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93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93화
파계 8권 - 18화
털썩.
추필문이 계속해서 멈추라고 소리를 지르는 그때, 당고의 생각대로 독 기운을 직접적으로 맞고 약간 괴로워만 하던 오행교군의 무사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 기운을 완전히 막아내지 못하고 살짝살짝 피부가 상했던 변서생의 얼굴색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내가 맡지.”
모두가 험악하게 뒤엉키며 죽고 죽이는 가운데서도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던 오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느새 변서생의 앞에 서더니, 독기를 두 손 가득 뿜어내고 있는 당고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그만 해라. 너 너무 많이 놀았다.”
오칠의 비웃음 가득한 말에 당고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분노가 그를 더욱 강하게 하고, 극성으로 운기되는 독공의 기운이 그를 완전한 독인으로 만든 것이다.
“시체도 남지 않게 녹여주……!”
오칠을 향해 두 손을 내밀어 막 독기를 발출하려던 당고의 신형이 덜컥 뒤로 밀려났다. 마치 공간을 이동한 것처럼 순식간에 바짝 다가온 오칠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 들어올린 것이다.
‘어떻게?’
목이 잡혀 허공에 들려진 당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오칠을 바라보았다.
그가 용독술이나 독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공이 낮아서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온몸이 지독한 독기로 가득한 그를 붙잡고도 오칠이 아무렇지 않은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의 몸에서 지금 발출되는 독기는 해독제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독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죽이면 문제가 있겠지?”
낮게 가라앉은 사악한 음성.
당고는 오칠의 붉고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순간, 그의 몸이 뒤로 붕 떠오르며 객잔의 나무 벽을 뚫고 밖으로 날아갔다.
타탁.
당고가 다른 칠절신군들에 비해 무공이 낮긴 해도, 그 역시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벽을 뚫고 밖으로 날려진 순간, 그는 몸을 뒤틀어 땅을 디디고 균형을 잡아 객잔에서 나올 오칠을 기다렸다.
“여기야.”
하지만 오칠은 어느새 그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눈부실 정도로 검게 반짝이는 곤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당고를 놀래킨 것은 오칠이 어느새 밖으로 나와 허공에 떠 있다는 상황도, 손에 들린 범상치 않은 모양의 묵철곤도 아니었다. 바로 오칠 자체였다. 붉고 푸른 불꽃에 휩싸여, 마치 인간이 아닌 듯 사악하고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오칠 자체가 당고를 놀라게 하고, 당혹시키고, 두렵게 만들었다.
“죽어.”
오칠이 허공에서 허공답보(虛空踏步)의 경신법을 펼쳐 서서히 걸어 내려오며 말했다.
그 낮은 음성과 함께 묵철곤이 붉고 푸르게 타오르며 당고를 향해 떨어졌다.
‘안 돼!’
당고는 속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함을 지르며 본능처럼 양 손바닥을 모아 하늘로 내밀었다.
이어 그를 향해 떨어지는 묵철곤을 향해, 그리고 묵철곤을 휘두르는 오칠을 향해 흑황앙천의 모든 독기를 손에 모아 구(毬)로 만들고 오칠을 향해 쏘아 보냈다.
펑!
천마신공의 기운과 흑황앙천의 기운이 맞붙고, 뜨거운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독 기운이 뒤섞인 불지옥과 같은 공간을 뚫고 묵철곤이 당고의 머리로 떨어졌다.
파삭!
“…….”
머리의 반쪽이 부서지고, 혼백이 절반쯤 빠져나간 당고는 순간 깨달았다.
독이 통하지 않는 상대와 싸울 때에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고목처럼 땅으로 쓰러졌다.
치이익.
당고의 몸에선 붉은 선혈이 아니라, 독기에 찌든 검은색 액체가 흘러나와 역겨운 악취를 풍기며 대지로 스며들어갔다. 아마도 그가 객잔 안에서 죽었다면 이 독기 때문에 객잔 안의 모든 이들이 중독되고 말았을 것이다.
“거기 얼른 끝내라!”
당고를 힐끔 쳐다보고 몸을 돌린 오칠은 한쪽 벽이 훤하게 뚫린 객잔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크악!”
