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187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187화
파계 8권 - 12화
“……?”
그러다 문득, 사내들은 풀어헤쳐진 머리칼로 인해 절반 이상이 가려진 오칠의 얼굴이 제법 괜찮게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먼지가 그득하게 뒤덮여 있어서 그렇지, 입고 있는 것도 제법 고급스런 느낌의 모피란 것도 깨달았다.
‘흥! 이런 녀석쯤이야!’
하지만 이곳 몽환절정루를 찾는 손님들은 소주는 물론이고, 근방에서, 그리고 중원 전역에서 찾아온 거부(巨富)들이 대부분이었다.
혹은 세도가나 고위 관료들도 많았다. 그러니 설사 오칠의 저 더러움 뒤에 생각지도 못한 제법 괜찮은 배경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사내는 전혀 겁날 것이 없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꺼지쇼.”
그래도 막말을 하기가 약간 꺼림칙한지 사내는 경어를 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싫어.”
“어허, 말로 할 때 들으라니까!”
급기야 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입구 좌우에 있던 사내들도 표정을 싸늘하게 굳히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비켜라.”
“뭐요? 내 참, 이거 안 되겠구만!”
사내의 큼직한 손이 들려졌다. 뺨이라도 한 대 칠 기세였다.
하지만 오칠의 뺨으로 휘둘러지려던 그 손은 초왕성이 내민 손에 잡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너야말로 좋은 말로 할 때 들었어야지.”
초왕성의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사내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초왕성의 또 다른 손이 그의 목을 움켜잡고 번쩍 들어 올리면서 그는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는 처지가 되었다.
“뭐야!”
“이것들이!”
마침내 뒤에 있던 사내들이 등 뒤에 차고 있던 박도를 뽑아들며 달려들었다.
사삭-
하지만 달려들던 사내들은 곧 번개라도 맞은 양 우뚝 멈춰 서서는 몸을 덜덜 떨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그들의 목 언저리에 정확히 가로로 얹어진 협봉검이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웅성웅성.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이 갑자기 험악해진 상황에 놀라 물러나고, 작은 소란이 넓게 퍼지면서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싸움이 일어나는 곳에는 아무리 위험스러워도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오칠 등은 주목받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이 하려는 일에 집중했다.
“너 흑랑파냐?”
초왕성의 손에 목이 잡혀 공중에서 대롱거리는 사내에게 오칠이 얼굴이 닿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아… 아닙니다. 전 몽환절정루의 경비무사입니다.”
사내는 목이 잡혀 고통스러울 텐데도, 똑똑하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초왕성은 그렇게 고분고분한 사내의 태도가 이상하게 여겨져서 오칠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오칠의 눈동자가 기묘한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보고 있는 초왕성의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였다.
‘뭐지?’
초왕성은 몰랐지만, 오칠은 지금 섭혼요마신공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사내에게서 보다 쉽게 대답을 듣기 위해 섭혼공을 운용한 것이다.
“그럼 여기가 흑랑파의 보호를 받고 있냐?”
“그렇습니다.”
“안에 흥랑파 두목 있냐?”
“없습니다.”
“그럼 흑랑파 사람은 있어?”
“예. 두 명이 있습니다.”
“잘됐군.”
오칠이 초왕성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초왕성은 그제야 잡고 있던 사내를 뒤로 집어던졌다.
엽종 역시 검으로 겨누고 있던 사내들의 복부를 발로 연달아 걷어차면서 나뒹굴게 만들었다.
“들어가자.”
오칠이 앞장서고, 초왕성 등이 곧바로 뒤따라 들어갔다.
* * *
“…….”
오칠 등이 들어선 몽환절정루의 내부는 조용했다.
사람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일 층은 손님을 받는 곳이 아니지만, 기루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기루 입구에서 그런 소란이 있었으니, 내부의 사람들이 오칠 일행의 난입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입구 바로 초입엔 십수 명의 점소이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서 억지로 위험스런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손님 안 받나?”
오칠이 주위를 둘러보며 능청스럽게 말하자, 같은 일행인 초왕성과 엽종은 내심 고소를 지었다.
