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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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57화
파계 7권 - 7화
‘이… 이 자식!’
장년인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오칠을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술을 시켰냐고 욕이라도 내뱉어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자신이 배가 불러서 더는 먹기가 힘들다는 걸 시인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꿀꺽꿀꺽.
“안 드시오?”
새로 가져온 술 단지에서 퍼 올린 한 사발의 술을 말끔하게 마셔버린 오칠이 짐짓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장년인을 바라봤다.
‘별로 목이 안 말라!’
라고 장년인은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변명에 불과했고, 그렇게 말했다가는 오칠에게 지는 것이기 때문에 장년인은 단지에 사발을 집어넣었다.
“좀 적게 푼 거 아니오? 거 좀 꽉꽉 눌러서 푸시오.”
장년인이 퍼 올린 사발을 슬쩍 쳐다보고는 오칠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리고 사내답다는 사람이 뭐가 저렇게 통이 작으냐, 이제는 한계가 온 거 아니냐, 이쯤 되면 포기하는 것이 더 사내다운 거다, 등등의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작게 중얼거렸다고는 해도 구경하는 객잔의 모든 사람이 그 말을 들었는데 장년인이 못 들었을 리가 없었다.
“끙!”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금니를 악물고 참은 장년인은 술을 다시 퍼 올렸다.
그리고 오칠이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사발 가득히 퍼 올린 술을 넘기는 소리도 우렁차게 꿀꺽꿀꺽 들이켰다.
쿵!
“음식은 언제 나오는 거야―!”
깨끗이 비운 사발을 탁자에 거세게 내려놓으며 장년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으면 목구멍까지 찬 뭔가가 울컥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구경하던 사람들은 장년인의 커다란 고함에 깜짝 놀라서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 음성에 담긴 분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장년인이 내리친 사발과 탁자였다. 소리가 예사롭지 않더니만, 사기로 만들어진 사발이 탁자에 절반이나 틀어박힌 것이었다. 엄청난 공력을 가진 무림고수가 아니라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당혹시킨 그 놀라운 능력이 정작 오칠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의 얼굴엔 괜히 탁자를 망가트리고 난리야, 하는 표정 외에는 아무런 표정도 지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장년인은 오칠이 꽤 강한 무공을 익힌 무림인임을 알게 되었다.
‘하긴 처음부터 날 보고도 전혀 겁을 먹지 않은 것부터 의심했어야 할 일이었지. 하지만 생각하니 그것도 이상하군. 무림인이라면 나에 대해서 잘 알 텐데.’
장년인의 이름은 워낙에 유명했고, 그 모양새와 등에 멘 두 개의 양날 도끼를 본다면 금방 연상할 수 있는 이름일 터였다.
‘이름 있는 명가에서 무공만 익힌 강호 초출인가?’
하지만 하는 꼴은 능글맞기 그지없어 전혀 강호 초출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실력은 있는데, 그냥 눈이 어두운 놈일까?
‘뭐 상관없는 일이지. 이 자식이 날 알아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장년인은 지금 이 무식하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승부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상대가 누구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삼황계 나왔습니다.”
장년인의 분노한 호통 때문에 잔뜩 긴장해버린 점소이가 서둘러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한데, 그 삼황계(三黃鷄)라고 하는 음식을 담은 접시가 탁자에 놓이자 장년인의 얼굴이 음식의 색깔처럼 노랗게 뜨기 시작했다.
‘비… 빌어먹을!’
오늘 음식에는 유독 닭을 재료로 쓴 음식이 많았다.
닭고기라면 정말 질려버릴 정도로 많이 먹은 것이다. 더구나 삼황계는 빈속에 먹어도 절반 정도 먹다 보면 느끼함을 느낄 정도여서, 술로 속을 달래면서 같이 먹어야 하는 음식인 것이다. 그러니 장년인의 표정이 노랗게 변할 수밖에.
‘이… 이거 위험하다!’
먼저 삼황계를 먹기 시작하는 오칠을 보며 장년인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도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
덜 익었다.
