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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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第 46 章 천인공노
“자, 그럼 출발할까?”
수라간 앞.
호희와 수라간 제자들. 그리고 가재굴과 호위무사 2명이 그의 명을 따라 움직였다.
수라간 제자들은 밀옥에 근무하고 있는 간수들 식사를 광주리에 담아 들고 있었다.
그 광주리를 보며 사군보는 비릿하게 웃었다.
저 안에 있는 음식에는 산공독이 풀어져 있다.
음식을 먹으면 내공이 흩어진다.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내공을 끌어올리면 당장 알게 되는 산공독.
이제 밀옥으로 가서 납치된 사람들을 풀어주면 된다.
**
“부당주님이 웬일이십니까?”
밀옥 앞 수문위사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냥……나도 간부인데 중요한 곳을 한 번 쯤 시찰해야지. 안 그래?”
옥면호리 금방왕은 밀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문위사는 비굴할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렇지요, 이젠 곧 승급하신다면서요?”
“승급은 무슨……임시야, 임시……”
소문이 돌았다.
빈 추밀당주 자리를 채화당 부당주가 차지할 거라는 소문.
그것은 사군보가 가재굴 등을 이용해 낸 소문이다.
직위가 오르면 권위도 오른다.
권위는 아랫것들을 관리하는데 유용한 힘을 준다.
평소 같았으면 수문위사는 겉으로 웃어도 속으로는 부당주를 욕했을 것이나, 곧 추밀당주가 된다면 속으로도 욕하면 안 된다.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자리다.
밀옥은 추밀당 관할이니까.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냐, 경계 서. 잠시 이해독왕에게 인사만 하고 갈 거니까.”
수문위사는 오해했다.
곧 추밀당주가 되니 미리 인사 온다고.
“네. 제 이름은 춘봉입니다.”
“오! 춘봉! 이름 좋군. 내 기억하지.”
“감사합니다.”
사군보는 당당하게 들어가고, 그 뒤를 호희 등이 따라왔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오자 가재굴이 허리를 숙였다.
“저희는 여기까지 밖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 그럼……호 부인.”
“네. 당주님.”
“임시라니까, 임시……”
“아니죠, 곧 당주님이 되실 분이니 미리 연습해야지요.”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군.”
한껏 거드름을 핀 사군보.
“자, 그럼 간수들 식사 주러 가볼까.”
“직접 가시게요?”
“여기까지 왔으니 가봐야지. 어쩌면 진짜 내 수하들이 될 지도 모르잖아.”
“호호호……안내할 게요.”
호희와 수라간 제자들은 음식이 든 광주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을 뒤따르면서 사군보는 주위를 유심하게 살폈다.
**
“잘 먹겠습니다.”
“임시 당주님도 같이 드시지요.”
“이봐, 임시 당주님이 뭐야, 당연히 당주님이시지.”
“맞다! 하하하……”
간수들은 아부를 떨었다.
사군보는 짐짓 헛기침을 했다.
“식사들이 좀 부실하지? 내가 당주로 정식 임명되면 밀옥의 복지에 힘을 쓸 테니 조금만 참게.”
“감사합니다.”
“흠! 내가 있으면 식사하기 불편하니 난 감옥 좀 둘러보겠네.”
“네, 다녀오십시오.”
간수들 휴게실을 나온 사군보는 감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지독한 피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석실 가득했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사군보는 눈앞의 참상에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일까?
족히 200구가 넘어 보이는 시체들의 산과 그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커다란 연못을 이룰 정도다.
저 시체들을 과연 살아생전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게 으깨진 살덩이와 뼈, 내장들이 쓰레기처럼 곳곳에 버려져 있었다.
사지가 멀쩡한 시체는 한 구도 없었다.
모조리 발가벗겨진 채 온갖 고문과 실험을 받았는지 인간의 형체를 하고 있는 게 한 구도 없는 시산혈해.
“우욱!”
사군보는 결국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사군보는 이를 악 물었다.
저 죽은 자들은 모두 납치되어 온 자들이다.
대하교 입장에서는 대업을 위해 희생된 자들이라 말하겠지만, 이건 아니다.
이건 천인공노할 짓이다.
“이해독왕……!”
이해독왕을 죽여야 할 확실한 이유가 생겼다.
***
철창 안.
