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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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23화
파계 9권 - 23화
“…….”
오칠은 그런 공야 각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살짝 비틀린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한 모든 말이 결국은 자신을 자위하기 위해 한 변명일 뿐이라는 걸 오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진실로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변명을 하는 스스로를 비웃고 있는지도 몰랐다.
“목운교를 이용해서 날 죽이려고 한 것 때문에 화가 났었지만, 용서해주지. 잘 가라고, 공야정진.”
오칠의 손에 들려 있던 비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공야정진의 심장으로 박혀 들어가 순식간에 그의 목숨을 빼앗아갔다.
스륵.
공야정진의 시체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은형 무사들이 들쳐 업고 사라졌다. 그리고 오칠까지도 떠난 공야 각주의 방에는 그의 필체로 쓰여진 하나의 서신만이 남았다. 지금과 같은 정파의 상황이 모두 자신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비관한 공야 각주가 조용히 은거하기 위해 사라졌다고 믿게 만들 서신이었다.
* * *
천이각 각주 공야정진이 서신 한 장만을 남겨둔 채 사라지고, 그로 인해 어수선해진 백천맹은 나흘 뒤 갑작스럽게 의식을 회복한 오칠로 인해 희망과 활기를 찾았다. 그러나 이틀 뒤 오칠이 호남 북쪽 석문(石門)에 있는 혈천궁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하자 정파인들은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칠이 의식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혈천교주 또한 큰 부상을 입었소. 지금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훗날 천추의 한이 될 것이기에 나는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소.”
사백여 정파인들은 자신들 앞에서 힘찬 음성으로 열변을 토하는 오칠의 의지를 막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세력만을 이끌고 갈 것이라고 했다. 이곳 백천맹은 오칠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맹주가 된 소림 방장 굉덕 대사를 중심으로 재건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오칠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주장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상 정파인들 중에는 크게 도움이 될 고수들도 없었다. 광죽 노승을 비롯한 소림의 무승들 몇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었기에 한동안 요양이 필요한 상태였다. 특히 광죽 노승은 위지무성에게 당한 내상의 후유증 때문에 모습조차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그가 열반에 들었기에 소림사가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까지 돌았다. 광죽 노승의 나이를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꼭 혈천교주를 죽이고 돌아오겠소.”
오칠과 그 산하 이천여 명의 무리는 오칠이 깨어난 지 칠 일 후, 사백여 정파인들을 뒤로하고 석문으로 향했다. 물론 그 무리 안에는 목운교도 속해 있었다.
* * *
산 하나를 등에 지고, 넓게 솟아 있는 구릉 위로 거대한 건축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완성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곳곳에 목재, 돌 등의 자재가 널브러져 있고, 맹수의 이빨처럼 보이는 미완성의 높고 긴 성벽이 그곳을 둘러싸고 있어서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엔 흡사 황제의 그것처럼 거대하고 웅장하며, 또한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압감을 느낄 수 있는 규모의 건물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있었다. 물론 그 건물조차도 완성된 모양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제법 그럴듯하네.”
오칠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혈천신교가 이곳 석문에 얼마나 거대한 궁을 지으려고 했는지 미완성된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척척척척.
이천여 명의 무리는 일사불란한 진형을 갖추고, 경각심을 유지한 채 성벽 안쪽으로 완전히 들어섰다. 그들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중심 건물의 바로 옆, 오 장 높이의 커다란 망루였다. 정확히는 그 망루에 걸려 있는 거대한 크기의 종(鐘)이었다.
“저걸 치면 호남 전체에 소리가 퍼져 나갈 것 같지 않습니까?”
노백이 전혀 우습지도 않은 썰렁한 농담을 했다. 그는 부상이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지만, 오칠의 의제로서 당연히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함께 온 것이었다. 물론 자신을 데려가지 않으면 오칠의 정체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며 유치하기 그지없는 협박을 하기는 했다. 그리고 오칠은 그런 노백의 고집과 협박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받아들였다.
“한번 쳐봐.”
오칠이 직접 해 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농담이었습니다.”
“가서 쳐보라니까.”
“몸이 불편한 의제를 그렇게 부려먹고 싶습니까?”
“그럼 이 아픈 형님이 하리?”
노백은 눈을 치켜뜨는 오칠의 반 협박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망루 위로 올라가 종을 쳤다.
둥- 둥- 둥-
노백이 종을 치는 동안 이천여 명의 배화교 무사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하였다. 실상 노백에게 종을 치게 한 것은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혈천신교의 무사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였다. 미리 척후로 보낸 은형 무사들의 보고로는 인적이 전혀 없다고 했지만, 그들이 이곳 석문까지 오는 동안 혈천신교의 공격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기에 그래서 적들이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주변은 여전히 조용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래서 오칠은 근방을 샅샅이 조사하라는 명을 내려야 했고, 이천여 명은 각각의 일족들로 분산되어 미완성의 혈천궁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반 시진 동안 진행된 탐색의 결과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건물 내부 중심에 거대한 석문으로 막힌 동굴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오칠을 선두로 한 이천여 무리는 곧 석문이 막고 있는 건물 중심으로 이동했다.