챙!
“아악!”
차창!
안에서는 더욱 거센 격타음과 비명, 무기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격렬하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혼탁한 소음들 사이에 잠깐 동안 변서생의 힘찬 고함과 엽종의 날카로운 기합성이 들리는 듯하더니, 얼마 뒤 사편신군 추필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산서 공략에 나선 흑천맹을 지원하려고 했던 혈독신군과 사편신군을 비롯한 암황곡의 고수들은, 오칠과 오행교군의 손에 완전히 몰살당했다.
* * *
콰드드득.
황보강패의 큼직한 손이 오므라들 때마다 의자의 팔걸이가 점점 형태를 잃어갔다. 그리고 좌우로 앉아 있는 제갈 원주를 비롯한 각 사파문 수장들의 얼굴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세가를 지키던 무사들은 전멸하고, 건물들이 모두 전소되었으며, 분타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괴멸되었단 말이오? 하북팽가를 제외한 모든 오대세가들이?”
꾹 다물어져 있던 황보강패의 입이 열리고,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가 제갈 원주에게 고정되었다.
제갈 원주는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흉수의 정체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산서 정파인들이 후방으로 은밀하게 습격대를 보낸 것으로 판단됩니다. 아마도 곧 하북팽가까지 공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백천맹은?”
맹주는 더욱 묵직한 음성으로 되물었다. 왜 백천맹은 거론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백천맹은 현재 혈천신교와의 싸움을 준비하느라 여력이 없습니다.”
“산서 정파도 우리와 대치하느라 여력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요.”
“사태의 불리함을 알기 때문에 더욱 모험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맹주는 다시 침묵했다. 그에 수장들은 처음부터 그랬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북팽가의 본가로 사람을 보내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팽 가주에게라도 소식을 전하는 것이…….”
수장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갈 원주는 안타깝게도 이미 때는 늦었다고 했다. 또 정확하게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는 흉수들을 찾아내기 위해 지금과 같은 때에 많은 무사들을 파견하는 것도 헛된 일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빠른 시간 안에 산서를 제압하고 안정을 찾은 상태에서 흉수들을 토벌하는 것이 더 효용성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불가하다는 제갈 원주의 말에 장내는 침묵에 휩싸였다.
“…….”
제갈 가주는 그의 세가가 완전 초토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여자들과 아이들은 무사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외의 모든 소식은 그를 분노와 절망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였다.
“오태산에 불을 질러버립시다.”
멍해 있던 눈을 번득이며 제갈 가주가 말했다.
“제갈 가주, 그 계획이 불가함은 이전에 설명해준 것으로 기억하오만.”
제갈 원주가 약간 짜증이 밴 듯한 음성으로 제갈 가주의 의견을 차단했다.
하지만 제갈 가주의 반응은 이전과 달랐다. 평소 숙부인 제갈 원주의 말에 기를 펴지 못하던 그가 아니라, 진정 제갈세가의 가주다운 냉철하고 위엄 있는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놈들은 우리의 후방을 쳐서 세가를 초토화시켰습니다! 한데, 우리는 이곳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더구나 남궁세가 등이 산서의 가장 약한 곳이라 판단되었던 양천에서 밀린 상황이 아닙니까!”
그의 말은 이전에 맹주의 조카인 황보진성이 했던 말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수장들의 표정은 그때와 약간 달랐다. 남궁세가 등이 밀린다는 소식으로 불안감을 느낀 수장들 모두가 적극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맹주 황보강패까지도 뭔가 골몰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은 관의 눈치를 볼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관이 움직인다면 황금을 뿌려서라도 막으면 되는 것이고, 훗날을 대비한 전력의 보존도 일단은 현재 우리가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주께 따지는 것 같아서 지금껏 망설이고 있었지만, 이전에 계획 중이시라는 것도 한 달이 다 되도록 더 이상 아무런 말씀도 없으시니 실행이나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제갈 가주의 논리 정연한 주장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옳은 말이라며 같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런 낭패가!’
