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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7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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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79화

파계 8권 - 4화

 

 

 

 

 

“척 보면 모르나?”

 

허리에 차고 있는 검집을 손으로 두드리는 야마오의 얼굴에 비웃음이 그려졌다.

 

한데, 공 장문인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잘 모르겠으니, 설명해주었으면 좋겠소.”

 

“…….”

 

야마오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공 장문인은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일까?

 

물론 아니었다. 그는 시간을 끌어서 제자들이 냉정을 찾은 상태에서 싸움에 임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의도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내심을 야마오의 옆에 있던 츠바사(김만해)가 파악하여 야마오에게 귓속말로 전해주었다.

 

“이름도 자자한 구대문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창파가 잔머리를 굴린단 말이지. 크크크! 이거 영광인걸.”

 

야마오는 낄낄거리며 웃었고, 그 웃음은 독룡방의 해적들과 그들에게 복속되어 식구가 된 수적들 전체에 퍼져나갔다.

 

하지만 공 장문인은 얼굴을 붉히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날카롭게 뜨고 야마오 등이 언제 공격할지에 대해서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뿐이었다.

 

‘점창파는 좀 다른데?’

 

츠바사는 구대문파에 속한 문파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에 대해 너무도 많이 들어왔다.

 

한데 점창파는 그가 들어왔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변방 남만에 위치하여 이족과 부대끼며 살면서도, 지금껏 구대문파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것은 그만큼 남다른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츠바사는 야마오에게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야마오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손을 번쩍 쳐들고 소리쳤다.

 

“쓸어버려라!”

 

“와~!”

 

“우와~!”

 

천여 명의 해적들과 수적들이 일제히 뛰쳐나가 백여 명에 불과한 점창파 제자들을 향해 해일처럼 덮쳐들었다.

 

츠악-

 

“큭!”

 

선두에서 달리던 해적 세 명이 공 장문인이 휘두른 검끝에 맞아 가슴이 쫙 갈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휘청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혈천신교?’

 

크나큰 부상을 입어도 죽지 않고 덤벼든다는 혈천신교의 신도들 이야기는 공 장문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모습은 종교를 가진 신도들 같아 보이지 않지만, 공 장문인 등의 점창파 제자들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통해서는 혈천신교 외에 다른 곳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그들은 혈천신교와 싸우기 위해 백천맹으로 향하던 중이 아닌가. 혈천신교가 그들처럼 백천맹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차단하는 계책을 실행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을 노려라! 목을 노리지 못한다면 사지를 잘라서라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어라!”

 

공 장문인은 망설임 없이 그렇게 소리쳤고, 그 역시 즉각적으로 검을 움직여 해적들의 목을 베기 시작했다.

 

점창파 제자들 역시 이미 전해들은 것이 있었는지 곧바로 해적들의 목을 집중적으로 노렸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지를 잘라내는 공격을 전개했다.

 

삭! 사삭! 삭!

 

공 장문인의 검은 정확하고 예리했다. 빛살 같은 검영을 내뻗는 동작 하나 하나에 반드시 해적들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져나갔다. 바로 점창파 장문인의 독문검법인 사일검법(射日劍法)이 펼쳐지는 것이다.

 

“저것이 점창파의 검법이란 말이지?”

 

싸움을 지켜보는 야마오는 감탄을 터트렸다.

 

공 장문인뿐만이 아니라 점창파 제자들 모두 날카롭고 정확한 검법을 구사했다. 쓸데없는 동작을 배제한, 실전적인 공격을 극대화시킨 공격인 것이다. 거기다 꼭 둘씩 짝을 지어서 싸웠다. 이는 점창파만의 독특한 규칙인 점창쌍검(點蒼雙劍)이었다.

 

그 어디에서든 짝을 이룬 동료와 늘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기습을 잘하고 외떨어진 적을 은밀하게 습격하는 이족들의 공격 방식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점창파는 오래전부터 양인합격술로 명성이 자자했다.

 

어쨌든, 고작 백여 명에 불과한 점창파는 실전적이고 약점을 정확히 노려 공격함은 물론, 점창쌍검의 방식으로 천여 명의 해적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야마오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츠바사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오관지옥대(독룡방)는 장강의 수적들을 제압하면서 어느새 규모가 삼천을 넘었고, 그래서 야마오는 몇십 명 정도의 수하들이 죽어나가는 것에 아무런 감흥도 없는지 모르지만, 츠바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점창파 제자들과 싸우고 있는 수하들은 독룡방 때부터 같이 해온 진정한 해적이고, 오관지옥대의 정예였다. 장강을 제압하면서 얻은 수적들이 죽는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저들 해적이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츠바사는 직접 움직이려고 했다.

