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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99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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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99화

파계 8권 - 24화

 

 

 

 

 

사사사사사사사삭.

 

하지만 곧 고요함 속에서 솔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소리는 한곳에서 정지한 소리가 아니었다. 넓게 퍼져 있었으며, 점점 이동을 하고, 사냥꾼들의 이동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순간 숲의 끄트머리에 당도하여 탁 트인 공간 밖으로 펼쳐졌다.

 

사사사사사… 타탁! 타타타탁!

 

그 소리는 갑자기 경쾌한 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숲 속에서 한 사람이 나무의 높은 가지를 디디고 새처럼 하늘을 날아 탁 트인 공간으로 내려섰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한 사람의 뒤를 쫓아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새 떼처럼 숲을 빠져나와 맨 먼저 빠져나온 사람의 뒤에 내려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까지 숲을 빠져나오자 그 숫자가 천여 명이 훌쩍 넘었다.

 

“…….”

 

나무 위를 달리며 가장 먼저 숲 속을 빠져나온 남자는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평야를 바라보았다.

 

그는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균형 잡힌 몸매와 멋스럽게 난 콧수염, 그리고 정갈하게 다듬은 머리를 하고 있어 외모만으로 보자면 노련한 관리 같기도 하고, 유상(儒商:학문에 밝은 상인)처럼 보이기도 하는 장년의 사내였다. 바로 배화교의 광명좌사 경모혁이었다.

 

“사냥꾼들의 입을 막아놓을까요?”

 

말없이 서 있는 경모혁의 뒤쪽으로 둘째 아들인 경중광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조금 전, 숲 속에서 짐승의 발자취를 쫓고 있던 사냥꾼들이 혹시라도 숲에서 뭔가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소문이라도 낼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들은 은밀하고도 빠르게 이동해서 모종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소문이 나서는 곤란했다. 그래서 사냥꾼들을 죽여서라도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들이 사냥을 끝내고 확실하지도 않은 내용을 퍼트리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도착해서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경모혁은 고개를 흔들었고, 경중광은 수긍하며 뒤로 물러났다.

 

“광명좌사님,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리 중에서 한 가문의 수장이 나서서 물었다.

 

반나절 이상이나 경공을 펼치며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그런 말을 할 만도 했다. 하지만 경모혁은 나무라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오칠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그런데 그 정도도 못 참으면 어찌하겠냐는 의미였다.

 

“더구나 광명우사와 그 무리는 지금도 달리고 있을 게 분명하오. 그들과 경쟁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뒤처져서 도착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 아니겠소.”

 

경모혁은 이천여 명이 넘는 무리를 둘로 나눠 한 무리는 그가, 또 한 무리는 광명우사 화웅섭에게 맡겼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길을 정해서 호북에서 출발하여 하남을 지나, 이곳 산서 고현까지 이른 것이다.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 수장은 곧 송구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잠시의 고통도 인내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면서 말이다.

 

‘저 북쪽 끝에서 곧 피바람이 불겠지…….’

 

경모혁은 지평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칠의 생각을 바탕으로 그가 세운 계획은 잘 흘러갔고, 그들은 곧 커다란 살육의 장을 열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주축이 된 것도, 또 그들이 시작한 싸움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이 원해서 죽고 죽이는 싸움을 시작한 이들을 직접적으로 도와주는 것뿐이었다.

 

‘어리석은…….’

 

경모혁은 생각을 접었다.

 

이곳에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도, 할 필요도 없었다.

 

“출발.”

 

경모혁은 바닥을 박차고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천여 명의 무리가 그 뒤를 따라 넓은 평야를 뒤덮으며 내달렸다.

 

 

 

 

 

* * *

 

 

 

 

 

산서의 성도 태원(太原)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이틀 거리에 위치한 정양(定襄),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네 시진을 빠른 말로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진중(晉中)의 산중턱 사이로 생겨난 협곡 안에 거의 천 명에 가까운 무리가 들어섰다. 그만큼 협곡이 크고 넓은 것이다.

 

“여기가 좋겠습니다.”

 

남궁세가주의 차남 남궁진배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하북팽가주의 셋째 아들 팽구성에게 동의를 구했다.

 

“우리와 같이 대규모의 인원이 모습을 감추기에 딱 알맞은 곳인 것 같구려.”

