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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94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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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94화

파계 8권 - 19화

 

 

 

 

 

“조심하십시오!”

 

경공을 펼쳐 다시 달리려고 했던 팽유명은 세가 무사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황급히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촤악.

 

“악!”

 

하지만 피했음에도 팽유명은 왼쪽 팔에 전해지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왼쪽 팔을 보고는 거의 졸도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 팔-!”

 

팔뚝 어림부터 절단된 왼팔에서 핏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지혈하지 않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정도로 끔찍하게 많은 피였다.

 

“크악!”

 

“아악!”

 

왼팔이 잘려나갔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멍하니 있던 팽유명은, 그를 막아서던 두 명의 무사들이 죽으며 내지르는 비명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초열홍?’

 

두 명을 죽이고도 호흡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다시 앞을 막는 하북팽가 무사들을 향해 도끼를 휘두르는 노인은 길현초가의 전대 가주였다.

 

노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몸집과 패기가 가득한 모습이지만, 길현초가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자가 그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남궁세가와 하북팽가를 비롯한 수장들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워했다. 가주 자리까지 물려주고 뒷방으로 물러난 노인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과거 가주일 때에 비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니 그 이상의 무위를 선보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초열홍이 나설 만큼 길현초가가 이번 싸움에 모든 전력을 다 쏟아 붓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이번 흑천맹의 공격이 산서에 있는 정파문들에게 존폐의 크나큰 위기감을 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또 그만큼 절박할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을 전장에 내보낸다고 해도 문파를 지킬 사람은 남아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전대 가주가 그러한 사람들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길현초가는 그렇지가 않았다. 초열홍은 물론이고, 은퇴한 것으로 알았던 장로들까지 합류해 있었다. 아마도 길현초가에는 여자와 어린애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귀찮게도 달라붙는구나!”

 

초열홍은 거구답지 않은 빠른 움직임으로 좌우로 이동하면서 양손에 쥔 도끼를 풍차처럼 휘돌렸다.

 

그 공격에 그의 앞을 막고 있던 하북팽가 무사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나동그라졌다.

 

“오호단문도를 사용하는 걸 보니, 넌 팽가의 직계겠지?”

 

앞을 막는 무사들을 처리한 초열홍이 다음으로 노린 것은 당연히 팽유명이었다. 팔 하나로 끝내려고 했다면 공격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 조부께서 가주이시오!”

 

잘린 왼팔을 점혈하여 일단 출혈을 막은 팽유명이 도전적인 눈빛으로 초열홍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제 곧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좌우사방에서 들려오는 병장기 맞부딪치는 소리와 죽음에 이르는 걸 알리는 처참한 비명들이 그의 표정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빛이 살아 있구나. 하지만 그것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무림이 너무 험난하지. 운이 나빴다고 여겨라.”

 

초열홍은 나이 어린 후배를 배려하는 정파인 특유의 여유도 보여주지 않았다.

 

실상 그는 진정한 정파인도 아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잠시의 방심으로도 생사가 오갈 수 있는 때였고, 무엇보다 그는 지존(至尊)의 명으로 이 싸움에 참여한 만큼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을 개입시켜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시오!”

 

팽유명은 왼팔의 고통 때문에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이를 악물고 도를 가슴 앞으로 세웠다.

 

초열홍은 그 모습에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역시 아량을 베풀 생각은 조금도 없었기에 팽유명을 향해 도끼를 내던졌다.

 

촤아아!

 

일격에 아무런 고통도 없이 죽여준다는 생각으로 던진 도끼는 소리만으로도 그 강력한 위력을 짐작케 했다.

 

쩡!

 

하지만 날아간 도끼는 팽유명의 머리를 쪼개지 못했다. 팽유명이 고통 중에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도끼를 막아낸 것일까?

 

물론 아니었다. 초열홍의 공격을 막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가 나타난 것이다.

 

“초 선배, 어린 아이를 상대로 너무 과하게 손을 쓰시는구려.”

 

초열홍을 선배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하북팽가의 가주 팽월능이 그런 소수의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침착하게 도끼를 막고, 초열홍을 나무라기까지 한 팽월능의 표정은 매우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초열홍이 아니다.’

