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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90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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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90화

파계 8권 - 15화

 

 

 

 

 

무림의 문파들 중 거대 문파들은 대부분 각 성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현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다. 그것이 그들의 힘을 상징하며, 부를 축적하는 기틀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현의 중심 지역에 근거지를 삼는 것은 아니다. 현은 엄연히 관의 지배하에 있고, 관과 얽히지 않기 위해, 특히 거대 문파들은 더더욱 거리를 두기 위해 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장원을 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는 모용세가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특히 모용세가는 과거엔 새외 세력이었기 때문에 현지인들과의 마찰과 원활한 관계 유지를 고려하여 장강을 아래로 두고 강소성의 중심에 위치한 태흥현(泰興縣)에서 딱 두 시진 거리에 있는, 명당이라 불릴 수 있는 곳인 산수(山水)에 장원을 세워 강소성의 패자로 입지를 굳혀왔다.

 

그리고 오칠은 그 모용세가를 멸문시키기 위해 초왕성, 엽종, 그리고 변서생을 거느리고 산수 땅에 들어서고 있었다.

 

“얼굴 좀 펴라.”

 

바로 옆에서 말을 타고 있는 초왕성을 보며 오칠은 짜증을 냈다.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왜 그러십니까?”

 

초왕성은 퉁명스럽게, 하지만 오칠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의 말투로 대꾸했다.

 

“여자하고 한 번 못했다고 지금 나한테 시위하는 거잖아.”

 

“절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듯 초왕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소주 몽환절정루에서 변서생과의 일이 끝나면 아리따운 소주의 기녀들과 놀겠구나, 하고 기대를 하고 있던 초왕성은, 오칠이 바로 그날 밤으로 이곳 태흥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하는 바람에 그의 기대는 그저 망상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절망과 분노에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며, 지금은 말 한마디 없이 인상을 구기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대업을 눈앞에 두고, 처절한 행로를 시작할 시점에 여자가 눈에 들어오냐?”

 

초왕성은 오칠의 말에 코웃음 칠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언제부터 그가 하는 일이 대업(大業)이 되었던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의 행로는 대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느긋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로였다.

 

처음 만나 음식 내기를 한 것부터 그가 자신과 아우니 어쩌니 하는 내기를 한 걸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이렇게 모용세가를 멸문시킨다는 결정까지도 그 내용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 해도, 오칠 자체만은 싱거울 정도로 느긋했다.

 

물론 정말 미친 듯이 말을 달려 강소성을 왔지만, 그것도 그리 급해 보이지 않았다. 초왕성이 볼 때는 그저 오칠의 여흥 중 하나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돈 많은 한량처럼 세상 편해 보이는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오대세가를 멸문시키려고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군. 과거 배화교가 이루지 못한 염원을 이루려는 건가?’

 

“오 형님.”

 

“왜?”

 

“오대세가는 왜 멸문시키려는 겁니까?”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

 

초왕성은 계속 물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엽종이나 변서생까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오대세가를 멸문시키려는, 과거 마교라고 불리었던 배화교의 교주가 하는 말치고는 너무나 감성적이고 이상적인 대답이 아닌가 말이다.

 

“진지하게 대답해주십쇼.”

 

“내가 농담하는 줄 아냐? 진짜야.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 이러는 거다.”

 

“오대세가를 무너트리면 왜 무림의 평화가 옵니까?”

 

“오대세가, 그러니까 흑천맹이 산서를 비롯해 하남까지 뒤흔들어놓으면 혈천신교는 백천맹을 손쉽게 무너트리겠지. 그런 뒤에 혈천신교는 흑천맹을 공격할 거야. 그 결과도 당연히 혈천신교의 승리다. 왜? 혈천신교는 강하니까. 무림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지. 그럼 무림은 어떻게 되겠냐? 당연히 혼란과 피폐 속에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거야. 그 이후는 설명 안 해줘도 되지? 그러니까 내가 오대세가를 멸문시키고 흑천맹을 와해시켜 버리면, 무림의 평화는 요 이백 년 동안 그랬듯이 안전하게 지켜진다는 거다. 물론 혈천신교도 내가 손을 좀 봐야 할 거야.”

 

“…….”

