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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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36화
혈하-第 36 章 치밀한 구조
번쩍!
반 동강이 난 복마검.
공동파의 보물.
하지만 우물에서 제동 역할을 하다가 부러져 버린 그 검이 이 순간 반조각 난 것에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무섭게 번뜩였다.
“크악! 내 눈!”
분노가 춤춘다.
“컥! 내…… 내 손…….”
피지도 못하고 덧없이 죽어간 어린 원혼이 춤춘다.
“컥! 내…… 내 발…….”
사지분시가 되어 몸뚱이만 남은 금방왕의 몸뚱이가 고통과 공포에 전율하며 땅바닥을 뒹굴며 춤춘다.
잘려 나간 몸뚱이에선 피가 솟구쳤다.
그의 입에선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을 갈가리 찢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사군보는 그의 기해혈을 내려찍었다.
파앗!
피분수가 용솟음쳤다.
“크흑! 단전을 파괴시키다니……. 어서 날 죽여라…….”
지독한 고통 속에 섭혼술이 풀린 금방왕은 원독에 찬 비명을 실었다.
사군보가 잔인하게 웃었다.
“옥면호리, 네놈을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네놈을 여기서 죽이면 너무나 편한 죽음이지 않겠느냐?”
“잔, 잔인한 놈!”
“잔인? 네놈 입에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크흐흑…… 어서 죽여랏!”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구천을 떠도는 수많은 영혼들이 나를 원망한다. 옥면호리, 마지막이다!”
번쩍!
금방왕의 준수했던 얼굴엔 거미줄 같은 상흔이 생겼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입이 벌어진 순간,
“시끄러!”
사군보의 오른손이 입안으로 들어가 혀를 잡아 당겼다.
“읍? 으읍!”
지독한 고통과 불안에 금방왕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순간,
스각.
혀가 잘려 나간 것이다.
“으아아아…….”
금방왕은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색마 옥면호리 금방왕은 더 이상 겁탈할 수도 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두 눈은 멀고 혀는 잘리었다.
두 손과 두 발마저 잘린 몸뚱이는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사군보는 싸늘한 시선으로 땅바닥을 공처럼 뒹구는 그의 몸을 주시했다.
“인광응보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진저리 치고 있는 세 명의 괴한이 그의 동공 속으로 아리게 파고들었다.
마혈과 아혈이 제압당해 도망치지도 못한다.
공포에 찬 신음성도 토하지 못한 채 그저 고막을 찢는 처절한 금방왕의 비명을 듣고 있어야 했던 그들이다.
지금 그들의 심장을 갉아먹는 공포의 전율은 오죽하겠는가.
“나는 심령의 주인, 너희들은 이 순간부터 지금 본 모든 사실을 잊어라.”
부르르…….
“……”
사군보의 섭혼주술에 세 명의 괴한이 진저리 쳤다.
“나는 곧 너희들의 주인. 너희는 지금 채화당으로 가는 길이다.”
“……”
세 명의 괴한들의 꽉 감겼던 두 눈이 떠졌다.
그들의 동공엔 공포도, 죽음의 전율도 더 이상 엿보이지 않았다.
다만 꿈꾸듯 몽롱한 눈빛만이 감돌았다.
이제 그들은 지금 보고 들었던 일들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
“번천.”
“대하.”
“관등성명과 소속을 대라!”
“옥면호리 금방왕.”
“늦었습니다.”
스르릉!
사당 안에서 상문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싸늘하게 말을 꺼냈다.
“차후엔 시간을 엄수해 주십시오.”
“허허…… 미안하군.”
직책상 옥면호리 금방왕이 상전이다.
옥면호리 금방왕으로 변장한 사군보는 짐짓 미안한 척 했다.
어찌 되었건 늦은 건 사실이고, 금방왕의 기억 상 상문관은 수문장. 기관 출입을 통제하는 임무에 다한 것이니까.
“미행자는 없었습니까?”
“없네.”
“그럼 어서 들어가세요.”
