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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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89화
파계 8권 - 14화
어떻게 저런 경공술을 펼치면서도 태연하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일까.
파파파팍! 파팍!
이내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무사는 재빨리 비수로 절벽을 찌르며 낙하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
‘젠장!’
파팍.
그러나 아무리 해도 속도가 원하는 만큼 늦춰지지가 않았기에, 무사는 절벽을 발로 걷어차고서 바로 지척에 이른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재빨리 뒤로 구르며 충격을 완화하고, 견봉생이 내려설 만한 곳을 향해 손에 쥔 비수를 내던졌다.
쉬쉭.
비수가 견봉생을 제대로 맞추었는지, 안 맞추었는지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무사는 곧바로 도주할 수 있는 방향을 향해 발끝에 온 공력을 실어서 몸을 날렸다.
퍽-
그러나 무사는 몸을 날린 순간 가슴에 충격을 입고 뒤로 날아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무사는 욱신거리는 가슴을 문지르며 재빨리 일어났다.
견봉생은 무사가 도망치려고 한 바로 그 방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가 예상하고 비수를 던졌던 방향에서 넉 장이나 떨어진 곳이었는데 말이다.
“누구야?”
견봉생은 집요하게 한 가지만을 물었다.
그래서 무사는 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크게 궁금한 것 같지도 않은 눈이었고, 그렇게 열정적인 표정도 아니었다. 그냥 묻고 있었다. 누구냐고, 넌 누구냐고.
“내가 말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무사가 대꾸할 말은 별로 없었다.
그는 밀정들이 흔히 그렇듯 침묵의 교육을 받았고, 지금 이렇게 대꾸를 하는 것만 해도 놀랄 일이었다.
“아니.”
견봉생은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대답했고, 그에 무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순간 견봉생의 신형이 사라진다 싶더니 그의 코앞에 이르렀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온 주먹이 그의 얼굴부터 복부까지 연달아 가격했기 때문이다.
“크윽!”
정확히 몇 대를 맞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너무도 빠른 몸놀림이었고, 무사가 좌우 어디로 움직여도 견봉생은 정확히 그의 앞에 서서 주먹을 날렸다.
“…….”
무사가 기절에 이른 것은 촌각에 불과했다.
그리고 견봉생은 혼절한 무사를 어깨에 들쳐 메고 그가 원래 향하고 있던 구릉의 중심으로 움직였다.
“사자님을 뵙습니다!”
“사자님께 인사 올립니다!”
견봉생이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교주의 말을 전하는 사자였다. 그의 위치는 교주의 사제들과 이족의 부족장들이 맡고 있는 십왕지옥대(十王地獄隊)의 대주라는 지위와 거의 동격이었다.
견봉생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골격을 완성하고, 절반 정도의 모양을 구성하고 있는 구릉의 중심 건물로 들어섰다.
“너.”
그리고 눈에 띄는 교의 무사를 손짓해 불렀다.
“예, 사자님.”
“밀정이다.”
견봉생은 길게 말하지 않았고, 무사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밀정이라 하면 취조를 받게 될 것이고, 다른 궁금한 점들은 고문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아낼 수가 있을 테니까.
무사는 백천맹의 밀정을 건네받고는 깊이 머리를 숙이고 사라졌다. 견봉생은 그런 무사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의 인생에서 지금처럼 우러름을 받았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아마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늘 은밀히 움직이고, 신분을 감추어야 했던 그에게는 그것도 많은 숫자였다.
“…….”
하지만 곧 견봉생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왜?
다른 이들에게는 우러름을 받지만, 이제 그가 대면해야 할 교주는 그를 개처럼 취급했다. 그리고 그런 교주에게 꼼짝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표정이 어두워진 것이다.
견봉생은 건물 내부의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혈천신교 제일의 무력단이자, 교주의 직속친위대인 오도전륜지옥대(五道轉輪地獄隊)의 무사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입구 하나가 있었다. 하늘 위가 아닌,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였다.
이곳 석문에 자리하고 있던 창천도문의 장원을 때려 부수고, 망루를 세워 종을 다는 일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지하 땅굴을 파는 것이었다. 그 작업으로 생겨나는 사상자가 밖에서 생겨나는 사상자보다 두 배 이상 많을 정도로 위험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동굴을 계속해서 파들어 가고 있었고, 사상자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견봉생은 바로 그 굴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열어라.”
