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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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77화
파계 8권 - 2화
“당신의 말은 틀리지 않소. 하지만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구려. 우린 호법 가문이지만 곁에서 보필할 교주는 없소.”
“내가 보낸 서신의 대답이 그건가? 날 교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야?”
초왕성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의 부친과 오칠의 대화가 무얼 의미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지어진 표정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게 된 것이 정녕 사실인지 조금 더 지켜보며 확인하기로 했다.
“그렇소.”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초열홍을 보며 오칠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새로울 것도 없어. 지금까지 만났던 세 명의 교군수들도 모두 날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내게 무릎을 꿇었지. 그대 가문도 다를 것은 없어.”
“셋?”
“그래, 셋. 사천에서 둘, 섬서에서 하나. 여기 오기 전까지 세 개의 오행교군을 굴복시키고 왔지. 다른 지역에도 두 개의 오행교군이 있는데 거기도 곧 찾아갈 생각이야. 왜?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흔들리나? 그대도 오행교군 가문들이 호법 가문에 뒤지지 않는 강대한 가문들이었다는 걸 선대로부터 들어보았겠지?”
“…….”
초열홍은 약간 충격이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오행교군이 모두 남아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중 셋이 벌써 오칠을 교주로 인정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칠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내가 물으면 대답해. 물었는데 대꾸도 없으면 짜증나잖아. 알겠어?”
“…….”
초열홍이나 다른 자들은 갑자기 살벌한 표정을 짓는 오칠의 태도에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들 모두는 몸을 흠칫 떨었다. 갑작스럽게 주변 가득 퍼지기 시작한 엄청난 압력 때문이었다.
‘무형지기(無形之氣)?’
보통 사람은 그대로 절명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상상 속의 경지였다. 그러니 이중 누구도 지금 그들을 압박하는 기운이 무형지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어도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알겠냐고 묻잖아-!”
우우웅-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고, 사람들이 흔들렸다. 만인을 제압하는 힘이 담겨 있다는 소리, 천마야소(天魔野嘯)가 펼쳐지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쓴 것이다.
“알… 알겠소이다!”
초열홍은 저도 모르게 떨리는 음성으로 황급히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심지어 초왕성까지 대답했다. 오칠이 내지른 천마야소는 그들에게 근원을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주고, 말을 따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 그거야.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대화하는 맛이 있지.”
오칠은 싸늘함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 서로 간의 일을 해결해보자고 말했다.
“오행교군 가문들은 그대도 알다시피 힘의 맹약에 묶여 있지. 하지만 호법 가문은 아니야. 그냥 교와 교주에 대한 믿음으로 호법 가문을 자처한 것이지. 그리고 그게 전통이 되어 이어졌고. 하지만 지금 그대들을 보면 교와 교주에 대한 믿음을 통해 충성을 받기는 글러먹은 거 같군. 그러니까 다른 오행교군 가문들처럼 힘으로 해결을 보자고. 어때?”
초열홍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평생 지금처럼 긴장한 적은 없었다. 이렇게 겁을 먹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는 평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수이고, 그와 그의 가문을 한 손에 쥐어야겠다고 주장하는, 또 그런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강자였다. 하지만 초열홍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승복할 수 없었다.
“우리가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거부를 한다면 어찌할 것이오?”
“그대와 가문은 거부할 수 없어. 나를 이기고 벗어나는 것 외에는 내가 용납하지 않을 거니까.”
“그 말은?”
“내가 제시한 방법을 수용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
오칠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사실, 평소의 그들이라면 분노하고, 화를 내며 당장에 싸워보자고 난리를 쳐야 했지만, 그들은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오칠이 그들의 가문을 몰살시킬 수 있다면 꼭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해. 그대 가문의 일족들이 모두 한꺼번에 내게 덤빈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어떤 방법이든 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해서 날 이겨보라고. 그러면 해방이다. 앞으로 배화교는 길현초가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 이 말이야.”
초열홍은 심각하게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힘으로 당신에게 대항해서 자유를 얻어 보겠소.”
