세력으로 완벽하게 변모시킬 필요성도 있었다. 물론, 그 모든 일은 은밀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 이제 시작인 것이야!’
왜 이제야 그런 마음을 먹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공야 각주는 늦었다 싶은 때가 시작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늦은 결심에 대한 후회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른 일들에 대해서는 잠깐 동안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아주 잠깐 동안.
* * *
“목 소저가 형님을 알아보지 못하더란 말입니까?”
“응.”
“왜 형님이 과거의 그 소년이었다는 걸 밝히지 않으셨습니까?”
“그냥.”
“예?”
“그냥. 나중에 때가 되면 말하려고.”
노백은 오칠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하고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고 있는 오칠의 담담한 표정을 통해 그 속내를 파악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목운교가 과거의 나를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야. 우리 사이는 그렇게 의미 있는 사이가 아니었거든.”
실제로 의미가 있는 사이였기는 했다.
다만, 그 의미가 좋은 것이었느냐, 아니었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의미가 무엇이냐를 따진다면, 우선 각자의 가문이 상대를 망하게 만든 원수지간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오칠이 목운교를 짝사랑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이유가 목운교와 만나는 데 어떤 좋은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란 건 분명했다.
원수지간에 좋은 말이 나올 가능성이란 절대적으로 없었고, 짝사랑이란 것도 어릴 때에 오칠의 일방적인 감정이었으니, 목운교가 오칠을 반가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똑똑.
“……?”
노백은 의아한 시선으로 문을 바라봤다.
이 시간에 누가 그들을 찾아왔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그래서 찾아올 사람이 있습니까, 하고 오칠에게 물었지만 오칠은 그럴 사람 없어,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대신 오칠은 찾아온 이들이 두 명이라는 것과 그 성별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여자하고 남자다.”
“예?”
“문 밖에 찾아온 사람이 그렇다고.”
오칠은 이미 누군가 그들의 거처로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남자인지, 여자인지까지 파악해서 말이다.
똑똑.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말은 않고 문만 두드리는 거야?”
오칠의 짜증 섞인 말을 들으며 노백은 얼른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오칠이 또 무슨 비아냥거림을 내뱉을까 싶어 서둘러 문을 열었다.
“아!”
노백은 문을 열자마자 감탄이라기보다는 당황한 것이 분명한 짧은 탄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 탄성을 지른 아름다운 여인의 놀란 표정을 통해서 하얀 가면을 쓴 자신의 모습이 여인을 당혹시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시 은공이셨군요!”
노백은 여인의 바로 옆에 있는 청년을 그 기쁨에 찬 음성을 듣고서야 확인했다.
그렇게 늦게 청년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여인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답고 청초하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여인에게 시선을 빼앗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노백은 애써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라 탓하며 청년에게 아는 척을 했다.
“오랜만이구나.”
녹명원.
수적들에게서 노백이 구해낸 이들 중에 한 명이었고, 화유상이나 그의 사제들과 달리 노백을 영웅이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몸 건강히 계신 것을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녹명원이 한참 동안 주절거린 말을 요약하자면, 수적들 속에 오칠을 남겨두고 제 몸의 안위만을 좇았던 그때를 너무나 후회하며, 늦었지만 깊이 사죄하고, 평생을 두고 은혜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되었다. 그때 네가 혼절하여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음을 아는데 누구를 탓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무리 그랬다고 해도 은공을 두고 갔었던 것은 사나이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게다가…….”
화유상과 그 사제들이 백천맹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던 반 협박에 가까운 충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는 것이다.
“되었다니까. 너의 잘못을 알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또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노백은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대한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며 녹명원을 다독였다.
“되었다고 하질 않느냐. 난 그때의 일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고 있으니, 이제 너도 그만 잊어버려라.”
노백은 마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녹명원의 어깨를 두드려주기까지 하며 돌려보내려고 했다.
한데, 이번에는 녹명원이 아니라 그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보고 있던 여인이 나서는 것이 아닌가.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를 어찌 그리 쉽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
“우선 은공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여드린 것에 대해 사과드려요. 저는 이 아이의 누이인 녹선향이라 합니다.”
녹선향은 처음 노백을 보고 놀란 것에 대해 사과하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노백도 얼른 머리를 숙였다.
“노백이라 하오이다.”
담담하게 자신을 소개했지만, 고개를 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녹선향의 새하얀 목선 때문에 노백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했다.
“노 아우, 손님을 밖에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안으로 모시게.”
잘 쓰지도 않는 경어까지 사용하여 노백에게 말하는 오칠의 얼굴은 뭔가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 음흉한 빛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직접 문을 활짝 열고서는 녹명원과 녹선향을 안으로 들이는 것을 보며 노백은 오칠에게 의심스런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그러냐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노백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혹시 무한에서 오셨다는 무적 정의파 장문인이신가요?”
이미 오칠에 대한 소문은 은시 성내에 파다하게 퍼졌고, 노백이 이곳에 있다는 것도 그러한 소문을 통해 전해 들었을 테니, 녹선향이 묻는 것은 그저 예의를 갖춘 인사말이라 할 수 있었다.
오칠은 그런 허례허식은 싫어했지만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하는 말인 데다, 목운교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유쾌했고, 그래서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녹 소저가 들은 사람의 이름이 오칠이라고 한다면, 본인이 맞소.”
“인사드립니다. 만화곡의 녹선향이에요.”
노백에게 인사를 할 때와는 달리 녹선향이 자신의 문파를 밝히는 것은 오칠을 어느 한 문파의 수장으로 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녹선향이 그녀의 가문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오칠을 그렇게 상대해야 할 만큼 중요했다.
만화곡(萬花谷).
호남 북쪽 림상(臨湘)에 위치한 중소 문파로서, 문파명의 의미는 꽃이 많은 계곡이 아니라 여인들이 많이 있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남자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적은 여인문(女人門)이라는 뜻인데, 현 곡주 또한 여인으로서 대대로 곡주의 지위는 여인들에게만 이어지고 있었다.
녹선향은 현 곡주의 딸로서 다음 대 곡주로 정해진 후계자였다. 그리고 만화곡이 데릴사위의 문규를 따른다 해도, 백천맹의 삼대미인으로까지 꼽히는 미모와 만화곡의 적지 않은 명성으로 인해서 따르는 사내들이 산을 이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녹선향은 백천맹에서 인기가 많은 여인이었다.
화유상이 녹명원에게 자신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 녹선향에게 전해지도록 수적들과 싸우는 무리수를 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괜찮은 여인이군.’
오칠은 녹선향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세워 오만을 부리는 여인이 아니라는 걸 단 몇 마디의 말로 알아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여인들처럼 오칠의 외모에 혹하지도 않는 모습에 흡족해했다. 노백이 단번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아마도 외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러한 분위기 때문임이 분명했다.
굳이 오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상대의 가치를 알아보았다고나 할까.
오칠은 노백이 그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흔히 짚신짝이란 말로 지칭하는 이성을 만나게 되었다고 확신했다. 지금도 노백은 애써 아닌 척하면서도 녹선향에게서 시선을 떼기 힘들어하는 걸 보면 오칠의 생각은 거의 정확하다고 보아야 했다.
‘저 딱딱한 돌멩이 녀석을 말랑말랑한 진흙으로 만들려면 여인의 부드럽고 따스한 품 안이 가장 제격이긴 하지.’
오칠은 내심 그런 생각을 품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