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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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54화
파계 7권 - 4화
“……!”
철검을 단봉으로 막은 대장로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 순간, 단주는 철검을 양손으로 잡으며 대장로의 머리를 향해 다시 내리그었다.
쩌정―
“……!”
두 개의 단봉을 엇갈려서 철검을 막아낸 대장로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단주의 공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공격은 이제부터였다. 단순하고, 호쾌한 철검이십팔검식(鐵劍二十八劍式)의 스물여덟 개 초식을 폭풍처럼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쩌정― 쩡― 쩡― 쩡― 쩡― 쩡―
대장로의 신형이 흔들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무게와 길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지는 철검의 공격을 짧은 두 개의 단봉으로 막아내는 만큼, 양팔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쩡― 쩡― 쩡― 쩡―
“…….”
하지만 그렇게 대장로를 몰아쳐가던 단주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로 맞부딪쳤으면 대장로의 두 팔은 충격에 의한 여파로 인해서 단봉을 잡고 있는 것조차 힘들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회피 동작 중에서 생겨난 틈새를 파고들어 대장로의 몸에 끔찍한 상처를 안겨준다는 것이 단주의 계획이고, 지금껏 그가 싸워왔던 방식이었다.
한데, 대장로는 뒤로 물러나면서도 전혀 회피할 생각도 않고, 더구나 양팔이 고통스럽다거나 하는 기색은 더더욱 없었다. 오히려 한번 마음껏 공격해보라는 듯한 눈으로 쏘아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만 들게 했다.
‘뭐지?’
의문과 불안감이 뒤섞여서 단주에게 혼란을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대장로의 움직임이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단주가 기다리던 변화가 아니었다.
츠앙―
철검을 막아낸 단봉이 뒤로 튕겨지는 듯하다가 앞으로 휘둘러졌다.
“……!”
그런데 그 각도가 이상했다.
팔꿈치 관절은 그렇게 꺾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분명 철검에 튕겨져서 팔은 뒤로 밀려났는데, 팔꿈치가 뒤틀려져 단봉이 앞으로 휘둘러진 것이다.
‘어떻게?’
단주는 의문과 함께 철검을 위로 휘둘렀다.
그를 향해 내리쳐지는 단봉을 쳐내고, 대장로의 어깨를 향해 다시 내리그었다.
츠앙―
단봉은 튕겨나가고, 그의 철검은 목적대로 대장로의 어깨를 노리며 떨어졌다.
하지만 철검은 또 다른 단봉에 막혔다.
퍽―
“윽!”
어깨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단주의 몸이 휘청거렸다.
단주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하나의 단봉은 위로 쳐내고, 또 다른 단봉은 철검과 엇갈렸었다. 그러나 해답은 간단했다. 튕겨졌다고 생각했던 단봉이 그의 어깨를 내리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장로의 팔꿈치는 아까처럼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팔은 반탄력에 의해 뒤로 밀려났는데, 팔꿈치는 절대 그럴 수 없는 각도로 꺾여서 쥐고 있는 단봉으로 단주의 어깨를 때린 것이다.
흑혈유마공(黑血柔魔功).
뼈가 없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몸을 부드럽게 해주는 마공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팔의 각도도 가능했고, 단주의 맹렬한 공격에도 몸이 버텨낼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놀라운 무공이지?”
대장로의 눈이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 중에도 지금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잊지 않은 단주가 철검을 휘두르자, 대장로는 정말 그 기백만은 인정해줄 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단봉을 휘둘렀다.
뻑―
“큭!”
단주의 옆구리로 단봉이 작렬했다.
분명히 철검으로 쳐냈고, 그 반탄력에 의해 팔이 밀려났지만 곧바로 관절이 기이하게 꺾이며, 방어할 새도 얻지 못한 단주의 열려진 옆구리에 단봉이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단주는 고통을 억눌러 참고 다시 철검을 휘둘렀다. 역시 자연스런 움직임에 의한 타격이 아니었기에 단봉의 파괴력이 조금 줄었고, 그래서 단주는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뻑! 뻑! 뻑! 뻑! 뻑! 뻑!
하지만 파괴력이 줄어든 타격력이라고 해도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맷집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싸우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매에는 장사(壯士)가 없다고, 몸 곳곳이 수십 번에 걸쳐 격타 당하자 단주의 육체가 버텨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
‘팔이?’
단봉을 막기 위해 철검을 휘두르려던 단주는 순간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단주는 오장로의 단봉에 격타되면서 전해진 수많은 충격 속에서 어깨의 근육이 망가졌고, 그래서 자신의 육체가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게 되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가 인정했다고 해서, 대장로의 공격이 멈춰지는 것은 아니었다.
뻑뻑뻑뻑뻑뻑―
마치 세로로 세워놓은 통나무를 두들기듯, 두 개의 단봉은 쉬지 않고 단주의 몸을 두들겨댔다.
퍼석!
그리고 온몸이 피범벅이 되고, 머리가 연속적인 타격에 박살나는 순간 대장로의 무지막지한 공격이 멈췄다.
철퍼덕.
이미 인간의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커다란 핏빛 고깃덩이가 땅바닥으로 무너졌다.
대장로는 그런 단주의 시체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긴 숨을 내쉬었다.
“역시 때려죽이는 맛이 통쾌한 법이지!”
그의 절기인 여의곤법(如意棍法)을 시원스럽게 펼쳐 보였다는 만족감에 대장로는 무척이나 기분 좋았다.