그곳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잘 먹지도 못해 피골이 상접하고, 씻지도 않아 냄새가 지독한, 하나같이 절망과 포기로 눈빛이 죽은 사람들.
그들을 보며 이해독왕이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이놈들이 다 내 앞날을 밝혀줄 놈들이지.”
이해독왕이 하나의 철창 앞에 왔을 때다.
“이놈!”
창! 창! 창!
철창을 움켜쥐고 격하게 소리치는 자는 30대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두 손목과 발목에 수갑과 족쇄까지 채워져 있었다.
죽일 듯 살기를 연신 뿜어내는 그 기세에 이해독왕은 살짝 움찔했다.
하지만 곧 그는 소리 질렀다.
“뭐야 이 새끼는!”
그 순간 이해독왕 뒤를 따르던 간수는 긴 작대기를 철창 사이로 밀어 넣어 중년인을 마구 찔렀다.
푸샷!
푹!
긴 작대기 끝은 창처럼 뾰족했고, 찔린 곳으로부터 피가 솟아 나왔다.
중년인은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으르렁거렸다.
“죽여 버릴 거다! 모조리 죽여 버릴 거다!”
“시끄러!”
슉!
작대기가 중년인의 명치를 향해 찔러왔다.
와락!
중년인은 양손으로 작대기를 잡았다.
손목에 무거운 수갑을 찼건만 날렵한 솜씨였다.
“잇! 놔!”
졸지에 작대기를 잡힌 간수가 두 손으로 작대기를 잡아당기며 용을 썼다.
시뻘겋게 달아 올라간 얼굴.
이해독왕은 그 모습에 놀란 눈을 했다.
“이놈 무림인이야?”
이해독왕은 급히 손가락을 튕겼다.
탕!
“큭!”
중년인은 이해독왕의 지풍에 마혈이 찍혀 작대기를 잡은 두 손을 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네놈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
여전히 이글이글 살기를 뿜는 중년인.
핑-
이해독왕의 지풍은 아예 중년인의 아혈까지 막아 버렸다.
“거 놈, 진짜 시끄럽군.”
“이 새끼가!”
간수가 씩씩거리며 작대기 끝으로 말갈인의 머리를 찍으려는 순간.
“그만! 죽으면 재료로 못써! 네놈이 책임질 거야?”
“독, 독왕님!”
“이놈 누구야?”
“소림 속가제자 차승인이라고 합니다.”
“차승인?”
이해독왕이 갸웃거렸다.
소림철권(少林鐵拳) 차승인(車昇寅).
소림사 일대제자와 동배인 그는 백보신권의 대가다.
사람들이 종종 실종되는 사건을 이상하게 여겨 수사하던 중 함정에 빠져 잡혀온 것이다.
“내공도 없는 놈이 무지 세네.”
“소림사가 외공도 강하지 않습니까.”
“쓸만 한 재료군. 잘 지켜!”
“알겠습니다.”
이해독왕은 간수의 인사를 뒤로 한 채 더 안으로 들어갔다.
연구실로 가는 길이다.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간수는 손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작대기를 힘껏 움켜쥐었다.
“너 이 새끼, 감히 독왕 앞에서 날 쪽팔리게 해!”
그는 마혈이 질려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두 눈으로 살기를 여전히 뿜고 있는 차승인을 노려보았다.
“죽이지 않을게. 대신 자근자근 밟아주마!”
간수가 막 작대기를 휘둘러 차승인을 패려할 때다.
스각!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그건 가죽을 베는 소리 같았다.
동시 간수는 손에 쥔 작대기를 놓치며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끄……끄……끄…….”
말도 나오지 않았다.
뜨끈뜨끈하면서도 진득한 핏물이 손가락에 느껴지는 순간 간수의 목은 갸우뚱 옆으로 쓰러졌다.
단칼에 목이 베어진 것이다.
툭! 우당탕!
떨어진 목과 목 없는 몸이 바닥에 거칠게 쓰러짐과 동시 철창 앞으로 사군보가 나타났다.
사군보는 힐끗 철창 안의 차승인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차승인은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쳐지자 사군보는 입 앞에 손가락을 세웠다.
“쉿! 조용.”
짧고 간단한 말.
“강호인이오?”
“으……으……”
“혈도가 제압 당한 거요?”
“아……으……”
핏-
사군보는 즉시 아혈과 마혈을 풀어줬다.
“당신은 누구요?”
