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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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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47화

파계 6권 - 22화

 

 

 

 

 

제63장. 저주받은 땅에서의 대면(對面)

 

 

 

 

 

안휘성(安徽省) 서남쪽 동성(桐城).

 

성도인 합비(合肥)로부터 하루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주변의 비옥한 지역들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메마른 평야만 가득한 곳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저주받은 땅이라고 생각했다. 태고의 신이 이곳을 미워하여 어떠한 작물도 자라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를 증명하는 역사적 증거나 고서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민간에 전해지는 미신과 같은 이야기 때문에 이곳은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들이 죽거나, 혹은 병신이 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까지 추가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이곳은 완전한 무인 지역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러한 소문은 이곳을 밀무역의 안전한 교통로로 만들어서 사용하려는 자들이 고의로 퍼트린 것이었지만, 지금껏 그 누구도 진실을 알아보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어떤 용기 있는 사람들이 무모한 영웅심에 가득 차서 들어왔다가 밀무역자들을 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한데, 오늘 그러한 영웅심 가득한 자들이 동성에 나타났다. 그 숫자도 족히 이백이 넘고, 말까지 타고 있는 대규모의 모험자들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태고의 신을 만나, 신이 내리는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 싸울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품고 있는 것인지 허리에, 등에, 그리고 손에 날이 잘 선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그렇게 무모한 모험자들로 여긴다는 것은 눈이 없고, 귀가 없고, 머리가 없는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어리석음이었다.

 

지금 이곳 저주의 땅 동성에 들어온 자들은 무림인들이었고, 미신을 믿는 자들보다 그렇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은 그들은 태고의 저주를 풀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그저 이곳을 찾아와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저주의 땅인 이곳에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발을 디딘 것일 뿐이었다.

 

“소문보다 더 삭막해 보이는 것 같소.”

 

타고 앉아 있는 거대한 말의 몸체만큼이나 듬직한 체구, 그리고 풍성한 턱수염과 가무잡잡한 피부가 멋스러워 보이는 장년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황보강패.

 

장년인은 칠절신군(七絶神君) 중에 철권신군(鐵拳神君)이며, 이십여 년 전 흑천맹의 맹주를 선출하는 결맹 대회(結盟大會)에서 다른 흑천맹 산하 문파의 가주들과의 정당한 비무를 통해 힘을 증명한 뒤, 전대 맹주까지 굴복시켜 당당하게 일인자가 된 인물이었다.

 

또한 결맹 대회는 십 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것이고, 그래서 황보강패는 십 년 전 또 한 번의 비무를 통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힘을 증명함으로써 맹주직을 연임하고 있었다.

 

“저는 이곳을 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삭막해진 것 같습니다.”

 

흑천맹(黑天盟) 삼목원(三目院)의 제일 원주 제갈모학은 고삐를 당겨 빨리 가려는 말의 걸음을 조절하면서, 황보강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동성에 대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와 미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말했다.

 

“사람들이 이곳을 저주 받았다고 믿는 것도 이런 경관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근방의 다른 곳은 물이 풍성하고 숲이 우거진 곳이 그득한데, 오직 이곳 동성만이 가뭄을 맞은 것처럼 메마르고 척박하니 그런 소문이 돌 만도 하지요. 하지만 미신은 미신일 뿐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제가 한때 이곳에 대한 궁금증을 느껴 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는 중에 한 고서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이곳 동성이 오백여 년 전에는 이렇지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고서를 통해서 태고의 신이 내린 저주니, 하는 말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흠, 제갈 원주의 말을 들어보니 왜 이곳이 이리 되었는지 더욱 궁금해지는구려.”

 

한담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꽤나 한가로워 보였다.

 

만약 그들 뒤로 이백여 명의 흑천맹 무사들이 없고, 좌우로는 흑천맹에서도 강맹한 세력을 가진 세가의 수장들이 있지 않았다면 나들이라도 온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언백소 가주에겐 자중하라는 말이라도 해둬야 하지 않을까요?

 

겉으로는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두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음을 통해 그들이 동성에 들어온 이유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자들을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우리가 고양이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보오. 우린 호랑이가 되어야 하오.

 

―그 말씀은?

 

―제갈 원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질 않소. 그러니 제갈 원주가 말해보시오.

 

황보 맹주의 말에 제갈 원주는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게 살짝 웃음을 지었다.

