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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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98화
파계 8권 - 23화
후우우우우~!
스사사사!
“…….”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척발조는 이미 균형이 어그러졌다는 걸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도 점점 자신이 밀리고 있다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무엇이 부족한가?’
척발조는 유리검을 움직여 절정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펼치고 있었다.
그가 검을 익히고 수련하면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힘이라 여긴 것들이었으며, 그래서 더욱 중점을 두고 갈고 닦은 성향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그가 어떤 싸움과 비무도 없이 마검신군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한시도 싸우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단지 사람이 상대가 아닌, 자연이 그의 대적자였기 때문에 모두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는 그 오랜 싸움을 통해 그의 검을 완성했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수련하던 어느 순간, 자연은 더 이상 그의 검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하산했다. 자연을 이겨냈으니, 세상엔 더 이상 그의 적수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망설임 없이 세상을 주유하며 천하제일검, 천하제일고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당금 무림을 격동시키고 있는 혈천신교와 그 교주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감으로 나선 척발조가 밀리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쿠앙-
처음으로 격돌의 충격음이 주변을 메아리쳤다. 검광의 검은 파편이 불씨처럼 휘날리고, 유리검에서 뿜어지던 태양과 같은 광채가 달빛처럼 흐릿하게 물들어갔다.
“크하하하하-!”
그러나 위지무성의 살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파천혈전공의 기운에 그의 형체까지도 흐릿해질 정도였다.
반면, 척발조는 점점 위축되어갔다.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보이던 신형도 위지무성으로부터 석 장 이상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척발조는 위지무성이 만들어내는 검광의 울타리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럴 리가 없다!’
척발조는 점점 그의 몸을 죄어오는 압력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의 검은 자연을 이겨낸 검이었다. 하찮은 존재인 사람이 아니라, 강대한 자연을 상대로 이십여 년을 싸워서 결국 승리한 검이었다.
“내가! 내가-!”
척발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무성한 머리카락은 검강의 압력에 당겨져 조금씩 뜯겨나갔고, 긴 수염은 천천히 가루로 흩어졌다.
“내 검은……!”
자연을 이긴 검이라고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순식간에 검강에 짓눌려버렸다. 그리고 곧 파천혈전공의 검은 기운이 유리검을 박살내고, 그의 육신까지 순식간에 뒤덮어버렸다.
철퍼덕.
“…….”
위지무성은 핏덩이로 변해버린 척발조의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척발조는 강했다. 칠절신군에 속한 이들이 그와 같은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 정도로 강한 무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검이란 자연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다.
“저자를 죽여야 합니다!”
공야 각주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인간의 형체라고도 할 수 없는 척발조의 시신을 뭔가 몽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작은 틈을 보이고 있는 위지무성을 지금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파 장문인들이 합공을 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문인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정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이 한 사람을 상대로 합공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일지 걱정이 되었고,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크하하하-!”
하지만 그들의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갑자기 위지무성이 앙천광소를 터트리며 고깃덩이와 다름없는 척발조의 시신을 혈천검으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온몸에 피와 살점이 튀어도 개의치 않고, 아니 오히려 더욱 큰 웃음을 터트리며 난도질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찌 정도(正道)를 찾을 수가 있겠는가.
“갑시다!”
화산파 능 장문인이 소리쳤다.
그리고 구파 장문인들은 위지무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곧 그들은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공을 마음껏 펼치며 위지무성과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반 시진 동안이나 이어지던 싸움은 결국 위지무성의 절대적 우세로 끝이 났다. 장문인들 중 한 명이 죽고, 세 명은 큰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그들은 위지무성을 피해 도주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상륙을 개시한 혈천신교 무사들에게 밀려 큰 손실을 입은 정파 무림인들도 역시 장문인들과 함께 퇴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백천맹과 혈천신교의 공식적인 일차 교전은 혈천신교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제80장. 혈전(血戰)의 서막을 열다
두두두두두!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太原)을 크게 돌아 동쪽으로 향할 수 있는 산서 남동쪽 평요(平遙)의 어느 외진 길.