 

그리고 이제 이곳에서 하루를 쉬고 내일 아침 정양으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산서 정파 무림인들과 하나로 뭉친 흑천맹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곳의 무리는 뒤늦게 합류하여 남은 정파인들을 깨끗이 소탕하면서, 그들 남궁가와 팽가를 비롯하여 동참하기로 약조한 중소 가문들의 전력을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일 이동하기 전에 피로한 몸을 풀고 무기를 점검하도록, 모든 무사들에게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어쩌다 보니 무리의 통솔을 맡게 된 남궁진배는, 그가 가주에게 위임받은 것처럼 각 문파의 수장들에게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에게 행동지침을 하나씩 전달해나갔다.

 

“그리고 식사는…….”

 

말을 이어가던 남궁진배는 문득 팽구성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저기…….”

 

팽구성의 시선과 손가락은 그들이 들어왔던 협곡 입구의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궁진배도 그쪽을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대략 삼백여 기 정도의 기마대가 저 멀리 반대쪽 협곡 입구에서 느릿한 속도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산서 정파인들이 그들 무리를 파악하여 뒤를 치려고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그들이 어찌 알 수가 있을까.

 

바로 목전에 둔 싸움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지금과 같은 때에 말이다. 게다가 숫자가 너무 적었다. 저들이 삼백여 기 이상의 기마대라고는 해도 자신들은 인원이 천에 가까우니, 전력에서 너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넓은 평야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기마대가 무턱대고 이런 협곡으로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적의 수장이었다면 분명 자신들을 밖으로 유인해서 싸우려고 했을 것이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어쨌든 남궁진배는 싸움에 대비하라는 말을 좌우로 전달했다. 상대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자신들은 내일이 되기 전에 발각되어서는 안 되고, 그래서 저 삼백여 기마대를 몰살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것들은 뭐야?”

 

백설총을 타고 있어 기마대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존재인 오칠이 멀뚱거리는 시선으로 협곡 안쪽을 바라보았다.

 

“흑천맹의 일부 같습니다.”

 

오칠을 비롯한 탈명수교군과 혈귀화교군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은 은형대 삼 조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전방을 살펴본 뒤에 말했다.

 

“흑천맹이라고?”

 

“저기 있는 자들 중에 남궁세가의 표식을 한 자들이 있습니다.”

 

남궁세가는 봉황을 표식으로 삼는다. 그래서 세가(世家)에서 밖으로 나갈 때는 흰옷에다 가슴엔 봉황 무늬를 새기고 다니게 했다. 특히 무공이 높을수록 봉황 무늬의 색깔이 밝아져 무공을 아예 익히지 않은 일반인은 검은색, 경지에 오른 무인은 흰색으로 표시해서 눈에 잘 띄지 않게 했다.

 

“정양 쪽으로 가 있어야 할 놈들이 왜 여기 있지?”

 

오칠이 의아해하자, 가만히 생각을 하던 은형 삼 조장은 아마도 흑천맹이 뭔가 계략을 쓰려고 했던 모양이라고 대답했다.

 

“흠, 전력을 숨겨 뭔가를 하려 했다, 이거군. 뭐, 상관은 없지. 오히려 우리에게 잘된 일이야.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거 일이 너무 잘 풀리네.”

 

초왕성이 등 뒤에 양날 도끼를 꺼내들며 말했다.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엽종, 변서생도 무기를 빼들고 말에서 내리자, 삼백여 무사들도 일제히 말에서 내리며 무기를 빼들고는 싸울 자세를 취했다.

 

“한 놈도 남기지 마.”

 

오칠은 무감각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그들도 남궁진배 등과 같이 이곳에 있는 것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존명!”

 

초왕성은 아쉽다는 얼굴로 호법의 역할을 하기 위해 오칠의 뒤쪽에 시립하고, 엽종과 변서생이 각자의 수하들을 이끌고 좌우로 나섰다. 상대의 숫자가 그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전혀 두려울 것이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뭘 하려는 거지?’

 

엽종과 변서생 등이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오자 남궁진배 등은 얼굴을 찡그렸다. 숫자가 적은 적들이 먼저 공격 의지를 세우고, 더구나 기마대의 특징을 살릴 생각도 없이 말에서 내리다니 말이다.

 

“흥! 간이 부어오른 놈들이었군!”

 

팽구성이 싸늘한 코웃음을 치며 도를 뽑아들었다.

 

어디서 저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가소롭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패배의 쓴잔을 여러 번 들이켜고서 기세가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에 비해 삼분지 일밖에 되지 않는 적들에게 무시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모조리 죽여 버려라!”

 

팽구성이 크게 소리쳤고, 남궁진배는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천 명에 가까운 사파 무림인들도 일제히 앞으로 뛰쳐나갔다.

 

“죽여라!”

