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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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91화
파계 8권 - 16화
‘후~ 오늘도 완전 망했군.’
계산대에 머리만 빠끔히 내놓고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객잔 주인은 더욱더 안색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약간 과장된 것이 있었다. 객잔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아니 험악한 인상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무림인들 때문에 다른 객들이 들어왔다가 도망치듯 빠져나가긴 했지만, 무림인들이 요 이틀간 객잔에 있으면서 시킨 음식과 술만 해도 한 달 동안 들락날락한 숫자의 손님들이 먹은 양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무림인들은 선금으로 금덩어리를 주고서 먹고 자는 것이니, 나중에 떼먹힐 걱정도 없었다.
장사치들의 이득을 향한 욕심이란 그렇게 한도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험악한 무림인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는 곳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주인의 심정은 분명 동정이 갈 만하기는 했다.
덜컹.
‘또인가?’
이내 객잔의 문이 열리고, 네 명의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와 그 분타들을 불살라버리고 산동으로 향하는 오칠 일행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누구인 줄 전혀 알지 못하는 객잔 주인은 당연히 오칠 일행이 곧 이러저러한 핑계를 만들어 다시 나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의 객들과는 달랐다.
“조용하니 좋네.”
안으로 들어와 주위를 둘러보고 양쪽으로 갈라져 앉은 무림인들 사이로 가서는, 두 개의 화롯불이 피워져 있는 중심의 비어 있는 탁자에 털썩 앉으며 오칠이 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눈치만 보는 점소이를 향해 손짓했다.
“주문 받아.”
“예… 예.”
점소이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진짜 가기 싫다는 얼굴로 오칠 일행에게 다가왔다.
“여긴 뭘 잘해?”
“예. 저희 객잔은…….”
이런 지역에 있는 객잔이 번화한 성도의 음식점도 아닌 이상에야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점소이가 말한 음식은 소면, 구운 오리 등등의 모든 객잔들이 할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이었다. 그러나 오칠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 모든 음식들을 가져오라 주문했다.
“술은 안 드십니까?”
오칠이 주문을 그렇게 마무리하자, 초왕성이 목이 좀 마르다며 말했다.
하지만 오칠은 고개를 내저었다.
“한시가 급한데, 술은 무슨 술.”
“이런 추운 날에는 술로 몸을 좀 덥혀야 하는 겁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초왕성의 지원 요청에 엽종과 변서생은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한 잔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날씨도 그렇고,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목에 먼지도 껴서 좀 답답하긴 합니다.”
오칠의 눈치를 보면서도, 술을 먹자는 쪽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 정도의 고수가 추위가 많이 가라앉은 요즘과 같은 때에 몸을 데우자고 술을 찾는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오칠은 무슨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 그럼 한 잔씩들만 하지.”
오칠의 허락에 초왕성은 얼른 점소이를 불러 술을 시켰다.
‘이것들은 뭐야?’
당고와 그 패거리에게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추필문은 난데없이 객잔에 들어와 두 무리의 경계를 긋고 있던 중간 탁자에, 그것도 가장 명당이라 할 수 있는 화롯불 자리에 턱하니 자리를 잡고서 자신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제 할 일만 하는 오칠 일행 때문에 기분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아닌 말로 그를 추종하는 사십여 명은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랄 사파의 전대 고수들이고, 그 자신만 보자면 무림의 절정고수로 칭해지는 사편신군(蛇鞭神君)이 아니던가. 허리에 감겨 있는 붉은 채찍 하나로 무림을 질타해온 그가 이렇듯 무시를 당하는 상황이란 참으로 생소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혈독신군(血毒神君) 당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고는 추필문과 더불어 칠절신군에 이름을 올리는 절정고수이고, 그를 따르는 이들은 사파의 이름 높은 전대 고수들. 그런 만큼 오칠 등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에 적지 않게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초왕성은 예외로 두고, 평생을 두고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칠절신군들 중 두 명이나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어찌 된 연유일까?
사연은 이러했다.
