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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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6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21화
파계 9권 - 21화
쾅-
공간이 파동치고 땅을 휘몰아치는 광풍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나가 주변에서 싸우던 사람들을 밀어냈다.
“…….”
짜르르하게 전신을 울리는 충격을 느끼면서 위지무성은 무릎까지 땅으로 파고든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이렇듯 타격을 입고 땅에 박히다니. 그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확연히 눈에 띌 만큼 엷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받은 충격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칠은 위지무성이 어찌 생각하든 상관없이 공중에서 빙그르르 회전하며 충격을 흡수하고, 곧바로 땅에 내려서며 광풍에 휩쓸리고 있던 목운교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고 십여 장을 산 위로 날아올라 안전한 곳으로 내려섰다.
“오랜만이오, 목 소저.”
“…….”
목운교는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칠을 만나면 어찌해야 할지, 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매일 밤마다 생각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는 그 어떤 행동도,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잘 지낸 것 같구려.”
오칠은 손끝으로 목운교의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그런 오칠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가벼운 접촉을 통해 오칠이 자신을 생각하는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려 했다. 기다렸다고, 당신을 만나고 싶었다고.
“난…….”
하지만 오칠은 웃음 지으며 목운교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막았다.
“우선 저 건방진 녀석을 처리해야 할 것 같소. 그러니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오칠은 목운교에게 한쪽 눈을 깜빡여주고는 그대로 위지무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구나, 이 사악한 자여!”
저잣거리를 오가는 연극단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말을 내뱉으며 오칠은 매서운 눈으로 위지무성을 직시했다. 그러자 위지무성은 땅에 박힌 다리를 끄집어내며 오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겠냐?
“…….”
입으로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말투의 전음을 전해 받고 위지무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천마신공을 익혔느냐!
-영리하네.
-어떻게?
-내가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지.
위지무성은 소림사 외학전에서 만났던 행자승이 오칠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행자승은 분명히 그의 손에 죽었으니까.
-잘 들어라. 내가 바로 배화교 팔 대 계승자이자, 현 배화교 교주인 오칠이다!
전음 속엔 상대를 압박하고도 남을 강렬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위지무성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안개가 더욱 짙어졌을 뿐.
-그렇단 말이지. 하면, 배화교의 나머지 일족들도 네가 데리고 있느냐?
오칠은 손을 들어 위지무성의 뒤를 가리켰고, 위지무성은 고개를 돌려 혈천신교의 무리 뒤쪽을 뒤덮어오는 이천여 명의 강력한 무사들을 확인했다.
“크하하하!”
위지무성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갑자기 커다란 광소를 터트렸다.
“좋아, 아주 좋아!”
주변이 떠나갈 듯한 광오한 감탄성과 함께 위지무성의 신형이 오칠을 향해 날아올랐다.
-네놈을 죽이고 배화교를 갖겠다!
위지무성은 그대로 오칠을 향해 검을 강기를 날려 보냈다.
쾅-
날아오는 강기를 손으로 쳐낸 오칠의 신형이 출렁였다. 하지만 지금껏 위지무성의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내고 멀쩡한 이가 아무도 없었기에 그들의 싸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정파인들의 얼굴에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더구나 저 멀리 오칠이 이끌고 온 수천의 무사들이 후방을 유린하고 있지 않은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저들과 합류해야 합니다!”
지치고 피에 젖은 얼굴의 공야 각주는 이제 칠백여 명밖에 남지 않은 정파인들에게 소리쳤다. 적들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초왕성의 무리와 그 뒤쪽에서 적들을 압박하는 이천여 명과 합류해야 전멸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장문인이 싸우고 있소!”
광죽 노승이 내상을 치료하는 걸 지키고 있던 소림 방장이 위지무성과 싸우고 있는 오칠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공야 각주도 쭉 지켜보고 있었기에 알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의 싸움에 우리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적들도 감히 저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이 안 보이십니까? 우리가 이곳에 있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방장은 오칠만 혼자 두기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반대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공야 각주의 말대로 오칠과 위지무성의 싸움은 이미 천외천의 싸움과 다름없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라 해도 저 두 사람이 싸우는 것에 휘말렸다가는 몸이 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위지무성의 친위대인 듯한 백여 명의 적들도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들과 뒤섞여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저 여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방장은 여인의 몸으로 용감하게 위지무성에게 덤벼들었던 목운교을 보았다. 오칠이 그녀를 구하던 모습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보다는 그런 목운교가 지켜보는 것이 오칠에게 더욱 큰 힘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고민할 것이 무어냐, 저놈은 지가 알아서 잘할 놈이야.”