“뭔가 있어 보이지?”
오칠이 좌우에 있는 화웅섭 등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문양도 없는 것이, 그저 크기만 한 석문처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혈천신교의 궁이고, 그 내부 중심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냥 석문으로 막힌 동굴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열어봐.”
온몸이 근육으로 똘똘 뭉쳐 있는 철근문 무사 열 명이 달라붙어 석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쿠쿠쿠쿠.
육중한 무게만큼이나 둔중한 끌림 소리와 함께 석문이 치워지고, 어두컴컴한 동굴의 입구가 완전히 드러났다.
“지독하군.”
오칠은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동굴 내부에서 훅 하고 풍겨오는 지독한 악취 때문이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냄새였다. 혈향과 무언가 썩은 냄새, 그리고 배설물과 오물이 뒤범벅이 되었다면 날 만한 그런 냄새였다.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이지?”
오칠의 말에 입구 가까이 있던 초왕성 등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입구 바로 안쪽 계단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바라봤다. 사실, 그건 시체라고 할 수 없었다. 커다란 고깃덩이가 찢어발겨진 것처럼 보였다. 만약 사람의 뼈로 보이는 것들이 있지 않았다면 진정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을 지켜.”
오칠은 육백여 명의 무리를 화웅섭에게 맡기고 동굴 입구를 지키라 했다. 혈천궁 주변으로 은형 무사들을 은신시켜놓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있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당신도 이곳에 남아 있으시오.”
오칠은 그가 깨어난 걸 알고부터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목운교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이곳까지 따라오는 것은 막지 않았지만, 혈천교주와 싸울지도 모를 곳까지 같이 갈 수는 없었다. 또한 그녀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오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다워 보이고 싶은 사람이 목운교였고, 그녀에게 자신의 냉혹함과 사악함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을 두고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러니 꼭 돌아오겠소.”
오칠은 목운교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믿음을 줄 수 있을 만한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정파인들에게 혈천교주를 죽이고 오겠다고 한 말은 그저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말이었지만, 목운교에게는 아니었다. 오칠은 진정 그녀를 남겨두고 죽을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반드시 돌아와 목운교와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이 오칠의 마음인 것이다.
“알았어요. 하지만 약속해주세요. 날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고요.”
“약속하겠소.”
잠시 동안 목운교와 따듯한 시선을 주고받은 오칠은 노백에게 입구에 남아서 그녀를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다.
“저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지금의 넌 도움도 안 돼. 그냥 남아 있어.”
“따라가겠습니다.”
노백은 눈에 힘을 주었다. 그의 마음을 오칠이 알아주길 바란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오칠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까지 따라온 것만으로도 의제의 역할은 충분하다. 그러니 이곳에 남아서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을 해라. 목 소저를 지켜다오. 의형으로서 부탁한다.”
결국 노백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은시에서 기다리고 있을 녹선향이 생각나서도 아니다. 다만 오칠의 고집은 그의 고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질기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죽지 마십시오.”
“당연하지.”
오칠은 경모혁, 초왕성 등을 비롯한 천여 명의 무리와 함께 동굴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계단을 내려가면서부터 동굴이 심상치 않은 곳이라는 게 금세 드러났다. 불도 없는 어둠 속에서 정교하고도 악독한 암기들이 튀어나오는 기관이 발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동굴 입구를 단순히 크고 무거운 석문으로 막은 것은 침투할 적들을 방심하게 만들려는 혈천신교의 계책이었다는 걸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을 설계하여 만든 이는 첫 침입자가 오칠과 그 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원망해야 할 것이다. 배화교에 관련한 모든 지식을, 그래서 배화교로부터 전해진 기관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곳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칠 대 교주의 지식으로 꿰뚫어 보고 있는 오칠이 온몸으로 강기를 발산하며 암기를 막고, 기관 장치들을 부숴버리면서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교하고 악독해도 오칠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것이다.
오칠 등을 힘들게 한 것은 암기들이 아니라,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심해지는 악취였다. 냄새란 것이 자꾸 맡다 보면 둔감해지는 법인데, 이건 너무도 지독하여 전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이건 또 뭐야?”
드문드문 참혹한 시체들이 나뒹구는 계단을 다 내려가고, 역시나 곳곳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긴 통로를 한참이나 이동해가던 어느 순간 오칠은 두 갈래로 나뉜 길 앞에 섰다. 그리고 한참 동안 멈춰 서서 생각한 끝에 이 길에 팔문혼진(八門混陣)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팔문혼진 말고도 더 있겠지?’