“그래야지. 이제야 호법 가문의 수장처럼 보이는군. 길현초가는 예전부터 강단 있는 일족이었지. 그래서 이백여 년 전의 싸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고.”
오칠의 머릿속에 있는 칠 대 교주의 기억대로라면, 초가 호법 가문은 그 무명이 오행교군이나 배화교에서 가장 강했다는 오대 가문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가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대 호법 가문 중에서도 수장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백여 년 전의 싸움에서 멸망한 세 가문과 달리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기다려야 하나?”
오칠은 어떤 방법이든 시작할 거면 서두르라고 손짓했다.
“시간은 필요 없소. 지금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으니까.”
“흠, 그럼 여기 있는 인원으로만 내게 덤비겠다는 건가?”
“아니오.”
“그럼?”
“저 아이 혼자서 당신에게 도전할 것이오.”
오칠의 시선은 초열홍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표정이 좋지 않은 초왕성이 있었다.
* * *
초왕성은 부친의 손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십수 년 만에 돌아온, 아니 잠시 들른 아들에게 너무 과한 일을 시키시는 거 아닙니까? 최소한 제 의향 정도는 물어야 하잖아요.”
초왕성은 그의 형과 달리 그리 말을 잘 듣는 아들이 아니었다. 아니, 그는 그의 부친과 성격상 맞지가 않았다. 외모나 성격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서로가 맞지 않는 그런 부자지간인 것이다.
“이 아비의 말을 거역하겠다는 거냐?”
초열홍은 아들의 반발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인상이 일그러진 초왕성은 손을 내저었다.
“거역이 아니라, 그냥 싫습니다. 제가 왜 쓸데없이 생고생을 합니까.”
초왕성은 고개를 완전히 돌려버렸다. 자신은 이곳에서 방관자의 입장이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네가 이 가문의 사람임을 부인하는 것이냐?”
“제가 초가 성이 아니라는 게 아니잖습니까. 다만, 이곳에는 저 말고도 싸울 사람이 많은데 왜 하필 저냔 말입니다. 아버지도 있고, 가주인 형님도 있고, 여기 만정이도 있고, 아니면 아버지 명령이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 수 있는 장로들을 부르면 되잖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가문의 무사들을 몽땅 불러서 떼거리로 덤비게 하십시오. 어떤 방법이든 수용하겠다고 하잖습니까.”
초왕성은 그만 귀찮게 하라는 듯 눈까지 감아버렸다. 그러자 초열홍의 관자놀이에 살짝 핏대가 섰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애써 꾹 참는 것이 분명했다.
“후!”
초열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우리 가문이 비겁한 싸움을 했으면 좋겠느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시키십쇼.”
“네가 가장 적임자다.”
“……?”
“네가 이 가문에서 가장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내보낼 수가 없다.”
눈을 번쩍 뜬 초왕성은 놀란 얼굴로 그의 부친을 바라봤다.
초열홍은 자신이 한 말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듯 담담하게 아들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가주이자 형님인 초유강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부친의 말에 동감한다는 얼굴로 조금의 불만이나 당혹감도 없이 초왕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네가 꼭 나서주어야겠다는 표정을 짓고 말이다.
“이거 참.”
초왕성은 부친과 형님의 시선이 정말 부담스럽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내젓고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슬며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말 위에 앉아서 그를 보고 있는 오칠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무래도 나와 한 판 붙어야 할 것 같소.”
오칠은 웃었다.
“아우를 처음 봤을 때부터 오늘 같은 일이 있을 것을 예감했지.”
“역시 내가 길현초가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던 거요?”
“내게 정보를 주는 수하가 천부신군은 길현초가의 사람이라고 그러더군. 그리고 길현초가는 유일하게 남은 배화교의 호법 가문이라는 말도 했고.”
“참 이목이 밝은 수하를 두셨구려. 그럼 그동안 날 가지고 논 거였소?”
“아니. 난 그냥 여행을 했고, 아우가 날 쫓아온 거지.”
