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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03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4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파계 203화

파계 9권 - 3화

 

 

 

 

 

“대사, 이제 어찌해야 하겠소이까?”

 

총방주 교문승이 다른 방주들의 부축을 받고 굉진 대사에게 다가왔다. 그는 흑천맹의 포위를 뚫고 나오는 와중에 흑천맹 맹주 황보강패와 싸우다가 옆구리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무리의 모든 결정을 자연히 굉진 대사가 하고 있었다.

 

“소승의 생각으로는 흑천맹의 주요 고수들이라 생각되는 이들만 말을 타고 먼저 온 것으로 보입니다. 저들도 근방의 지리를 파악해두었고, 그래서 우리가 이곳 현수교로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저곳에는 초병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아미타불. 그들에게도 관병을 설득할 능력 정도는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즉, 저곳에 혹시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관의 인물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교문승이나 단 장로, 그 외의 수장들 역시 금방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관인을 설득하는 방법은 힘과 돈이면 충분하고, 흑천맹은 그 두 가지의 방법을 별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저들을 제압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말을 타고 온 고수들이라면 맹주를 비롯한 흑천맹의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일 테고, 그런 이들을 제압하는 것만큼 이번 싸움의 중요한 승리 요건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당장에 승부를 내야 할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또다시 도주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저들은 지금 말을 타고 있소이다. 혹 기마의 장점을 발휘하여 우리를 혼란시킬 수도 있으니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저들의 기동성을 줄이는 공격을 해야 할 것이오.”

 

굉진 대사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지금과 같은 때에 다른 대안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갑시다.”

 

굉진은 짧고 조용히 외치고, 그의 명령은 빠르게 뒤쪽으로 전해져 천여 명의 무리는 최대의 속도로 현수교를 향해, 아니 현수교를 막고 있는 흑천맹의 무리를 향해 움직여나갔다.

 

 

 

 

 

제82장. 희망의 불씨를 짓밟다

 

 

 

 

 

“끊어라.”

 

저 멀리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산서 정파인들의 무리를 바라보며 맹주 황보강패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현수교의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이 도끼를 휘둘러 굵은 쇠사슬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쩡- 쩡- 쩡-

 

도끼가 내리쳐질 때마다 현수교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쇠줄이 조금씩 강력을 잃어가며 고정된 현수교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이 다리의 문제로 더 많은 황금을 쓰게 생겼군.’

 

일단 이곳을 지키는 초병들에게 돈을 주어 딴 곳으로 보냈지만, 다리를 끊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 협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빠르게 다가오는 산서 정파인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뻔히 아는데 그냥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이렇게 다리를 끊어버림으로써 저들의 희망과 기력을 한층 가라앉힐 수 있는 호기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기에 내린 결단이었다.

 

‘어차피 오태산에 불을 지른 일로 인해 이미 많은 문제가 생겨버렸으니까.’

 

관과의 마찰에 더 이상 신경 쓰기도 싫었다. 조금 무리가 되고 아깝기는 하지만 황금을 잔뜩 뿌려대면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모두 무마가 될 것이니까 말이다.

 

콰득- 콰드드득-

 

다리를 고정시킨 쇠줄이 모두 끊어졌다. 그리고 튼튼해 보이기만 하던 현수교가 마치 거미줄처럼 살랑거리며 깊은 강물 위로 떨어지고 그대로 잠겨 들어갔다.

 

“공격!”

 

황보강패는 현수교가 수면으로 낙하하는 걸 보며 당황하는 정파인들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 이백여 기의 말을 탄, 흑천맹의 고르고 고른 고수들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 * *

 

 

 

 

 

“당황하지 말고 말의 다리를 노리시오!”

 

현수교가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더 이상 도주할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굉진 대사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향해 몰려오는 말무리에 대응할 방법을 모두에게 숙지시켰다.

 

보통의 무림인들은 기마 공격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그래서 제 실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굉진 대사는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적들에게 몰살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일순간에 흩어지면서 말을 쓰러트리시오!”

 

다시 한 번 대응 방법을 숙지시킨 굉진 대사는 자세를 잡고 오른 주먹을 꽉 움켜쥐어 뒤로 당겼다. 그리고 강맹한 공력을 응축시킨 주먹을 앞으로 힘껏 내뻗었다.

 

후웅-

 

“흥!”

