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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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27화
파계 6권 - 2화
‘도대체 이 남자 뭐야?’
무리의 가장 선두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던 목운교는 어느새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온 오칠을 보고는 와락 짜증이 일었다.
처음부터 괜스레 다가와 말을 걸고, 시종 옆에 붙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그녀라고 오칠이 매우 빼어난 외모의 남자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눈이 있는데 오칠의 매력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얼굴이 잘생겼다고, 무공이 뛰어나다고, 젊은 나이에 엄청난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고 단번에 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잠시 그런 점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목운교는 매우 이성적인 여인이었다. 이미 남자라는 존재의 쓴맛을 알고 정신적으로 너무나 성숙해진 그런 여인 말이다.
“목 소저, 내기할까요?”
목운교가 뛰어오른 바위를 동시에 뛰어넘으며 오칠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목운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수련을 할 때는 수련만을 생각해야지, 쓸데없는 잡담에 신경 쓸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칠은 목운교의 무반응에도 계속 말을 걸었다. 아니, 목운교가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 말을 걸고 싶었다. 그녀를 만나러 이곳을 찾아온 데다, 여자라면 단번에 휘어잡을 수 있다고 자부하는 자신을 목운교가 외면한다는 것에 더욱 재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완주 훈련을 먼저 끝내면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겁니다.”
“…….”
“목 소저는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니, 내가 지면 다시는 목 소저께 말을 걸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내가 이기면 목 소저가 오늘 저녁을 사십시오. 그 정도면 그리 부담스런 내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
“왜요? 겁납니까?”
목운교는 힐끔 오칠을 쳐다보았다.
‘진다고 해도…….’
저녁을 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끈덕지게 다가오며 저 잘났다고 하는 재수 없는 남자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그 정도의 내기는 겁날 것이 없었다. 그녀가 이길 가능성이 더 적다고는 해도 말이다.
“좋아요.”
목운교는 고개를 끄덕이고 더욱 힘을 내기 시작했다.
염 소저는 목운교가 평소에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녀는 체력을 안배하며 달리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체력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녀였다.
‘오호!’
갑자기 속력이 빨라지고, 높다란 바위도 성큼성큼 뛰어오르는 목운교를 보며 오칠도 놀란 눈을 했다.
체력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생각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목운교가 육체 단련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나도 이제 제대로 달려볼까.’
“후~”
오칠은 길게 숨을 내쉬고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가볍게 움직였던 것인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타타타타타탁.
거친 산길을 달리는 오칠의 발걸음 소리가 요란하게 바닥을 울렸다.
바위를 성큼 밟고 뛰어오른 순간 단번에 두 장의 거리를 줄이고 앞으로 쭉 내달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짐승의 그것처럼 활동적이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도저히 근력만으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경이적인 속도와 도약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르다!’
잔상이 보일 정도로 팔을 휘두르고, 그에 맞게 다리를 움직이고 있던 목운교는 순식간에 그녀를 제치고 앞으로 쏘아져나가는 오칠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정말 체력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제법인데?’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기 위해 슬며시 속도를 줄여볼까, 하고 생각하던 오칠은 자신과의 거리를 석 장 안으로 줄이며 따라오고 있는 목운교에게 진정 감탄했다.
예전에 노백과 싸웠던 날, 노백이 경공을 펼치지도 않고 엄청난 속도를 냈던 것을 보고 감탄한 것처럼, 오칠은 지금 목운교에게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노백 때도 그랬듯, 그 감탄이란 것은 그저 약간의 놀라움일 뿐이었다. 아무리 목운교가 힘을 낸다고 해도 그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성을 잃고 야수로 살아왔던 일 년의 산 생활 이후, 오칠의 육체는 맹수와 비견될 수 있는, 이미 인간의 그것을 뛰어넘는 수준이 되어버렸으니까.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시오.”
오칠은 반대쪽 산자락에 당도했다가 다시 거꾸로 달리며 목운교에게 빙긋이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그건 그녀의 약을 올리기 위한 의도였던 만큼, 목운교의 승부욕을 더욱 자극했다.
‘지지 않아! 지지 않을 테야!’
목운교는 체력을 안배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저 한순간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오칠을 앞질러보겠다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달려갔다.
“와! 뭐야~!”
“저 두 사람 엄청나다!”
이제야 산 중반을 내려오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산짐승처럼 달리며 그들의 옆을 지나가는 오칠과 목운교를 보고 깜짝 놀랐다.
“포기 안 해!”
염 소저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있던 다른 여인들도 화난 얼굴로 이를 악물고는 더욱 힘을 내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왜들 저래?”
“난들 알겠나.”
당혹스러운 것은 남자들이었다.
평소에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산을 오르내리지 않았다. 목운교가 그들을 앞질러도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그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인들은 바로 그들 옆에서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체력 단련의 진정한 묘미는 단련이 아니라, 그런 그녀들과 적당히 보조를 맞추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인과 정을 쌓아가는 것이었다.
한데, 오늘 여인들은 달랐다.
곱게 웃기만 하던 여인들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남자들 입장에서도 보조를 맞추려면 힘껏 달려야 할 정도의 속도를 내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괜히 힘 빼기 싫다고 천천히 달릴 수도 없는 것이, 목운교라면 모를까, 다른 여인들에게까지 뒤처진다면 그러한 치욕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당장에 인군의 남자들은 여인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이 날 것이다.