“그렇구려. 내가 자처해서 쫓아왔고, 내가 멍청해서 당신의 아우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지. 크크크! 재밌네.”
초왕성은 그렇게 웃었다.
그리고 짐을 한쪽으로 던져놓고, 등에서 양날 쌍부를 빼들었다.
“그래도 화가 나는구려. 이 기분을 어떻게든 풀어야겠소.”
“형님에게 화를 내다니 못된 아우구만. 그럼 난 형님으로서 아우의 나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야겠군.”
오칠은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백설총의 옆구리를 토닥여 내원의 구석으로 물러나게 했다.
“이 형님은 누굴 혼찌검을 할 때 인정사정이 없는 사람이니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거야.”
“당신이야말로 조심해야 할 거요.”
“이제는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않는군. 정말 단단히 혼을 내주어야겠어.”
오칠은 등에서 묵철곤을 빼들었다. 그리고는 묵철곤을 감고 있던 천을 벗겨내자 봉을 타고 양각되어 있는 세 마리의 용이 번쩍이는 묵광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현혹시켰다.
“그때는 천으로 싸여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매우 좋은 곤이구려.”
초왕성은 진정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에 잡은 쌍부를 더욱 꽉 움켜잡았다.
“광명우사의 가문이 매우 뛰어난 대장장이들의 가문이지. 이 묵철곤은 그들 중에서도 최고 실력의 대장장이인 광명우사가 직접 완성시킨 거야.”
“들은 적이 있소.”
초왕성은 묵철곤이 매우 뛰어난 무기임을 알고는 눈빛을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 실력뿐만이 아니라 좋은 무기까지 가진 상대는 결코 쉽게 이길 수가 없다는 걸 알고 더욱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
“후읍!”
초왕성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우웅-
순간, 그의 옷깃이 부풀어 오르고, 그의 양손에 잡힌 양날 도끼가 부르르 떨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체할 것 없이 그의 가문 비전의 건양진력(乾陽眞力)을 힘껏 끌어올려 단번에 승부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나도 시작해볼까.”
초왕성이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며 성큼성큼 걸어오자, 오칠은 목을 좌우로 까딱이고는 왠지 사악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화아아-
순간, 오칠의 머리칼이 하늘로 곤두서고 온몸이 붉고 푸른 기운에 넘실거렸다. 그리고 전신에서 피어난 기이한 열기가 대지를 감싸고 있는 싸늘한 기온을 단번에 날려버릴 듯이 끓어올랐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초열홍은 오칠의 모습을 보며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감동, 두려움, 희열… 복잡한 여러 감정이 초열홍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휘돌았다.
천마신공은 선대로부터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배화교 최강의 신공이었다. 아니, 신공 자체로 무공이라 했으니, 최고의 무공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 무공을,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전설의 무공을 눈앞에서 목도한 그의 기분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제길!’
한 걸음씩 오칠을 향해 다가가고 있던 초왕성은, 지켜보는 초열홍이나 초유강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는 다른 어떤 감정을 배제한 완전한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였다. 천양표국에서 느꼈던 그 두려움이 또다시 그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겁먹지 마, 병신 같은 자식아! 내가 누구냐! 난 무림이 인정한 천부신군이란 말이다!’
두려움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초왕성은 속으로 자신을 욕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등줄기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오칠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나갔다.
“제법인데!”
오칠은 웃으며 말했다.
초왕성은 이를 악물고는 그대로 땅바닥을 박차며 오칠의 얼굴을 향해 양날 도끼를 연달아 내리쳤다.
슁- 슁-
공간이 갈라지고, 오칠의 얼굴로 양날 도끼가 번개처럼 내리쳐졌다.
쩌저정- 쩡-
굵직한 충돌음이 터지고, 초왕성은 날아가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공중으로 밀려 올라갔다. 오칠이 맞받아 휘두른 묵철곤에 실린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오히려 튕겨진 것이다.
“하압!”
공중으로 밀려난 초왕성은 힘찬 기합과 함께 몸을 회전시키고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양팔은 일자로 세워져 오칠을 향해 무겁게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