 

―제가 생각할 때, 그들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해하는 언 가주가 진주언가의 고수들 중 그의 측근들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을 모두 데려와 동행하겠다고 한 것은 아마도 이번 협상을 망치겠다는 속셈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그들과 만나게 되면 언 가주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결국 양쪽이 말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나도 그리 생각하오.

 

―그렇다면 맹주께서는 언 가주의 방종을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선까지만 용납해서 그들이 어찌 대처하는지를 보고, 그들의 성향과 틈새를 찾아보시겠다는 의중을 가지고 계신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그렇소. 그들이 왜 우리와 협상을 하려 하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가 없소. 대략 어떤 것인지 짐작할 뿐이지. 또한 난 그들의 역량에 대해서 알지 못하오. 최근에 제갈 원주가 전해준 그들의 공격성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오. 심지어 그들이 내가 들은 것만큼이나 강한지도 명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소.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그자들이 해적들을 거느리고, 야만족들의 힘을 가지고 위세를 떠는 놈들이라는 것뿐이오. 남쪽 끄트머리에 주저앉아 왕 노릇이나 하던 해남파 하나를 무너트렸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와 협상을 맺을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만나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그들의 힘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오. 무림에서의 힘이란 직접 부딪쳐보지 않은 이상은 절대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소. 그래서 언 가주의 동행을 허락하고, 방종한 행동을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놔두는 것이오.

 

―옳으신 판단이십니다. 특히 요즘 들어 언 가주가 너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고 다닌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과거 오대세가에 속해 있던 영화를 되찾기 위해, 모용세가가 차지한 자리를 돌려받기 위해 언 가주는 너무 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욕심이 나도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흑천맹의 운영 방법에 대해서 험담을 하고 다녀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사실, 언 가주의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진주언가는 마교와의 싸움 때에 힘을 많이 잃고, 가주 직계의 정통성이 불명확해진 이후로 내부적으로 몇 개의 파벌 구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가까스로 가주가 된 언백소가 조금이라도 틈새를 보이면 가주 자리를 빼앗겠다고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 자들이 매우 많은 것이다.

 

특히 요즘 들어서 가주로서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고, 그래서 언 가주는 하루라도 빨리 진주언가의 위세를 높이는 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번 협상에 관한 일에 반대하면서 같이 동행하겠다고 적극 나선 것도 진주언가를 무시하고 도외시한다면 협상이고 뭐고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가주 자신이 흑천맹에서 나름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세워 가문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이유가 적지 않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을 기회 삼아서 그런 언 가주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습니다.

 

―흠, 그도 그렇군. 잘 알겠소. 언 가주가 그들과 다툼을 일으키게 되면 내 추후에 그 일에 대해서 엄중한 경고를 내리도록 하겠소.

 

황보 맹주는 이야기를 시작한 김에 요즘 흑천맹 내부에 본격화되고 있는 파벌 형성에 대한 일들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눈 뒤에 전음으로 하는 비밀스런 대화를 끝맺었다.

 

 

 

 

 

* * *

 

 

 

 

 

“그자들인 듯합니다.”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메마른 평야를 쭉 이동해가던 흑천맹 무리는 저 멀리 사람이라 짐작되는 흑점 몇 개가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 식경을 더 걸은 끝에야 협상을 위해 만나려고 했던 자들의 숫자가 고작 넷밖에 되지 않는 것을 알고, 황보 맹주를 비롯한 세가의 수장들과 이백여 무사들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황당함까지 느껴야만 했다.

 

자신들은 흑천맹 최고의 수뇌들이 거의 다 나왔고, 정예라고 불리어도 부족함이 없는 무사만 이백여 명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고작 넷이라니. 이건 마치 자신들이 겨우 네 명을 상대로 겁을 먹고 떼거리로 몰려나온 것과 다름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이걸 배포가 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무모한 용기라고 해야 하는 건가.’

 

사실, 미친놈들이란 정의를 내려도 전혀 문제가 없을 듯했다.

 

하지만 황보 맹주는 넷밖에 없는 그들을 향해 비웃지 않았고, 미쳤다고 욕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누가 자신과 말을 할 자인지에 대해서 물었을 뿐이었다.

 

“나를 만나자고 한 혈천신교의 교주가 어느 분이시오?”

