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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68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5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168화

파계 7권 - 18화

 

 

 

 

 

콰직― 와직― 콰지직― 와자작―

 

검이 박살나고, 도가 박살나고, 도끼가 박살났다.

 

“끄악!”

 

“내 팔―!”

 

“으아악!”

 

“눈! 눈이 안 보여―!”

 

박살난 무기의 파편들이 산적들에게 날아가 박혀들고, 피와 비명이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몇 명의 산적은 팔과 머리가 초왕성의 양날 도끼에 깨끗이 잘려나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초왕성은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질렀다.

 

분노와 원한이 가득한 음성은 산적들이 아니라, 마치 오칠에게 말하는 듯했다. 스스로 최면을 걸어 꾹꾹 인내하고 있었지만, 속 깊은 곳에는 울분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울분을 눌러놓았던 돌을 산적들이 본의 아니게 치워버렸고, 지금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생긴 것이다.

 

“나 초왕성이야! 나 초왕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오늘 뼛속 깊이 알게 해주겠다, 이 버러지 같은 산적 새끼들아―!”

 

우웅― 우우웅― 우우웅―

 

초왕성을 천부신군이라 불리게 만든 무공 중에 하나인 건양진력(乾陽眞力)의 막강한 내공이 응축되며 양날 도끼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파팍― 파파팍―

 

도끼날에서 뿜어지는 시퍼런 기운이 딱딱하게 언 땅을 너무도 쉽게 파헤쳐버리며 사방으로 파편을 튀겼다.

 

“으라차차―!”

 

초왕성은 그의 거구를 공중으로 띄우며, 너무도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는 산적들 무리로 뛰어들었다.

 

스아앙―

 

공간이 매끄럽게 잘리는 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 명의 산적이 가슴이 쫙 갈라진 채 쓰러지고, 다시 그 옆에 있던 산적이 허리가 두 동강 나 즉사해버렸다.

 

“괴… 괴물이다!”

 

“으아~!”

 

“도망치자!”

 

산적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맞상대한다느니 하는 생각을 하는 산적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초왕성의 잔혹한 살육은 멈추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산적들을 분사시켜버리고, 도망치는 산적들까지 쫓아가 두 쪽으로 잘라버렸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조용한 산길은 그렇게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그 참담한 살육이 훑고 지나간 중심에서 눈이 시뻘겋게 변한 초왕성이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그의 주위에는 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십여 명이 간신히 도망치고, 나머지는 모두 처참한 시체가 되어 도살된 가축의 고깃덩이처럼 산길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

 

거친 숨결과 함께 온몸에서 발산되고 있던 살기가 조금씩 사그라지고, 초왕성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벌어먹을!”

 

주변을 쓱 둘러본 초왕성은 눈을 꽉 감고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 흥분하지 않으려고 했다. 평소에도 살기를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가문을 나와 세상을 주유하는 것도 너무 살기가 강해서 정파를 지향하고 있는 가문에 피해를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난리를 피운 것이다.

 

‘빌어먹을 놈 때문에!’

 

초왕성의 시선이 뾰족한 화살이 되어 오칠에게 돌려졌다.

 

“……!”

 

한데, 오칠은 백설총 위에 있지 않았다.

 

오칠은 조각조각 잘려나가 흩어진 시신들을 주워들고 있었다.

 

“뭐 하냐?”

 

초왕성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칠은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초 형은 이 시체들을 그냥 두고 갈 생각이었소?”

 

“…….”

 

초왕성은 할 말이 없었다.

 

오칠 때문에 이런 살육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따지려고 했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초 형, 그렇게 계속 넋 놓고 있을 거요?”

 

오칠의 타박에 초왕성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손에 죽은, 난자되어 흩어진 산적들의 시체들을 오칠이 가리키는 산속으로 옮겼다.

 

“야, 그만 죽은 척하고 일어나.”

 

시체들을 옮기고 있던 초왕성은 뭔 소리야? 하는 눈으로 오칠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오칠이 시체 하나를 발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시체는 다른 시체들과 달리 멀쩡했다. 그저 얼굴부터 시작해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상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칼로 찌른다.”

 

벌떡.

 

“나리, 살려주십시오!”

 

시체가, 아니 시체인 척하고 있었던 사내가 부리나케 일어나서 애걸하는 몸짓으로 오칠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오칠은 재빨리 발을 빼서 사내의 머리를 밟아 땅에 납작 눌러버렸다.

 

“채주란 놈이 시체 놀이나 하면서 수하들이 죽는 걸 방관하고 있냐?”

 

“죄송합니다. 죽을죄… 아니,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죽은 척하고서 목숨을 보존했던 채주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용서를 구했다.

 

오칠은 채주의 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라도 똑같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채주의 행동을 이해했다.

 

“시체 옮기는 거나 얼른 도와.”

 

“예, 예. 돕겠습니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채주는 열심히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하들의 시체를 오칠이 가리킨 곳으로 옮겼다.

 

“여기에다 다섯 개 정도 구덩이를 파야겠소.”

 

오칠은 시체를 쌓아둔 곳 주변을 가리키고는 등에서 묵철곤을 꺼내들었다.

 

퍼석.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땅이 오칠의 가벼운 손짓에 푹푹 파여 들어갔다.

 

무림 최고 장인의 손으로 완성된 묵철곤이 지금은 그저 곡괭이의 용도로 쓰이고 있었지만, 오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묵철곤을 내리쳐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채주의 얼굴은 완전히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저런 고수를 털려고 했던 자신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하며, 저 검은 곤봉에 맞을 일이 없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속으로 빌고 있는 중이었다.

 

“됐군.”