어느 정도 내상을 다독인 광죽 노승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 오칠 쪽을 바라보다가 정파인들이 적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갑시다.”
방장 역시 광죽 노승의 뒤를 따라 달려갔다. 하지만 서둘러 적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하던 공야 각주는 오칠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 모습은…….’
그는 위지무성의 모습과 대비되는 붉고 푸른 기운에 휩싸인 오칠을 보며 마복동에 전해지는 책의 내용을 떠올렸다. 과거 사라진 마교에 대해서 거의 전해진 것이 없었지만, 그 한 권의 책에는 미미하지만 마교 교주에 대한 모습을 설명한 글귀가 있었다.
<붉고 푸른 불길에 휩싸여 하늘을 날아오는 마교 교주는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마신이었다.>
그 짧은 글귀는 마교 교주의 강대한 힘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공야 각주는 사시현에서 위지무성을 보고 혹시 그가 마교 교주의 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지금 그 생각이 바뀐 것이다. 위지무성과 싸우는 오칠의 모습과 그 글귀가 너무도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에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
‘오 장문인이 만약 마교의 후인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저리 젊은 나이에 감히 추측하기도 힘든 무공을 익혔으며, 거느리고 있는 세력은 또 얼마나 막강한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무리 조사를 해봐도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는 비밀스러움도 그러한 추측을 더욱 확신으로 굳히게 만들었다.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는 거다. 그리고…….’
마교의 후인인 오칠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는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정파는 오칠의 도움이 너무도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니까.
생각을 정리한 공야 각주는 후방의 공격으로 혼란한 혈천신교 무리를 뚫고 나가려는 정파인들에게 달려갔다. 지금은 우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 * *
과광-
왼쪽으로 움직여 내지른 주먹이 불쑥 튀어나오는 위지무성의 손과 맞부딪치고, 오칠은 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뒷걸음쳤다.
‘진짜 세네.’
누군가 알아볼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오칠은 천마신공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신공이 아니면 위지무성의 파천혈전공을 상대할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으로는 위지무성의 장력을 뚫을 수가 없었다. 검은 안개에 둘러싸여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도 모를 모습 때문에 정확하게 요혈을 노리고 공격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였다.
그러나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은 위지무성도 마찬가지였다. 파천혈전공의 공력이 온몸을 완벽하게 보호해주고 있고, 오칠의 공격을 정확하게 막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오칠의 움직임을 압도할 수가 없었다. 마치 견봉생의 경신법을 마주한 듯한, 아니 오칠은 그 이상으로 빠른 움직임으로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크으으!”
상대를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 당장에 피를 볼 수 없다는 막막함에 위지무성의 이성이 바짝 메말라갔다. 철 마차를 타고 오면서 마성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아주 조금이라도 냉정한 이성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그의 광기가 뇌리를 가득 채워가고 있었던 것이다.
“크아!”
오른쪽에서 어느새 머리 위로 떠오른 오칠을 보며 위지무성이 괴성을 터트렸다. 그 소리는 이미 이성을 가진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머리 위로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
오칠은 황급히 몸을 움츠려 그를 향해 밀려오는 파천혈전공의 강기에 저항했다.
쾅-
그저 연기처럼 보이는 파천혈전공이었지만, 오칠은 그 기운에 부딪힌 순간 만근 거석과 격돌한 듯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공중으로 밀려 올라갔다.
‘빌어먹을!’
오칠은 사지를 활짝 펴서 허공으로 올라가는 몸을 정지시켰다.
‘한번 해보자 이거지!’
단전에서 치솟은 천마신공의 강대한 공력이 그의 내부를 질주했다. 온 힘을 다하는 정도로는 위지무성을 어찌할 수 없었기에 그는 단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아니 할 필요가 없었던 극성에 이르는 천마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르!
불타올랐다. 단순히 기운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칠의 몸이 붉고 푸른 불길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서 빼든 묵철곤에 천마신공의 기운을 응집시켜 위지무성을 향해 내리쳤다.
우우우웅-
“……!”
