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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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00화
파계 8권 - 25화
광명우사와 좌사의 합세로 인해 전세가 급속도로 뒤집혔고, 그래서 다시 저지선을 앞으로 밀어낸 엽종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팽구정을 강하게 압박하다가 정확히 틈새를 비집고 협봉검을 찔러 넣었다.
“컥!”
정확히 목이 꿰뚫린 팽구정은 붉게 충혈된 눈동자로 엽종을 노려보다가, 짧은 호흡을 마지막으로 숨이 끊겼다.
“후퇴하라-!”
저 뒤쪽에서 가문의 무사들과 함께 힘겹게 싸우고 있던 남궁진배는 팽구정이 죽는 모습을 보고는 지체하지 않고 소리쳤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적들이 나타났는지 너무나 황당하고, 또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큰 의문이 들었지만, 그걸 알기 위해 계속해서 싸울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즉각적으로 후퇴하라 소리치고, 방금까지 그가 상대하고 있던, 각기 연검과 채찍을 쓰는 두 명의 아리따운 여인들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둘러 공간을 벌리고, 그 자신 역시 그들 무리가 들어왔던 협곡의 입구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으악!”
“크악!”
남궁진배는 뒤에서 끊임없이 비명이 들리는 것으로 적들의 추적이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후퇴를 결정한 순간 충분히 각오한 일이었다. 공격하는 것보다 물러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병법의 격언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니까.
“……!”
하지만 빠져나가야 할 협곡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그 앞을 막아서는 이백여 명의 적들은 정말 그가 각오한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앞을 막은 적들은 양천 등지에서 본 적이 있는, 아니 그들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히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길현초가의 무리였던 것이다.
어찌 길현초가가 이곳에 있단 말인가?
남궁진배는 또다시 드는 의문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달려 나오는 꼴을 보니, 죽여야 할 놈들이구나.”
쌓여가는 피로를 꾹꾹 내리누르고, 거리를 더욱 단축할 수 있는 만큼 험난한 지형의 지름길로 달려온 초열홍은 협곡에서 어찌 이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와 그의 일족이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바로 도주하는 사파 무림인들을 막고, 궤멸시키는 것이다.
‘지쳐 있다!’
이제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는 절망감에 몸에 힘이 쭉 빠졌던 남궁진배는, 초열홍을 비롯한 이백여 명이 매우 초췌한 몰골이라는 것을 곧바로 눈치 챘다.
‘우리의 숫자는…….’
처음에 비해 절반이나 줄어 있었다.
하지만 앞을 막고 있는 길현초가의 숫자보다는 두 배나 많았다. 저들이 강하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뚫고 나가는 것에 치중할 것이기에 한번 해볼 만한 승부인 것이다.
“그대로 뚫고 간다!”
남궁진배 이상으로 당혹스러워하고 있던 사파 무림인들은, 남궁진배의 외침과 그가 앞장서 달려가는 모습에 용기를 얻고 그 뒤를 따라 앞으로 돌진했다.
슈악-
이를 악물고 달리던 남궁진배는 초열홍이 내리친 양날 도끼의 광폭한 기운을 느끼고 황급히 검을 앞으로 휘저었다.
츠앙-
“……!”
도끼날을 검으로 막은 순간, 남궁진배는 자신의 힘으로는 초열홍에게 감히 대적할 수 없다는 걸 단번에 깨달았다.
그래서 검을 비껴 휘두르며 도끼날을 뒤쪽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초열홍에겐 또 하나의 양날 도끼가 있었고, 남궁진배는 그 도끼를 피하기 위해 상체를 급격하게 아래로 숙이고 게으른 나귀처럼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멈추지 말고 달려라!”
도끼날이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묶어놓은 머리가 볼썽사납게 풀어헤쳐진 남궁진배는 황급히 일어나 소리치며 앞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길현초가 무사들의 공격을 막고 피하면서 앞으로 헤쳐 나갔다.
