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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186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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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186화

파계 8권 - 11화

 

 

 

 

 

그를 비방하는 말이 있었음에도 전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한 제갈 원주를 사람들은 새삼 대단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맹주는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다고 하며 제갈 원주를 제외한 모두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일단 불안감은 잠재운 것 같구려.”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황보강패는 시종 무덤덤하기만 하던 얼굴에 짜증 비슷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 다시 불안해하며 진격을 종용하려 하겠지요.”

 

“흠, 이거 정말 소림사 하나 때문에 골치가 아프군.”

 

황보강패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에 제갈 원주가 수장들에게 이러저러한 설명을 하여 설득하기는 했지만, 사실 맹주와 제갈 원주의 계획은 절대 이렇게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최소 보름, 최대 한 달이란 시간 안에 산서를 굴복시키고, 재빨리 힘을 정비한 뒤에 소림사가 있는 하남을 공략하는 것이 처음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흑천맹의 차후 계획을 미리 예상한 것인지, 그들이 산서성으로 진입하자마자 소림사가 즉각 개입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달이 훌쩍 넘어, 겨울이 다 가도록 지지부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혈독이 이곳에 합류하면 오태산에 숨어 있는 자들도 더 이상 편하게 숨어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흠, 그렇겠지. 그보다 사편은 어찌 되었소?”

 

“지금 산동성(山東省) 기남(沂南)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혈독은 비현(費縣)으로 오고 있고, 역시 따로 움직이는 건가? 그놈의 고집들은 여전하군.”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어찌되었든 그들이 합류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황보강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 원주의 말대로 혈독, 사편과 그들이 거느리고 올 자들이라 하면 오대세가와도 비견될 정도의 힘과 영향력이 있으니까.

 

“제일 원주님!”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삼목원의 무사가 보고할 내용이 있다며 밖에서 입실을 청했다.

 

“무슨 일이냐?”

 

안으로 들어온 삼목원의 무사는 손에 들고 있는, 두툼하게 말려 있는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그리고 제갈 원주의 눈짓을 받고는 밖으로 나가서 대기했다.

 

“…….”

 

무사가 이곳까지 와서 전한 것은 분명 중요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 짐작한 제갈 원주는 맹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다.

 

그런데 순간 제갈 원주의 표정이 점점 어둡게 가라앉았다.

 

“무슨 내용인데 그러시오?”

 

“양천으로 진격하고 있던 남궁세가와 하북팽가가 하북 부평(阜平)으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황보강패는 너무도 황당한 말을 들었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양천은 다른 두 곳과는 달리 저항하는 정파인들의 규모가 가장 작은 곳이었다. 아래 장치엔 소림의 도움이 보다 깊이 개입되어 꽤 많은 정파인들이 규합되었고, 이곳 오태에는 산서의 최대 거파이자 무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십이비응방(十二飛鷹幇)의 주력이 집중되어 있기에 위쪽 양천은 상대적으로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소림의 무승들이 양천에도 파견되어 있다고는 해도 남궁세가와 하북팽가가 주축이 된 무리가 밀릴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장 먼저 승전보를 들어야 할 곳이었고, 곧바로 오태로 와서 합류해야 할 무리가 바로 양천을 진격로로 잡은 남궁세가 등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하북까지 퇴각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소식이었다.

 

“길현초가의 갑작스런 합류와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인해 크게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길현초가?”

 

“예. 십이비응방의 한 축으로 있는 문파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길현초가는 십이비응방에서도 낮은 서열의 문파라고 들었는데, 어찌 그런 길현초가의 합류로 밀릴 수가 있단 말이오?”

 

맹주의 물음에 제갈 원주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생각도 맹주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대로 말을 하자면, 그 길현초가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아니 정말 경악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이리 줘보시오.”

 

맹주는 제갈 원주의 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건네받아 직접 읽기 시작했고, 곧 제갈 원주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도대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남궁세가가 고의로 퇴각한 거 아니오? 혹여 시간을 끌어서 우리의 전력이 조금이라도 소진되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제갈 원주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것에 동의했다.