 

십여 장이나 떨어진 거리에서 백보신권의 권력이 쏘아져오자 선두에서 달리던 황보강패가 말 등을 차고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며 양손을 앞으로 번갈아 내밀었다.

 

퍼펑-

 

빠르게 달려가는 말 무리와 긴장한 채로 그들을 기다리는 정파인들 사이의 빈 공간이 뒤흔들리고, 작은 먼지구름과 함께 강렬한 폭음이 주변을 떨어 울렸다.

 

‘역시 철권신군(鐵拳神君)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구나!’

 

백보신권으로 기선을 제압하고, 진격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했던 굉진 대사는 자신의 공격을 단번에 막아버린 황보강패의 능력에 진정 감탄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욱 맹렬하게 먼지구름을 뚫고 달려오는 적들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절대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시게.”

 

굉진 대사는 그의 좌우로 서서 선장(禪杖)을 고쳐 잡는 계율원주 굉요, 지객당 당주 굉만 등의 사제들에게 단단히 다짐을 주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무승들에게도 그 점을 강조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온다.”

 

누군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두두두두두두.

 

고작 이백여 기에 불과하고, 뛰어난 기마병들은 아닐 테지만 기수들은 흑천맹을 대표하는 문파의 수장들과 고수들이었다.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공격인 것이다.

 

“지금이오!”

 

굉진 대사가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오르며 소리쳤다. 그러자 천여 명의 정파인들은 좌우, 위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그들의 중심을 지나쳐가는 말 무리를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둘러댔다.

 

채챙- 챙- 채채챙-

 

“크악!”

 

히히힝!

 

“아악!”

 

무기의 격돌음과 함께 몇 기의 말이 쓰러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저 앞쪽까지 달려갔던 말머리가 방향을 틀어 다시 정파인들을 향해 쏘아지듯 몰아쳐왔다.

 

“침착하시오!”

 

두두두두.

 

채채채챙- 챙- 챙-

 

“으악!”

 

히히히힝.

 

“크윽!”

 

격렬한 충돌음과 비명이 난무하며 일순간에 십여 구의 시신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좋지 않다!’

 

용화권(龍華拳)의 권력을 쏘아 보내 한 명의 사파 고수를 말에서 떨어트린 방장 제자 담성은 단 두 번의 격돌이 어떠한 상황을 만들었는지 깨닫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

 

바닥을 나뒹구는 시체의 대부분은 그들 정파 무림인들이었다. 사파 무림인들은 공격을 받아 말에서 떨어져도 거의가 경미한 부상을 입었기에 곧바로 일어나 동료의 뒤에 올라타서 위험을 모면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담성이나 굉진 대사 정도의 고수들도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적들을 제대로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말을 노려 쓰러트려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동료의 말에 올라타는 적들의 냉철한 대응엔 달리 대처할 방도도 없었다.

 

그렇게 두 번의 공격으로 사파 고수는 세 명이 죽고, 자신들은 삼십여 명이 넘게 죽었으니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이 사태는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두두두.

 

“으악!”

 

“크악!”

 

그리고 세 번째 공격에 이어 네 번째의 공격을 받으면서 담성은 황보강패를 포함한 사파 고수들이 몸을 사리면서 공격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죽기 살기로 공격을 하지 않는 데다, 단순히 정면으로 돌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수가 드문 쪽만을 골라 파고들면서 공격하는 적들의 속셈은 뻔한 것이었다.

 

‘시간을 끌겠다는 거구나!’

 

아무리 고수들로만 이백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고수들로 가득한, 천여 명이나 되는 자신들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끄는 것이다. 조금 뒤에 도착할 나머지 흑천맹의 무리가 당도할 때까지 말이다.

 

“사숙님, 저들이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시간을?”

 

굉진 대사도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던지, 담성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들을 지나 저 앞쪽으로 달리는 말 무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들을 쫓아 뒤를 쳐야 하오!”

 

적들이 공격할 때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굉진 대사의 말을 들은 정파 무림인들은 곧바로 말 무리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대응하지 말고 큰 원으로 돌 수 있게 방향을 잡으십시오!”

 

황보강패의 좌측으로 달리고 있던 제갈 원주가 뒤쪽을 힐끔 돌아보고는 말했다. 굳이 대응해서 피해를 감수할 필요 없이 계속 시간을 끌자는 것이다. 어차피 다리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정파인들에게 안전한 퇴각로는 사라진 상태가 아닌가. 더구나 그들이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를 정파인들이 알아챈 마당에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알겠소!”