그는 원등곡에게 두려울 정도의 광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그러한 광기를 갖고 있었다. 다만, 그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혈천신교의 모든 이들이 두 사람과 같았다. 과거 배화교의 이상적 교리와 가치관, 그리고 사상을 배제하고 힘만을 숭배하게 된 그들의 머릿속은 이미 정상적인 사고와는 완전히 멀어져버린 것이다.
“좋아, 다음은 어떤 놈이냐!”
대장로는 지금의 이 기분을 더욱 길게 느끼고 싶었기에 또 다른 상대를 찾아 몸을 날렸다.
* * *
팽―
철시가 모남족의 머리를 박살내고, 그 뒤쪽에 있던 모남족의 가슴까지 꿰뚫었다.
그러나 머리가 박살난 모남족은 바닥으로 쓰러져 부들부들 떨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가슴을 꿰뚫린 모남족은 곧바로 일어나서 공격하던 정파 무사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괴물 같은 놈들!’
구천신궁보 보주는 등줄기에 돋는 소름을 애써 무시하며, 또다시 철시를 시위에 걸었다.
철시는 이게 마지막이었다. 이제부터는 대나무 등을 재료로 해서 만든 일반 화살로 쏴야 했다.
하지만 일반 화살 역시 이십여 개밖에 갖고 있지 않았기에 금방 소진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화살로 저 괴물 같은 놈들을 제대로 죽일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크아아!”
모남족 전사가 작은 손도끼를 들고 달려들었다.
보주는 재빨리 몸을 옆으로 움직여서 손도끼를 피하고, 철궁의 시위로 전사의 목을 걸은 뒤에 힘껏 잡아당겼다.
스락―
특수한 실로 만들어져서 날카롭기 그지없는 시위는 전사의 목을 매끈하게 잘라버렸다.
“후우~”
다른 모남족처럼 은밀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해왔다면 결코 이렇듯 쉽게 죽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주는 주위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다시 철시를 시위에 걸었다. 한데, 그런 보주의 눈에 철혈무적검단 단주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니, 더 정확히는 단주일 거라고 생각되는 사내가 시뻘건 고깃덩이가 되어 쓰러지는 광경을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그저 단주가 죽어버린 모습이 아니었다. 그가 믿고 같이 싸울 수 있는 동료가 죽은 것이었고, 지금의 이 싸움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말해주는 광경이었다.
“후퇴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과 맹렬하게 싸우던 관 장로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보주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죽기 위해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후퇴한다―! 후퇴……!”
뒤로 물러나면서 있는 힘껏 소리치던 보주의 입이 다물어지고, 눈동자는 당혹스런 빛으로 물들었다.
저 멀리서부터 그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다른 어떤 적들보다 눈에 띄는 강렬한 움직임을 보이는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 세 명이 각각 세 방향에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그를 목표로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보주는 재빨리 철시가 걸린 시위를 힘껏 당겼다. 그리고 정확하게 목표를 정하고 시위를 놓았다.
팽―
공력까지 담아서 날린 철시는 공간을 순간적으로 뛰어넘어, 정면에서 달려오고 있는 원등곡에게 날아갔다.
‘맞았다……?’
분명 관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철시가 잔상을 꿰뚫었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킨 것이었다.
보주는 뒤로 물러나면서 일반 화살을 꺼내들어 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 장로에게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역시나 그의 화살은 빗나갔다.
그러나 철시를 쏜 것이 허망하게 실패하고 난 뒤, 보주는 큰 희망을 버렸다. 지금 화살을 쏜 것은 그저 달려오는 적들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그가 후퇴할 수 있는 시간을 얻기 위함이었다.
핑―
보주는 연달아 계속 화살을 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달렸다. 그러다 뒤돌아서 화살을 쏘고,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그의 주위로 정파 무림인들도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주처럼 뒤를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적의 추적을 염려하기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달리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세 방향에서 달려오는 적들과의 거리는 이미 절반 이상으로 가까워져 있었다. 곧 추월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보주는 화살을 쏘고, 달리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윽!”
순간, 보주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오른쪽 무릎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재빨리 다리를 내려다본 보주의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그의 무릎에 날이 둥글게 구부러진 칼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 칼의 주인은 팔 하나만 남고 다른 사지가 몽땅 잘려나가고도 죽지 않고서, 누군가 근처에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남족이었다.
휘릭―
휘릭―
보주의 시선이 좌우로 움직였다. 미세한 소리의 정체는 그를 향해 도끼를 든 채 달려드는 두 명의 모남족이었다.
입고 있는 짐승 가죽 때문에 마치 먹이를 향해 덤벼드는 살쾡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만큼 빠르고, 사나워 보였다.
“으얍―!”
하지만 보주는 멍하니 당하고 있지 않았다.
아주 잠깐의 삶이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었고, 그는 들고 있는 철궁을 휘둘러 그런 자신의 본능을 있는 힘껏 발산했다.
퍼퍽―
달려들던 두 명의 모남족이 각기 얼굴과 가슴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아주 잠깐 보주의 가슴에 만족스런 기쁨이 피어났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아주 잠깐이었다. 모남족이 일어나서 다시 덤벼들기 전에, 다친 오른 다리로라도 도망치려고 했던 보주의 시야에 작은 주먹 하나가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 바짝 다가와, 절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
빠각―
“끄악!”
안면이 움푹 들어가는 충격에 보주는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비명은 길지 않았다. 두 개의 단봉이 그의 양어깨와 가슴을 두들기는 순간, 하나의 부채가 날아와 그의 목을 자르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한 놈도 도망치게 하지 말고 깡그리 다 죽여―!”
내공이 담긴 원등곡의 목소리가 넓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혈천신교 초강지옥대와 송제지옥대(모남족)의 잔인하고, 집요한 살육은 반 시진 동안 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