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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7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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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76화

파계 8권 - 1화

 

 

 

 

 

제72장. 길현초가(吉縣超家)를 움켜쥐다

 

 

 

 

 

휘잉-

 

길현초가(吉縣超家)의 정문 앞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실린 추위를 느끼고 뒤쪽의 경비무사들은 잘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들 외에 사람들은 그런 추위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듯 서로 엇갈린 시선만을 주고받았다.

 

골치 아픈 표정을 짓는 초왕성, 그를 작은 공자님이라고 부른 상급 경비무사,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서 별다른 표정이 없는 오칠까지, 세 사람은 그렇게 기묘한 분위기에 휘감긴 채 침묵을 공유했다.

 

“저분이 길현초가 이백 년 내 제일무재라고 하던 작은 공자님이야?”

 

“작은 공자님이 저런 분이셨구나. 역시 외모만으로도 힘이 팍팍 느껴지네.”

 

“그러게. 가주님도 무공에서만은 작은 공자님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봐.”

 

추위에 몸을 웅크리던 무사들은 무거운 침묵을 감내하기가 힘이 드는지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아주 자그맣게 이런 저런 말을 속삭였다.

 

“작은 공자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작은 공자님의 심부름을 하곤 하던 유막정입니다.”

 

고요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상급 경비무사 유막정도 마찬가지였는지 잔뜩 흥분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마도 심부름을 하던 시절이 나쁘지 않은 기억이었는지 유막정의 얼굴은 매우 밝았다.

 

시선을 외면하고 있던 초왕성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생각보다 일찍 등장했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유막정이라는 것이 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기억하지. 내가 가문을 떠나 있던 시간이 십 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너는 날 잊지 않았구나.”

 

“제가 어찌 작은 공자님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완전히 돌아오신 겁니까?”

 

“아니다. 여행 중에 잠시 들렀다.”

 

“아… 예.”

 

유막정은 실망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밝게 웃으며 오칠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일행이십니까?”

 

초왕성의 일행이라면 귀한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초왕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내젓자 다시 긴장감을 드러냈다.

 

“무한의 오가가 가주를 만나러 왔다고 전해라.”

 

유막정과 초왕성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오칠은, 자신을 향해 이목이 집중되자 용건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막정의 얼굴이 이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위로부터 미리 언질을 받았군. 천양표국도 그러더니, 우리 가문도 이자와 뭔가 연관이 있는 건가?’

 

초왕성은 도대체 오칠과 자신의 가문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가 가문을 떠나 있던 시간이 매우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천양표국 때처럼 그의 가문이 오칠과 싸워야 할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혹시 무적 정의파와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는 것일까?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유막정은 다른 무사들에게는 자리를 지키라 말을 하고 안으로 사라졌다.

 

‘물어봐야 하나?’

 

초왕성은 고민했다. 천양표국과의 일을 물었을 때 오칠이 나중에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 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나중이 바로 지금을 말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고, 십수 년 만에 가문을 찾아와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끼어드는 것도 보기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에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래.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 이자가 가문에 좋지 않은 짓을 한다면 그때 행동해도 늦지는 않지. 가만, 그런데 내가 길현초가 사람임을 알고도 이자는 왜 놀라지 않지? 내 출신 가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을 텐데.’

 

초왕성은 가문을 떠난 뒤로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던 길현초가의 무공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직계 비전으로 전해지는 무공만을 사용한 데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출신을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낭인으로 무림을 주유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길현초가의 사람임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초왕성은 오칠의 뒷모습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초왕성의 시선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할 텐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슴에서 뭉클거리며 피어나는 의심과 의문들을 달리 해결할 수가 없었다.

 

‘응? 저 녀석은…….’

 

안으로 들어갔던 유막정과 함께 정문으로 나오고 있는 사람은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전에 알고 있던 모습보다 확연하게 나이가 들어 있기는 했지만, 초왕성은 그가 사촌 동생인 초만정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한데, 그의 사촌 동생은 초왕성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는 것으로 십수 년 만의 재회를 마무리하고 곧바로 오칠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님께선 저를 따라오십시오.”

