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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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84화
파계 8권 - 9화
“천부신군이 우리와 같은 과거를 알고 있었다니, 우리야말로 놀랄 일이군.”
“아, 내 소개를 제대로 안 했군. 내 가문은 오행교군은 아니고 호법 가문이야. 너희들보다 수준이 약간 높다고 할 수 있지.”
“흥! 그깟 호법 가문이 별거냐!”
그렇게 말은 했지만 무사들은 이전보다 긴장한 기색이었다. 배화교의 교주를 직접 호위하는 가문이 과거에 얼마나 강했는지에 대해선 이들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더구나 초왕성은 무림에서도 인정을 받은 칠절신군 중에 하나가 아니던가.
“덤빌 거냐? 오 형님은 끼어들면 죽이라고 했으니까, 너희들이 얌전히 있으면 서로 간에 기분 상할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말을 하는 초왕성이나, 듣는 귀혼각 수뇌들이나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초왕성은 말로만 들어오던 탈명수교군의 무공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 확인하고 싶었고, 수뇌들은 각주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다!”
한 사람의 외침에 수뇌들은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초왕성은 히죽 웃으며 도끼 자루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응?”
하지만 기다리는 초왕성이나 달려들던 귀혼각 수뇌들이나 다음 동작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쉬쉭- 쉬쉬쉬쉬쉬쉬쉭-
“빌어먹을!”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재빨리 물러나 방의 구석으로 황급히 피해야 했다.
엽종과 오칠이 싸우는 곳으로부터 뻗쳐온 섬뜩할 정도의 날카로운 검기에 맞고 비명횡사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치칭- 치치치치칭-
“유성탈혼검(流星奪魂劍)을 어떻게 아는 거냐!”
엽종은 협봉검으로 오칠을 찌르며 소리쳤고, 오칠은 송곳을 튀어나오게 한 묵철곤으로 협봉검의 날카로운 검기를 사방으로 밀쳐냈다. 탈명수교군의 비전무공인 유성탈혼검의 초식을 펼쳐서 말이다.
“나 교주야. 교주가 그 정도도 모르겠냐?”
오칠의 말에 엽종은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용화대수미공(龍華大須彌功)의 공력을 협봉검에 가득 밀어 넣으며 바늘처럼 가는 검기를 쏘아 보냈다.
“교주건 뭐건 죽어버려!”
오칠은 재빨리 환영귀보(幻影鬼步)를 극으로 펼치며 방 안을 수십 개의 잔영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엽종이 만들어낸 검기 역시 만만치 않게 많았고, 방 안은 마치 검기의 가시덤불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염병! 이렇게 싸울 거면 미리 나가 있으라고 그러던지!”
초왕성은 벽에 바짝 붙어 있다가 도저히 더는 물러날 공간이 없어서 도끼로 벽을 찍어댔다.
쩍! 쩍! 쩍! 쩌적! 와르르!
대여섯 번의 가격으로 벽에 큰 구멍이 생기자 초왕성은 그 구멍으로 재빨리 빠져나갔고, 귀혼각 수뇌들도 황급히 벽을 협봉검으로 찔러서 구멍을 만든 뒤 빠져나갔다.
쉬쉬쉬쉭- 쉬쉬쉬쉿쉬쉭-
엽종이 만들어낸 바늘 같은 검기와 이에 대응하는 오칠의 묵철곤이 날카로운 빛 무리를 사방으로 뿌려대고, 방 안의 집기들은 가늘게 난도질당하며 바닥으로 흩어져갔다.
“적당히 앙탈을 부려라. 발악하다가 맞는다고 덜 아픈 거 아니다.”
‘그래, 뭐라 해도 전설의 존재라 이거지!’
엽종의 가슴 가득 서늘함이 밀려왔다.
자신은 입을 열 여력이 없는 반면, 오칠은 조롱 어린 말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사람 간에는 분명한 실력 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머리 숙이면 용서해줄게.”
‘빌어먹을 자식! 주둥아리를 뭉개주겠어!’
하지만 너무도 잔영이 많아 어느 형체가 진짜 오칠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엽종은 그 음성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들려온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좋다! 몽땅 다 구멍을 뚫어주마!’
엽종은 보이는 모든 잔영을 향해 유성탈혼검의 빛살 같은 초식을 뿌려대면서 눈동자를 더욱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잔영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용화대수미공의 공력을 더욱 맹렬하게 전신으로 회전시켰다.
‘오늘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엽종의 눈가에 핏발이 섰다.