 

팽월능은 처음 길현초가가 주축이 된 정파 무림인들에게 급습을 당하고, 그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길현초가가 강력한 문파라는 것에 다른 문파의 수장들처럼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으며, 이곳까지 후퇴하는 굴욕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초열홍의 강력한 무공은 그것 이상으로 지금 팽월능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왜?

 

과거 팽월능이 가주가 아니었을 때, 그는 초열홍과 손속을 나누어본 적이 있었다. 정식 비무도 아니었고, 팽월능이 길현초가를 우습게보고 그를 자극하여 생긴, 실력을 알아보는 정도 수준의 작은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결과는 외견상 무승부였다. 나이와 무림 출도 시기는 초열홍이 위였지만, 실력은 거의 비등했던 것이다.

 

더구나 초열홍이 그만 할 것을 청했으니 팽월능이 우위였다고 해도 무방했고, 팽월능도 내심 초열홍이 그 자신보다 하수라고 생각했었다. 사파를 대표하는 하북팽가의 사람인 자신이 초열홍보다 강한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고나 할까. 그리고 방금 전까지 그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전 도를 휘둘러 막은 초열홍의 도끼에 담긴 힘은 팽월능을 놀라게 할 만큼 강력했다. 그의 하수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었다.

 

“양천에서부터 자넬 봤지만 용무가 바빠서 말을 건넬 기회가 없었네. 그러니 이 자리에서 회포를 풀어보세나.”

 

초열홍은 상대가 바뀐 것을 매우 반기는 얼굴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쪽 팔까지 잃은 젊은 상대를 공격한다는 것에 내심 꺼림칙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날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건가.’

 

팽월능은 초열홍의 얼굴에서 벌써부터 승리자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서는 패배자의 절망감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으니, 이 싸움은 결과가 뻔한 것이었다. 실력의 고하를 떠나서 기세와 마음 자세에서 팽월능은 이미 패배한 것이다.

 

‘지금은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다.’

 

팽월능은 힐끔 시선을 움직여 주변 상황을 살폈다. 길게 볼 것도 없이 비등하게 접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백여 명과 그 몇 배의 숫자가 맞붙는 상황이 접전으로 치닫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얼마 있으면 다른 산서 정파인들까지 합류해서 상황은 급격하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초 선배, 다음에 다시 때를 잡읍시다.”

 

팽월능은 빠르게 팽유명을 허리에 끼고 초열홍이 서 있는 곳 반대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적들을 상대하지 말고 퇴각하라는 고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안쓰럽군.”

 

팽월능이 저 멀리 사라지는 걸 가만히 바라보던 초열홍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인이 시원스럽게 싸우지 못하고 도주해야 한다는 상황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이 될 수 없었다. 팽월능도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도망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일파의 수장으로서 상황을 살피고, 그에 맞게 무리를 이끄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실행한 것일 뿐이었다.

 

“피해는?”

 

기습하기 전 도주하는 적을 쫓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놨기 때문에, 별다른 명령이 없었는데도 초열홍을 중심으로 길현초가의 무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초열홍은 가장 먼저 아들이자 가주인 초유강에게 피해상황을 물었다. 초유강은 험악했던 싸움을 표현하듯 온몸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청수한 인상이 지금은 길현초가 무사들 특유의 강인한 느낌을 발산했다.

 

“열한 명이 죽고, 스물두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부상자들 중에는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이들도 있어서 초열홍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은 다시 원래의 신색으로 돌아갔다. 무림인이라면, 그리고 교주의 명을 받는 배화교의 신도라면 죽음과 부상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아마도 그러한 점이 배화교 교도와 무림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님, 오칠님으로부터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초유강이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내들었다.

 

초열홍은 그 서신을 받아들어 내용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산서로?’

 

흑천맹과 산서 무림 문파들의 최근 정황 등이 적혀 있고, 곧 대대적인 싸움이 시작될 것이며, 그 전에 산서로 와서 무리에 합류하라는 간략한 내용이었다.

 

화르르.

 

초열홍은 서신을 읽은 후, 삼매진화로 서신을 불태웠다.

 

‘오칠님의 명을 따를 뿐.’