 

오칠은 알겠다며 초만정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초왕성은 울화가 치밀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렇게 오랜만에 가문으로 돌아왔는데 사촌 동생에게 홀대를 받고 있으니 어찌 화가 나지 않을까.

 

“야, 인마! 난 눈에도 안 보이냐? 오랜만에 사촌 형님을 봤으면 얼른 달려와서 짐이라도 받아주지 못할망정, 싸가지 없이 눈짓으로 인사를 끝내!”

 

초왕성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호통을 쳤다.

 

‘저 불같은 성격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시군.’

 

초만정은 내심 혀를 차며 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예전에 초왕성이 알고 있던 사촌 동생 초만정이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가문의 총관직이란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선적으로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 책무가 있었다. 그래서 초왕성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것인데, 초왕성은 그런 초만정의 눈짓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마구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동생의 체면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형님이라니까.’

 

할 수 없이 초만정은 초왕성을 달래기로 했다.

 

그런데 초만정보다 오칠이 먼저 입을 열어, 그것도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을 함으로써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어허! 어디 형님의 일에 아우 된 자가 함부로 나서서 그리 경박하게 구는 것이냐! 네가 하도 간절하게 청을 하여 아우로 받아들일 때 내가 뭐라고 당부를 하더냐?”

 

조금 전까지 화가 치밀어 기세등등하기만 하던 초왕성은 갑자기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초만정 등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초왕성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오칠은 그런 초왕성을 성난 눈으로 바라보며 다그쳤다.

 

“어서 대답하지 않고 뭘 해!”

 

“허흠, 흠, 에… 그러니까… 혀… 형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고, 해… 행동에 신중을 기함은 물론, 후… 훌륭한 무림인이 되도록 최… 최선을 다하라 했소이다.”

 

초왕성은 이를 악물고, 억눌린 음성을 토해내듯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리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 어찌 그런 망발을 하느냐!”

 

오칠의 호통은 이후로도 한참을 더 이어졌고, 초만정을 비롯한 무사들은 도대체 이게 어찌 돌아가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오칠과 초왕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런 염병할 일이!’

 

초왕성은 완전히 푸르죽죽하게 얼굴이 변해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촌 동생과 무사들의 어이없어 하는 시선을 도저히 얼굴을 들고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형님의 얼굴에 똥칠하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는 더욱더 생각을 깊이하고, 절대 경거망동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알겠냐?”

 

“…….”

 

“알겠냐고 묻지 않느냐!”

 

“…알겠소.”

 

초왕성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조용히 침묵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아직까지 그를 향해 이상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초만정 등에게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는 성난 눈빛을 보냈다.

 

“안으로 안내해라.”

 

오칠은 조금 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담담한 얼굴로 초만정에게 손짓을 했다.

 

초만정은 가슴에서 치고 올라오는 의문이 너무나 많았지만, 알면 다쳐! 하는 초왕성의 살기 어린 눈빛과 오칠을 안으로 안내해야 하는 그의 책무를 떠올리며 혼란스런 마음을 애써 안으로 감추었다. 그리고 무사들에게 문을 닫고 방문객을 받지 말라는 명을 내린 뒤에, 여전히 말에서 내리지 않는 오칠과 말을 정문에 묶어놓고 뒤를 따르는 초왕성을 안으로 안내해 들어갔다.

 

 

 

 

 

* * *

 

 

 

 

 

쌀쌀한 겨울 날씨 때문에 앙상하기만 한 나무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는 외원을 지나, 줄기가 바짝 말라 있어 볼 것이 없는 화원을 거쳐 초만정 등은 내원에 당도했다. 내원에 당도할 때까지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이 역시도 뭔가 지시가 내려진 것이 분명했다.

 

“가주님, 손님을 모셔 왔습니다.”

 

초만정이 내원의 중앙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건물 안쪽으로 약간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자 곧 안으로 모시라고 하는 장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으로 드시지요.”