 

그렇게 물었지만 황보 맹주의 시선은 이미 그 대답을 할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숫자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어떤 무리의 수장이든 수장은 그 무리의 중심에 있는 법이고, 척 보면 다 알게 될 남다른 점이 보이는 법이었으니까.

 

‘저자겠군.’

 

왼쪽에 서서 덥지도 않은데 부채를 부치고 있는 미남 사내와 척 보아도 엄청난 무게가 느껴지는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 혹은 대도(大刀)라고도 불리는 무기를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에 선 맹호(猛虎)와 같이 사납게 생긴 사내, 그리고 허리를 반쯤 굽힌 채 마치 애완견처럼 웅크리고 있는 장년의 사내에 비해서, 호리호리한 몸과 날카로운 눈빛 외에는 이렇다 할 특징적인 외모를 가지지 않은 중년의 사내에게 황보 맹주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혈천신교의 교주가 분명했다. 입고 있는 옷이 검은 비단으로 만들어져 고급스럽다는 점을 빼고서도, 다른 세 명과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세를 감출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이 교주임을 알게 하기 위해 고의로 기세를 발출하는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대가 흑천맹의 황보 맹주군. 내가 혈천신교의 교주 위지무성이오.”

 

위지무성이 입을 열어 자신을 소개했지만, 흑천맹의 무리 중에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갈 원주는 그러한 이름을 가진, 혹은 유사한 이름을 가진 무림인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역시나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갑작스럽게 존재를 나타낸 혈천신교만큼 그 교주인 자도 무림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것이다.

 

아니면 이름을 바꾼 것일지도 모르지만, 제갈 원주는 왠지 위지무성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 말할 인물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런데 조용히 협상을 해보자는 나의 서신을 황보 맹주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오? 난 말 그대로 조용히 대화를 해보자는 거였는데 말이오.”

 

“아마도 보좌하는 자들이 모두 겁쟁인가 봅니다. 하하하!”

 

위지무성의 옆에 있던 둘째 사제 원등곡이 조금도 거리낌 없는 비아냥거림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흑천맹의 무사들은 얼굴을 붉히며 살기를 뿜었고, 가주들도 분노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황보 맹주와 제갈 원주 두 사람만은 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속으로 원등곡이 활발한 미남형인 얼굴에 비해 성격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서로 쓸데없는 신경전은 그만 하고 협상에 대한 이야기나 시작하십시다.”

 

황보 맹주의 말에 위지무성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하긴 그렇지.”

 

그리고 그의 옆에 웅크리고 있는 견봉생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견봉생은 위지무성의 지시를 받고는 옆에 있던 탁자와 의자를 집어 들었다.

 

타탁.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른 견봉생은 두 무리가 간격을 두고 있는 다섯 장의 거리를 너무도 가볍고 손쉽게 뛰어넘어서 황보 맹주의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탁자와 의자를 놓아두고, 다시 같은 방법으로 돌아갔다가 작은 술병과 잔, 그리고 안주로 할 수 있는 소채가 든 접시를 들고 돌아와서 탁자에 내려놓고는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물론 위지무성의 앞에도 탁자와 의자를 놓고,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다.

 

거의 전광석화와 같은 움직임.

 

견봉생의 놀라운 경공과 속도는 흑천맹의 무리를 너무도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 혈천신교가 예사롭지 않은 자들의 무리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뒤로 백 보 물러나 명령을 기다려라.”

 

황보 맹주는 세가의 수장들을 제외한 이백여 무사들에게 물러나 있을 것을 명했다.

 

위지무성은 고작 셋을 데리고 나왔으니 황보 맹주도 이대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세가들의 수장들도 모두 물리고, 자신과 제갈 원주만으로 협상을 하고 싶었으나, 수장들이 그걸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 자명했다.

 

무사들이 말을 움직여 백 보 뒤로 물러나자 황보 맹주는 하나뿐인 의자에 앉았고, 제갈 원주와 가주들은 그의 좌우에 섰다. 당연히 가주들은 자신들이 앉을 자리가 없다는 것에 내심 불쾌해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것은 황보 맹주였고, 의자 따위에 대해서 불평을 할 자리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럼 서신에 못다 적은 것들에 대해서 말해보시오.”

 

황보 맹주는 탁자에 놓인 술과 소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닌 말로 술과 안주에 독이 들어 있지 말란 법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위지무성부터도 술을 마시거나 권하지도 않아서 문제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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