질긴 소가죽을 겹겹으로 붙여서 만든 검은색 일색의 가죽투구와 갑옷, 그리고 돌격할 때 사용하는 철장창과 말 허리에 달린 두꺼운 쌍수도. 말에게까지 검은 가죽으로 만든 마갑(馬鉀)을 입혀서 견고함을 높여, 기마단으로서의 완벽한 모습을 갖춘 이백여 기의 무리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고 있었다.
“전쟁이 났나?”
“북방의 몽고족이 쳐들어온 게 아닐까?”
이번 해 농사 준비를 위해 땅을 다지고 있던 사람들은 기마단의 모습을 보고 잠시 불안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다시 땅을 다져나갔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들만의 삶이 있고, 그건 바로 땅을 다져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
천양표국의 철기단, 즉 오행교군의 하나인 철혈금교군(鐵血金敎軍) 이백여 기는 상대적으로 외진 길을 찾아 달리기 때문에 관의 눈을 염려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었다. 농사꾼들이 그들을 보고 의문을 품는 것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정(停)!”
철기단의 선두에서 순간 짧은 명령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던 철기단이 급속도로 속도를 줄이더니, 촌각에 불과한 시간 안에 완전히 움직임을 정지시키고 질서정연하게 행렬을 정돈했다.
“어서 지나가시오.”
선두에서 기마단을 이끌고 있는 교군수(敎軍首:천양표국 국주) 맹철탁이 본의 아니게 그들의 앞을 막고 선 양치기에게 조용히 말했다.
말에 밟혀 죽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눈까지 질끈 감고 있던 양치기는, 맹철탁의 음성을 듣고 조심스레 눈을 떴다.
“죄… 죄송합니다요!”
그리고 화들짝 놀란 얼굴이 되어 머리가 땅에 닿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굽실거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머리를 굽실거리던 양치기는 사죄를 하는 것보다 더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서둘러 양들을 길 바깥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이십여 마리의 양들을 완전히 길에서 몰아낸 양치기는 잔뜩 겁먹은 눈으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맹철탁과 철기단을 힐끔거렸다. 길을 막았다고 혹시라도 자신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맹철탁은 오히려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기까지 하고는 곧바로 철기단의 이동을 재개시켰다.
“은형 무사.”
“예, 맹 교군수님.”
철혈금교군의 길잡이를 맡고 있는 은형대 무사가 맹철탁의 바로 옆에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목적지로 가는 길목을 잘 잡고 있겠지?”
맹철탁의 바로 옆에서 방향을 지정해주는 은형 무사가 혹시라도 실수를 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형 무사들은 추종술과 지형지물 정찰에 관한 훈련을 받은 자들. 절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좋다. 그럼 이제부터 조금 더 속도를 높인다.”
맹철탁은 급속도로 빨라지는 철기단 전체에 더욱 속도를 높이라고 지시했다. 그들의 교주이자, 지존인 오칠이 정한 시간 안에 도착하려면 그래야 하기 때문이었다.
두두두두두!
철기단은 산서의 어느 집결지를 향해 다시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산서 북쪽 삭주(朔州)의 어느 바위산.
타탁. 타타탁. 타타타탁.
나무나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 지형이라 약초꾼도 들어오지 않고, 잡을 만한 짐승도 거의 없어 사냥꾼들도 잘 볼 수 없는 그 바위산 중턱을 이백여 명의 무리가 빠른 속도로 몰려 올라가고 있었다.
이들은 누구인가.
활과 창이 없으니 사냥꾼일 리가 없고, 나름대로 단정한 무복을 갖추고 있어 산에 사는 야인 같지도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체형이 우람하고, 각자 등 뒤에 두 개의 도끼를 엇갈려 메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었다.
길현초가.
남궁세가 등의 흑천맹 세력에게 크나큰 타격을 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그들이, 지금 삭주의 험난한 바위산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정지!”
노령의 몸에도 불구하고 이백여 무사들을 통솔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는 태상 가주 초열홍은, 크고 넓은 바위로 구성된 산꼭대기에 이르러서 무리의 이동을 멈춰 세웠다.