당고와 추필문은 오래전 비슷한 시기에 흑천맹에 입맹하여 은거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먼저 흑천맹에 몸을 의탁한 사파 고수들과 두 사람을 따르는 사파 고수들까지 함께하면서 그들이 있는 장소는 암황곡(暗皇谷)이라 불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암황곡을 이끌게 된 혈독과 사편이 이전부터 원만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직접 싸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당고는 독에 중점을 둔 채 무공을 보조로 삼았고, 추필문은 보조적으로 독을 사용하고 무공에 중점을 두었다는 상대성 때문에 서로를 견제하고 무시하게 된 것이 결국 악감정이 되어 쌓이고 쌓이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경쟁자이니 앙숙이니 하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두 무리로 나누어진 암황곡에 최근 맹주로부터 한 가지 요청이 들어왔다. 산서 공략에 힘을 보태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었고, 도움에 따른 보상을 약속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맹주의 요청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산동성 동쪽 오련(五蓮)에서 출발하여 서로 다른 이동로를 택한 뒤 산서로 향했는데, 어찌 어찌 한 무리는 곡부(曲阜)를 지나고 또 한 무리는 추성(鄒城)을 지나다 보니, 두 지역에서 산서로 가는 길목의 교차점인 이곳 연주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추종 세력을 이끌고 거의 동시에 객잔에 들어와서 산서로 가야 한다는 목적도 무시하고 이틀 동안이나 이동을 하지 않고 경쟁하듯 죽치고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이 서로에 대한 경쟁심과 우월감 등등이 혼합된 자존심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두 사람과 전대 사파 고수들을 너무도 쉽게 무시하는 오칠과 그 일행의 행동이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기분 좋은 관심이 아니라, 불쾌함이 섞인 관심이지만 말이다.
‘척 보니 무림인 같은데, 끝까지 나를 무시할 수 있을까!’
당고와 추필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 이틀간의 의미 없는 대립 기간 동안 그들도 심심했었는지, 오칠 등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갔다. 그래서 나중에는 언제쯤이면 오칠 등이 당고 등의 정체를 알아보고, 상황을 파악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치듯 객잔을 나갈까에 대해서 은밀히 내기를 하는 자들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일각이 지나고, 오칠 일행이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그것들을 소리도 시끄럽게 먹고 마셔대고, 탁자에 있는 그릇들이 치워진 뒤 느긋하게 차를 마실 때까지도 오칠 일행은 당고 등의 무리가 기대했던 반응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뭐야, 이것들!’
참으로 실망스런 상황이었고, 당고 등의 무리는 화가 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들 모두는 암묵적으로 오칠 등에게 적당한 훈계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당고와 추필문을 비롯하여 그 무리가 처음으로 마음이 일치하게 된 기이한 상황인 것이다.
“어이, 다 먹었으면 그만 꺼져.”
시비의 시작은 사편신군 추필문 쪽이었다. 시비 거는 건 사파인들의 특기와 다름없었고, 그래서 추필문 무리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그래도 육십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의 추면객(醜面客)이 나선 것이다.
당고 쪽에서는 선수를 빼앗겼다는 아쉬움 가득한 탄성과 추종자들을 향한 당고의 질책 어린 시선이 뒤섞였고, 상대적으로 추면객은 추필문의 만족스런 미소를 보고 기가 살아서 더욱 험악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귓구멍에 진흙을 들이부었나, 후딱 안 움직여!”
조금 더 젊었을 적에 사용하던 조롱과 비아냥거림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상대적으로 선배 고수들이 많은 암황곡에서 오랫동안 지내왔던 추면객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였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고, 당고 등은 오칠의 반응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사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추면객의 말에 즉각 객잔 밖으로 도망을 치겠지만, 짧은 시간 동안 보아온 오칠 무리의 모습으로 판단하자면 뭔가 반항의 기미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또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면 훈계를 하는 데 재미가 덜할 테니까 말이다.
“너 추면객이지?”
그런데 오칠 무리의 반응은 그들 모두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초왕성이 즉각 추면객의 정체를 들먹이며 아는 체를 한 것이다.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 의문도 들었지만, 오칠과 그 일행이 정체를 알고도 저리 태평하게 자리를 차고앉아서 밥과 술을 먹었다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추면객의 명성이 이곳에서는 하급에 속하지만, 다른 무림인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날 아냐?”
추면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잘은 몰라. 얼굴도 처음 봤다.”
