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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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72화
파계 7권 - 22화
“정말 걱정이에요.”
육 장로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뭐… 뭐가 말인가?”
“정파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에 콕 박혀서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지나쳐 가면 후방이 위험하니 어쩔 수 없이 불리함을 무릅쓰고라도 공격해야 하잖아요.”
“걱정이 되겠지. 암, 걱정이 되고말고!”
육 장로는 방금 전 냉음설이 정파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세웠는지, 그리고 흘료족이 습지에서 익숙하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냉음설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해요.”
“안심이 된다고?”
“예. 우리에겐 육 장로님이 계시니까요.”
“태산여왕은 정말 내가 있어서 안심이 되는가?”
육 장로의 주름살 가득한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 냉음설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쌓은 경험이 녹록치 않다고 해도 사내란 이렇게 다 똑같았다. 욕망을 탐하는 마음에 이성이 뒤덮이고, 냉철한 사고는 사막처럼 메말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속내와는 달리 냉음설은 얼굴에 달콤한 미소를 머금고, 농염한 몸매는 더욱 감질나게 뒤틀었다.
“전 육 장로님만 믿고 있어요. 지금까지 쭉 그래오셨듯이 이번 싸움에서도 육 장로님이 적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어버리실 테니까요. 제 말이 맞지요?”
“암! 태산여왕 앞에서 오금을 펴지 못하도록 내 혈홍쇄혼조(血虹碎魂爪)로 정파 놈들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야!”
“역시 육 장로님이세요! 언제나 제 마음을 이렇게 뿌듯하게 만드신다니까요!”
냉음설은 두 손으로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꽉 움켜잡으며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당연히 육 장로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금방이라도 냉음설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그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냉음설은 알맞게 달궈주고, 적당한 시점에서 빠져야 할 때를 잘 아는 여우같은 여인이었다.
“전 이제 수하들이 육 장로님을 잘 보좌할 수 있도록 준비시킬게요.”
냉음설은 그윽한 눈길로 육 장로를 바라보며 태산지옥대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고, 육 장로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한숨을 내쉬며 뒤로 벌러덩 누웠다.
한 시진 뒤.
준비를 마친 칠백여 교인들을 앞세운 태산지옥대 삼백여 무사와 육백을 훌쩍 넘는 도시지옥대(흘료족) 전사들은 정파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류양의 습지로 전진해나갔다.
* * *
“가당치도 않은 소리구나!”
만화곡 곡주 녹음월은 그녀의 딸이 전한 노백의 생각을 듣고는 손을 크게 내저으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주변의 모든 정파무인들이 놀란 시선을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가장 놀란 것은 역시 녹선향이었다. 곡주의 큰 소리는 분명 노백에게도 들렸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 어머니, 소리를 낮추어 말씀하세요.”
“어머니라니. 내가 지금 만화곡의 곡주로서 이 자리에 있음을 네가 잊고 있는 것이냐!”
“죄송해요. 제가 실언을 했어요. 하지만 곡주님이 그렇게 흥분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소리를 높이시면 노 대협께도 실례가 되는 일이구요.”
“가당치 않은 일을 가당치 않다고 말하는데 무엇이 실례란 말이냐!”
곡주는 마땅치 않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녹선향에게 말했다.
여전히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 곡주를 보며 녹선향은 한숨을 쉬었다. 작게 속삭인다고 해도 고수인 노백이 마음만 먹으면 들을 수 있을 텐데, 이렇게 크게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제는 노백에 대한 미안함을 어찌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곡주께서는 조금 차분하게 응대하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가지런하게 기른 수염이 매우 잘 어울리는 장년의 남자가 두 모녀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른 문파의 수장들은 감히 개입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수장들보다 용감하기 때문에 끼어들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만화곡의 곡주와 소곡주를 차분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반혈천신교 연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삼월보 보주의 아우이며, 만화곡의 총호법인 신담형.
하지만 그보다는 곡주 녹음월의 부군이며, 소곡주 녹선향의 친부라는 신분으로 더 잘 알려진 남자였다. 그러니 냉랭한 표정을 하고 있던 곡주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지고, 화난 얼굴의 녹선향이 한풀 꺾인 기세로 고개를 숙인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역시 드센 망아지를 길들인 정심공자(正心公子)구만!’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문파의 수장들은 내심으로 감탄하며 웃음 짓고 있었다.
드센 망아지란 이십여 년 전, 강남제일미(江南第一美)로 칭송되던 곡주 녹음월을 말하는 것이고, 정심공자란 젊을 적에도 성정이 부드럽고, 정대한 기상의 청년이었던 신담형에게 붙여진 별호였다.