퍽!
“으악!”
콰직!
“커억!”
육중하게 잘려나가는 파열음과, 고통과 죽음을 외쳐대는 끔찍한 비명이 뒤쪽에서 메아리쳤다.
하지만 남궁진배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입구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화악-
남궁진배가 협곡을 빠져나간 순간, 서늘한 바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아직 완벽하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안전한 곳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것처럼 가슴속 가득 만족감이 가득 솟구쳐 올랐다.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이 무슨 청승맞은 생각일까.
하지만 남궁진배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고, 그제야 그처럼 입구를 벗어난 사파 무림인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이백, 아니 삼백?’
천에 가까운 숫자가 그 삼분지 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협곡에서 엄청난 숫자의 적들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많이 살아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대로 정양까지 달린다!”
협곡을 빠져나오면서 남궁진배는 크게 소리쳤다. 저 협곡 안쪽에서는 개미 떼처럼 수많은 적들이 금방이라도 꼬리를 잡을 것처럼 몰려나오고 있었으니, 지치고 힘들어도 죽을힘을 다해 경공을 펼쳐 달리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
협곡을 완전히 벗어나 온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던 남궁진배는 기이한 땅의 울림과 함께 들려오는 소리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순간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저 앞쪽을 불안한 눈동자로 쳐다보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
“……!”
저 멀리 검은색 일색의 말 무리가 숲 가장자리를 둥글게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와 온통 검은색이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그 숫자가 이백 기는 넘을 것 같았다.
‘설마!’
또 적이 나타난 것인가?
점점 모습이 가까워지고, 그 윤곽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궁진배와 그 뒤를 따르는 사파인들은 완벽하게 무장한 기마단이 이쪽 방향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
왜 난데없이 군의 기마단이 나타나 그들을 향해 오는 걸까.
하지만 곧 기마단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철장창을 앞으로 비껴들고 그들을 향해 적의를 잔뜩 드러낸 채 질주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군대가 아니라, 새로운 적이 나타난 것이다.
“흩어져라!”
남궁진배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삼백여 무리의 사파인들은 산개하듯 좌우로 간격을 벌렸다.
그러나 맹철탁을 선두로 해서 달려오는 철혈금교군은 어느새 그들의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두두두두! 퍼퍼! 퍼퍼퍽! 푹! 푸푹!
“으악!”
“크악!”
이백여 기마단이 제대로 흩어지지 못한 사파인들을 직선으로 관통하면서 수십 명이 창에 꿰뚫리고, 말발굽에 차여 목숨을 잃었다.
‘도대체 이자들은 뭐냐!’
“달려라! 무조건 앞으로 달려라!”
기마대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낸 남궁진배는 그렇게 외치며 앞으로 내달렸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
하지만 그들을 질주해갔던 철혈금교군이 다시 방향을 선회하여 뒤쪽에서 다가오자, 남궁진배를 비롯한 모든 사파인들의 등줄기로 공포로 인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으아~ 살려줘-!”
남궁진배의 뒤를 쫓아 도망치던 사파인들은 공포에 휩싸이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주인 잃은 양 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며 각자의 도주로를 선택했다.
퍼퍼! 퍼퍼퍽! 콰직! 푸푹!
“아악!”
“컥!”
“큭!”
다시 철혈금교군이 사파인들을 짓밟고 지나갔다. 흩어진 사파인들 때문에 좌우로 넓게 퍼진 산개형 돌진이었고, 그래서 이번에도 수십 명이 시신으로 나뒹굴었다.
‘빌어먹을!’
그를 쫓는 무사들은 이제 고작 삼십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남궁진배는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무리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도주에 성공할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저 뒤쪽으로 엄청난 숫자의 적들이 계속해서 뒤를 쫓아오고는 있지만, 그 자신은 이대로 도망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그렇게 달려가고 있던 남궁진배의 저 앞쪽에 얼굴이 익숙한 두 사람이 진로를 막고 서 있었다.