“…….”
“그렇지만 네 그 더러운 면상과 허리에 차고 있는 도를 보고 짐작했지.”
추면객은 잠시 멍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건방진 초왕성의 말투에 황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똑같은 혼란을 겪고 있었다.
“멍청하기는. 난 너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앉은 놈들을 대부분 다 알고 있어.”
당고와 추필문 무리는 더더욱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십수 년을 암황곡에 처박혀 있었다고 하더니, 이목까지 어두워진 모양이군.”
오칠이 코웃음 치며 말하자, 초왕성 등도 고개를 끄덕이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에 당연히 당고와 추필문 무리는 화가 났다. 초왕성 등이 누구이건 간에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데 화가 나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당고와 추필문은 추종자들에게 손짓을 했다. 알아서 오칠 등을 처리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시를 받고 일어난 몇 명은 곧 돌처럼 굳어져야 했다.
“초왕성!”
그 음성은 당고 쪽 무리에서 나왔다. 오른쪽 어깨부터 잘려나간 외팔이었는데, 그는 저승사자라도 보는 것처럼 두려운 눈빛으로 초왕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초왕성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고는 황급히 앞으로 뻗은 왼팔을 내리고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초왕성이란 이름을 들은 이들은 당고와 추필문만 제외하고 모두 그처럼 놀라고 있었다. 물론 외팔이만큼 심하게 겁을 먹지는 않았다. 아마도 외팔이는 언젠가 초왕성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초왕성이 지금과는 다른 외모, 그러니까 꽤나 오래전의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초왕성을 이제야 알아볼 리가 없었으니까.
어쨌든 당고 등의 무리가 가지고 있던 여유는 일순간에 사라지고, 분위기는 묘하게 변해버렸다.
“왕성이 너를 언제 알아보나 했는데, 이제야 알아보다니. 생각보다 참 멍청한 녀석들이야.”
자리에서 일어나 시립하듯 선 초왕성 등과 달리, 오칠은 느긋하게 앉은 자세 그대로 내부에 있는 암황곡 고수들 모두를 조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칠절신군에 이름을 올린 당고와 추필문도 같이 싸잡아 모욕한 것이기도 했다.
“과거 인간 백정이라 불렸던 천부신군이 애송이에게 이름을 불리고도 그냥 있는 걸 보면 세상 참 많이 변하긴 한 것 같군.”
“세상을 나오지 않은 지가 고작 이십 년 정도인데, 이렇게 나를 놀라게 하다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당고와 추필문은 한담이라도 나누는 것처럼 한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며 초왕성을 조롱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초왕성이 아니라 오칠이었다. 그 속사정이야 어찌 되어든 오칠이 초왕성보다 웃전에 있는 듯했고, 그렇다면 무리의 우두머리도 오칠일 테니까. 더구나 그들을 모욕하고 조롱한 장본인이 바로 오칠이 아니던가.
하지만 초왕성이나 오칠 누구도 두 사람의 조롱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잠시 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오칠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하며 당고를 향했다.
“그렇게는 소용없으니까, 괜히 잔재주 부리지 마.”
오칠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오칠의 말에 당고의 미간이 좁혀지고, 눈가가 살짝 붉어지기까지 하는 걸 보면 뭔가를 은밀하게 하려 한 모양이었다.
‘당고의 용독술을 알아챘다고?’
추필문은 내심으로 꽤 놀랐다.
당고가 왜 혈독신군인가. 바로 독이라면 적수가 없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었다. 독공 자체도 매우 강하지만, 은밀하게 독을 살포하여 상대를 죽이는 기술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독이라면 제법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 자신조차 조금이라도 감시를 소홀히 하면 어찌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당고의 용독술은 매우 뛰어난 것이다.
그런데 오칠은 그런 당고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하고, 비웃기까지 하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당고는 독에 관해서라면 분명 추필문보다 한 수 위였다.
“이미 늦었다.”
당고는 웃고 있었다. 미간을 좁힌 것은 보다 정교하게 오칠과 그 일행을 중독시키기 위해 신경을 집중하느라 그랬던 것이고, 눈가가 붉어졌던 것은 성공했다는 만족감으로 인한 감정 변화 때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