 

“……!”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꿋꿋하게 버티면서 싸우고 있던 점창파의 제자들도 힘이 빠졌는지 슬며시 밀리는 듯하더니,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나려는 움직임을 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퇴각하라!”

 

공 장문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리고, 점창파 제자들은 곧바로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경공을 전개해서 빠르게 서림 북쪽을 향해 도주했다.

 

“너의 생각대로 되고 있구나.”

 

야마오는 저 멀리 사라지는 점창파의 무리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츠바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까지는 마음을 놓을 상황이 아닙니다. 점창파가 제 생각보다 강하고 냉철하기 때문에 매복하고 있는 곳들을 무난하게 헤쳐 나갈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츠바사는 애초부터 점창파의 제자들을 한 번의 싸움으로 잡을 생각이 없었다. 명색이 구대문파의 하나인데 그렇듯 쉽게 당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규모면에서 압도적인 상황이라 해도 괜히 힘을 앞세워 싸웠다가 전력을 크게 손실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주변 지형을 미리 파악하여 이곳을 시작으로 점창파가 움직일 방향을 예측해 네 곳에다 매복을 준비해둔 것이다.

 

‘하지만 겨우 스물 정도를 잡고, 백여 명이나 죽었으니…….’

 

츠바사는 점창파와의 싸움으로 죽어버린 해적들의 숫자를 보고받으며 기분이 영 편치 않았다.

 

이곳이 이러한데 다른 매복지에선 더 많은 사상자가 생겨날 것이 분명했다.

 

‘할 수 없는 일이지.’

 

매복을 통해 점창파 제자들의 인원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처음 예상보다 사상자가 덜 나게 된다면, 츠바사는 그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서둘러 움직여야겠습니다. 점창파의 이동 속도가 제 예상보다 빠를 수 있으니까요.”

 

츠바사의 말에 야마오는 알겠다며 다음 매복지를 향한 이동 명령을 내렸다.

 

다음 날 오후, 백천맹으로 향하던 백여 명의 점창파 제자들은 그때까지 오관지옥대로부터 총 일곱 번이나 공격을 받았고, 결국 부상당한 장문인을 포함하여 고작 일곱 명만이 살아남아 운남성 대리 점창산으로 울분을 삼키며 되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삼천여 명이나 되는 오관지옥대는 츠바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축하해야 한다는 야마오의 명령으로 주변에 있던 다섯 개의 마을과 중소 문파 둘을 공격한 뒤, 해적들 특유의 방식으로 마음껏 회포를 풀고 나서 이틀 뒤에 배를 타고 호남으로 이동해갔다.

 

 

 

 

 

* * *

 

 

 

 

 

또각. 또각. 또각.

 

새하얀 백설총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움직이고, 오칠은 겨울의 냉기를 뚫고 내리쬐는 태양빛을 올려다보았다.

 

“달리기에 매우 좋은 날씨군.”

 

오칠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서 그를 따르는 초왕성은 오칠과 달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오칠에게 맞은 얼굴에 아직 부기가 가시지 않은 것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혹은 아직도 익숙지 않은 승마술 때문에 엉덩이가 아파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장원에서 나와 여정을 시작한 지 아직 한 식경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엉덩이가 쑤실 리가 없는 것이다.

 

“아까 멍하니 보던 그 여자 때문이냐?”

 

“…….”

 

“누군데?”

 

“…….”

 

“자꾸 여러 번 말하게 하면 죽는다.”

 

“…형수요.”

 

오칠은 대충 짐작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길현초가의 장원에서 초왕성이 그 여자를 보던 눈빛은 단순히 형수를 바라보던 눈빛이 아니었다. 그 눈동자엔 지나간 추억 속의 소중한 일부를 바라보는 애틋함이 있었다. 아마도 젊을 적에 좋아하던 여자였고, 아쉽게도 그녀는 초왕성의 형과 사랑하게 되었다는 그런 종류의 과거일 것이다.

 

초왕성이 그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배화교의 가문들은 철저히 능력으로 수장을 뽑는다) 가문을 나와 낭인처럼 유랑을 하는 것도 다 그러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오칠은 자세한 사정에 대해선 묻지 않았다. 그런 속사정까지 세세하게 물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대신 이제부터 두 사람이 시작할 여정의 중요성을 짧게 설명해주었다.