“언제!”
분명 처음 협곡에서 조우했던 무리의 선두에 있었던 자들이었다. 몰골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귀한 백설총을 타고 있어서 눈에 확 띄었었고, 그래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격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뛰어넘어가자.’
남궁진배는 지금 싸워서는 전혀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결심하고,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 속내가 뻔히 보인다.”
오칠은 싸늘하게 코웃음 치며 묵철곤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뒤에 선 초왕성도 한번 크게 싸워보자는 얼굴로 양날 도끼를 양손에 쥐었다.
슈악-
남궁진배는 달리는 그대로 검을 휘둘러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의 절초를 앞으로 펼쳤다. 하나의 검이 일순간에 십여 개의 검영으로 불어나기 때문에 피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다.
최소한 남궁진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칠이 좌우 어디로든 물러나면 남궁세가의 가장 빠른 보법이라는 무한보(無限步)로 달려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우우웅- 파사사삭!
“……!”
일순, 남궁진배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크게 뜨여졌다.
그가 만들어낸 수십 개의 검영이 오칠이 휘두른 묵철곤에 격돌되어 산산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잔머리도 상대를 봐가면서 써야지.”
오칠은 무감각한 시선으로 남궁진배를 바라보며 묵철곤을 휘둘렀다.
남궁진배는 앞으로 움직이던 몸을 왼쪽으로 급격하게 틀었다.
쾅!
땅이 울리고, 그 충격 속에 일어난 바람으로 인해서 남궁진배의 신형이 흔들렸다.
‘도망쳐야 한다!’
틈을 볼 것도 없고 상황을 그렇게 만들 수도 없다는 걸 깨달은 남궁진배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바닥을 굴러 균형을 잡고는 그대로 무한보를 펼쳐 앞으로 내달렸다.
아니, 내달리려 했다.
후웅-
공간이 밀려가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달려가려던 남궁진배의 등 뒤로 묵직한 압력이 전해져왔다. 순간, 남궁진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뒤도 보지 말고 달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본능처럼 뒤를 돌아봤다.
“안- 돼-!”
펑!
등에 강렬한 충격을 받고 남궁진배의 신형이 앞쪽으로 훅 하고 날아갔다.
쿠당탕탕!
남궁진배는 바닥을 굴러가다 멈추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등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사람은 절대 자신의 의지로 일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
오칠은 묵철곤을 등에 메고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초왕성이 한 마리 성난 맹수처럼 사파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잔혹하고도 맹렬한 싸움은 얼마 뒤 초왕성의 강렬한 포효로 끝이 났다.
“미친놈처럼 보이니까 그만 해라.”
온몸에 피를 덕지덕지 묻히고 잔뜩 흥분해서 함성을 내지르던 초왕성은, 아직 살기가 가시지 않은 눈동자로 오칠을 돌아보았다. 마치 너도 내 손에 죽어보겠냐는 듯 도전적인 눈빛이었다.
“눈 깔아.”
오칠의 코웃음에 초왕성은 움찔하며 시선을 아래로 숙였다.
‘너무 흥분했군.’
피와 살기에 정신이 쏠리다보니 오칠이 누구인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초왕성을 보고 오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서 모두 모이라고 해. 이제부터 진짜 큰 싸움을 준비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초왕성은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고, 오칠은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미 없는 죽음이지.”
오칠은 그가 죽인 남궁진배의 시신과 초왕성에 의해 사분오열 된 시신들, 그리고 저 멀리 나뒹구는 수많은 시신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시간 동안 이런 죽음들을 그의 손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씁쓸하게 웃었다.
‘뭐, 인생이 다 그렇지.’
오칠은 괜히 안 좋아지는 마음을 그렇게 외면하며 협곡을 향해 움직였다. 초왕성에게 말한 대로, 이제부터 진짜 큰 싸움을 위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예상치 못한 싸움과 살육은 그러한 싸움을 위한 전조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음 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