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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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49화
파계 6권 - 24화
“흥! 바로 그렇소!”
위지무성의 웃음이 조금 짙어졌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그가 움직였다. 아니, 의자에서 일어난다 싶은 순간 그의 신형은 이미 언 가주의 앞쪽에 이르러 있었다. 거의 견봉생의 움직임에 필적할 만큼 빠른 경공이었다.
“이놈!”
언 가주는 설마 이처럼 갑자기 공격을 해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거의 본능처럼 언가권의 강맹한 권력을 내뻗었다.
하지만 위지무성은 거석도 단번에 박살낼 권력을 너무도 쉽게 뒤로 흘려보내고 언 가주를 향해 손을 뻗어왔다.
“컥!”
위지무성은 단번에 언 가주의 목을 틀어잡고는 다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섰다.
“무슨 짓이오!”
“그를 당장 놓아주시오!”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가주들은 그제야 위지무성에게 노성을 터트렸다.
황보 맹주도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났으며, 저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언 가주의 심복무사 스물두 명이 사태를 파악하고 말을 몰아 달려오기 시작했다.
“명성이 자자한 진주언가의 가주치고는 너무 허술한 거 아니오?”
위지무성은 가주들의 노성에는 대꾸도 않고, 목을 움켜잡혀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는 언 가주를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 죽일 놈이!’
그 조롱기 가득한 말에 언 가주는 불같이 화가 났다.
사실, 너무나 갑작스런 공격만 아니었다면 그가 이처럼 허망하게 제압될 리가 없었다. 그러니 얼른 이 손에서 벗어나 위지무성을 때려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불같이 치솟는 화를 목소리로 내뱉을 수도 없는 데다, 이상하게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저 단순하게 목을 잡힌 것뿐인데 이건 마치 전신혈도가 제압된 것처럼 내공도 흐르지 않고, 티끌만큼의 힘도 나지 않았다.
‘몸이 이상하다.’
언 가주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내부에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이 꽉 들어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이 이상한 느낌의 기운이 자신의 목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원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의 그에겐 확인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다.
“위지 교주, 당장 언 가주를 놓아주시오!”
황보 맹주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위지무성이 갑자기 마수를 뻗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언 가주가 이처럼 쉽게 제압되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만 멈추어야 할 때인 것이다.
다만, 언 가주가 흑천맹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렇게 쉽게 제압될 정도로 바보 같은 언 가주에게 뭔가를 기대했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데, 황보 맹주의 말에도 위지무성은 그럴 마음이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는 황보 맹주만이 들을 수 있게 전음을 보내왔다.
―차도살인이라고 아시오?
차도살인(借刀殺人).
남의 칼을 빌려서 사람을 죽인다는, 남을 모략해서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상대를 죽이게 하는 악랄한 계략이다.
―협상의 또 다른 조건으로 황보 맹주가 내게 칼을 빌리자고 하는 것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이기로 하겠소.
황보 맹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위지무성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언 가주를 죽이기 위해 그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아니…….
그래서 황보 맹주는 아니라고 전음을 보내려고 했다.
언 가주를 죽일 생각은 없다고,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고 전음을 보내려고 했다.
우둑.
“……!”
하지만 황보 맹주의 전음이 채 전달되기도 전에, 위지무성은 언 가주의 목을 직각으로 꺾어버렸다.
무림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진주언가 가주의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너무도 허망하고, 억울한 죽음이었다.
두두두두.
“가주님!”
“가주님!”
말을 타고 질풍처럼 달려오던 언 가주의 수하들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하지만 그런다고 목이 부러져 절명한 언 가주가 내팽개쳐진 땅바닥에서 벌떡 일어날 리가 없었다.
스릉―
스르릉―
스물두 명의 무사들이 달려가는 말을 세우지 않고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그들은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자신들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두두두두!
가주들과 황보 맹주 등은 무사들이 말을 몰아오는 길목에 있었기에 황급히 좌우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정작 무사들의 목표인 위지무성은 이상하게도 피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의 앞으로 대도(大刀)를 든 야율도동이 걸어 나와서 막아섰을 뿐이었다.
두두두두두!
스물두 마리의 말들이 마치 화살촉처럼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야율도동을 시작으로 위지무성을 단번에 짓밟아버리겠다는 듯 더욱 말의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여전히 야율도동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 있는 위지무성도 원등곡도, 심지어 견봉생까지도 석상처럼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두두두두두두!
“이놈―!”
“죽어라―!”
광풍 같은 기세로 달려오는 말무리의 선두가 바로 지척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순간,
“우햐아압―!”
대도가 하늘로 번쩍 들려 정점에 오르고, 다시 땅으로 내리그어지는 것과 동시에 힘찬 기합이 주위를 쩌렁하게 울렸다.
부웅― 촤아아― 악!
공간이 무겁게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선두의 말과 말에 타고 있는 무사의 몸이 반쪽으로 분리되어 좌우로 내동댕이쳐졌다.
쿠당탕탕탕!
하지만 선두의 말과 기수를 쪼개버린 강맹한 도기는 그 뒤쪽의 말과 무사들까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뻗쳐나가고 있었다.
“피… 피해랏!”
촤아아아― 악!
히히힝!
“크아악!”
쿠당탕탕!