제갈 원주는 제갈 가주의 말에 즉각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변명을 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현 시점은 관의 개입이고 전력의 보존이고 간에, 일단 산서 정파 무림을 빠른 시간 안에 무너트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혈독이 와야 오태산에 숨어 있는 정파 무림인들을 끌어낼 묘책을 실행시킬 수 있는데, 이미 보름 전에 도착해 있어야 할 그가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길로 이동하고 있던 사편까지 소식이 끊긴 상태라, 그가 세운 계획은 완전히 실행 불가능이 되어버렸다.
“화공을 쓰겠소.”
제갈 가주를 비롯한 수장들이 산서 공략을 포기하고 귀환하지 않을 것이라면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 목소리를 높이자, 드디어 맹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결단을 내린 것이다.
“양천과 장치에 있는 문파들까지 모두 이곳 오태로 집결하라 전하시오.”
“맹주!”
제갈 원주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황보 맹주의 의지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당한 만큼 산서 정파 무림도 피를 흘려야 하오. 사파 무림 천하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소.”
말은 그렇지만, 황보강패는 사파 천하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었다.
그가 아무리 큰 대업을 꿈꾸고 있다고 해도, 세가가 무너졌다는데 참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무림인이었고, 무림인은 복수를 잊지 않는 고집쟁이들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이면 산서 정파인들도 자연히 오태로 몰려들 것이오. 그러니 그들이 모여 방해를 하기 전에 먼저 오태산에 화공을 쓰도록 하겠소.”
“알겠습니다.”
제갈 원주는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다.
그는 맹주가 아니라 책사였다. 맹주가 좀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조언하고,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묘책을 내놓는 것이 그의 역할인 것이다. 그러니 말리고 싶지만, 맹주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수장들께서는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결전을 준비해주시오.”
“맹주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산서 정사 대전의 흐름을 급박하게 전환시킬 결정이 내려진 회의는 끝이 나고, 수장들은 전의에 찬 얼굴로 흩어졌다.
제78장. 싸우고 도주하고 모이다
하북 부평(阜平)에서 더 동쪽으로 위치한 곡양(曲陽)으로 가는 낮은 산길.
사람의 왕래도 그리 많지 않고, 특별히 형성된 길도 없는 그곳에 하북팽가의 무사들을 비롯한 일천여 명에 가까운 사파 무림인들이 하나의 긴 무리를 지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서둘러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저 뒤쪽에서 그들을 쫓고 있을 산서 정파인들을 피하기 위해서 달리는 중이었다.
“적이다!”
그때, 왼쪽 방향에서 이백여 정도의 무리가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길현초가!”
사파 무림인들은 너무도 놀란 외침을 지르며 더욱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나타난 길현초가 무사들의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게 빨랐고, 그들은 곧바로 달리는 사파인들 무리의 허리를 파고들어 무지막지한 공격을 시작했다.
채챙.
“윽!”
팽유명은 그의 왼쪽에서 날아온 도끼를 완벽히 막지 못하고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다. 시야를 앞에 두고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둘째 공자님을 보호하라!”
왼쪽에서 같이 달리고 있던 하북팽가의 무사 세 명이 황급히 팽유명을 공격하는 길현초가 무사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세 명을 앞에 두고도 길현초가 무사의 공격은 망설임이 없었고, 그 파괴력 또한 세 명이 막을 수 없는 수준의 위력이었다.
카캉! 카카캉-!
“악!”
세 개의 도를 힘으로 튕겨낸 도끼가 그대로 세 무사의 가슴을 일시에 쪼개버렸다. 그리고 길현초가의 무사는 그 기세 그대로 팽유명을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
“하압!”
하지만 팽유명은 세가 무사들의 희생을 통해 준비할 시간을 갖추었고, 도끼를 옆으로 비끼면서 강맹한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초식으로 무사의 허리와 다리를 깨끗이 잘라냈다.
털썩.
땅으로 무너진 길현초가 무사는 죽어가면서도 신음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팽유명은 혀를 내둘렀다. 산서 양천(陽泉)에서부터 길현초가 무사들의 공격을 계속 받으면서 이러한 광경을 수없이 목격했지만, 신음도 지르지 않는 지독한 인내심과 무식하리만치 저돌적인 그들의 공격에 팽유명은 매번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