오칠의 귀신같은 신법에 대응하기 위해 그 역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신법을 펼치고 있었고, 유성탈혼검을 극으로 펼치기 위해 내공이 고갈되어 본원지기가 상하게 될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제법이네.”
오칠의 목소리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리고 순간 수십 개의 잔영이 물에 씻기듯 사라지며 하나의 신형만이 방 정중앙에 우뚝 섰다.
‘무슨 속셈이지?’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엽종의 협봉검은 공간을 격하고 이미 오칠의 미간을 향해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팅-
“……!”
뾰족한 협봉검의 끝이 불꽃을 일으키며 튕겨나갔다.
묵철곤에 막힌 것도 아니고, 어떤 다른 무기에 막힌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오칠의 미간 바로 앞에서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져 나온 것이다.
‘호신강기?’
내공을 형상화시켜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
일단은 그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경지였다. 하지만 감히 추측해볼 수도 없는 막강한 공력과 내공을 피부로 분출하여 전신을 조금의 빈틈도 없이 둘러싸야 하는 세심한 기의 운용이 필요하기에 현 무림의 누구도 감히 현실화시킬 수 없었던 경지였다.
‘그럴 리가!’
협봉검이 막힌 찰나의 순간 동안 이것저것 따지며 생각한 엽종은 그래서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오칠이 선대로부터 전해 듣기만 했던 전설 속의 존재라고 해도 무턱대고 진실을 왜곡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마음과 함께 더욱 강력한 공력을 검끝에 담아 오칠의 가슴을 찌른 엽종은 다시 놀라고 당혹해하며 튀어나올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화아아아~
붉고 푸른 불꽃이 오칠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엽종의 협봉검은 다시 튕겨 나왔다. 이제는 오칠이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음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이 느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두려움.
겁을 먹고, 몸이 위축되는 것이 느껴졌다.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이 낯선 감정에 엽종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엽종은 충격 속에서 멍하니 있지 않았다. 겁을 먹은 만큼 더욱 빠르게 움직이고, 더욱 맹렬하게 검을 찔렀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티팅- 티티티티팅- 티티티팅-
폭죽이 터지듯 오칠의 전신에서 불꽃이 일었다. 엽종은 정말 미친 듯이 좌우사방을 오가며 오칠의 전신을 찔러댔다.
“멍청한 놈.”
저 밑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오칠의 목소리는 음습하고 어두웠다.
머리칼은 곤두서고, 붉고 푸른 불길이 그의 온몸을 감싸며 전신을 뒤덮고 있던 먼지를 날려버렸기에 가려져 있었던 오칠의 아름다운 외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래서 더욱 요사스러웠다.
‘인간이 아니다!’
엽종은 본능처럼 협봉검을 찌르면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도 모르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이 그의 마음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버린 두려움과 어지럽게 뒤섞여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우우웅!
천마신공을 운용하여 강기막을 형성하고 협봉검을 튕겨내기만 하던 오칠이 팔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는 어둠의 광채를 뿜어내는 묵철곤이 들려 있었고, 그 끝에선 천마신공의 강력한 기운이 응어리져 있었다.
“놀이는 끝났다!”
오칠의 입에서 퍼진 천마야소(天魔野嘯)의 강대한 음공이 방 안을 떨어 울리고, 엽종은 맹렬하게 협봉검을 휘저으며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의 육체를 비롯한 방 안의 모든 것이 이미 오칠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다.
“받아라-!”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묵광을 뿜어내던 묵철곤이 무겁게 아래로 내리쳐지며 지진이라도 생긴 것처럼 벽이 흔들리고, 심맥을 파고드는 천마야소의 기운을 떨쳐내기 위해 계속해서 협봉검을 휘젓는 엽종의 전신을 내리눌렀다.
“으으으으……!”
엽종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온몸이 짓눌리는 고통을 견뎌내는 그의 전신에 힘줄이 곤두서고, 악다문 입술 사이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차아압!”
단전으로부터 솟구친 기합과 함께 용화대수미공의 공력이 엽종의 몸에서 뿜어지고, 그를 내리누르는 천마신공에 대항했다.
하지만 천마신공은 모든 마교 신공의 원류이자, 주인이었다. 당연히 엽종은 견뎌낼 수 있는 시간이 촌각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타탁!
압력을 밀쳐내며 온힘을 다해 바닥을 박찬 엽종의 신형이 오칠을 향해 뻗어나가고, 그의 손목을 따라 찔러가는 협봉검은 최후의 힘을 뽑아내듯 바늘처럼 날카롭고 강력한 검기를 쏘아 보냈다.