 

“나오라 그래.”

 

“예?”

 

초만정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닐까, 하는 눈으로 오칠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오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상의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가주님께서는…….”

 

“오 형님은 고집이 쇠심줄 같은 사람이야. 형님보고 그냥 나오라고 그래.”

 

이곳에선 그래도 초왕성이 오칠의 성정을 가장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떤 말로도 오칠을 설득할 수 없음을 알렸다.

 

“하지만…….”

 

초만정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오칠이 어떤 이유로 이곳을 방문했던지 간에 주객(主客) 간에는 예의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오칠의 행동은 너무나 오만하고 방만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내쫓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칠이 누구이건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덜컹.

 

그런데 내원 건물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청수한 장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비해서 제법 몸집이 크고, 언뜻 보면 생김새가 초왕성과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오칠은 그가 바로 길현초가의 가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님을 안으로 모시는 것이 예의라 여겨 안으로 청한 것인데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시는구려.”

 

길현초가의 가주 초유강은 초왕성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칠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젠장! 사람을 무시하기로 아주 작당들을 하셨나 보군.’

 

초왕성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오칠의 방문이 가문에 꽤나 심각하고 중한 일이라는 걸 대략 눈치 챈 초왕성은 속사정을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그냥 죽은 시체인 양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날도 추운데 그만 고집을 접으시오.”

 

초유강이 정중하게 손짓을 해 보이며 다시 오칠에게 안으로 들어올 것을 청했다.

 

하지만 오칠은 말 위에서 움직일 생각도 않고, 입가를 살짝 비틀어 미소를 지었다.

 

“어른이 왔으면 아랫사람들이 얼른 뛰어나와 맞이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

 

초유강의 얼굴이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애써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명확히 구분지어지지도 않은 일을 두고 그리 말을 하니 참으로 난감하구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이렇게 밖으로 나왔으니 된 것이 아니오?”

 

초유강은 자신이 좋게 좋게 생각해서 이해할 테니 그만 고집부리고 들어와서 대화를 나누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직 안에는 사람이 있잖아.”

 

초유강의 얼굴에 약간의 당혹스러움과 놀라움,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연이어 지어졌다. 그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버럭 소리쳤다.

 

“오만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구나! 감히 누구보고 아랫사람이라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이냐!”

 

초유강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오칠과 사생결단이라도 낼 것 같은 기세였다.

 

생김새는 초왕성과 달리 청수하고 잘생겼지만, 역시 형제지간임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그만하거라.”

 

뭔가 크게 일이 터질 것 같던 분위기를 진정시킨 이는 초유강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구의 노인이었다.

 

그 전체적인 모습이 초왕성이 조금만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딱 그렇게 보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왔으니 된 것이오?”

 

노인은 바로 길현초가의 전대 가주이며, 초유강과 초왕성의 부친인 태상 가주 초열홍이었다.

 

오칠이 아직 안에 있는 사람이라 말한 것이 그였고, 초유강이 분노한 것도 그의 부친을 아랫사람이라 칭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야 그렇지만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진작 마중을 나왔으면 좋았잖아. 다른 곳들은 내가 왔다니까 윗사람들이 앞장서서 후다닥 뛰어나오던데, 교주를 곁에서 보필했다고 하는 호법 가문의 수장이 이래서야 쓰겠어?”

 

‘호법 가문?’

 

오칠의 말을 들은 초왕성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가 호법 가문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도 가문의 직계로서 그 단어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어를 오칠의 입을 통해 들었다는 것은 그의 표정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생각하니 이상한 것은, 오칠이 그의 가문을 방문한 순간부터 갑자기 오만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마치 천양표국을 방문하고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처럼 말도 딱 할 말만 하고, 상대가 누구건 가리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반말을 했다. 심지어 칠십이 넘은 그의 부친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사촌 동생을 비롯하여 그의 부친까지 이러한 오칠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오칠의 건방진 말투는 전혀 문제 삼지도 않고서. 초왕성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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