 

황보강패는 뒤로 신호를 보내며 말머리를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고정시켰다. 그렇게 되니 천여 명의 정파인들은 우르르 뒤를 쫓게 되고, 이백여 말무리는 그들을 피하는 기이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황보강패는 그냥 무조건적으로 앞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갈 원주의 조언대로 큰 원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말머리가 향해 있는 곳은 그들의 뒤를 쫓는 정파인들의 꼬리 부분이었다.

 

“직선으로 파고든다!”

 

황보강패의 커다란 외침과 함께 무리는 화살촉 모양이 되어 정파인들의 뒤쪽을 뚫어버릴 듯이 몰아붙였다.

 

두두두두두-

 

“크악!”

 

“으악!”

 

순식간에 꼬리를 잡힌 정파인들은 뒤쪽에서 폭풍처럼 돌진해오는 황보강패 등을 피해 정신없이 좌우로 흩어져야 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죽거나 다친 사람이 어느새 수십 명이었다.

 

“차압!”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소림 무승들은 굉진 대사를 주축으로 해서 반격을 가했다. 빠르게 뒤쪽을 쳐오는 기마를 상대로 나한진을 펼칠 수는 없었지만, 선장을 휘둘러 말의 다리를 부러트리고 기수를 향해 지공과 권력을 쏘아서 낙마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전멸하고 말 것이다!’

 

굉진 대사나 담성은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기동성을 바탕으로 하는 기마를 상대한다고 하지만 네 배가 넘는 수적 우세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은 전술이 없기 때문이었다. 막무가내 식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대응을 하니 체력만 저하되고 효과적인 방어를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에서 전술 훈련을 할 수도 없는 일. 두 사람은 물론이고, 정파 무림인들 전체는 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을 느끼며 다시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황보강패 등의 기마 무리를 상대해야만 했다.

 

두두두두두.

 

“……!”

 

한데, 그렇게 달려오던 기마 무리가 갑자기 방향을 전환해 그들을 그대로 스쳐지나가 버렸다. 정파인들은 당연히 괴이하게 생각하며 말무리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경악해야만 했다. 말무리가 향하는 곳 저 멀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갈대밭을 뒤덮으며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나머지 흑천맹의 무리였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배수진(背水陣)이 되어버렸군.”

 

수장들 중 하나가 뒤쪽의 강을 돌아본 뒤 맥이 빠진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쓴웃음을 지었다. 왠지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들이 정파인들의 얼굴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이백을 상대하는 데 백여 명이나 죽었다. 하면, 저 많은 적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정파인들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하나, 이대로 허망하게 목숨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까지는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퇴각을 해왔지만, 이제는 진정 무림인으로서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야 할 때가 되었으니 후회 없이 싸울 생각인 것이다.

 

“넌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곳의 소식을 소림사로 전하거라.”

 

굉진 대사는 담성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사숙님, 어찌 저만 홀로 목숨을 보전하라 하십니까.”

 

“삶과 죽음 중에 어느 것이 더 무거울지를 네가 알지 못한단 말이냐?”

 

이곳에서 싸우다 죽는 것보다, 살아남아서 소림사로 가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더욱 중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담성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는 저 하나가 빠져나갈 생로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문인께서는 소수만을 본사에 남기시고 대부분의 무승들을 이곳으로 파견하셨습니다. 설혹 제가 살아남아 준비를 당부한다고 해도 강남의 혈천신교 때문에 조금의 여력도 없는 백천맹의 도움을 구할 수도 없으니, 본사가 흑천맹의 공격을 감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 그때쯤이면 따로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본사에서도 모든 정황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담성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 소림사와 관계된 문파의 무사 몇십 명이 본사에 합류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힘은 저 흑천맹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또 이곳에서 모두 전멸하게 되면 그 소식은 어떠한 과정으로든 순식간에 소림사로 전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저도 마지막까지 저들과 싸우는 것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사숙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담성은 단호한 표정으로 합장을 해 보이며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굉진 대사는 그런 담성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도 담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담성을 살려 보내려고 했던 것은 소림사의 앞날을 이끌 큰 대들보를 이곳에서 허망하게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담성의 의지가 이리도 단단한데 굉진 대사가 어떻게 계속 고집을 부릴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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