 

초왕성과 채주까지 힘을 합쳐, 반각 만에 다섯 개의 커다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칠은 그 구덩이에 시체들을 던져 넣었다. 무덤을 만들어준다는 기특한 생각에 비해선 매우 성의 없는 처리 방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다섯 개의 구덩이에 수십 구의 시체가 분배되어 들어갔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구덩이 앞에 서서 눈을 감은 오칠이 갑자기 염불을 외는 걸 보고 초왕성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중들이나 하는 짓을 난데없이 오칠이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더구나 염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오칠이어서 더욱 괴이하게 느껴졌다.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그리 길지 않은 염불 소리가 끝났다.

 

하지만 그건 시작이었다. 오칠은 각각의 구덩이마다 한 번씩, 총 네 번을 더 잔잔하게 염불을 읊조린 뒤에야 눈을 떴다.

 

“덮읍시다.”

 

참으로 간단한 장례 의식이었다.

 

하지만 초왕성이나, 채주나 그 점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느끼진 않았다.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무림이란 세계에서 이렇게 무덤을 만들어주고, 장례를 치러주는 것도 크게 선심을 쓰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야.”

 

모든 것을 끝낸 오칠이 갑자기 채주를 불렀다.

 

채주는 깜짝 놀라며 오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손짓에 얼른 달려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리, 살려주십시오!”

 

“인마, 누가 죽인데?”

 

“예? 하면……?”

 

“너 어딜 가던 중이었어?”

 

“예?”

 

“산적들이 이 겨울에 산채에 처박혀 있지 않고 어딜 가던 중이었냐고. 꼴을 보니 도적질하러 가는 건 아닌 모양이던데.”

 

“그것이… 하북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거긴 왜?”

 

“흑천맹에 들어가려고 그랬습니다.”

 

“흑천맹? 너 녹림 소속 아냐?”

 

“그렇긴 합니다만…….”

 

채주는 이곳, 소화산 서쪽 봉우리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서봉채의 채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곳 근방은 화산파와 종남파 등 정파문들의 기세가 강성해서 그의 산채는 형세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이백여 년 전 마교와의 대전 이후로 녹림은 예전만큼의 성세를 찾지 못한 지 옛날이고, 더구나 때는 겨울이라서 벌이도 시원치 않은 데다, 이번에 흑천맹에서 출신을 구분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자리를 주겠다고 공표를 해서 그걸 믿고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녹림도로서 미래도 불확실하고, 먹고살기도 점점 힘들어지니 수하들과 함께 목에 풀칠할 만한 일을 찾아 하북으로 가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흑천맹이 출신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초왕성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물었다.

 

“예. 능력만 있다면 한자리 크게 준다고 합니다.”

 

‘흑천맹이 정사대전을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건가?’

 

초왕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것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었다. 백천맹과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흑천맹이 그렇게 큰 싸움을 시작하려고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초왕성이 파악하고 있는 현재의 무림 정세는 양 맹의 힘이 비등하거나, 정파가 조금 우세한 입장이었다. 그리고 정사대전을 일으켜 봤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소모전만 계속될 것이 뻔했다.

 

초왕성은 저 밑에서 들고일어난 혈천신교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했고, 그 혈천신교와 흑천맹이 모종의 협약을 맺었다는 건 더더욱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흑천맹의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 지금도 갈 생각이냐?”

 

심각하게 생각하는 초왕성과 달리, 무덤덤한 표정의 오칠이 채주에게 물었다.

 

“예? 가다니요?”

 

“수하들도 없는데 흑천맹에 입맹할 생각이냐고.”

 

“가… 가야지요, 입맹해야지요. 수하들을 모두 잃기는 했지만, 제겐 달리 길이 없습니다요.”

 

채주는 그를 이 꼴로 만든 초왕성의 눈치를 슬며시 보며 변하지 않은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오칠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지 마라.”

 

“예?”

 

“그냥 네 산채로 돌아가. 아까 도망쳐서 살아남은 수하들이 근처에 있을 거다. 그놈들 데리고 네 산채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하던 일이나 해.”

 

“하지만…….”

 

“너 거기 가면 죽어.”

 

“예?”

 

채주는 오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계속 흑천맹으로 가겠다고 하면 죽이겠다는 건지, 아니면 거기에 가면 죽게 될 거라는 건지 아리송한 말이었다. 하지만 오칠은 더 이상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난 경고했으니 이후의 선택은 채주 자신의 소관이라는 듯, 훌쩍 백설총에 올라타고서는 그대로 산길을 따라 사라져갔다.

 

“주제도 모르고 괜한 욕심 부렸다가 제 명에 못 산다.”

 

뭔가 생각에 빠져 있던 초왕성도 채주에게 한마디 하고 말에 올라탄 뒤, 벌써 모습이 보이지 않는 오칠의 뒤를 따라 서둘러 말을 몰아 달려갔다.

 

“…….”

 

오칠과 초왕성이 사라지고도 채주는 잠시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쩌지?”

 

바로 한 시진 전까지만 해도 채주의 생각은 확고했다.

 

오십여 명의 수하들을 데리고 입맹하면 흑천맹에서 한자리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하북으로 갈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허물어졌다. 그도 오랫동안 산적질을 해왔고, 사람도 몇 명 죽여 봤지만 초왕성과 같은 고수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단 한 사람에게 수십 명이 난도당해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

 

분명 흑천맹에도 저런 고수가 있을 테고, 백천맹에도 역시 그와 같은 고수가 존재할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근처에 있는 화산파, 종남파가 그런 고수들로 가득한 무시무시한 곳이 아니던가.

 

물론 초왕성과 같은 괴물이 얼마나 더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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