 

오칠이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지시를 내렸는지 당연히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의도가 무엇이든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며, 설혹 승복할 수 없는 이유라고 해도 그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추적은 곧 당도할 다른 문파들에게 맡기고 우린 사상자를 챙긴 뒤 후방으로 물러난다.”

 

“알겠습니다!”

 

초열홍의 지시에 따라 무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그들은 곧 시체와 핏물에 잠긴 산길을 떠나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 * *

 

 

 

 

 

하북 곡양.

 

태양이 서쪽 끝으로 사라지며, 메마른 절벽 아래로 어둠이 흐릿하게 드리웠다. 그리고 그곳에 족히 천 명이 넘는 숫자의 사파 무림인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크으…….”

 

곳곳에서 신음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족히 하룻길을 내리 달려온 무림인들은 피로와 부상으로 거의 모두가 피폐한 몰골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닌가. 부평에서 이곳 곡양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기에 누구도 자신의 처지를 불평할 수가 없었다. 그저 죽은 이들을 생각하며 드러나지 않게 슬퍼하고 있을 뿐이었다.

 

“팽 가주님.”

 

손주인 팽유명의 잘린 왼팔을 살펴주고 있던 하북팽가의 가주 팽월능은, 그를 부르는 남궁세가 가주의 장남인 남궁신을 돌아보았다.

 

‘남궁세가 쪽은 우리보다 추적자들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용이한 행로였다고 하던데…….’

 

그런데도 남궁신의 몰골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옷의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핏기가 점점이 묻어 있었으며, 목에 작은 상처가 있는 걸 보면 생사의 고비도 여러 번 겪은 것이 분명했다.

 

“아버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알겠네.”

 

팽월능은 그의 아들들과 다른 손자들에게 지쳐 있는 세가의 무사들을 다독이고, 불을 피워서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린 다음 남궁신을 따라갔다.

 

“어서 오십시오, 팽 가주님. 악전고투를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진용은 팽월능에 비해 연배가 한 세대 낮았기 때문에, 그 말투엔 윗사람을 대하는 공경의 느낌이 담겨 있었다.

 

“그렇소이다. 특히 길현초가에 크게 당하고 말았소.”

 

그의 손자가 왼팔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북팽가와 함께 이동하던 철심각 황각의 각주를 비롯하여 비중 있는 고수들이 길현초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길현초가… 그들로 인해 우리의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군요.”

 

남궁세가 역시 양천에서 길현초가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던지라, 팽월능의 말에 침통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날 보자고 한 연유는 무엇이오?”

 

팽월능은 남궁진용이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라도 떠올렸나 하여 묻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궁진용의 얼굴에 난감하다는 표정이 지어졌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 자리를 피해 물러나도록 했다. 아마도 굉장히 중요한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오태 쪽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한데, 그 내용이…….”

 

“지금과 같은 때에 무얼 망설이시오.”

 

자신감 있게 산서를 공격했다가 정신없이 하북까지 도망친 자신에게 무엇이 더 충격을 줄 수 있겠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궁진용은 조금 더 망설이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산서에서 은밀히 파견한 습격대라고 짐작되는 자들로 인해서 오대세가의 본가와 분타들이 모두 궤멸되었다고 합니다.”

 

“……!”

 

팽월능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표정으로 남궁진용을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여자와 아이들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가와 분타를 지키던 무사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장원과 분타의 건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남궁진용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이야기했지만, 그 내면에 감추어진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는 상상할 수도 없이 컸다.

 

하지만 그는 소식을 들은 지 하루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킨 상태였기에 지금처럼 담담히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분명 산서 정파인들이요?”

 

팽월능은 메마른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물었다.

 

“삼목원에선 그들의 소행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삼목원의 제일 원주인 제갈모학이 그렇게 추측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일이…….”

 

팽월능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감 있게 하북을 떠나 산서로 진입한 것이 얼마 전인데, 이제는 도로 쫓겨 온 데다 그의 가문은 초토화가 되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가로 돌아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황보 맹주가 한곳으로 전력을 집중하여 산서 정파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기로 한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우리에게 오태로 오랍니다. 장치로 향한 모용세가와 그 무리에게도 같은 명령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팽월능의 눈동자에 일순 분노의 불꽃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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