 

“최대한 빨리 강소성으로 가야 하니까, 뒤처지지 않게 잘 쫓아와.”

 

아련한 추억의 귀퉁이를 돌아보며 멍해 있었던 초왕성은 깜짝 놀란 얼굴로 오칠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강소성에는 왜 갑니까? 산서 동쪽으로 가서 흑천맹과 싸우려고 했던 거 아닙니까? 아버지한테도 일족의 모든 무사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가서 다른 산서 가문들과 함께 흑천맹을 견제하라고 했잖습니까.”

 

“무슨 잔말이 그리 많아. 따라오라면 따라와.”

 

오칠은 더 이상 설명 같은 것은 바라지 말라고 하며 백설총의 옆구리를 가볍게 발로 두드렸고, 백설총은 곧바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젠장! 교주,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거면 설명은 제대로 해줘야 하는 거잖소!”

 

초왕성도 황급히 말의 속도를 높이며 오칠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그 소리에 오칠은 힐끔 뒤를 돌아보며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멍청한 녀석아, 교주라고 하지 말고 형님이라 부르라고 했잖아!”

 

초왕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의 부친이나, 길현초가 사람들에게는 오칠님이라고 부르라 하고, 자신에게는 형님이라는 호칭을 쓰게 하다니.

 

‘차라리 오칠님이라고 하는 게 났지!’

 

하지만 오칠이 그렇게 부르라고 하는데,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알았소, 오 형님! 그보다 좀 천천히 가쇼!”

 

“제대로 안 쫓아오면 죽는다.”

 

“…….”

 

오칠의 장난 같지 않은 경고에 초왕성은 입을 다물었다.

 

바람처럼 달려가는 오칠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초왕성은 엉덩이가 터지도록 정말 미친 듯이 말을 몰아야 했다.

 

 

 

 

 

* * *

 

 

 

 

 

호북 서남쪽 은시의 백천맹.

 

정파인들의 중심지라고는 하지만, 이백여 년 전 이후로 이렇다 하게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할 이유가 없었던 이곳에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현재 호남의 대부분을 수중에 넣고 그들의 세상으로 만든 혈천신교를 상대하기 위해 정파 무림인들이 이곳 은시에 집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점창파와 곤륜파, 그리고 소림사를 제외한다면 거의 팔 할 정도가 도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맹의 높다란 성벽 꼭대기에 올라 저 아래로 보이는 수많은 무림인들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던 천이각 각주 공야정진은 수하의 보고를 받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소림사는 흑천맹의 준동을 견제한다는 이유가 있고, 곤륜파는 워낙에 먼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점창파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군.”

 

청해 서쪽 끝에 위치한 곤륜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점창파도 그리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문파는 아니었다.

 

하지만 소식을 보낸 것이 이미 한 달이 훌쩍 넘었다는 걸 감안할 때 공야 각주가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변방에 있는 문파들일수록 무림에 이름을 날리기 위해 더욱 안달하기 마련, 그건 구파일방의 하나로 이름을 올린 점창파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분명 그들은 무림맹 소집령을 전해듣자마자 은시로 출발했을 것이니,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을 보내 점창파의 상황을 알아보게 해라.”

 

공야 각주는 지체 없이 명령을 내렸다.

 

얼마 전까지는 인원 부족에다, 십장회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충분한 인원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시킬 수 있는 권한까지 있었기에 전혀 망설일 일이 없었다.

 

“존명.”

 

수하는 명령을 전하기 위해 즉각 성벽 아래로 사라졌고, 공야 각주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좋군.’

 

점창파의 일 때문에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의 판단으로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시킬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저 아래로 운집한 수많은 무림인들이 이제 자신의 계획과 지시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다 떨릴 정도였다.

 

‘이제 오 장문인만 내 손에 들어오면 되는데…….’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살짝 가라앉았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천이각을 능률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러 권한을 획득하자마자 공야 각주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오칠에 대한 세부적인 조사와 그를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사와 방법은 둘째 치고, 지금은 오칠의 존재감 자체가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무적 정의파, 즉 그 산하로 예속된 천목보, 철근문 등등의 문파들까지 어느 사이엔가 빈집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천이각의 이목을 극대화해도 무적 정의파와 관련된 사람들을 전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야 각주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천이각의 주도로 백천맹을 무림 제일 세력으로 만든다는 그의 계획이 완성되려면 그 누구보다 오칠이 필요했다. 물론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해보았자 구파의 수장 정도, 혹은 현 백천맹 총수 하후진용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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