“잠시 휴식한다.”
무사들은 일제히 자리에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운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 차갑게 식은 만두로 허기를 채우기까지 했다.
“준비한다.”
초열홍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휴식 시간은 고작 한 식경.
이전에 휴식을 취하고 달려온 시간이 하루 반나절임을 감안할 때,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더구나 하북 부평 동쪽에서 하북팽가에게 큰 타격을 준 뒤 이동을 시작한 초열홍의 무리는 이와 같은 이동과 휴식을 계속 반복해왔다. 괜한 주목을 피하기 위해 말도 타지 않았으니, 정말 지독한 행군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상승의 무공을 익히고 강대한 내공을 지닌 그들에게도 분명 지치고 힘든 이동이었지만, 노령의 초열홍도 꿋꿋이 견뎌내는데 어찌 힘들다 말할 수가 있을까.
‘이 정도의 속도라면 오칠님께서 정한 시간에 대략 들어맞게 갈 수 있겠군.’
초열홍은 저 멀리 그들이 이동해야 할 방향을 바라보며 거리와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하지만…….’
초열홍은 딱 정한 시간에 가는 것은 참으로 불경한 짓이라 생각했다.
그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이 수하로서 충심을 보이는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더구나 약간의 여유를 잡고 가서 무사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야 했다. 그래야 본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끌어내어 충실하게 싸울 수 있지 않겠는가.
“은형 무사.”
“예, 태상 가주님.”
“더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로 간다.”
은형 무사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그리 순탄하지 않은 길로 가고 있는데, 초열홍은 더욱 고통스런 이동로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길잡이. 초열홍이 그렇게 요구한다면, 그에 부합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해주면 그뿐이다.
“알겠습니다.”
“모두 들었겠지? 힘들겠지만 잘 견뎌 내주리라 믿는다.”
무사들은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상 가주가 하자고 하면, 그대로 하면 되었다. 그것이 배화교 호법 가문 초가(超家)의 긍지였다. 그러한 강단이 이백여 년 전의 처절한 싸움에서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일족을 이어오게 한 힘의 근원인 것이다.
“출발한다.”
은형 무사를 따라 초열홍이 바위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뒤로 이백여 명의 일족무사들이 따랐고, 그들은 산서의 남쪽을 향해 빠르게 이동해갔다.
* * *
산서 남쪽 고현(古縣).
사사사사사삭.
가는 솔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소리가 크고 작은 나무들로 가득한 인적 없는 숲을 따라 잔잔하게 메아리쳤다.
하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니, 그 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
순간, 사람들의 등장과 함께 소리가 지워지고 고요함이 숲 속을 내리눌렀다.
“무슨 소리 못 들었나?”
긴 장창을 어깨에 짊어진 사냥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료에게 물었다.
하지만 투척용 그물을 정돈하는 데 열중하고 있던 동료는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이상하네. 확실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사냥꾼은 분명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봐, 흔적을 찾았어!”
이때, 그들보다 앞쪽에서 짐승의 자취를 탐색하고 있던 동료가 기쁜 얼굴로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상한 기미를 느꼈던 사냥꾼과 그물을 정돈하던 사냥꾼은 그 말에 반색을 하며 앞쪽으로 뛰어갔다.
“이게 어떤 놈의 발자국이지?”
“노루 아냐?”
“제법 큰 놈인 것 같은데!”
“좋아. 그리 오래된 흔적도 아니니까, 반 시진 안에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흔적을 찾아낸 사냥꾼의 활기찬 음성에 다른 두 동료의 얼굴에 기대감이 어렸다.
이제야 날이 풀려가는 때라고 해도 산에 들어온 지 반나절이 넘도록 토끼 한 마리 잡질 못했으니, 그들이 느끼는 기쁨이란 이루 설명할 수 없이 크다 할 수 있었다.
“가자!”
사냥꾼들은 짐승의 발자취를 따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주변은 다시 인적 없이 조용한 침묵이 감싸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