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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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53화
파계 7권 - 3화
원등곡의 양팔이 곡선을 그리며 빙그르 회전했다.
바닥을 밟아가는 보법은 너무도 빨라서 눈이 아찔할 정도고, 그에 맞게 사방팔방으로 펄럭이는 새하얀 부채들의 움직임은 너무도 아름다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영환무혈선식(魔影幻舞血扇式).
그 이름을 갖고 있는 기기묘묘한 움직임이 더욱 화려하고, 빨라지며 부채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양광휘신공(太陽光煇神功)의 공력이 전신을 휘돌아 손끝을 타고 부채에 응집되며, 마공 특유의 빛을 발산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저 시각적인 특징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다 직접적인 힘을 간직한 빛이었다.
“끄으!”
합격술의 정교한 순서에 맞추어 검을 찌르고, 휘두르며 원등곡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형산파 고수들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신음을 터트렸다.
불꽃처럼 눈앞에서 휘돌고 있는 부채의 광채를 시선 속에 담는 순간 눈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야가 위축되면서 보이는 공간의 폭이 작아지게 된 그들의 합격술이 규칙성을 잃고 어지럽게 엉키며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었다.
차라라락―
미세하게 나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네 명의 형산파 고수들은 목이 싸늘해지는 느낌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그들은 바닥으로 쓰러지면서도 자신의 동료들처럼 목이 잘려 죽게 되었다는 것을 절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흠, 아쉽네.”
원등곡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싸움에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주위에는 그와 대적할 적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적들 중에서 원등곡의 눈에 가장 크게 들어오는 자는 무지막지한 칼질로 모남족뿐만이 아니라, 초강지옥대의 무사들까지 조각내고 있는 투박한 인상의 사내였다.
“진짜 사내군. 좋아, 넌 내 몫이다!”
원등곡의 신형이 펄쩍 뛰어올라 그에게 달려들던 정파 무사의 칼을 발로 쳐내고, 가슴까지 힘껏 걷어찼다.
빠각―
섬뜩한 기음과 함께 가슴이 뭉개진 무사의 신형이 달려오던 속도의 두 배로 튕겨 날아가고, 원등곡은 같은 방식으로 네 명의 무사들을 더 죽이면서 사내다운 사내, 철혈무적검단(鐵血無敵劍團)의 단주를 향해 접근해갔다.
“어라?”
하지만 원등곡은 그와 싸울 수가 없었다.
그가 거의 다 도착해갔을 때쯤에, 그보다 먼저 단주에게 당도해서 무기를 휘두른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늙은이가 잽싸기도 하네.”
원등곡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상대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먹이를 찾는 맹수의 그것처럼 눈을 돌리던 그의 시선에 포착된 것은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으며 몰리고 있는 오 장로의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오 장로보다는 그를 몰아붙이고 있는 나이 든 검객이 원등곡의 관심을 끄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그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간만에 재미난 놈을 발견했는데.’
원등곡은 그가 노렸던 사내다운 사내인 철혈무적검단의 단주와 그를 향해 짧은 두 개의 단봉을 들고 덤벼드는 늙은이를 아쉽다는 눈길로 쳐다보고는 오 장로와 노검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야아아아~!”
훙― 훙― 훙― 훙― 훙―
바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묵직하고도 빠른 주먹을 마구 내뻗는 오 장로의 모습은 언뜻 경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을 쫓아서 스치듯 휘둘러지는 검의 매서움으로 인해 오 장로의 옷과 피부가 찢겨지고, 핏기가 배어나오는 것까지 보고 있다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분명히 오 장로는 밀리고 있었다. 결정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관심생의 맹렬한 공격을 피하고, 주먹을 내질러서 방어를 하는 데만도 벅차 보였다.
‘반각 정도만 지나면 오 장로가 이기겠군.’
원등곡은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며 그렇게 판단했다.
지금 모습으로는 분명히 오 장로가 열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건 상대인 관심생이 무리수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래 끌고 갈 수 없는 검법. 지금 관심생의 창백해지는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원등곡이 볼 때 관심생은 아직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검법을, 그것도 강대한 내공의 운용이 필요한 검법을 오 장로와 맞서기 위해 억지로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반각 정도만 지나면 관심생은 내공이 고갈되어 틈을 보이게 될 것이고, 오 장로는 그 틈새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기다리기 짜증나.’
두 사람이 정당하게 승부를 내는 동안, 싸움은 더욱 길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적들의 반격도 더 길게 이어져 모남족이나, 그의 수하들이 더 많이 죽으면서 이 작은 싸움에서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는 불만족스런 결과를 얻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원등곡은 싸움에 가세하기로 했다.
물론 오 장로는 끝까지 혼자 싸우겠다고 우길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원등곡은 무림인 특유의 맹목적 싸움보다는 비겁하더라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이기는 싸움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오 장로의 어리광 정도는 우습게 무시해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원등곡은 오 장로가 불평하기도 전에 재빨리 처리할 생각이었다.
‘지금이군.’
양쪽에서 달려들던 정파 무사의 가슴을 반으로 갈라놓으면서 기회를 포착하고 있던 원등곡은 바닥을 박차며 하나의 부채를 내던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채를 던질 준비를 했다.
츠라라라락―
“……!”
점점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는 공력을 다그치며 오 장로의 어깨를 노리고 검을 찔러가던 관심생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리를 근거로 위험을 감지한 육감의 의지에 따라 재빨리 허리를 낮췄다.
츠라라락―
관심생은 정수리 바로 위쪽으로 부채를 스쳐 보내고 재빨리 허리를 폈다.