방금 전에 기루의 경비무사들을 내던지고 들어왔는데, 얼굴 두껍게도 어찌 저리 당당하게 손님 받으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당신 같은 자들은 받지 않는다.”
겁을 먹은 것이 확연해 보이는데도 억지로 버티고 선 점소이들이 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각한 표정으로 어찌 대처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총관의 음성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위층 계단 위에서 내려오는 두 명의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내들이 한 말이었다.
“우리가 어떤데?”
“격이 떨어지는 자들이지.”
“몽환절정루는 그런 자들을 받지 않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오며 차분하게 말을 하는 두 사내는 분명 녹록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오칠이 누구인가. 또 초왕성과 엽종이 누구인가.
“그럼 여길 우리 수준에 맞춰.”
계단을 거의 다 내려오고 있던 두 사내의 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둘은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거 대단하신 분들이 오셨군. 당신들이 왕후장상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오칠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희들한테는 그 이상일 수도 있지. 너희 흑랑파지?”
두 사내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서 행패를 부리냐고 코웃음을 쳤다.
오칠은 싱긋 웃으며 초왕성과 엽종에게 손짓했다.
“노닥거릴 시간 없으니까 한 대씩 먹여줘라.”
초왕성과 엽종은 곧바로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움직였다 싶은 순간, 사내들의 코앞에 당도하여 주먹으로 그들의 안면을 한 대씩 두들겼다.
“윽!”
“큭!”
콰당! 콰당탕!
소매에 숨긴 비수를 꺼내들어 어찌 어찌 방어할 사이도 없이 안면을 얻어맞은 두 사내는 그대로 주저앉아 피가 질질 흐르는 얼굴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초왕성과 엽종은 어느새 오칠의 뒤로 돌아와 조용히 시립해 섰다.
“너희 두목한테 무한의 오가가 찾아왔다고 전해라.”
두 사내는 안면을 부여잡은 채로 벌떡 일어나 오칠 등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오칠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방금 전에 분명히 깨달은 상태였기에 무턱대고 덤벼들지는 않았다. 더구나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그들의 두목에게 용무가 있어 찾아온 자들이란 걸 알았기에 섣부르게 행동할 수도 없었다.
“각오해라.”
두 사내가 상투적인 말을 내뱉고 기루의 뒷문으로 사라졌다.
“혈귀화교군 교군수는 아래 애들한테 내 이야기를 안 했나 보군. 나에 대해 별로 걱정을 하지 않은 모양이야.”
“굴복하라는 오칠님의 명을 거절하자고 저와 합의를 했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귀혼각과 흑랑파는 오래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평소 친분을 다져오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서로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정도랄까. 그런데 이번에 오칠이 과거의 신분을 숨기고 지내왔던 각 문파를 굴복시키기로 작정하고 보낸 서신을 받은 두 문파의 수장들은 짧은 회동을 가졌었다. 그리고 오칠을 무시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녀석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쉬고 있자. 이봐, 총관.”
총관은 불안한 얼굴로 오칠을 주시하고 있다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방 준비해.”
“아… 알겠습니다.”
소주의 뒷골목을 휘어잡고 있는 흑랑파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은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조금 전 흑랑파 무사들을 한주먹에 쓰러트린 사람들을 무시할 수도 없기에 총관은 즉각 방을 준비하고, 술과 음식까지 차렸다.
“기녀들도 원하십니까?”
총관의 물음에 오칠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일이 다 끝나면.”
오칠이 고개를 내젓는 것에 약간 아쉬운 표정이었던 초왕성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나중에 있을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싱글거리면서 술과 음식을 먹었다. 초왕성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홀몸인 사내였고, 그래서 처음에 오칠을 비난하던 것과는 달리 점점 본능에 충실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소주의 화려한 밤거리와 공기를 타고 퍼져 나오는 기녀들의 향긋한 내음에 취한 모양이었다.
