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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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54화
혈하-第 54 章 급습, 뇌정보
뇌정보는 하나의 거대한 어둠 덩어리처럼 밤에 묻어 있었다.
정문 쪽의 횃불과 너덧 명의 수위 무사들을 제외하고는 뇌정보가 죽은 것처럼 보였다.
깊은 밤이었다.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던 뇌정보에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
“으아악!”
“악!”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정문 쪽이 어수선한 것 같더니 횃불이 꺼져버렸다.
이어 어둠을 이용해 검은 그림자들이 빨려 들어가듯 뇌정보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침입자다!”
“적이다!”
뇌정보 안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땡! 땡! 땡!
위급을 알리는 종소리가 두어 군데에서 길게 들려왔다.
화르륵.
뇌정보 후원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비명소리, 고함소리, 싸우는 소리 등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도 한 마디로 아비규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뇌정보 서쪽 담을 구렁이처럼 스르르 타고 넘는 두 개의 또 다른 인형이 있었다.
사군보와 만걸이었다.
만걸이 앞을 서고 사군보가 그 뒤를 따랐다.
만걸은 이미 이곳 뇌정보의 구조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 듯 거침없이 깊숙한 내원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두 개의 지붕을 타고 넘었을 때다.
돌연 앞에서 두개의 크고 검은 인형이 불쑥 나타났다.
“흥!”
두 인영은 뇌정보의 매복인 듯 싸늘한 코웃음과 함께 대뜸 살초를 펼치며 앞으로 덮쳐 들어왔다.
싸아악-!
스팟-! 버언쩍-!
캄캄한 허공에 검광이 수십 개 번쩍였다.
그것들은 사군보와 만걸의 사혈을 정확하게 노리며 짓쳐 들었다.
하지만,
“커억-!”
“쎄……쎄다! 큭!”
쿠웅-! 떼구르……
그들은 검을 채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쓰러져 지붕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잠깐의 순간, 매복한 무사들을 순식간에 해치운 두 사람은 10여 장 밖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다시 두어 개의 지붕을 넘어섰을 때,
“어리석은 놈들!”
왼쪽 어둠 속에서 벽력같은 외침이 터져 나와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어 하나의 인형이 두 사람에게 날아왔다.
이때 검은 인형의 정체를 간파한 만걸의 전음이 사군보의 귓전을 파고 들었다.
[뇌정보 총관이네. 그를 자네가 맡게. 난 자신 없어.]
사군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흥! 그 사이 벽력신패를 가지러 가겠단 말이군.”
만걸의 대꾸가 들려오기도 전에 어느새 뇌정보 총관이 사군보를 노리고 장력을 뻗어들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침입했느냐?”
꽈르르릉……!
노도와 같은 강기가 밀려들었다.
사군보로서는 어쩔 수 없이 총관을 상대해야 했다.
“물러나라!”
사군보는 적령장을 펼쳐냈다.
펑!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이 들리면서 회오리와 힘께 기왓장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으……”
총관이 나직이 신음소리를 토하며 몇 걸음 물러났다.
그 순간 만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사군보는 은근히 화가 났다.
‘쥐새끼 같은 노인네!’
적과 싸우게 하고는 사라져버린 만걸의 속셈을 모를 리 만무하다.
사군보는 속전속결로 총관을 물리치고 만걸의 뒤를 따를 작정을 했다.
기선을 제압한 사군보가 총관의 목숨을 거둘 생각으로 막 다음 공격을 하려는 찰라,
스으윽-!
비틀거리던 총관이 소맷자락을 흔들었다.
츠츠츠츠.
새하얀 가루가 소매 안에서 뿌려져 나와 주위가 삽시에 하얀 안개가 낀 듯 뿌예졌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의 귓전으로 전음이 들려왔다.
[화시독산(化屍毒散)이다! 운기로 숨을 멈추어라!]
한줄기 전음에 사군보는 흠칫 놀랐다.
‘이건 그때 그 신비한 자의 전음인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소제제와 연결시켜준 자가 지금도 그를 뒤따르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화시독산(火屍毒酸).
살에 닿는 순간 살이 녹아 하얀 뼈만 드러나고 호흡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가면 오장육부가 타버린다는 극독이다.
백도 무림의 다섯 하늘 중 한 곳인 뇌정보의 총관이 극독을 사용한다는 것은 예기치도 못한 일이다.
그러나 사군보는 앞뒤 가리지 않고 전음의 말대로 얼른 귀식대법을 펼쳤다.
동시에 양 소매를 흩뿌려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안개를 흩어지게 하였다.
휘류류륭……
거친 광풍에 하얀 독 가루가 분분히 흩어졌다.
그 광경에 총관의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하게 변해졌다.
“네놈은 누구냐?”
총관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놀랐다.
상대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고강한 고수임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사군보는 빙그레 웃으며 앞으로 걸음을 떼어놓았다.
“화시독산으로 나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불필요한 살상은 하고 싶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도망가는 게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는 길이다.”
“누구냐니까?”
“사군보!”
사군보의 차가운 대꾸에 총관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든다.
강호에 사군보란 이름을 가진 젊은 고수는, 그것도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 절정의 고수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지금은 그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네놈은 벽력신패를 노리고 들어왔느냐?”
“물론.”
사군보는 태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는 사이 암암리 그에게 전음을 보내준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행적은 어디에도 보이지를 않았다.
자칫 잘못했더라면 총관의 화시독산에 화를 당할 뻔했었으니 전음을 보내준 사람에게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나저나 대체 왜 날 따라다니는 거지? 얼굴을 봐야 애기를 하지.’
그러나 상대가 자신을 돕는 것을 보아 결코 적은 아니다.
사군보는 물었다.