 

초왕성은 잠시 긍정의 의미를 담고 침묵했다. 엽종이나 변서생도 고개를 끄덕이며 오칠의 말이 그럴듯하다는 것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들이 묻고자 하는 원론적 의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왜 배화교의 교주인 오칠이 무림의 평화를 외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전혀 정의롭지 않고, 대협과는 동떨어진 데다, 무척 자기중심적이고, 때에 따라서는 매우 잔혹하기까지 한 오칠이 말이다.

 

그래서 초왕성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무림이 혼란해지는 게 우리하고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만이라면 상관은 없지.”

 

“그런데요?”

 

“그런데 문제는 혈천신교다.”

 

“……?”

 

“아무래도 과거 배화교의 한 줄기 같거든.”

 

“예?”

 

초왕성 등은 깜짝 놀랐다. 혈천신교가 그들과 관계된 무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뭐, 배화교만큼이나 강하고 대단히 종교적인 단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이나 조사한 바로는 그래. 무공이나 사람을 괴물처럼 만드는 수법이나, 과거 배화교조차 경원시하며 사용 금지시켰던 것들을 쓰고 있어.”

 

“그럼 오칠님께서 교주임을 밝히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로 설득되면 좋지. 한데, 그놈들 하는 꼴이 아무래도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아. 아마 내가 교주라고 하면 나부터 죽이려고 별짓을 다하겠지.”

 

오칠은 혈천신교가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들만의 교주가 있다는 등등에 대해 설명하고, 그래서 자신의 설득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무림을 일통하게 되면, 자신을 비롯한 배화교의 세력을 그대로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중에 그 교주라는 놈하고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일단 흑천맹부터 처리한다. 흑천맹이 뭔가 착각을 하고 일을 벌이고 있는데, 혈천신교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내가 무림의 평화를 위해 나설 수밖에.”

 

제법 진지하게 설명하던 오칠의 마지막 말에 초왕성 등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실상 그 자신의 귀찮음과 혈천신교로 인해 생겨날 목숨의 위협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하는 일을, 거창하게 무림 평화라는 이름으로 둘러싸려고 하는 오칠의 저 천연덕스러운 언변에 무슨 말로 대꾸를 하겠는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을 하라고 쏘아주고 싶지만, 오칠의 보복이 두려워 세 명은 그렇게 속내를 드러낼 수도 없었다.

 

“역시 크네.”

 

오칠은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고, 저 멀리 보이는 모용세가의 거대한 장원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탈명수교군은 좌측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혈귀화교군은 우측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엽종과 변서생은 즉각 대답했다.

 

외적으로는 오칠을 포함하여 네 명밖에 보이지 않지만, 좌우로 탈명수교군 백오십과 혈귀화교군 이백이 몸을 감추고 은밀하게 따르고 있다가 모용세가의 장원을 포위한 것이다.

 

“무기를 손에 든 성인은 모두 죽이고, 십 세 이상의 남자 아이는 다리를 부러트려 운신하지 못하게 한다. 여자가 무기를 들고 덤벼들면… 사지를 부러트려서 똑같이 움직이지 못하게 해. 물론 자신이 위험하면 어린아이든 여자든 가차 없이 죽여라.”

 

오칠은 장원을 바라보며 명령했고, 초왕성 등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어찌 보면 상대에 따라 나름의 배려를 해주는 것 같지만, 위험성에 따라 상대를 따지지 말고 죽이라는 명령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고 말살시키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의 모용세가는 대부분의 무사들이 산서로 출전한 상태고, 삼백오십이나 되는 강력한 무사들이 공격을 하면 얼마 없는 모용세가 무사들은 금세 소탕될 것이고 나머지는 곧바로 항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래도 오칠의 명령이 매우 냉철하고, 잔혹한 명령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왜, 싫어? 뒤통수에 적을 남겨둬도 상관없나?”

 

오칠이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눈동자로 초왕성 등을 바라보자, 그들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상황으로만 따져보면, 오칠의 말은 분명 가장 합리적인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존명!”

 

엽종과 변서생은 즉각 머리를 숙이며 대답한 뒤, 은신하고 있는 각자의 수하들을 향해 작은 손짓과 전음을 보내 명령을 전달했다.

 

하지만 초왕성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에게는 명령할 수하들이 없다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진정한 이유는 오칠의 지시에 승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형식적이라도 의형이며, 명백하게 그를 패배시키고 그의 주군이 된 오칠의 명령에 반발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침묵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승복한 것이 아님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시작해라.”