동굴은 악마상이 그려진 거대한 석문에 막혀 있었다. 그래서 견봉생이 안으로 들어가려면 오도전륜지옥대의 무사들이 그 석문을 치워야 했다.
쿠쿠쿠!
엄청난 무게의 석문은 열 명의 무사가 달라붙었는데도 힘겹게 치워졌다. 그렇게 열린 동굴 안으로 견봉생은 들어갔다.
쿠쿠쿠!
“…….”
석문이 닫히고 동굴은 순식간에 짙은 암흑에 휩싸였다.
견봉생은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곧 어둠을 미세하게 밝히는 횃불이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피어올랐다. 뭔가 기관이 설치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휘릭.
견봉생은 차근히 계단을 밝고 내려갈 생각이 없었기에 경공을 발휘하여 바람처럼 계단을 내려갔다. 지금이야 이렇듯 쉽게 내려가지만, 이곳 동굴엔 수많은 기관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적의 침입이 있을 시에는 그 어떤 자도 편히 침투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악독한 기관 장치였다. 즉, 동굴 입구를 단순히 크고 무거운 석문으로 막고 있는 것은 침투할 적들을 방심하게 만드는 계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계단을 다 내려가고 긴 통로를 쭉 달려가던 어느 순간, 견봉생이 경공을 멈추고 두 갈래로 나뉜 길 앞에 섰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이제부터 시작될 미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둘 중에 한 길을 선택하여 가면 다시 세 개의 갈림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세 개의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시 네 개의 갈림길을 맞고, 맨 나중에는 여덟 개의 갈림길에 봉착하여 다시 처음부터 반복되는 것이다.
팔문혼진(八門混陣).
미로에 빠지게 만드는 진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팔문혼진 다음에도 몇 개의 위험한 진이 더 있었다.
그렇다면 이 진들을 타개할 방법은 있을까?
물론 있었다. 그 어느 진이든 사로가 있다면, 생로 또한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견봉생은 팔문혼진이나 다른 진들의 생로를 알지 못했다. 대신 그는 다른 방법으로 진을 뚫고 나갈 수가 있었다.
드드드드.
갈라진 길 중앙의 벽에 갑자기 구멍이 생기면서 점점 크기를 넓혀갔다. 그리고 사람 한 명이 오갈 수 있는 넓이가 되었다. 이 구멍이 진들을 완전히 관통하는 안전한 길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휘릭.
견봉생은 다시 경공을 전개해 길을 따라 내달렸다. 그리고 이리저리 꼬인 길을 한참 동안 오가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대전에 당도했다. 사람의 손으로 판 동굴이 분명한데, 족히 삼백 이상의 사람이 모여 있을 수 있는 넓이의 대전이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견봉생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는 놀라지 않는 대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주인님의 명을 행하고 지금 돌아왔습니다.”
천하제일이라고 말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경공의 고수가 지금은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며 두려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대전의 끝, 벽을 그대로 깎아 만든 단상 위에 놓인 커다란 석좌를 향해 오체투지하고, 딱딱한 땅에 머리를 쿵쿵쿵 세 번 내리치며 극공경의 인사를 올렸다.
“말하라.”
석좌에 앉아 있는 혈천신교의 교주 위지무성은 뭔가 매우 거칠고 메마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 음성이 너무도 음침하여 듣고 있는 견봉생의 등줄기에는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점점 더 목소리가 이상해지는구나.’
견봉생은 두려움 속에서도 의문을 지을 수가 없었다.
위지무성의 음성은 절대 지금과 같이 거칠고 메마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맑고 또렷하여 사교의 교주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위지무성의 목소리가 최근 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지하에 대전을 만들어 거처로 삼은 것부터가 이전의 그와 다른 점이었다. 그는 세상을 오시할 마음으로 높고 밝은 곳을 선호했던 것이다.
“정 태사(太師)는 관의 개입을 막는 것 이상으로는 해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현재 갑자기 반기를 든 염 태보(太保)와의 불화로 인해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됩……!”
