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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22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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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222화

파계 9권 - 22화

 

 

 

 

 

“이것은 용정차(龍井茶)요. 그것도 용정차 중에서 최고로 치는 청명(淸明:4월 5일경) 이전에 딴 명전차(明前茶)라는 것이오.”

 

공야 각주는 목운교의 앞에 잔을 놓고 차를 따라주며 용정차에 대해 조용히 설명했다. 절강(折江) 항주(杭州)의 서호(西湖)를 가까이한 곳에 용정(龍井)이라는 우물을 가진 마을에서 차를 재배하면서 용정차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녹색을 띠면서 맛이 깊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고, 용정차라도 차 밭의 위치에 따라 사두(獅頭), 매오(梅塢) 등등으로 불린다는, 목운교에겐 전혀 관심거리가 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긴히 하실 말씀이 용정차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목운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쓸데없는 말을 길게 했구려.”

 

공야 각주는 겸연쩍게 웃으며 차를 권했다. 목운교는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빨리 마시고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찻잔을 들었다. 공야 각주의 말대로 차 맛은 깊고 부드러웠지만, 오칠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그녀는 미각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마음 편한 상태가 아니었다.

 

“목 소저도 아시다시피 우리 백천맹은, 아니 정파 무림은 크나큰 난관에 봉착해 있소이다.”

 

공야 각주는 심각한 말로 서두를 꺼냈다.

 

“정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이 안타깝게도 대부분 명을 달리하였고, 구파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문파들이 크나큰 타격을 입어 명맥을 잇는 것조차 힘겹게 되었소이다.”

 

목운교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혈천신교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대략 사백여 명. 지금껏 이름을 날리던 절정고수와 문파의 수장들까지 대부분이 사망하고 남은 숫자였다. 호북을 기점으로 서쪽에 근거지를 둔 몇몇 중소 문파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정파 무림은 사파 무림처럼 괴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목운교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공야 각주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녀 스스로의 판단으로도 자신은 그러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흑천맹이 와해되고, 일단 혈천신교를 패퇴시키기는 했지만 혈천교주가 살아 있고, 호남엔 아직도 혈천신교의 잔여 세력이 남아 있는 상태이니 우리가 참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목 소저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하지만 공야 각주님, 우리에겐 무적 정의파가 있잖아요.”

 

목운교의 대꾸에 공야 각주의 낯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정파에는 무적 정의파가 있었다. 정파에 그래도 어느 정도의 생존자가 있을 수 있던 것도, 혈천신교를 패퇴시킨 것도 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처절한 싸움을 겪고도 무적 정의파는 그 산하 세력임을 자처하는 십여 개의 가문까지 해서 이천여 명이 넘는 막강한 무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무적 정의파는 현 무림 제일 세력이었다. 그러니 호남으로 퇴각한 혈천신교도 한동안은 감히 장강을 넘어올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소. 우리에겐 무적 정의파가 있지요.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어떤 세력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그래서 공야 각주는 더욱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지금 오칠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지만, 그의 충복임을 자처하는 경모혁, 초왕성 등등의 고수들만으로도 그 힘은 막강했다. 그들 외에도 어디서 저런 자들이 나타났나 싶을 정도로 무적 정의파에는 엄청난 고수들이 즐비했다. 무림 제일의 장인이라는 단철방 방주 화웅섭까지 나중에 합류하여 오칠을 주군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할 때는 무감각해져 놀라지도 않을 정도였다.

 

‘중원 각지로 숨어든 마교의 수족들이겠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무림에 숨은 고수들이 모래알처럼 많다고 하지만, 그들처럼 막강한 고수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정파의 현실을 보면 상황은 더욱 암담했다. 백천맹의 총수였던 하후진용, 환도신군 상관승, 소림 방장을 제외한 구파의 장문인들, 그리고 장로들, 열혈군에서 촉망받던 후기지수들까지 대부분의 절정고수들이 모두 사라졌다. 무적 정의파가 나타날 때까지도 죽지 않고 버텼던 그들이 위지무성이 도주한 때를 기점으로 해서 거세게 저항하는 적들과의 싸움에서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광죽 노승과 소림 방장을 비롯한 몇몇 소림 무승들과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제 구파에는 소림사만이 그 본래의 명성을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정파 내에서는 무적 정의파를 견제할 수 있는 고수도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공야 각주가 걱정하는 것이었다. 마교의 후인들이 정파의 탈을 쓰고 있는데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을 말이다. 또한 공론화시킬 수도 없었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도 뻔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둘 수는 없지.’

 

공야 각주는 절대 그러한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무적 정의파를 어떻게든 와해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오칠이 사라져야 했다. 혼수상태에 빠져 무용지물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마교는 교주가 사라지면 자연히 결속력이 약해지는 무리였기에, 교주일 것이 분명한 오칠이 절대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혈천신교 말고도 작금의 정파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위험 세력의 암계에 빠져 있소이다.”

 

“혈천신교 말고 다른 세력이 있단 말인가요?”

 

“내가 목 소저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은 그 위험 세력을 막고자 함이오.”