 

황보강패 이전의 흑천맹 맹주는 남궁세가의 인물이었다. 아니, 초대 흑천맹 때부터 쭉 남궁세가의 인물이 맹주가 되어 왔다. 남궁세가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파 제일문이었고, 오대세가들이 이백여 년 전 정파의 성향을 버리고, 사파를 지향하기 전부터도 쭉 그들의 수장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황보강패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남궁세가는 일순간에 사파 제이문이 되었고, 십 년 전 황보강패가 다시 한 번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면서 맹주의 자리는 감히 넘볼 수도 없게 되었다. 당연히 남궁세가는 황보세가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겉으로는 충실히 따르는 것 같지만, 남궁세가가 다시 사파 제일문의 영광을 재현할 때를 노리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황보강패가 지금 의심에 찬 생각을 하는 것이나, 제갈 원주가 동의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제 판단으로도 이번 일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그곳에는 흑각 각주 빙검(氷劍) 남궁관보를 비롯한 절반의 흑각 후기지수들, 그리고 황각 각주와 그 후기지수들까지 같이 합류해 있는데 이런 결과가 생긴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힘든 일이지요. 사람을 보내서 확실하게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믿을 만한 자로 은밀하게 보내시오. 혹시라도 감시에 대한 준비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하던 이야기들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생겼기에 제갈 원주는 서둘러 천막을 나갔다.

 

‘혈천신교가 호남에서 기반을 다지고, 힘을 모은 백천맹과 격돌하기 전에 서둘러 산서와 하남을 제압해야 할 이 다급한 때에…….’

 

맹주 황보강패는 소림사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머리가 더욱 지끈거리는 것 같아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번 남궁세가의 일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사흘 뒤.

 

황보 맹주와 제갈 원주는 남궁세가 등이 고의적이 아니라, 진실로 타격을 입어 후퇴했다는 것을 알고 더욱 큰 고민에 빠져들었다.

 

 

 

 

 

제75장. 소주에서 검은 늑대를 품에 안다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소주는 강소성 남부의 장강 삼각주 평원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서남쪽으로는 태호(太湖), 북쪽으로는 장강(揚子江)과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항주(抗州)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도시 전체가 운하로 이루어져 있어, 대운하와 외성하(外城河)가 마치 옥으로 만든 두 개의 허리띠처럼 아름다운 성곽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 소주는 기후가 온난하고 토지가 기름져서 생산이 풍부한 ‘어미지향(魚米之鄕)’의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민물고기를 위주로 한 각양각색의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 있으며, 예로부터 ‘비단의 고장’으로 알려진 도시답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비단은 물론 자수와 공예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주를 유명하게 한 것은 창랑정(滄浪亭), 유원(留園), 졸정원(拙政園) 등등의 아름다운 정원과 미인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중에서도 미인이 소주를 가장 크게 대표한다는 건 최소한 사내라고 한다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하면 그렇게 소주와 미인을 동격으로 만들게 한 근원은 무엇일까?

 

바로 기루, 주점, 혹은 뒷골목으로 대변되는 향락과 쾌락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곳들일 것이다.

 

물론 누구나 그 말에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팔방형의 길을 따라 화려하게 불을 밝힌 기루, 주점 등을 오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은 분명 그 말에 적극 찬성하고 나설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지?”

 

한산하고도 정갈한 소주의 대로에서, 화려한 팔방형 길에 들어서는 바로 그 입구 초입에 멈춰 선 오칠은 앞을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뒤에서 공손히 시립한 채로 부기가 빠지지 않아 아직도 퉁퉁 부은 얼굴을 숙이고 있던 귀혼각 각주, 아니 이제는 탈명수교군(奪命水敎軍)의 교군수로서 오칠을 따르고 있는 엽종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분명히 이곳이라고 대답했다.

 

“오행교군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군.”

 

오칠은 길 초입에서부터 살랑거리는 옷차림으로 손님을 잡아끄는 기녀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옆에 선 초왕성은 내심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도 어리면서 여자를 무지 밝히는군.’

 

실상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교주로서의 체통이나 위신을 세워야 할 오칠이 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초왕성으로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초왕성도 남자였고, 그래서 그의 이성을 완벽하게 무시한 그의 눈동자는 저도 모르게 기녀들의 자태를 살피고 있었다.

 

“침 닦아.”

 

오칠은 피식 웃으며 초왕성의 어깨를 쳤다.

 

방금까지 오칠의 교주답지 않은 행동과 말투를 내심 불쾌해하고 있던 초왕성은 입을 헤 벌린 채로 기녀들의 모습에 흠뻑 빠져 있었던 것이다.