“용기는 가상하다.”
후우우웅-
빠르게 쏘아져 오는 검기를 향해 묵철곤이 떨어졌다. 하지만 무겁게만 보이는 묵철곤의 움직임은 기묘하게도 협봉검이 쏘아 보낸 검기의 속도를 앞서버리며 정면을 막아섰다.
쾅-
광폭한 바람이 격돌의 중심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저… 정말 인간이 아냐!’
바닥을 타고 주르륵 밀려나가는 엽종은 비명을 지르듯 속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비명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바람을 타고 뻗어온 붉고 푸른 불길에 휩싸인 주먹 하나가 그의 복부를 강타한 것이다.
펑-
“억!”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엽종의 신형은 방의 벽을 뚫고 복도로 튕겨나갔다. 오칠 역시 벽을 뚫고 나가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려고 하는 엽종의 앞에 섰다.
“으……!”
엽종은 자신이 왜 일어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복부를 강타한 충격은 그대로 혼절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일어섰다. 그리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칠을 마주 쳐다보았다.
“마음에 드네.”
오칠은 웃었다.
인간 같지 않은 아름다움과 아직까지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천마신공의 기운으로 인해 기묘하고 사악하게 보이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맞을 것은 맞아야지.”
한 걸음에 바로 지척으로 다가선 오칠은 그대로 발을 들어 비틀거리는 엽종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쾅- 와르르르!
또다시 벽을 뚫고 날아간 엽종의 신형은 건물 밖, 메마른 바닥을 뒹굴었다.
“각주님!”
두 사람이 싸우며 생겨나는 여파를 피해 밖으로 나와 있던 수뇌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은 엽종을 부축하기 위해 곧바로 달려올 수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들은 초왕성과 격렬한 싸움을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비켜, 이 새끼야!”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양날 도끼를 휘둘러대는 초왕성을 향해 수뇌들은 바락바락 소리쳤다.
그리고 두 명이 이를 악물고 초왕성을 막는 사이에 나머지 수뇌들은 황급히 바동거리며 일어서려는 엽종에게 달려갔다.
“오… 오지 마.”
엽종이 손을 들어올리며 수뇌들을 제지했지만, 수뇌들은 계속해서 달려왔다.
“오지 말라고!”
엽종은 버럭 소리쳤다.
자신에게 다가오면 그들이 위험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수뇌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달려왔다.
“멈춰.”
그런데 그렇게 달려가던 수뇌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음성에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 엽종이 뚫고 나온 벽을 돌아보고는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화르르르!
불의 화신인 양 붉고 푸른 불길에 휩싸인 오칠이 뚫린 벽 안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와직! 와지직!
오칠의 한 걸음 한 걸음에 몸만 빠져나올 정도의 크기였던 벽의 구멍이 쫙쫙 갈라지며 모래성처럼 부서져 나가고, 바닥으로 떨어진 조각들은 오칠의 발에 밟힌 순간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저… 저… 저건…….”
수뇌들은 바들바들 떨며 오칠을 멍하니 쳐다봤다.
초왕성을 막던 자들까지 멍청하게 서서 오칠을 두려운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들은 마치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겁에 질려 옴짝달싹못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끼어들면 가차 없이 찍어버리라고 했잖아.”
느긋하게 걸어 나온 오칠의 사악한 시선이 초왕성에게 향했고, 초왕성은 마른침을 삼켰다.
‘빌어먹을! 저 모습을 볼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으려고 하니, 정말 환장하겠군.’
“죄송합니다.”
“엽종에게 교훈을 줄 생각이니까,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너무도 공손해진 초왕성으로부터 시선을 돌린 오칠은 수뇌들을 쭉 둘러보았다.
수뇌들은 오칠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이렇게 겁을 먹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확실한 것은 절대 입을 열어서도, 움직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군수 정도면 그 정도의 근성은 있어야지.”
오칠은 가슴을 움켜쥐고 일어선 엽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엽종이 그런 칭찬에 기뻐할 리가 없었다. 그는 살기 어린 시선으로 오칠을 노려볼 뿐이었다.
“그래, 눈빛을 보아하니 맞을 준비는 되어 있는 거 같다.”
오칠은 성큼 오른발을 내딛었고, 그의 신형은 두 장의 거리를 단번에 줄이며 엽종의 코앞에 멈춰 섰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오칠의 머리가 앞으로 굽혀지고, 그의 이마는 그대로 엽종의 코를 들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