 

공야 각주는 슬며시 목운교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이제 슬슬 그가 생각하는 변화가 생겨날 시점이기 때문이다.

 

“저를 만나…….”

 

목운교는 머릿속이 갑자기 핑 하고 돌아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눈앞이 어지러워서 몸을 가누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왜… 왜 이러지…….”

 

의자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목운교는 양손으로 탁자를 잡았다. 하지만 팔조차도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목 소저.”

 

목운교는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윙윙거리듯이 들려오는 공야 각주의 음성에 고개를 바로 세웠다. 한데, 이상한 것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애써도 잘 움직여지지 않던 그녀의 고개가 이상하게 잘 세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야 각주의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친 목운교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의식만 없을 뿐, 그녀의 몸은 공야 각주를 바라보는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

 

공야 각주는 잠시 동안 목운교의 안색과 눈동자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리고 만족했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수법이 조악하기는 하지만 효과가 정말 빠르군.”

 

그가 목운교의 의식을 빼앗은 수법은 오래전 천축(天竺:인도)에서 전해져온 밀어수심공(密入隨心功)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섭혼술과 같은 것으로, 미혼산과 더불어 사용하며 정신이 제압된 상대에게 암시를 주어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전자가 시키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한마디로 정파의 명숙이랄 수 있는 공야 각주가 사용하기에는 참으로 치졸한 행동인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공야 각주는 몽롱한 목운교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밀어수심공의 기운이 담겨 있는 음성으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냄새를 기억해라.”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든 공야 각주는 그 안에 담긴 가루의 향을 맡게 했다.

 

“알겠습니다.”

 

목운교는 고저 없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냄새를 기억하겠지?”

 

“네.”

 

“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방 안으로 사람이 들어오면 이 냄새가 몸에서 나는 사람을 칼로 찔러 죽여라.”

 

공야 각주는 품에서 그가 준비한, 극독까지 묻어 있는 날카로운 비수를 목운교에게 내밀었고, 그녀는 비수를 받아 소매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공야 각주는 목운교에게 맡게 했던 주머니를 들고 침상에 있는 오칠에게 다가가 그의 몸에 주머니 속에 있던 가루약을 뿌렸다.

 

“너의 선대 교주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죽었으니,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백여 년 전, 궁지에 몰린 정사맹은 마교(배화교)를 이길 방법으로 칠 대 교주의 암살을 계획했었다. 그리고 당시 마교 교주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이러한 방법으로 최면을 걸어 교주를 암살하게 했던 것이다.

 

공야 각주는 마복동에 전해지는 책을 통해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교에 대해선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지만, 당시 정사 양맹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또 어떻게 마교를 물리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선 자세하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선 달리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목운교를 이용하여 그때의 암살을 재현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오칠의 죽음을 통해 나머지 마교 세력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또한 자신과 정파인들이 암살에 대한 혐의에서 벗어나, 마교의 분노를 비껴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가 저 문을 나가고 나면 넌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부터 해서 나에 관한 모든 기억을 잊어라. 알겠지?”

 

“네.”

 

공야 각주는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서 조용하고도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목운교는 정신을 차렸다.

 

“…….”

 

잠시 멍한 표정이었던 목운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자신이 여기 앉아 있는지 아무 기억도 안 나기 때문이었다. 선잠을 자다 깨어난 것처럼 머리가 조금 멍멍하기까지 했다.

 

“졸았던 모양이구나.”

 

목운교는 오칠이 누워 있는 침상으로 갔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다만, 그 특유의 새하얀 피부 때문에 약간 창백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 때문에 오칠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웠다. 도저히 남자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똑똑.

 

“경모혁입니다.”

 

“들어오세요.”

 

목운교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경모혁이 문을 여는 순간, 목운교의 얼굴은 인형처럼 굳어지고, 그녀의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졌다. 손에는 어느새 빼든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비수가 역으로 쥐어져 있고, 목운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오칠의 심장을 향해 찔렀다.

 

“목 소저!”

 

경모혁의 고함이 방 안을 가득 울렸다.

 

 

 

 

 

* * *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부서진 창문의 구멍을 통해 방으로 스며들어왔다. 하지만 공야 각주는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으로부터 전신으로 퍼져가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땀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침상에 누워 있지 못하고 창가에 서서 몸을 식히고 있는 것이다.

 

‘언제 소식을 전해올까?’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흥분과 열정이었다. 수 세기 전부터 쭉 무림의 공적이었던 마교의 수장을,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마교 교주를 자신의 계획하에 죽일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으로부터 생겨나는 열기였다.

