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52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52화
혈하-第 52 章 개방의 억지
“양보해 준다면 본방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야.”
“양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거요?”
“그건……그렇다면 젊은이를 죽이는 방법뿐이지.”
“이럼 더 양보할 수 없군.”
만걸의 입에서 땅이 꺼질 듯 크고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말 어리석군……벽력신패, 아니 신주오보는 항상 혈겁이 붙어 다니는 요물이거늘.”
“요물이라도 난 꼭 차지해야겠군요.”
“그럼 노부의 손에 죽어 주어야겠네!”
쌔애액-!
말을 끝내기도 전이다.
어느새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여 사군보의 목 부분의 천돌혈을 찍어들었다.
“치사하게 기습을!”
사실 사군보는 양보를 않겠다고 거절할 때부터 상대와 싸우게 된다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악랄한 초식일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
“흥!”
싸늘한 코웃음을 날린 그는 장두축미(藏頭縮尾) 초식으로 몸을 빙글 돌렸다.
‘상대를 누르고는 머리는 감추고 꼬리는 뒤로 빼낸다.’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한 차례 뒤로 물러난 사군보.
그러나 만걸은 거침이 없었다.
팍! 팍!
만걸의 손가락이 허공을 찌르며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허공을 찍는 것이 그 정도라면 목에 찍혔더라면 결과는 뻔하다.
“너무 악랄하군.”
사군보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반격을 하지 않고 1장 뒤로 가볍게 내려섰다.
“죽어!”
만걸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사군보를 쓰러뜨리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인 것처럼 표정이 돌처럼 굳어진 채 다시 덮쳐들었다.
파라라락-!
박쥐의 날개 짓처럼 양 팔을 활짝 벌렸다가 앞으로 쭉 뻗었다.
무형의 강기가 노도처럼 밀려나왔다.
악양 분타주가 이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과연 강호 소문대로 개방의 세력이 소림에 못지않게 강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군보도 상대의 계속적인 살초를 보고는 울컥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물러나라!”
쩌렁!
그의 외침에 나뭇잎까지 흔들린다.
그는 쌍장을 쭉 뻗었다.
적령장이다.
펑! 펑! 펑!
두 사람의 장풍에서 일어나는 강기가 허공에서 무디게 부딪치면서 연속으로 굉음을 일으켰다.
강력한 회오리가 일어나고 뿌리째 뽑혀진 풀과 흙먼지가 뒤섞여 앞을 못 보게 했다.
“으……”
흙먼지 속에서 묵직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고 두 사람의 모습이 다시 보였다.
사군보는 의연한 자세로 우뚝 서 있었다.
만걸은 내상을 입었는지 옷자락으로 입을 쓱 닦았다.
그의 입가에는 검붉은 피가 가늘게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네놈이 구유칠혈을 죽였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소문이 빠르기는 빠른 것인가 보다.
허나 강호의 밥을 조금이라도 먹은 사람이라면 개방의 소식통이 강호제일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아무리 강호 촌구석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개방은 능히 알아낼 수 있다.
거지들은 인간이 사는 사회 어디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월영산장에서의 일을 모를 리 만무했다.
사군보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만걸, 나는 개방과 그 어떤 원한도 만들고 싶지 않다.”
만걸은 코웃음을 터뜨리며 앞으로 나왔다.
“흥! 아직 노부의 숨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난 당신을 죽이고 싶지 않다.”
“죽여라! 노부를 죽이지 못하면 네놈이 죽을 것이다.”
후이익-!
만걸의 몸은 어느새 공중으로 올라가 있었다.
분명 내상을 입었건만, 저렇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정말 죽기를 각오한 것이었다.
아호심양(餓虎尋羊).
‘굶주린 호랑이가 길 잃은 양’을 덮치듯.
사군보의 몸을 덮쳐 내려온다.
역시 내상 탓인지 초식에 허점이 크게 드러나 보였다.
사군보는 그 훤히 보이는 허점을 찾아 결정적인 살초를 펼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양쪽 어깨를 가볍게 흔들면서 미끄러지듯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났다.
“사우기 싫다니까 말 더럽게 안 듣네.”
“이놈! 물러나지 마라!”
만걸은 입가로 다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도 잊고 눈을 부릅뜨며 덤벼들었다.
양패구상이라도 택하겠다는 듯 앞으로 번개같이 덮쳐오는 기세는 등등했다.
사군보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만걸, 나를 너무 핍박하지 마라!”
사군보는 개방과는 될 수 있으면 원한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삼뇌마자 막여천의 신신당부 탓이다.
삼뇌마자는 강호에서 절대 적을 만들지 말라며 세 군대를 알려주었다.
그 첫째가 소림사다.
둘째는 개방.
마지막이 사천 당문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피한 것인데.
그는 귀영신법을 펼쳐 왼쪽으로 스르르 비켜나갔다.
만걸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해졌다.
“노부를 희롱하고 있구나!”
이를 부드득 간 그는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는 사군보의 목을 노린 채 그것을 던졌다.
번쩍!
은광이 순간적으로 짧게 번쩍였다.
은광은 어느새 사군보의 목을 노리고 사정없이 날아왔다.
‘암기!’