당시엔 소곡주였던 녹음월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오만하고 겁이 없는 여고수였는데, 호남 근방에서나 장래가 촉망받는 청년 고수였던 신담형이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던 녹음월을 굴복시키고, 아내로 맞은 이야기는 아직까지 동년배의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 내막이 알려지지 않아서 더욱 신비스런 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내 생각에는 노 대협의 조언도 그냥 무시해버릴 일은 아니라고 보오.”
“여… 총호법!”
여보라고 부르려다가 바로 조금 전에 자신이 녹선향의 실언을 지적했음을 떠올린 곡주는 재빨리 정식 호칭으로 남편을 불렀다.
하지만 그 음성에는 왜 자신의 편을 들지 않고, 녹선향을 두둔하고 있느냐는 듯한 원망 어린 치기의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남편의 말을 듣고 그녀의 표정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의미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엔 안타깝게도 노 대협의 조언을 숙고할 시간이 조금도 없소. 노 대협의 우려가 설혹 맞는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최선을 다해서 적들을 맞아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오.”
“지당하신 말씀이에요. 그러니 괜한 말로 수하들의 사기를 죽이지 말고, 지금과 같은 자신감으로 적들을 맞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곡주가 남편의 설명에 덧붙인 말을 듣고서 문파의 수장들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담형의 말대로 그들에게 대안은 하나밖에 없었다. 설사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그런 지적을 받았다고 해도 별다른 방법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무공만 아는 무인이었지, 병법에 통달한 장수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너도 그 점에 대해서 더 이상 따지지 마라.”
“예, 곡주님.”
녹선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그들 모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곡주에게 화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명원이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구요.’
녹선향은 그런 노백을 예의 없게 대하는 어머니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딸이 출신도 명확하지 않은 인물과 가까이 지내는 걸 못마땅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어떤 은혜를 베푼 대상이라 해도, 고마움보다는 미움이란 감정이 사람의 마음을 더욱 빠르게 현혹한다는 걸, 특히 자식과 관련한 일에는 더욱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녹선향은 아직 이해할 만한 때가 아닌 것이다.
“어딜 가려는 거냐?”
“노 대협께 설명해드려야 하잖아요.”
녹선향은 곡주의 찌푸린 얼굴을 모른 척하며 노백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몸만 자랐지, 저렇게 철이 없어서야!”
곡주는 수장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 빠져나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녹선향이 풍족하고, 편안한 길로 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저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성정도 모나지 않게 바르고, 무림의 여인으로서도 절대 부족한 점이 없는 그녀의 딸이 누가 봐도 어울리는 짝을 만나 혼인했으면 싶었던 것이다.
“선향이가 당신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어느새 다가온 신담형이 곡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약간 당황한 듯 곡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선향이가 막강한 배경을 가진, 혹은 무림 전체에서도 촉망받는 기재를 만나 만화곡의 위상을 높였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하는 말이오.”
“…….”
“나 같은 남자와는 다른 그런 짝을 만났으면 하고 말이오.”
신담형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지만, 왠지 그 미소에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말도 안 돼요!”
곡주는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난 지금까지 당신을 만나 혼인하게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어요. 당신의 배경이나 능력을 보았던 것이 아니라, 당신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난 늘 행복했다구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내게 딸을 통해 가문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속물이라고 말하는 건가요!”
“나도 지금까지는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소. 하지만 당신이 이유 없이 저 노백이란 사람을 싫어하는 걸 보고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구려.”
“…….”
곡주는 대꾸하지 못했다.
“왜 그를 싫어하는 것이오? 그는 호북 무한 최대의 거파로 부상한 무적정의파 장문인의 의아우요. 물론 무적정의파가 개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성향도 불명확하다고는 하지만 그 기본 구조는 오랜 전통의 천목보고, 장문인의 무공은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로 강하다고 하오. 그런 인물의 의형제인 노 대협이라면, 그것도 명원이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다가 무공까지 매우 높다는데 무엇이 그리 부족하게 보이는 것이오.”
“여보, 난 그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변명하려고 했던 곡주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을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말 그대로였다. 그는 노백이 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딸이 조금 더 좋은 가문의 후기지수와 만나서 그녀가 앞으로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할 만화곡의 앞날에도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 있었다.
곡주는 남편을 사랑했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혼인을 했기에 후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지만, 그래도 딸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더 얻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입장으로서, 한 문파의 수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욕심이었다.
“선향이에게 맡깁시다. 그 아이는 영리한 아이요. 부모인 우리가 자식의 선택을 믿지 못한다면, 세상 그 누가 선향이를 믿을 수가 있겠소.”
“…….”
곡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수긍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편의 말대로 그냥 딸을 믿고, 그녀의 선택을 지켜보자고 결심한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이 치솟아 오르는 욕심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군요. 그래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것 같아요.”