* * *
흑랑파 두목 변서생은 척 보아도 뒷골목 하오배처럼 생긴 사내였다. 행동이나 성격, 또 잔혹한 손속까지도 영락없이 악바리 같은 하오배였다. 그래서 그는 두목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 이곳 소주의 뒷골목을 움켜잡을 정도라면 하오배 무리라기보다는 삼류 문파 정도로 불릴 수 있을 텐데도,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과 수하들을 하오배라고 당당히 말하곤 했다.
물론 그들이 하오배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었다. 귀혼각처럼 모용세가에게 산서 공략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오배란 그렇듯 무림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존재였고, 그것이 변서생의 선조들이 흑랑파란 이름으로 소주의 뒷골목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했다.
“셋이라고?”
두목 변서생은 인상을 썼다.
누군가의 목이라도 비틀지 않으면, 배를 갈라서 창자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하는 두 무사는 초왕성 등에게 맞아서 뭉개진 얼굴의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두목이 물으시잖아.”
변서생의 최측근 중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살기를 뿜었다.
그래서 무사들은 오칠과 그 일행이 몽환절정루에 난입한 때부터 그들이 이곳으로 오기까지의 내용을 빠르고 소상하게 설명했다.
“나가봐.”
최측근은 치료를 받으라고 수하들을 내보냈다.
“한 놈은 서신을 보낸 자고, 또 하나는 아무래도 엽종 같은데…….”
변서생은 탁자 위에 놓인 그의 성명무기 철조(鐵爪)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귀혼각의 엽종 말입니까?”
“그래.”
“그자와 무시하자고 합의를 보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변서생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엽종이 쉽게 마음을 바꿀 사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애들 한 명도 빠짐없이 불러서 몽환절정루를 은밀하게 포위시켜.”
최측근들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변서생의 명령은 그들의 선조로부터 들어왔던 전설 속의 존재인 배화교 교주를 죽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목의 명령은 절대적이었기에, 그들은 즉각 머리를 숙이며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 * *
“왜 그러십니까?”
오칠이 내민 잔에 술을 따르고 있던 초왕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오칠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지어져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강하게 나오네.”
“예?”
두서없는 오칠의 말에 엽종까지도 어리둥절해했다.
“신경 쓰지 말고 술이나 마셔.”
왜 싸늘한 미소를 지었는지, 방금 전에 한 말은 무슨 의미인지, 오칠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초왕성과 엽종은 궁금증이 커지면서도 그걸 해소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약 일각 뒤쯤에 그들이 있는 방문이 벌컥 열릴 때까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만 열중했다.
“변 두목.”
방문을 열고 들어온 자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엽종이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선 변서생도 가장 먼저 엽종을 쳐다보았다.
“꼴이 말이 아니시군.”
차갑게 얼어 있는 듯한 변서생의 눈동자는, 부기가 가시지 않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얼굴의 엽종을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엽종은 얼굴을 붉히지도,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싸운 끝에 오칠에게 굴복했고, 그래서 전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
별다른 반응이 없자, 변서생의 시선은 초왕성에게로 향했다.
“천부신군?”
변서생은 약간의 놀람을 담아 물었다. 수하에게서 인상착의를 들었을 때 혹시나 그가 아닐까 했었는데, 직접 보니 딱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왕성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한 손에 오리 다리를, 또 다른 손엔 술잔을 들고 변서생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그와 대화할 자격이 없다는 듯 말이다.
“…….”
변서생의 시선은 결국 오칠을 향하게 되었다.
“당신이요?”
오칠은 피식 웃었다.
변서생이 이제야 말을 거는 이유가 심리적으로 그를 모욕하기 위해서, 혹은 변서생 자신은 오칠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귀엽게 구네.’
“그래. 나다. 그런데 그 양쪽 어깨에 걸고 있는 철조는 뭐냐? 한판 붙어보려고?”
“생각 중이오.”
농담도, 비꼬는 말도 아니었다.
변서생은 수하에게 오칠에 대해 전해 받고부터 쭉 생각하고 있었다. 오칠을 죽일지, 아니면…….
“이 술병을 비울 때까지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오칠이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술이 잔으로 흘러가는 소리로 가늠해볼 때 절반도 남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