 

‘마교를 분열시키고, 밑바닥까지 추락한 정파의 힘을 내 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의 힘이 되어줄 고수들은 거의 모두 죽었고, 혈천신교가 아직도 건재하지만 목운교에게 말한 것처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남은 정파인들을 규합하여 말 그대로 제이의 마복동, 무림 전체를 완전히 하나로 통일시킨 마복동을 만들어서 정파를 되살릴 자신이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살아 도망간 혈천신교의 무사들은 오백 명도 되지 않았고, 오칠에게 큰 부상을 당해 도주한 혈천교주의 생사도 확실하지 않은 지금, 최소 십 년의 여유는 있다고 믿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혈천신교를 상대할 세력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공야 각주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이는지 꽉 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의 상황은 이전에 그가 계획하던 것 이상으로 큰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뒤에서 모든 상황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당당히 나서서 이끌 수도 있는 그런 가능성까지 크게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정사를 떠나서 사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을, 야망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목전에 놓였다고 할 수 있었다.

 

“즐겁나?”

 

“……!”

 

공야 각주는 깜짝 놀라 창문을 향해 있던 신형을 돌렸다. 그리고 황급히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더욱 크게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침상 위에 오칠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손에는 목운교에게 주었던 비수까지 들려 있었다.

 

“어떻게…….”

 

“죽지 않았냐고? 아니면 어떻게 정신을 차렸냐고? 아니면 둘 다 묻고 싶은 거냐?”

 

“…….”

 

그의 앞에서, 그리고 정파인들 앞에서 보아왔던 오칠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냉소가 가득하고, 말투는 더없이 사파적이었다.

 

“너 같은 놈의 생각 같은 걸 내가 짐작 못하고 있을 줄 알았어? 이봐, 공야정진. 내가 누군지 알았잖아. 그러면 이곳의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건 뻔한 일이 아니겠어?”

 

“고의로 의식이 없는 척했구나.”

 

“아니, 처음 며칠은 고의가 아니었다. 어깨 때문에 정말 정신을 잃고 있었지. 그 이후로는 회복하기 위해 안정을 취하고 있었고. 물론 그때 네가 나의 암살을 실행했다고 해도 실패했을 거야. 내 주변엔 보이지 않는 눈들이 꽤 많거든. 그리고 너만큼이나 영리한 사람도 많지.”

 

“네놈의 속셈이 뭐냐?”

 

조금 전까지는 몰라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오칠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는 죽었고, 자신의 꿈과 야망이 이루어지면 그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의 계획이 모두 실패한 상황이었고, 그래서 공야 각주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오칠에게 물었다. 마교의 교주로서 엄청난 무공과 강대한 세력을 가진 그가 왜 정파인으로 행동하는지, 또 왜 소림사를 도와 흑천맹을 괴멸시켰는지, 그리고 혈천신교를 막아내어 정파인들을 구했는지 알아야 했던 것이다.

 

오칠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네가 기대하는 거대한 음모를 가진 것은 아니야. 역사적으로 너희들이 착각하곤 하는 마교 천하를 이루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림이란 세상을 약해지게 만들려는 것뿐이었어. 거대해지고 세력화된 것들 때문에 내게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기니까 박살 내버리려고 하는 거지. 물론 혈천신교도 마찬가지고. 그들은 우리 배화교의 곁가지거든. 쓸데없이 뻗어나가려고 하는 쓸모없는 가지라고나 할까. 그래서 내가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중이지. 아, 그리고 막판에 난다 긴다 하는 고수들이 모두 죽은 게 조금 이상했지? 내 수하들이 조금 힘을 썼어. 위험스런 상황을 유도한 뒤에 도와주지 않아서 죽게 만든 거야. 조금 어려운 일이었지만, 내 수하들은 꽤 유능해서 잘 처리했더군. 뭐, 소림사엔 고수가 제법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댁들만큼 욕심이 큰 자들이 아니니까 나중에 장경각을 불태우는 것 정도로 봐줄 생각이야. 그리고 근거지에 어느 정도 힘과 기반을 가지고 있는 문파들은 내 수하들에 의해 보이지 않는 타격을 입고서 조금씩 무너지게 될 거고. 일단 내 계획은 그래. 어때, 마음에 드나?”

 

“네놈…….”

 

공야 각주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오칠을 노려보았다. 귀찮아서라는 이유로 무림을 괴멸시키고, 수천의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오칠의 너무도 냉혹하고 사악한 모습에 그는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인간 같지가 않은가? 내가 사람 같지 않아?”

 

“…….”

 

“웃기지 마.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이 모든 싸움은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야. 너희들이 욕망과 탐욕에 빠져서 치고 받는 것을 조금 보조해줬을 뿐이라고. 내가 아니었다면 혈천신교를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나? 절대 그러지 못했을걸. 정사 무림이 힘을 합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어. 한데, 서로 반목해서 이익을 챙기기 위해 양분되어 싸우기까지 했잖아. 그런 너희들이 나를 욕할 자격이 있을 것 같아? 절대 아니지, 절대 아니야. 그리고 너도 이대로 평화를 유지할 생각이 없었지? 힘을 모으고 권력을 쥐면 무림일통을 위해 흑천맹에 싸움을 걸 생각이었잖아. 너도 나와 다르지 않아. 남자답게 인정하라고.”

 

“…넌 인간이 아니야.”

 

공야 각주는 오칠의 모든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툭 내뱉었다. 그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초연한 얼굴로 그 이상의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마치 이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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