가뜩이나 느끼한 음식인 데다, 닭고기가 덜 익어 입 안에서 미끈거리기까지 했다. 아마도 장년인의 호통에 겁을 먹은 숙수가 제대로 완성시키지도 않고 음식을 내보낸 모양이었다.
‘지… 진짜 위험……!’
속이 울렁거리고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장년인은 황급히 사발로 술을 퍼서 입 안으로 기울였다. 비위 상한 속내를 술로 달래기 위해서였다.
“욱!”
하지만 이미 늦었다.
더 이상 의지로 참아내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이 들어갔고, 한 번 비비 꼬이기 시작한 속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도 소용없다는 듯, 채 소화도 되지 않은 음식물들을 있는 힘껏 분출해버렸다.
촤악― 촤악―
마치 폭포수처럼 물을 뱉어내듯, 바닥으로 향한 장년인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으~!”
보고 있던 사람들은 차마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고, 장년인은 아예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토악질을 해댔다.
쩝쩝쩝.
“……?”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을 정도로 한참이나 토악질을 해대던 장년인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
‘도대체 이놈은 뭐야?’
오칠은 그를 패배로 몰고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삼황계를 냠냠거리며 먹고 있었다.
분명 오칠의 삼황계도 덜 익혀져서 정말 끔찍할 정도로 느끼할 것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바로 코앞에서 토사물을 쏟아내고 있질 않은가. 그런데도 저렇게 음식을 먹고 있다니.
꿀꺽꿀꺽.
“카―!”
오칠은 삼황계를 모두 먹어치우고, 사발에 가득 채운 술로 입가심을 한 뒤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장년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가벼운 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가 승부에서 이겼으니, 이제 당신이 나보다 사내답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오.”
제66장. 그들은 결국 굴복하게 된다
오칠과의 승부에서 패배한 장년인.
그는 지금 미도객잔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겨울답지 않게 맑고 푸르렀지만, 장년인에게는 그의 마음처럼 우중충하게만 보였다.
‘이런 수치를 당하다니!’
차라리 상대의 엄청난 식성을 인정하고 패배를 시인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기를 부리다가 결국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음식을 토해내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내가…….”
천부신군(千斧神君)이라 칭해지며, 젊은 무림인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인 초왕성이 애송이에게 져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니.
‘이대로 수치를 감내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었다.
초왕성의 인생에서 그런 것은 없었다. 분노와 수치를 참고,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고만 있었다면 지금의 그는 절대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애송이 자식을 찾아, 꼭 설욕하고 말리라!’
초왕성은 오칠이 사라진 방향으로 홱 고개를 돌려서는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기 있군!
얼마 걷지 않아 오칠을 발견했다.
눈처럼 새하얀 말을 탄 그 뒷모습은 주변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상반되어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고, 어찌 보면 공간이 왜곡되어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순간 초왕성은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더욱 빨리 걸으며 오칠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문득, 초왕성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어떻게 설욕하지?’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마음을 먹긴 했지만, 딱히 어떤 방법을 생각하진 않았다.
우선 오칠을 찾아내겠다는 생각만 하고 쫓아온 것이었다.
‘또 먹기 승부를 하자고 할까?’
하지만 솔직히 그건 자신이 없었다.
오칠과 승부를 겨룰 때에 초왕성은 배가 부른 상태가 아니었다. 허기진 것도 아니었지만, 무공에 대한 고민으로 식욕이 없어 그냥 소채를 안주로 해서 가볍게 술을 마시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졌다는 것은, 그렇게 무참하게 졌다는 것은 절대 오칠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비무를 하자고 해야 할까?
그러나 자신은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최고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칠절신군(七絶神君)이라 하면 구대문파 장문인들과도 견줄 수 있는 명성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이제 약관을 넘은 듯한 애송이에게 비무를 청한다는 것은 그 역시 자존심을 구겨야 할 일이었다.
‘모르겠다. 우선 저놈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차근히 생각해보자.’
칠절신군 중에 한 명인 그가 누군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자체도 자존심 상하는 일일 테지만, 초왕성은 그 점에 대해선 무시해버렸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정당성을 부여하기도 하고, 그냥 무시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무림에 이름 있는 절정고수라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거지?’