신담형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내가 당신을 만난 그 순간부터 그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모든 욕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요. 당신을 만나고, 사랑하게 된 것만으로도 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얻게 된 것이니까 말이오.”
신담형은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곡주를 품에 꼭 안았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는 두 사람의 포옹은 그리 길지 못했다. 적들이 올 만한 방향으로 가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사들이 다급하게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 * *
“뭐라고!”
경계 무사의 보고를 받은 수장들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적의 규모는 많아야 팔백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숫자는 구백이 넘으니, 지리적 이점과 함께 충분히 승산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계 무사는 족히 천이 넘는다고 한다. 수장들로서는 당혹스런 보고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확실한 건가?”
“예. 분명히 제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수장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곡주는 그런 수장들에게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 수하들의 시선을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수장들은 어두워진 얼굴을 밝게 펴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곡주는 수장들의 그런 표정을 보며 내심 한숨을 쉬고는 무사에게 다른 것을 물었다.
“이곳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늦어도 한 식경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늦어도 한 식경이면, 그보다 훨씬 빨리 당도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적이 코앞으로 왔습니다. 모두 정해진 곳에서 준비하십시오.”
이곳 문파 연합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는 곡주의 말에 수장들은 다급히 그들 문파의 무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선향이는 그냥 노 대협과 있게 합시다.”
녹선향을 부르려고 하는 곡주를 남편이 말렸다.
곡주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녹선향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눈으로 무공 실력을 확인한 것이 아니기에 아직까지 믿음이 가지 않는 노백이 딸의 곁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차피 만화곡의 무사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곡의 무사들이 그녀를 잘 지켜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곡주, 이제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읍시다. 분명 힘든 싸움이 될 것이고,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견뎌낼 수 없는 혈전이 될 것이니까 말이오.”
“그래요.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요.”
만화곡의 곡주와 총호법은 다른 이들처럼 이제 곧 벌어질 싸움에 대비하며 마음을 냉철하게 가다듬기 시작했다.
* * *
“헤헤헤! 저기들 모여 있군.”
교자 위에 느긋하게 누워 있던 육 장로가 일어나 앉으며,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백여 장 앞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손에 든 무기는 확연하게 보였고, 싸움을 준비하는 기세는 이곳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손이 근질근질하군.’
그는 냉음설의 기묘한 응원에 힘입어서 매우 들떠 있는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정파 무림인들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가슴을 찢어발겨야 이 흥분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마음을 다독이고 있어야 했다. 냉음설의 계획대로 환혼단과 금령단을 복용하여 환각에 빠져 있는 새로운 교인들이 먼저 나가서 나무와 짚을 깔고, 당혹스러워하는 정파인들을 공격하여 더욱 당황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시작해.”
저 옆쪽에 서서 전방을 싸늘하게 바라보던 냉음설이 술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술사는 음습한 음성으로 알아들지 못할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손에 든 단지를 들고 앞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칠백여 교인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 단지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연기가 어떤 영향을 주는 모양인지 교인들이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실실거리기 시작했다.
“가라! 아리만께서 함께하실 것이니, 저 무지몽매한 인간들에게 믿음을 갖지 못하는 자들이 겪어야 할 잔혹한 공포를 전하라!”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술사의 외침이 교인들 사이를 메아리치고, 교인들은 아리만을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통역.”
“예, 태산여왕님.”
“도시대왕에게 중심을 맡아달라 전하라.”
냉음설의 지시를 받은 통역 무사는 재빨리 도시대왕(흘료족 족장)에게 달려가 그녀의 말을 전했다.
도시대왕은 냉음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몇 가지의 간단한 손짓으로 전사들에게 명령했다. 도시대왕의 명령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모든 전사들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무리의 중심으로 이동하여 정파인들이 운집해 있는 정면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태산지옥대는 둘로 나눠 좌우로 선다.”
절반의 무사들은 그대로 냉음설의 뒤에 남고, 나머지는 육 장로의 교자 뒤에 섰다.
“크아아~!”
“카아아~!”
함성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기괴한 고함이 저 앞에서 들려왔다.
정파인들에게 암흑의 신 아리만의 공포를 알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교인들이 달려가면서 내지르는 고함이었다.
“죽여라.”
냉음설은 짧게 명령을 내렸고, 그녀의 음성은 모든 이들에게 또렷이 전달되었다.
“크헤헤헤! 너희들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거라.”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육 장로였다.
언제 시작하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그는 교자를 메는 여인들에게 명을 내리고는, 그대로 교자를 박차고 날아올라서 서너 장씩 쭉쭉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정파인들과 격돌하려는 교인들의 뒤쪽에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