 

오칠의 명령이 떨어지자, 엽종과 변서생이 장원을 향해 말을 움직여 달려갔다.

 

“넌 여기 있어.”

 

두 사람의 뒤를 따르려고 했던 초왕성을 오칠이 불러 세웠다.

 

그리고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는 초왕성의 도전적인 눈빛을 받으며 오칠이 말했다.

 

“넌 호법 가문의 사람이다. 너의 임무는 내 호법을 서는 거야. 내가 특별히 명령하기 전까지는 내게서 떨어지지 마라.”

 

“…알겠습니다.”

 

초왕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칠의 옆에 섰다.

 

‘날 배려한 걸까?’

 

오칠의 감정 없는 옆모습을 보며 초왕성은 생각했다. 자신이 그리 내켜하지 않는 걸 두고 오칠이 배려심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오칠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젊고 아름다운 사내는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초왕성은 확신하듯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장원을 뒤덮어가는 삼백오십여 명의 오행교군 무사들의 살벌한 모습에 시선을 집중했다.

 

 

 

 

 

* * *

 

 

 

 

 

화르르.

 

엄청난 불길이 타올랐다. 모용세가의 거대한 장원은 이글거리는 불꽃을 하늘로 피워 올리며, 이월의 쌀쌀한 기운을 폭풍 같은 기세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정예 무사들이 자리를 비운 모용세가의 장원은 사라지고, 강소성 태흥현 산수에는 잿더미만 남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바로 모용세가의 강소성 분타 십여 곳이 모두 전소되었고, 이어서 안휘성(安徽省) 회남(淮南)의 남궁세가와 그 분타들 역시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니까.

 

사파 무림을 경악시킬 참변은 그렇게 소문이 퍼지기도 전에 연이어 일어났고, 사람들은 뒤늦게 나머지 오대세가는 어찌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론 산서에 있는 오대세가의 정예 무리 등을 비롯한 흑천맹은 그러한 소식을 아직까지도 전달받지 못했다. 그만큼 오칠의 지휘 아래 처리된 후방 공격이 전광석화와 같이 신속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칠과 그 무리는 조금의 휴식도 없이 나머지 다른 오대세가를 향해 빠르게 이동해가고 있었다.

 

 

 

 

 

제77장. 그의 행보로 변화되는 전황(戰況)

 

 

 

 

 

산동성(山東省) 연주(聯州)의 넓은 평야를 사방에 두고 객들을 맞이하는 객잔. 그 객잔을 휘도는 바람은 이월의 막바지를 머금었기 때문인지 얼굴을 따갑게 만들 정도로 차가웠다.

 

덜컹.

 

“주인장, 여기…….”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온기를 찾아 객잔의 문을 연 상인은 문을 반도 열지 못하고 동작을 멈췄다.

 

그를 따라 들어가려던 다른 일행들은 왜 그러냐며 그를 밀쳤고, 십여 명의 상인들은 우르르 객잔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객잔에 들어선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

 

외견은 허름하지만 탁자가 이십여 개나 놓여 있으면서도 많은 공간이 남아 있는 객잔 안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렇다고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탁자의 절반 이상이 손님으로 차 있었으니 오히려 장사가 잘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손님들이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묵직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뭔가 소속이 다른 것인지 좌우로 나뉘어 탁자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서로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선 상인들이 밖의 기온이 더 따듯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부의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실제로는 가운데에 화롯불이 두 개나 피워져 있었기 때문에 내부의 기온은 너무나 따듯한데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다.

 

“허험, 이… 이거 너무 느긋하게 일정을 잡았다는 후회가 드는군. 이렇게 쉬… 쉬기만 해서 언제 목적지에 닿겠어.”

 

상인 하나가 용기를 내어 말하자, 다른 상인들도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자…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이러지 말고 얼른 나가세. 서둘러 이동을 해야 이문을 남기는 장사를 할 수 있지.”

 

“옳… 옳거니! 어서 가세!”

 

십여 명의 상인들은 누가 들어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대화를 하며 이 객잔을 빠져나갈 정당성을 만들어놓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객잔 안에 있는 위험스런 분위기의 사람들과 엉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저 멀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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