한마디로 못난 남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도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동백 기름으로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머리가 풀어헤쳐지고,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은 먼지가 묻어 더러워지고, 옷이 나뭇가지에 긁혀 흠집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하하하! 오늘은 정말 대단하네요!”
“군장님,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인군이 다른 군을 앞지르는 것 아닙니까!”
무공 교두들은 신이 나서 서로 웃고 떠들었다.
실상 이렇게 체력을 단련한다고 해서 인군이 다른 군의 후기지수들보다 뛰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인군의 후기지수들이 저리 열심히 단련하는 모습은 그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것보다 저 오 장문인이란 사람 진짜 대단하군요. 난 저렇게 잘 달리는 사람은 생전 처음 봅니다.”
“나도 그렇다네. 마치 한 마리 호랑이를 보는 것 같군.”
“맞아, 호랑이. 산을 마치 제집처럼 뛰어다니는 호랑이의 모습이야.”
무공교두들은 오칠이 산을 달려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건 군장인 국신몽도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과거 무적 정의파의 개파식에서 오칠의 실력을 직접 목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오칠의 저 뛰어난 체력에는 절로 놀라움이 일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장문인이 왜 목 소저에게 저러는 것일까?’
오칠이 목운교와 내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뭔가 관심 어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걸 국신몽도 대충 눈치를 챈 것이다.
다만, 왜 오칠이 저러는지를 알지 못할 뿐이었다.
목운교는 국신몽이 보기에도 그리 매력이 있는 여인이 아니었다. 얼굴이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다른 여인들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군장으로서의 입장에서는 목운교가 더할 수 없이 훌륭한 단원이지만, 이곳 인군의 후기지수들이 천군이나, 지군에 비해 재능과 의지에서 많이 부족하고, 자신의 발전보다는 열혈군에 소속되었다는 명성과 알맞은 짝을 찾는다는 이차적인 목적에 더욱 비중을 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목운교는 다른 후기지수들에게 그리 호감이 가는 여인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매우 막강한 가문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거나, 무공이 뛰어나다거나, 재능이 특출 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오래 수련해도 이류를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검법에 매달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분명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
그래서 다른 남자들보다 더욱 강한 체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역시 여인으로서의 매력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오 장문인이 목 소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여인으로서의 매력은 아닐 것이라 단정 지은 국신몽은 이러한 의문을 총수인 하후진용에게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헉, 헉, 헉, 헉!”
목운교는 거칠게 뿜어지는 숨을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내쉬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
여전히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조금씩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달리고 있는 오칠과 조금씩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끝난다.
아직 유시(酉時:오후 5~7시)도 되지 않았으니 지금껏 그 어떤 때보다 빠른 완주 속도였다.
하지만 내기에는 지게 되었다. 지기 싫었는데, 정말 체력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었는데 지게 되었다.
목운교는 군장들과 무공교두들이 있는 곳에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서 있는 오칠을 보며 출발 지점에 도착했다.
‘졌어.’
목운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거친 숨을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격한 숨결은 쉽게 진정되지도 않았고, 왠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유시 말쯤에 찾아가면 될까요?”
눈물이 맺혀 있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얼굴을 숙이고 있는 목운교에게 다가온 오칠이 물었다.
“…….”
목운교는 고개도 들지 않고, 아무 대꾸도 없이 계속 숨만 골랐다.
미웠다. 너무나 얄미웠다. 벌떡 일어나서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울분이 치솟았다. 누군가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드문 일인지라 기분이 묘했지만, 그런 어떤 기분보다 잘났다고 옆에서 알짱거리는 이 남자를 어떻게든 혼내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강렬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자신은 모든 면에서 오칠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여자였다.
목운교는 땀을 닦는 것처럼 이마를 손으로 비비면서 눈에 맺혀 있는 눈물까지 닦아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오칠을 노려보았다.
“그때 보죠.”
“제가 목 소저의 처소까지 찾아가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목운교는 그 말을 끝으로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오칠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군장에게 먼저 돌아가겠다는 말을 한 뒤 그녀의 처소 쪽으로 사라졌다.
‘울 정도로 그렇게 억울했나?’
“따갑네.”
오칠은 조금 전 눈물로 인해 붉어져 있던 목운교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가만히 중얼거렸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군장이 멀어져가는 목운교를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오칠의 중얼거림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오. 그냥 땀이 흘러 눈이 따갑다고 했소.”
“아, 예.”
사실, 오칠의 얼굴엔 거의 땀이 흐르지 않았지만 군장은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른 인군의 후기지수들이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빠른 시간에 완주를 마치기 위해 산을 내려오고 있어서 그들에게 신경을 써야 했다. 아무래도 후기지수들의 뛰어내려오는 몰골을 보아하니 한두 명 정도는 그대로 실신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바닥에 쓰러져서 탈진할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56장. 여자와 싸우기 적당한 상황(狀況)
“그렇단 말이지?”
“예.”
공손하게 서 있던 사내는 더욱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고, 공야 각주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골몰하는 표정을 짓다가 사내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
방을 나간 사내는 천이각 소속의 인물이었다.
그는 인군의 체력 단련에 참가한 오칠이 누군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공야 각주에게 보고하고 나갔다.
공야 각주는 인군 군장에게 그런 보고를 받았다는 총수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니 그냥 무심히 넘길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어디 있더라…….”
공야 각주는 열혈군의 신상명세가 기록되어 있는 자료를 찾아 책장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곧 그가 원하는 내용이 적혀져 있을 하나의 얇은 책자를 꺼내들어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