혈천신교에서 막대한 거금을 들여 매수한 정 태사를 만나고 온 경과를 보고하던 견봉생은 움찔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피부를 자극하는 기묘한 살기에 몸서리치며 살금살금 뒤로 물러났다.
‘더 강해졌어.’
견봉생은 감히 고개를 들어 위지무성을 볼 수 없었지만, 지금 그의 모습이 어찌 되었을지는 상상할 수 있었다.
안개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검은 연기에 휩싸여 눈에서 붉은 살기를 번뜩이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인세에서 보기 힘든 마신의 그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무공을 익히면 저렇게 되는 거지?’
위지무성의 모습이 무공 때문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또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었는지를 알지 못할 뿐이었다.
사실, 교의 중요 인물들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교주의 무공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불경이라는 것이다.
“물러가라.”
견봉생을 압박하던 살기가 슬며시 사라지고, 위지무성은 특유의 거칠고 메마른 음성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견봉생은 다음 명을 기다리겠다고 하면서 역시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대전을 빠져나갔다.
“크…….”
견봉생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위지무성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사라진 듯했던 검은 연기가 그의 전신 모공에서 물컹물컹 흘러나와 그를 뒤덮었다.
“이 정도에…….”
위지무성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검은 기운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위지무성의 눈동자에 맺힌 기운이 더욱 강렬하게 빛을 뿌렸다.
파천혈전공(破天血戰功).
위지무성이 이렇듯 변한 것은 파천혈전공이 구 성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성취가 높아질수록 마성은 더욱 강해지고, 익힌 자의 심신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파천혈전공이었다.
배화교의 많은 교주들이 범천공에서 변형된 이 파천혈전공의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다. 그래서 이후로 만겁독황공(萬劫毒皇功), 사마천빙공(邪魔天氷功)과 같은 마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칠 대 교주가 천마신공을 완성하기까지 교주들은 마성을 잠재우는 것에 실패만 거듭했었다. 그래서 마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극성까지 익히는 것을 자제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삼았다.
그런데 위지무성은 그런 사정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파천혈전공을 거의 극성에 이르도록 익히면서 급작스럽게 마성에 휩싸여가고 있었던 것이다.
“으아-!”
그 자신이 내뿜는 파천혈전공의 강력한 마기를 꾹꾹 내리누르던 위지무성은 대전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으…….”
하지만 가슴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마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위지무성의 고함을 듣고 두 명의 무사가 대전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마도 근방을 순찰하던 무사들인 것 같았다.
그러나 위지무성은 그들이 누구이건, 뭘 하고 있었건 상관없었다.
“어!”
“아!”
순간, 두 무사는 경악성을 내질렀다. 갑자기 그들의 몸이 공중에 떠올라 교주를 향해 날아갔기 때문이다. 절대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교주가 양손을 내민 것을 보면 격공섭물(隔空攝物)의 수법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터턱.
두 무사의 머리가 그대로 위지무성의 양손에 잡혔다.
“교… 교주님!”
“왜… 왜 그러십니까!”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두 무사는 당혹과 어리둥절함으로 위지무성을 불렀다.
하지만 순간, 그들은 머리가 옥죄어오는 고통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두려움에 휩싸여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위지무성의 눈동자에 어린 귀기가,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결코 지하의 어둠으로 인해 생겨난 착각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끄아~!”
“크~ 으!”
위지무성의 손가락이 두피를 뚫고 머리를 파고들어갔다.
선혈이 흐르고, 무사들의 눈이 고통으로 잔뜩 충혈되어서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돌출됐다.
콰직! 콰직!
두 개의 머리가 바스라지고, 핏물과 뇌수로 더럽혀진 두 개의 몸뚱이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
위지무성은 마성이 한결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찢겨진 살 조각과 눈이 아릴 정도의 선홍색 핏물, 그리고 조각난 머리뼈가 손가락 틈새에 걸려 있었다.
“좋군.”
위지무성의 음성에는 만족감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파천혈전공의 마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직접 싸움에 나서야겠어. 그리고 이 두 손으로 정파 놈들을 산산조각 내주는 거다.”
기대감이 위지무성의 얼굴에 그려지고, 그 눈동자는 어떤 열망과 기쁨에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석좌에 앉았다.
거대한 지하 대전은 그렇게 어둠에 잠겨 위지무성을 휘감고 조용히 침묵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