“총관, 뇌정보주는 어디에 있느냐?”
“모른다!”
“그럼 말하게 해주지!”
핑-
‘헉!’
총관의 눈이 커졌다.
빠르다.
그 순간 총관은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 쪽으로 싸늘한 기운이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손목을 틀어 옆구리를 막으며 상체를 비틀었다.
“흡!”
텅! 텅!
발 도장을 찍으며 총관은 옆으로 밀려났다.
손아귀가 시큰하다.
‘무식하게 힘만 쎈 놈이군.’
츠츠츠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총관은 양손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
푸슈슈슈슛-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연속으로 장을 찌르는 총관.
따다다당!
사군보 역시 적령장으로 총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면서도 기이하게 발을 놀려 회전했다.
땅! 따다다당!
손바닥과 손바닥이 부딪치는 소리가 꼭 쇳소리 같았다.
츠츠츠츠.
총관의 양손이 갑자기 길어졌다.
시퍼런 기운을 폭풍처럼 일으키며 늘어난 두 팔.
대수인(大手印)이다.
끝장을 보려는 듯 총관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호오! 더 보여줄 게 있었나 보군.”
츠츠츠츠츠츠.
사군보의 양 손도 쭉 앞으로 밀려 나갔다.
그의 두 손에서는 검은 기운이 일어났다.
쾅!
검은 기운과 총관의 대수인이 최초 격돌하자 마치 얼음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쩌쩡-
그것은 시작이었다.
깨지고 부셔진다.
총관의 대수인이 사군보의 장력에 잡아먹히고, 소멸되며 사라진다.
마치 흑룡처럼 밀려오는 사군보의 기세에 총관은 비명을 삼켜야만 했다.
“크읍!”
입안으로 비릿한 피 냄새가 확 퍼졌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왜 내가 패하냐고, 왜……’
하지만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거대한 대수인을 산산조각 내는 그 순간, 사군보는 총관의 가슴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미치는 순간 호신강기가 일어나 가슴을 둘렀다.
대수인을 거두고 유운장(流雲掌)을 시전 했다.
부드럽게 일어나는 기운을 두른 손바닥으로 찔러 들어오는 사군보의 장을 비틀 생각이다.
하지만.
핏-
사군보의 장법이 변했다.
가슴으로 찔러오던 기운이 갑자기 반원을 그리며 아래에서 위로 틀어진 것이다.
‘말도 안 돼!’
달려오는 속도와 힘이 느리거나 약한 것도 아니다.
강기의 기운까지 둘러져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손목 비틀기로 기운이 변했다.
이미 유운장은 가슴 앞으로 시전 된 상태고, 상대는 이제는 어깨를 노린다.
아니 어쩌면 어깨 위, 목을 노리는 건지도 모른다.
아찔했다.
내기와 기운을 거두기에는 너무 늦었다.
‘끝인가?’
바로 그 순간,
팟!
“크윽!”
총관은 사군보가 날린 장풍에 쓰러졌다.
사군보는 만걸이 사라진 쪽으로 몸을 날렸다.
사군보는 만걸에게 벽력신패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가 뇌정보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의 지붕에 이르렀을 때였다.
펑! 펑!
지붕 밑 공지에서 몇 사람이 뒤섞이며 한창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에 만걸의 모습도 보였다.
기껏 먼저 달려갔지만 뇌정보 제자들에게 길이 막힌 게 분명했다.
“하하하…… 고생이 좀 하라고. 나 먼저 간다.”
사군보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지붕에서 내려왔다.
휘익-!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허공중에서 몸을 틀어 건물 안쪽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놈! 요절을 낼 테다!”
만걸의 노기가 가득 찬 음성이 들렸으나 이내 장풍이 부딪치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만걸은 완전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사군보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역시 들어가고 싶지만 앞을 가로막는 뇌정보의 무사들 때문에 마음만 굴뚝이었다.
사군보가 들어간 곳은 뇌정보 안에서도 중지인 뇌혈청(雷穴廳)이었다.
사군보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앞으로 허공을 가득 메운 은광이 날아들었다.
쌔액- 쌕쌕색-
암기세례였다.
“하하하……그깟 쇳조각에 당할 나는 아니다!”
휘리리릭-!
사군보의 몸이 좌우로 크게 움직였다.
귀영만겁신법이 펼쳐지며 그곳에는 웃음만 남았지 사람은 보이지를 않았다.
팍! 팍! 팍!
한 무더기의 암기가 허공의 웃음소리만 꿰뚫고 문에 꽂혔다.
“으악!”
“으악!”
뒤를 이어 처절한 비명과 함께 20여 명의 흑삼인들이 어둠속 밖으로 튀어나와 빈청 바닥에 나뒹굴었다.
모두들 수중에 황색의 죽통을 들고 있었다.
조금 전 암기는 그들이 날렸던 모양이다.
암기를 피하는 그 잠깐 사이 사군보는 매복해 있는 자들까지 단숨에 죽여 없앤 것이다.
“막아라!”
어디선가 냉랭한 음성이 터지자 빈청 사방에서 또 다른 무리의 흑삼인이 솟구쳐 나왔다.
마치 사군보가 오늘밤 이곳에 침입할 것을 미리 알고 함정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50여명이다.
그들은 제각기 괴이하게 생긴 병기를 꺼내들고 사군보를 삽시간에 둘러쌓았다.
“시위는 누구의 침입도 허락하지 마라!”
다시 냉랭한 음성이 들려오자 흑삼인들은 앞을 다투듯 사군보에게 달려갔다.
방어나 수비는 무시한 채 공격 일변도로 달려오는 자들.
기세등등한 그들의 살기에 피부에 소름이 돌 정도였다.
“불쌍한 것들!”
사군보의 몸이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