“수고하게. 아참! 독모는 안에 계신가?”
상문관의 두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사군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크! 내가 실수했나?’
그가 크게 당황하고 있을 때 상문관이 책망 서린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부당주라 해도 감히 당주님의 아호를 함부로 입에 담다니! 대하교의 금기사항을 잊었습니까?”
“그, 그게…….”
사군보는 짐짓 놀라는 척했다.
상문관은 그의 그런 모습에 득의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크크크……! 아무리 당주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 해도 만약 이해독왕께서 이 자리에 계셨다면 부당주는 당장 독수로 변했을 겁니다.”
“쩝……!”
사군보는 입맛을 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상문관은 지금 그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옥면호리 금방왕과 채화당주 독모는 정을 통하는 정부(情夫) 사이다.
직함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 옥면호리 금방왕이 부당주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관계 때문이다.
이를 가장 못 마땅하게 여기는 자가 바로 이해독왕이다.
“조심하겠네.”
“하나 나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니 못 들은 것으로 하죠. 어서 들어가십시오.”
“고맙네.”
사군보는 황급히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사당 안으로 들어온 사군보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관운장을 비롯한 악비 등이 모셔져 있는 신당이다.
‘분명 기관이 있을 텐데.’
상문관이 나타나기 전, 기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군보는 일부러 늦장을 부렸다.
그 사이 안으로 들어온 상문관은 제단의 향로를 옆으로 돌렸다.
그그긍.
신단이 밀리면서 지하로 통하는 입구가 나왔다.
“들어가죠.”
상문관이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사군보와 졸개들이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습한 공기.
어스름한 빛.
계단을 내려오자 상문관이 기관을 작동시켰다.
그그긍.
입구가 닫히자 어둠이 훅 밀려 들었다.
벽에 횃불이 없었다면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둠뿐이었으리라.
“그럼 수고하십시오.”
상문관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양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사라지자 뒤따르던 세 명의 수하들이 급히 허리를 공손히 굽혔다.
“속하들은 지금 추밀당으로 가겠습니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기억도 지워진 상태다.
사군보가 머뭇거렸다.
낭패다.
아무리 기억을 조작했다 해도 자신의 거처가 어디냐고 물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머뭇거리자 일순 세 명의 수하 중 한 명이 나섰다.
“부당주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그가 길을 몰라 머뭇거리자 수하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들 중 한 사람이라도 앞장을 세운다면 좋겠는데.’
자연스럽게 일을 꾸며야 한다.
“넌, 나랑 같이 좀 가자.”
“네?”
“내가 따로 지시할 게 있다.”
“알겠습니다.”
수하는 자신의 짐을 다른 자에게 넘겨주었다.
“앞장 서.”
“네.”
수하는 아무 의심도 없이 통로를 걸어갔다.
수하는 곧 길잡이가 되어 사군보를 옥면호리 금방왕의 방으로 안내하였다.
오는 도중 사군보는 지하의 규모에 크게 놀랐다.
통로는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갈래의 통로가 마치 개미굴처럼 뚫려 있었다.
‘이거 완전 미로다.’
혼자 다니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무슨 수를 써야지 이러단 미아가 되겠다.’
미아(迷兒)뿐만 아니라 방을 찾아 간다 해도 방밖으로 나오지 못할 게 뻔하다.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올 의미가 없다.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그때 앞장 서 걷는 수하의 뒷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봐.”
“네, 부당주님.”
“자네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됐지?”
갑작스런 질문에 수하의 얼굴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그냥 자네가 맘에 들어서 그래.”
“네에?”
“마침 내 일을 도와줄 보조가 하나 필요한데 말이야……”
“부당주님의 보조요?”
“자네 생각은 어때?”
순간 수하가 황공하다는 양 허리를 급격하게 꺾었다.
“감,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근데, 자네 이름하고 태생,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나?”
“네?”
수하는 또 갸웃거렸다.
함께 행동한 게 벌서 여러 달이다.