계속해서 말과 무사들이 반으로 갈라져 땅으로 내팽개쳐지고, 도기를 피하기 위해 무사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무사들과 달리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가야 하는 말들은, 야율도동이 내리그었던 대도를 다시 위로 그어 올리고 내리치기를 반복하는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내는 광폭한 도기에 맞아서 양쪽으로 쪼개지며 처참한 모습으로 땅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그러나 말들은 자신들만 죽는 것에 대해서 억울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주인이었던 무사들이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어느새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던 원등곡이 부채를 휘둘러 무사들을 향해 섬뜩한 선풍강기(扇風剛氣)를 뿜어내며 아래로 내동댕이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몇몇 무사들은 검을 휘둘러 원등곡의 공격에 저항해보려 했지만, 공중에서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그의 움직임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컥!”
“악!”
콰당!
콰당탕!
야율도동의 도기를 피해 하늘로 날아오른 무사가 열네 명이나 되었지만, 원등곡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멀쩡한 몸으로 땅에 내려선 무사는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용기가 있고, 신념이 있고, 충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주군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목숨 같은 것은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죽어라!”
“네놈의 머리는 가지고 떠나겠다!”
다섯 명의 무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위지무성을 향해 좌우로 흩어지면서 달려들었다.
나름대로 합결술을 어찌 펼쳐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난관이 남아 있었다. 무공은 그리 내세울 것이 없지만, 경공 하나만은 절정에 오른 사내. 견봉생이 손에 비수를 들고 무사들을 향해 움직인 것이다.
슈슈슈슈슈.
너무나 빠른 움직임 때문에 곳곳에 잔상이 남아서 견봉생이 갑자기 십여 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눈으로는 절대 좇을 수 없는 속도로 무사들의 뒤쪽으로 다가간 그의 비수가 무사들의 목을 빠르게 긋고 지나갔다.
“컥!”
“컥!”
“컥!”
“컥!”
정확히 네 명의 비명이, 마치 동시에 죽은 것처럼 들려왔다.
한 명이 견봉생의 손에서 벗어났지만, 그 짧은 순간에 네 명의 목을 잘라버린 움직임은 분명 대단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이얍!”
홀로 남은 무사의 외로운 기합이 혈향으로 가득한 주위에 울려 퍼졌다.
이 장.
무사의 움직이는 속도로 한 걸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위지무성이 있었다.
“아!”
지켜보고 있는 가주들이 놀란 탄성을 질렀다.
무사가 이 장의 거리를 줄이고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칼을 휘두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전에 무사는 위지무성을 향해 칼을 내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정곡을 찌르는 공격이었다.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 칼을 던질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테니까.
‘진주언가!’
하지만 가주들은 무사가 칼을 던진 그 순간에 그가 어느 문파의 무사인지를 떠올렸다.
칼보다는 주먹이 더 강한 진주언가(晋州彦家).
무사는 무기를 버린 것이 아니고,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주먹으로 위지무성을 공격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던져진 칼은 위지무성의 움직임을 흐트러트릴 것이었다.
‘주먹?’
단전의 공력을 모두 끌어 모아 주먹에 응축시킨 무사는 순간 의아해했다.
그가 던진 칼이 옆으로 튕겨지면서 위지무성의 주먹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위지무성이 칼을 차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넌 끝이다!’
무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대가 아무리 고수라도 자신은 권으로 알아주는 진주언가의 무사였다. 지금은 황보세가에 한 수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건 황보세가를 상대로 그렇다는 것이지, 무림 어느 곳에서도 주먹만 쥐면 당당할 수 있는 것이 진주언가의 무사인 것이다.
그래서 확신했다 가주의 복수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문득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위지무성의 주먹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주먹은 순식간에 검은 기류에 휩싸여버렸다.
‘권강?’
무사가 그 말을 떠올린 순간, 그의 주먹과 위지무성의 주먹이 격돌했다.
콰직―
끔찍한 파괴음과 함께 무사의 주먹이 두부처럼 뭉그러졌다.
“끄아악!”
무사는 파괴음만큼이나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은 길지 않았다. 위지무성의 주먹이 무사의 주먹을 뭉그러트리고, 무사의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을 수박처럼 박살내버렸기 때문이었다.
풀썩.
상반신이 없어진 하반신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비틀비틀 움직이다가, 위지무성의 옆을 지나쳐 바닥을 뒹굴었다.
“…….”
“…….”
“…….”
조금 전까지 주변을 휩쓸던 그 어떤 소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격한 소음을 만들어내던 스물두 마리의 말과 무사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고,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은 침묵했으며,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이 너무 어수선해진 것 같소. 그러니 얼른 협상을 마무리 짓고 헤어집시다.”
고요함을 깬 위지무성의 말이었다.
그 음성에 담긴 무감각함을 느낀 황보 맹주와 가주들의 등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해졌다. 그러나 누구도 그러한 기분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나, 가주들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황보 맹주가 재빨리 그들에게 참으라는 전음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언 가주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오. 그러니 이곳까지 온 우리의 걸음을 헛고생으로 만들지 맙시다.
황보 맹주의 말은 그리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가주들은 이상하게도 금방 수긍했고, 자신들이 이 협상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는 뜻의 전음을 보내왔다.
―맹주께서 서둘러 이 협상을 끝내주시오.
가주들은 황보 맹주의 말처럼 언 가주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아주 조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협상을 반대한 언 가주의 주장과 그 언행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부주의.
가주들이 생각하는 잘못은 그것이었다. 무림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죽는 경우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새 목이 잘릴 수 있는 것이 무림이란 세상이었으니까.
물론 가주들이 그러한 부주의 때문에 언 가주가 죽었다고 해서 이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위지무성과 그 무리의 손속은 과했고, 가주들과 흑천맹을 무시한 처사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협상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언 가주의 죽음이 그들에게 큰 의미가 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