보통 이러한 진들은 중첩적으로 설치되곤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결국 오칠은 칠 대 교주의 지식으로 그 모든 진들을 뚫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은 문제가 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천여 명을 한꺼번에 통과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진 안에서 생로를 찾기 위해서는 거리와 위치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보폭을 계산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뭔가 문 같은 것을 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다.”
이렇게 복잡하고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길이면 이곳을 지켜야 하는 적들에게도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칠은 분명히 어딘가에 지름길을 만들어두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였다.
드드드드.
세심하게 찾지 않으면 절대 구별할 수 없는 암갈색 벽면의 작은 돌출 부위를 누르자, 갈라진 길 중앙 벽에 갑자기 구멍이 생기면서 점점 크기를 넓혀갔고, 사람 한 명이 오갈 수 있는 넓이가 되었다. 이 구멍이 진들을 완전히 관통하는 안전한 길로 들어서는 입구일 것이다.
“이런 거 만드느라고 꽤나 고생했겠군.”
오칠은 코웃음을 치며 열린 입구로 들어갔고, 이리저리 꼬인 길을 한참 동안 오가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대전에 당도했다. 족히 수백의 사람이 모여 있을 수 있는 넓이의 대전이었다. 하지만 그 거대함보다는 대전에 펼쳐진 광경이 오칠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지독한 악취가 날 만도 했군.”
피바다가 된 대전은 수백의 시체로 가득했다.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 넣은 것처럼 참혹하게 죽은 시체들이 대전을 가득 채우고서 썩어가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드문드문 피워진 횃불의 붉은 일렁임이 더욱 섬뜩한 느낌을 일게 만들었다. 동굴을 가득 채운 악취는 바로 이곳 대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끔찍하군.”
오칠의 뒤를 따라 나오는 초왕성 등은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에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그들도 흑천맹과의 싸움을 비롯한 많은 격전을 치르고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목도했지만, 이곳과는 결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곳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죽음만이 가득한 지옥이었으니까.
“아무도 움직이지 마.”
오칠은 대전으로 나오려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 멈추게 하고, 입구를 나온 이들에게는 제자리에 그냥 서 있으라고 했다. 대전 가득 시체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시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지금껏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혈천신교의 무리들이었고, 또 이런 시체들을 만들어낸 무언가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분명 매우 위험한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혼자서 입구를 벗어나 핏물로 질척한 대전의 중심을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대전의 끝, 벽을 그대로 깎아 만든 단상 위에 놓인 커다란 석좌, 정확히는 그 어떤 곳보다 많은 시체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 고개를 숙인 채로 앉아 있는 위지무성의 존재를 말이다. 이전처럼 몸이 안개에 휩싸여 있지는 않았지만, 오칠은 그가 위지무성일 거라고 확신할 수가 있었다.
‘왜 몰랐을까?’
하지만 오칠은 의아함을 느꼈다. 은시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위지무성의 마기를 선명하게 느끼고, 그 위치까지도 분명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한데, 이곳 대전이 아무리 어둡고 넓다고 해도 위지무성의 존재를 진작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마기를 완벽히 제어하게 된 건가?’
오칠은 팔 장여의 거리를 남겨둔 채 위지무성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그의 몸에서 검은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안개가 파천혈전공의 기운이 분출된 것이기도 하지만, 마기가 유형화된 것이기도 하다는 걸 알고 있는 오칠은 위지무성이 마기를 제어하게 되었다는 자신의 생각에 점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올 줄 알았지.”
화르르.
순간 음성이 대전을 울리고, 횃불들이 바람에 밀려난 듯 좌우로 꿈틀거렸다.
“좀 놀랐나?”
위지무성은 석좌에 앉아 있는 채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이곳 대전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평온했다. 아니, 무감각하다는 것이 더욱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오늘은 꽤나 인간 같아 보이네. 배가 뚫리더니 개과천선이라도 한 건가?”
오칠의 비아냥거림에 위지무성은 히죽 웃었다.
“그 비슷한 경우지. 하지만 약간은 경우가 달라. 깨달음을 얻었거든.”
위지무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 옷깃을 들어올려 복부를 보여주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의 복부는 말끔했다. 분명히 오칠의 묵철곤에 꿰뚫렸었는데 전혀 그러한 상흔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때, 놀랍지 않은가?”
“그래, 꽤 놀랄 일인데.”
진심이었다.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쉽게 나을 상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칠도 어깨의 부상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 그보다 더 큰 상처를, 죽을 수 있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지다니.
“나도 놀랐어.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할 수가 있겠나?”
“…….”
“난 극마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