 

“허험, 그냥 그 혈귀화교군(血鬼火敎軍)이라는 흑랑파의 사람이 혹시라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해서 보고 있던 중입니다.”

 

“누가 뭐랬냐?”

 

오칠의 코웃음에 초왕성은 계속해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엽종은 뒤에서 부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초왕성의 험악한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흑랑파의 근거지를 어떻게 찾으려는 겁니까?”

 

호색과 주책이 다분했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음을 인정한 초왕성은 슬며시 화제를 바꾸는 물음을 던졌다.

 

“엽종도 모른다고 했지?”

 

“녀석들한테는 일정한 근거지가 없습니다. 흑랑파 두목이 있는 곳이 바로 흑랑파의 근거지가 되는 겁니다.”

 

“영리한 생각이야.”

 

“칭찬보다는 그들을 어찌 찾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꾸 기녀들에게로 시선이 돌아가려는 것을 참아내며 초왕성은 다시 물었고, 오칠은 별 문제 없을 거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두목이 있는 곳이 근거지라며? 그럼 그 두목을 내 앞에 나타나게 하면 근거지를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예? 어떻게 두목을 오게 합니까?”

 

“지금까지는 장난으로 네가 무식하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진짜 생각이란 것을 안 하고 사는구나.”

 

“어떻게 오게 하는지, 그거나 말해주십시오.”

 

“제발 이 형님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찾을 수가 없으면, 두목이 날 찾아오게 상황을 만들면 되지.”

 

그 정도는 나도 말할 수 있겠다, 하며 투덜거리는 초왕성에게 다시 한 번 혀를 차준 오칠은 팔방형 길을 따라 쭉 늘어선 향락과 쾌락의 건물들을 살펴보다가, 가장 화려하고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기루를 손으로 가리키고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이리로 와서 여행의 피로를 풀어요!”

 

“내가 씻겨줄 테니 이리로 와요!”

 

“잘해줄 테니까 여기서 놀다 가요!”

 

지나가는 곳곳의 기루와 주점 등에서 호객하는 소리들을 완벽하게 무시한 오칠은, 그가 지목한 기루 앞에 딱 멈춰 섰다.

 

“몽환절정루라… 참 유치하고도 음탕한 이름이군.”

 

이름에 대한 감상을 중얼거린 오칠은, 바로 뒤에 선 초왕성 등에게 눈짓을 해 보이고는 계단을 올라가 입구에 들어섰다. 아니 들어서려고 했지만, 굵고 큼직한 팔뚝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손님들께선 다른 곳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것답지 않게 고급스런 비단 옷을 입은 사내가 툭 내뱉는 말의 의미 자체는 정중하지만, 전혀 공손하지 않게 들리는 거친 말투였다.

 

그러나 계단 한 층 위에서 깔아보는 시선과 떡 벌어진 어깨에 괜히 힘을 주는 것들을 볼 때, 그 의도는 출입 불가라는 의미를 살짝 비꽈서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왜?”

 

오칠이 시선을 들어 입구를 막은 덩치 큰 사내를 빤히 쳐다보자, 사내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임무를 띠고 입구의 좌우에 서 있던 사내들도 비웃음을 날리며 오칠을 향해 비아냥댔다.

 

“그런 비렁뱅이 같은 꼬락서니로 감히 어딜 들이밀어!”

 

“여기가 너희같이 어중이떠중이 다 받아주는 곳인 줄 알아?”

 

귀혼각에서 한 번 씻기는 했지만, 옷도 갈아입지 않고 다시 소주로 급하게 말을 달려오면서 먼지를 뒤집어쓴 오칠 등의 몰골은 분명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곳 몽환절정루는 이름의 기묘함과는 반대로 소주에서도 최고급 기루이고, 그런 곳이 오칠처럼 빈곤한 방랑객 같은 몰골의 사람들을 받아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칠 등의 몰골이 형편없긴 해도 등에 묵철곤을 메고 있고 초왕성과 엽종도 무기를 등과 허리에 차고 있는데, 사내들이 저리 강경한 걸 보면 그들의 배포도 제법 큰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들이 단단히 믿고 있는 무언가가 있던가.

 

어쨌든 오칠은 사내들의 경고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가 바로 몽환절정루가 주변에서 제일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난 꼭 들어가야겠는데.”

 

오칠이 조금도 기죽지 않은 얼굴로 빤히 쳐다보자, 사내들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눈으로 잠시 오칠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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