점점 천양현 중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오칠을 보며 초왕성은 의아해했다.
혹 이대로 천양을 떠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았다. 중심 지역에서 벗어나고 있는데도 길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사람과 마차들의 왕래가 많아진다 싶더니만 이곳 천양에서 꽤나 유명한 장소가 나타난 것이다.
천양표국(千陽?局).
이곳 천양에서 감숙, 사천 등으로 가는 물품들을 독점하고 있는 꽤 번성한 표국이었다. 그리고 혈족으로 구성된 국주와 표두, 표사들의 마상무공은 감숙의 마적들이 감히 건드릴 마음을 먹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무림에서는 크게 활동하지 않아서 실력에 비해 평가가 절하되고 있는 표국이기도 했다. 물론 표국으로서의 명성은 근방에서 최고였기 때문에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저 녀석, 천양표국의 일가였나?’
그러나 천양표국의 사람들은 맹 씨 성이었다.
분명 오 가라고 했으니 같은 일족일 리는 없는 것이다.
“무한의 오 가가 국주를 만나러 왔다고 전해라.”
현판이 달린 커다란 정문 앞에 말을 멈춰 세운 오칠은 거만함의 극치를 달리는 말투로 정문을 지키던 표사에게 말했다.
초왕성은 아까 객잔에서의 털털함과는 너무나 다른 오칠의 말투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 오칠의 말을 듣고 표정이 변하는 표사의 반응을 더욱 기이하게 여겼다.
‘표사가 반문도 하지 않고 뛰어 들어가는 걸 보면 저 오 가 놈이 방문할 것에 대해서 윗사람으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은 모양인데…….’
그러나 표사의 표정은 결코 좋은 느낌의 반응이 아니었다.
‘저 녀석이 왜 국주를 만나려는 거지?’
멀찍이서 지켜보던 초왕성은 왠지 오칠의 행보가 그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오칠이란 인물 자체를 너무 평이하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문 저 안쪽에서 넓은 공터를 가로질러 오는 일단의 무리를 보고 그러한 느낌은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저 노인이 국주인 맹철탁인가 보군.’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기세 등으로 판단할 때 앞장서서 무리를 이끌고 있는 자가 천양표국의 국주일 것이 분명했다.
“들어오시오.”
정문에 채 당도하기도 전에 걸음을 멈춘 맹철탁과 무리는 정문 밖에서 말 위에 앉은 채로 기다리고 있던 오칠에게 안으로 들어올 것을 정중하게 청했다.
그리고 오칠은 말을 타고 있는 그대로 정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닫아라!”
쿠쿠쿠쿵.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커다란 정문이 굳게 닫혔다.
‘젠장! 문은 왜 닫아!’
초왕성은 정문 안쪽, 아마도 연무장이거나, 대규모의 표물 운송에 앞서 사열(査閱)을 하는 곳이라 짐작되는 공터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높은 담을 무시하고 내부를 관조할 수 있는 높이의 나무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 담장 주변으로는 나무 한 그루 자라고 있지 않았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도적의 내습을 경계하기 위해서 담장 주변에 있는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것이다.
‘할 수 없지.’
초왕성은 주변을 살피며 담장으로 몰래 접근해갔다.
그리고 그의 성정에 맞지 않는,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담장을 타고 안으로 잠입했다. 다행히 담장 안쪽에는 그가 몰래 숨어서 공터를 관조할 수 있는 구조물들이 몇 개 있었고, 그중에서 주변을 경계하는 감시탑 바로 밑에 몸을 숨겼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감시탑 바로 밑이야말로 사각 지역이고,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은신처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몰라.’
초왕성은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신의 이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그의 명성에 비견해서 너무도 치졸한 짓거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 고하와 상관없이 궁금증을 참기가 매우 힘이 드는 법이다. 그리고 이렇게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는 더욱더 미련을 버리기가 힘든 법이고 말이다.
그래서 초왕성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당혹감을 금세 지워버리고, 오칠과 천양표국의 사람들이 나눌 대화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