그런데 이름을 물어?
“정확하게 알아야 내 당주에게 말해서 자네를 내 직속으로 옮길게 아닌가?”
“아!”
그제야 의심을 푼 수하가 입을 열었다.
“정주 출신, 선덕4년 3월생, 가재굴(價材窟)입니다.”
“가재굴이라……”
“소속 변경을 하시려면 제 등번도 필요하겠죠?”
등번(登番)이란 말에 사군보는 흠칫했다.
‘등번은 또 뭐야?’
그러나 짐짓 헛기침을 했다.
“그렇군.”
“전 추밀당 소속 145729번입니다.”
“추밀당 145729라……”
이 숫자의 의미는 뭘까?
궁금했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가재굴, 이제 가자.”
“네, 부당주.”
가재굴은 앞서 가면서 주절주절 떠들었다.
대부분 자기 자랑이요, ‘내가 이렇게 요긴한 놈이다.’ 하고 과시하는 내용들이다.
잘 보이기 위함이다.
마음이 변하지 않게.
그 덕분에 사군보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하교의 구조는 치밀했다.
교주 천황(天皇).
쌍존으로, 신존 천년사종(千年邪宗)과 지존 혈사마녀(血絲魔女)가 있다.
그 밑으로 다시 삼제가 있다.
삼제는 철저한 비밀 속에 가려져 있다.
대외적인 활동은 백호, 청룡, 주작, 현무라 불리는 사대천왕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하교의 하부 조직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등번.
그것으로 자신의 소속을 알린다.
가재굴은 145729다.
14는 채화당을 말한다.
추밀당은 12다.
5는 등급이다.
대하교는 각자의 무술 실력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총 9등급이 있으며, 5등급이면 중중급이다.
729는 추밀당에 들어온 순번이다.
현재 추밀당에 소속된 자만 무려 1천명이 넘는다.
추밀당은 하북, 하남, 호북, 산서, 안휘에 속한 대하교 하부조직이다.
이곳 지하기지에는 채화당과 추밀당의 거점이 있다.
실로 방대하고 치밀한 조직이 아닐 수 없었다.
‘수다스럽군.’
피곤한 성격이다.
그러나 지금 사군보에게는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잘만 이용하면 유용하게 쓰겠다.’
그때다.
가재굴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어……부당주님.”
“왜?”
“낭낭들과 저는 어떻게 구분하실 건지요?”
“낭낭?”
낭낭(娘娘).
아가씨라는 뜻인데?
일시 흠칫한 사군보.
하나 곧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자넨 어떻게 했으며 좋겠나?”
“죄송합니다만, 낭낭은 조보다 한 등급 위입니다.”
4등급이란 뜻이다.
4등급이면 중상(中上)의 실력이다.
대충 눈여겨본 가재굴의 실력은 어지간한 중소문파에 속할 때 제법 힘좀 스는 자리에 앉을 실력이다.
그런데 낭낭이란 여자들이 더 윗직급이라면 그녀들의 실력은 상당하다.
참고로 옥면호리 금방왕은 3등급이다.
“등급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렇지요. 실력이야 노력하고 쌓으면 올라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송구하오나……어차피 부당주님을 함께 모시는 입장이고, 부당주님께 직속으로 배당받는 남자는 저 혼자니까. 낭낭들에게 말해서 절 졸개 부리듯 하지 말라고 언질이라도……”
조심스러운 말투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설움이 담겼다.
‘직급과 신분에 따른 대우가 확실한 모양이군.’
뿐만 아니다.
‘금방왕의 직속 수하가 낭낭뿐이야?’
누가 색마 아니랄까봐 수하를 여자로 둔 옥면호기 금방왕이다.
그렇다면 그 낭낭이란 여자들과 옥면호리 금방왕과의 관계는 안 봐도 훤했다.
‘낭낭들이라고?’
낭낭들.
둘 이상이란 뜻이다.
‘이거 잘못 변장한 거 아냐?’
왠지 소름이 돋는 사군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