사군보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암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몸 주위에 몇 겹의 호신강기를 펼치고 은광을 향해서 손바닥을 내뻗었다.
쩌쩡-!
은광이 두터운 강기에 부딪쳐 금속성을 일으키며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조그만 철련화(鐵蓮花)였다.
생김새는 연꽃잎처럼 생겼다.
그것이 두 개가 ㄱ자처럼 붙여져 있었다.
사방에 시퍼런 날이 나있어 어느 곳에 베어져도 뼈와 살이 잘라져나갈 위력의 암기였다.
사군보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기껏 봐줬더니, 염치없는 사람!”
개방 사람이라면 흔히 장(丈)이나 타구봉을 사용한다.
암기는 그들의 독문절기가 아니었다.
그가 만걸에게 소리를 지르며 땅에 떨어진 철련화를 막 잡으려는데 괴변이 일어났다.
휘잉!
땅에 떨어져 있던 철련화가 한순간 저절로 움직였다.
타앙-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
허리를 구부리는 사군보의 목을 노리고 솟구쳤다.
“이런!”
사군보는 놀람의 소리를 나직이 꺼내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가각-
그러나 철련화의 움직임이 너무 뜻밖이었기에 사군보의 목 한쪽이 아슬아슬하게 베어져 금방 선혈이 새어나왔다.
알고 보니 철련화 암기 한쪽에는 가는 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실은 만걸의 손목에 연결되었다.
색상도 거무스름했다.
철련화 암기에 그런 줄이 매달려 있을 줄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만걸은 줄을 통해 철련화에 내공을 주입시켜 1장 밖에서도 그것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으윽!”
만걸은 내상의 몸으로 무리하게 운공을 일으켰던 탓인지 검붉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공격한 자신 스스로 목숨을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다.
사군보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불쌍한 거지 놈.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비록 입가에 웃음이 지났지만 그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니라 바로 살기였다.
만걸에게 있어선 조금 전 그 암습이 마지막 기력이었다.
그는 철련화가 사군보의 목을 살짝 스치고 지나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노부를 죽여라!”
“당신이 나를 죽이려 했으니 응당 당신도 죽어야 한다.”
저벅. 저벅.
사군보는 만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만걸은 모든 것을 단념한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생과 사.
이제 사군보의 손에 그의 목숨이 달려있는 것이었다.
“만걸, 잘 가거라.”
사군보는 말과 함께 상대의 천령혈을 향해 오른손을 내리쳤다.
“……”
만걸은 눈을 감은 채 꿈쩍을 안했다.
죽음의 순간,
퍽!
둔한 소리와 함께 피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나갈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사군보는 장승처럼 우뚝 서 있었다.
만걸은 눈을 감은 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잠시 후 만걸이 눈을 떴다.
“어째서 노부를 죽이지 않느냐?”
“당신은 내가 사군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내게 접근했다.”
“그렇다! 어서 죽여라!”
“일어나. 당신을 죽이지 않는다.”
“어째서냐?”
“당신이 나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 생각하고 접근한 것처럼, 나도 당신을 이용하고 싶어서다.”
“무슨 말이냐?”
“간단해. 기왕 우리가 인연을 가졌으니 같이 힘을 합해 벽력신패를 빼앗아보자는 거지.”
“……”
만걸은 뜻밖이라는 듯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군보는 어깨를 으쓱했다.
“싫은 것을 억지로 같이 하자고 하고 싶지는 않다. 나 혼자라도 벽력신패를 수중에 넣을 수 있으니까.”
만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벽력신패를 얻으면 누구의 것이 되느냐?”
“그것은 벽력신패를 먼저 수중에 넣은 사람의 것이 된다. 그러니까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벽력신패를 먼저 손에 잡기만 하면 되고, 난 절대로 다른 생각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게 말이 돼?”
이건 연수, 또는 동맹과 같은 게 아니다.
그냥 각자 최선을 다해 벽력신패를 빼앗자는 것이다.
물론 서로 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목숨과 비교될 만큼 연합의 무게가 중한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사군보가 노골적으로 그의 목숨을 봐주는 것이다.
“어때?”
“네놈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어째서?”
“국제강이 갖고 있는 벽력신패는 분명 노부의 손에 들어올 것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길 바라지.”
사군보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만걸이 손을 내밀었다.
사군보가 그 손을 굳게 잡았다.
조금 전까지 죽자하니, 죽이겠다고 하며 싸우던 두 사람이 돕고 돕는 것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보이지 않는 싸움이 벌써부터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사군보가 굳이 그와 손을 잡은 것은 여러 가지로 그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벽력신패가 진짜 개방의 물건이건 아니건 관심 없다.
개방이 그것을 찾기 위해 강호인들의 접근을 강압적으로 막는 무리수를 던져가면서 까지 기를 쓰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뇌정보 하나만 상대하기 벅찬데 개방까지 상대하느니 차라리 개방과 손을 잡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거는 편이 더 낫다.
개방에서는 벽력신패를 회수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발휘할지 모르니 이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유리하고.
사군보가 걸음을 떼어 놓으며 말을 꺼냈다.
“뇌정보의 매복과 함정을 피해 그들의 시선을 유인해 내려면 우리를 따로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