 

“와~!”

 

함성이 협곡의 좌우 벽에 부딪쳐 크게 메아리치고, 그들이 내뿜는 살기와 피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가자!”

 

협봉검을 꽉 움켜진 엽종을 시작으로, 백오십여 명의 탈명수교군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마음껏 찢어버려라!”

 

변서생의 명령은 엽종보다 살짝 늦었다.

 

하지만 양손에 낀 철조를 불꽃이 튀기도록 강하게 마찰시킨 그는 그대로 협곡의 왼쪽 벽으로 뛰어올랐고, 그를 쫓아 뛰어오른 혈귀화교군 무사들과 함께 벽을 따라 달리며 몰려오는 사파인들의 우측 옆구리로 뛰어내렸다.

 

촤악-!

 

“으악!”

 

공간이 거칠게 열리고, 변서생이 노린 사파 무사의 얼굴이 종이처럼 찢겨나갔다.

 

그리고 그의 좌우 주변으로 그같이 몸 이곳저곳이 철조에 찢겨나간 무사들이 시체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사파인들의 숫자는 확실히 너무 많았다. 그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공격해 잠시 이점을 얻기는 했지만, 곧 그들은 좌우사방으로 적들의 포위망에 둘러싸여 악전고투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깊이 들어가지 마!”

 

변서생과는 달리, 엽종은 정면을 차근히 공격했다. 함부로 진입하여 사방에 적을 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쉭- 쉬식-

 

엽종이 협봉검을 움직여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두 번을 연속으로 찌르자 피를 울컥 뿜어내며 세 명이 쓰러졌다.

 

하지만 곧바로 비어버린 공간을 또 다른 적들이 채웠다. 그에 엽종은 호흡도 고르지 못한 채 다시 검을 휘젓고, 찌르고, 결국엔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그건 탈명수교군이 만들어놓은 저지선 전체가 뒤로 후퇴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역시 너무 인원 차가 큰가?”

 

가만히 사태를 바라보던 오칠이 초왕성에게 물었다.

 

초왕성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합류해도 조금 힘들 듯합니다.”

 

“그럼 나도 움직여야겠군.”

 

“그러셔야 할 겁니다.”

 

오칠은 등에 멘 묵철곤의 손잡이를 잡았다.

 

가능하다면 직접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필요할 때는 망설임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

 

하지만 오칠은 묵철곤을 잡았던 손을 다시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초왕성이 오칠의 뒤를 따라 움직이려다가 의아하여 물었다.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겠어.”

 

오칠의 시선이 협곡의 벽을 따라 위로 들려졌다. 당연히 초왕성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어?”

 

깎아지른 경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만하지도 않은 협곡의 벽을 타고 수백의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양쪽 벽을 까맣게 뒤덮으면서 말이다.

 

“참 적절한 때에 도착하는군.”

 

초왕성은 또다시 아쉬움으로 인해 얼굴을 일그러트렸고, 오칠은 느긋한 표정으로 협곡을 따라 내려오는 광명좌사와 그 무리, 그리고 광명우사와 그 무리를 지켜봤다.

 

 

 

 

 

* * *

 

 

 

 

 

“모두 쓸어버려라-!”

 

온몸에서 강력한 열기를 발산하며 도를 치켜든 광명우사 화웅섭은, 떨어지는 그대로 사파 무리가 운집한 곳을 향해 도를 내리쳤다.

 

“피해-!”

 

쾅-!

 

유성이 떨어진 것처럼 화끈한 열기가 둥글게 퍼져나가고, 움푹 들어간 땅은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대여섯 구의 시신들이 불에 타버린 듯 처참한 몰골로 나뒹굴었다.

 

“네깟 놈들이 감히 지존께 덤벼들어!”

 

열화혼원기(熱火混元氣)의 강력한 공력을 활활 불태우며 화웅섭은 맹수처럼 포효했다.

 

그리고 그를 따라 뛰어내린 천여 명의 무사들이 엄청난 기세로 사파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아를 정확히 구분해서 공격하라!”

 

열기를 내뿜으며 광분하는 화웅섭과 달리, 경모혁은 차가운 얼음처럼 냉철한 이성으로 무사들을 조율했다.

 

사파인들보다 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인원이었기에, 잘못하면 같은 편을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철한 모습과는 별개로, 경모혁은 무척이나 얇고도 섬뜩할 정도로 투명한 광체를 내뿜는 월광검(月光劍)으로 사방을 매섭게 휘둘러대며 화웅섭과 호각을 다투는 살육을 펼쳤다.

 

“그만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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