차승인이 입을 열자 사군보가 눈을 부라렸다.
“산통 깰 일 있어! 좀 조용합시다!”
“흑!”
차승인은 굳게 입을 닫았다.
“마침 혼자 다 하려니 힘들었는데 당신을 만나 좀 쉽겠군.”
“뭐 말이오?”
“뭐긴 뭐야, 탈출이지.”
“탈출!”
“쉿! 일단 내가 당신을 구해줄 테니 당신은 이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해서 잠시 여기 대기하고 있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사군보는 철창을 향헤 검기를 날렸다.
창강! 창강!
철로 된 창살이 삭둑 삭둑 잘려 나갔다.
그 가공할 검기에 차승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만한 검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운용할 수 있는 고수는 소림사에서도 장로급 밖에 없다.
어쩌면 소림 장로들도 그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모른다.
잠간 사이 창살을 잘라낸 사군보는 검극으로 차승인의 손을 가리켰다.
“손 내밀어요.”
수갑을 찬 두 팔을 내밀자.
스각!
수갑이 맥없이 잘라지고 이어 족쇄도 종이처럼 찢어졌다.
사지가 자유로워진 차승인은 급히 포권을 취했다.
“소림 속가제자 차승인입니다. 은공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사군보는 간수의 시신을 뒤져 열쇠 꾸러미를 찾았다.
“받아요.”
휙.
쩔그렁.
열쇠꾸러미를 급히 받은 차승인을 보며 사군보가 말했다.
“여기 잡혀 있는 사람은 모두 57명, 이제 56명 남았으니 모두 풀어주고 일단 이곳에 있어요. 여기가 가장 안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내공을 쓸 수없습니다.”
“아! 아무도 안 올 겁니다. 내가 다 죽일 거거든요.”
“네? 혼자서……”
“난 바쁘니 어서 사람들 풀어줘요.”
휙-
벌서 사군보는 유령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차승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후사정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적이 아닌 구원자고, 자기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
차승원도 급히 움직였다.
***
핏- 핏-
휴게실 밖에서 서성거리던 호희와 수라간 제자들의 수혈을 제압해 잠들게 한 사군보.
그는 휴게실 안에 귀를 기울였다.
밥을 다 먹은 자들이 안에서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먹은 밥이 최후의 만찬이다.”
그는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으악!”
“캐액!”
안에서 멱따는 비명소리가 줄지어 나왔다.
산공독에 중독된 간수들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
계단이 곧장 밑으로 나 있는 비밀통로.
사군보는 주위를 경계하며 밑으로 내려갔다.
검 자루를 잡은 손은 바싹 긴장이 되어 언제라도 발검 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돌연 좌측으로부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체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낙엽 같은 것들이 썩는 것 같기도 한 고약한 냄새였다.
그 냄새는 하나의 석실에서 비롯되었다.
석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석실 문 가까이 다가간 그는 심호흡을 했다.
그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은 석실이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지하광장 같았다.
석실 중앙에는 커다란 솥이 있었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냄새는 그 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솥 안에는 시커먼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솥 주변에는 간수들이 자루 안에서 꺼낸 여자의 시체를 약물로 닦고 있었다.
시체는 모두 처녀들의 것이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 부패가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사군보의 가슴 깊숙한 곳에선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용솟음쳤다.
‘천인공노할 놈들!’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인한 만행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이 악독한 무리들을 그냥 두지 않겠다!’
그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쌔애액!
난데없이 그의 전신을 향해 엄청난 경력이 폭사되어 왔다.
그 힘은 가히 만근거암도 박살 낼 정도였다.
또한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며 쏘아져 오는지라 피할 틈조차 없었다.
지독히 빠르며 느닷없는 공격에 사군보의 차가운 얼굴에 당혹함이 번졌다.
‘기습! 그러나 호락호락하게 당할 내가 아니다.’
사군보는 황망히 몸을 회전시켜 허공을 맴돌았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수 천 수만의 그림자를 폭출시켰다.
쾅쾅쾅!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만 같은 엄청난 천둥소리가 터졌다.
사방으로 휘날리는 돌가루들과 흙먼지 속에서 참담한 신음성이 동시에 터졌다.
“음…….”
“이, 이럴 수가…….”
잠시 후 흙먼지와 광분하던 돌가루가 가라앉았다.
사군보의 정면에 한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해독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