그리고 비겁한 암습자를 죽이기 위해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지만 방어와 공격을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는 초식, 만검광폭(万劍光爆)을 사용하겠다고 작정을 하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관심생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해했다. 그리고 의문을 풀기 위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
손이 없었다.
손목에서부터 잘려나간 그의 손은 그의 검을 꽉 움켜잡은 채, 그의 발치 아래 떨어져 있었다.
‘언제?’
그런 생각을 한 순간, 관심생은 목젖이 화끈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곳에 운집한 정파인들 중 최고의 고수가 죽었다. 그건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형산파 고수들이, 그리고 다른 모든 정파 무림인들이 구심점을 잃었다는 의미였다.
“초강대왕!”
오 장로의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원등곡은 싱글싱글 웃으며 관심생의 목을 자르고, 그에게 돌아오는 부채를 잡고서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오 장로님과 싸우는 줄 몰랐습니다. 이자의 몸에 가려서 오 장로님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오 장로의 분노하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아마도 다른 자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오 장로는 단번에 날아가서 형체 하나 남기지 않고 박살냈을 테지만, 그를 놀린 사람은 원등곡이었다. 그래서 참아야 했다.
원등곡은 오 장로가 가장 무서워하는 교주의 제자이고, 그래서 원등곡에게 화를 내는 것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저 어린아이처럼 울상을 짓는 일밖에는 달리 반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등곡은 그런 오 장로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놈들을 죽이십쇼.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 교주님께 칭찬받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울상이던 오 장로의 얼굴이 밝아졌다.
“얼른 다 죽이면 교주님이 칭찬해주실까?”
“당연히 그러실 겁니다.”
“좋아! 여기 있는 놈들 내가 다 죽일 거야!”
오 장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정파 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고, 원등곡은 그런 오 장로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이제 또 누구하고 싸우나?”
원등곡은 다시 먹잇감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 * *
원등곡의 먹이를 재빨리 선점해서 원망을 들어야 했던 늙은이는 혈천신교의 대장로 좌구염이었다.
“제법이구나!”
그리고 그는 바람이 윙윙거릴 정도로 철검을 휘둘러대는 단주의 모습에 만족해했다.
원등곡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느껴지는 단주의 단단한 기백만으로도 싸워볼 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
하지만 단주는 대장로의 호통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가 늘 신조로 삼는 것처럼, 무림인은 검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부웅―
철검이 공간을 밀어내고 휘둘러져왔다.
당연히 목표는 대장로의 머리.
하지만 대장로는 조금 전까지 단주가 상대하던, 그런 만만한 상대들과 같은 수준의 인물이 아니었다.
휘리릭.
바닥을 박차고 한 장이나 뛰어오른 대장로는 단주의 머리 위를 뛰어넘으며, 철검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아악!”
비명이 들렸다.
목표를 잃은 단주의 철검이 근처에 있던 모남족의 어깨부터 허리까지 두 동강을 내버린 것이다.
부웅―
모남족의 상체를 베어버린 철검은 곧바로 주인의 허리가 돌아가는 방향을 따라 뒤쪽으로 크게 휘둘러졌다.
누군가 그의 옆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었다면, 그 철검에 어디 한 군데가 잘려나가고 말았을 빠르고 급작스런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사람은 없었다. 대신, 철검은 처음의 목적 그대로 대장로의 허리로 바짝 다가갔다.
휘리릭.
그러나 이번에도 대장로는 단주의 머리 위를 날아서, 그 철검의 공격권을 벗어났다.
“크악!”
비명이 터지고, 초강지옥대 무사가 완전히 두 쪽으로 갈라진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처음 한 번이었다면 우연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었겠지만, 대장로는 바보가 아니었다. 단주는 대장로에 대한 공격 실패를 다른 적을 죽임으로써 만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백만 있는 줄 알았더니, 생각하는 머리도 있었구나!”
대장로는 놀랍다는 듯 말했지만, 그의 눈빛은 진한 살기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피할 생각이 없다는 얼굴로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텅―
철검과 쇠로 만들어진 단봉이 맞부딪쳤다.
휙―
대장로는 곧바로 또 다른 단봉을 움직여, 공간이 열려 있는 단주의 우측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단주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철검을 당기고, 오른쪽으로 빠르게 들어올렸다.
챙―
휘두른다기보다 막는다는 위미였기에, 단주의 철검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단주는 곧바로 검을 꽉 쥐고 앞으로 힘껏 내리그었다.
쩡―
십자로 엇갈린 단봉 사이로 철검이 내리꽂혔다. 아니, 내리그어지는 철검을 엇갈린 단봉으로 막아낸 것이다.
하지만 두 움직임은 매우 미세한 차이만을 가졌을 뿐이고, 즉시 각자의 무기를 뒤로 빼면서 다시 맹렬하게 부딪쳤다.
청― 청― 처청― 청―
두 개의 단봉이 연달아 좌우로 휘둘러지고, 철검은 그 연속적인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짧게 좌우로 움직였다.
하지만 역시나 중병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빠른 공격을 살리지 못하는 단주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앗!”
갑자기 단주의 우렁찬 고함이 내질러졌다.
퍼퍽!
순간, 그의 어깨와 옆구리에 단봉의 공격이 작렬했다. 분명 극심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고함을 내지르면서 옆구리에 내공을 집중하여 충격에 대비했고, 그래서 근육이 상하거나 갈비뼈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면했으며, 공격할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후웅―
허리 뒤쪽까지 당겨졌던 철검이 굵직한 소음과 함께 대장로의 어깨로 휘둘러졌다.
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