위지무성은 본능적으로 그의 혈천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역시 파천혈전공의 기운을 검에 실어 떨어지는 묵철곤을 향해 휘둘렀다.
과과광!
검과 곤이 부딪쳐서 생겨난 소리라고 할 수 없는 엄청난 굉음이 주변을 떨어 울렸다. 그들만큼이나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수천의 무리가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출 정도였다.
“카카카!”
굉음과 충돌의 여파로 생겨난 먼지 폭풍 사이로 위지무성의 음침한 괴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산 중턱에 솟아오른 절벽에 깊숙하게 틀어박힌 오칠은 온몸의 고통을 꾹 눌러 참아야 했다.
“이 새끼가!”
오칠은 그로 인해서 생겨버린 절벽의 구멍 속에서 위지무성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천마신공의 기운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붉고 푸르고, 살기가 넘실거리는 눈동자. 마치 위지무성의 그것처럼 광기 어린 눈동자였다.
우우우웅.
오칠의 몸이 틀어박혀 있는 구멍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오칠로부터 뿜어지는 강력한 천마신공의 기운을, 아니 그 이상의 어떤 사악한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서져나가는 것이었다.
“죽인다!”
와스스스.
동굴이 허물어지고, 오칠의 신형이 절벽을 빠져나와 위지무성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크크크!”
위지무성의 온몸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가 앞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기운이 혈천검에 응집되면서 순간적으로 그의 감추어져 있던 모습이 드러났다. 분명 방어를 배제한 공격을 펼치려는 것이다.
하지만 공격할 틈이 생겼는데도 오칠은 상관치 않았다. 그 역시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천마신공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마공을 조절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극한의 상태에 이르고, 스스로의 살기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파천혈전공과 다를 바 없는 절대마공에 불과했다.
“죽인다!”
머리 위로 들린 묵철곤에 천마신공의 강대한 기운이 응어리지고, 그를 향해 날아오르는 위지무성의 혈천검은 검은 안개에 뒤덮이며 정확히 오칠의 심장을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필살의 일격을 펼치려는 것이다.
“안 돼요!!”
사악하고 강대한 기운만이 가득한 공간 속으로 여인의 음성이 비명처럼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칠의 머릿속에 하나의 섬광이 스쳐가며 마기의 그림자가 잠시나마 흐트러졌다. 목운교의 음성이었기에, 세상에서 유일하게 오칠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목운교의 음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아아앙-
“크윽!”
위지무성의 혈천검이 오칠의 오른쪽 어깨를 깊숙하게 뚫고 지나갔다. 오른쪽 어깨가 거의 잘려나가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오칠이 몸을 뒤틀지 않았다면 혈천검은 왼쪽 가슴을 정확하게 꿰뚫었을 것이다.
“끄아아아!”
검은 안개가 한곳에 밀집되어 방어가 약해진 위지무성의 복부를 송곳이 튀어나온 묵철곤이 뚫고 들어가면서 터져 나온 처절한 비명이었다. 지옥의 울부짖음 같은, 사악하면서도 끔찍한 비명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위지무성은 그렇게 비명을 지르며 부상 때문에 쫓을 수 없는 오칠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저주의 말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제89장. 마(魔), 그리고 마(魔)
백천맹의 거성(巨城)에서 그래도 본래의 모양을 대부분 갖추고 있는 대총부(大摠府).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크고 깨끗한 방은 미미하게 밝음을 선사하는 등불 하나에 의지하여 새벽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었다.
“…….”
목운교는 침상에 누워 있는 오칠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위지무성과의 싸움 이후 의식을 잃고 벌써 보름째 깨어나지 않는 그의 곁을 목운교는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혈천신교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사백여 정파인들이 오칠이 깨어나기를 바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전영양을 복용시켰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경모혁이 데려온 네 명의 의원들도 외상으로 인한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오른쪽 어깨가 잘려나갈 정도의, 그래서 죽을 수도 있었던 큰 부상이었다고는 하지만,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자체 치유력으로 부상이 회복되고, 끊겨가던 숨결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역시 생사를 오가는 과정 속에서 적지 않은 충격이 영향을 미쳤던 것이 분명한 모양이었다. 의원들도 그것 말고는 의식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기다릴게요… 언제까지고 당신이 깨어나길 기다릴게요.”
목운교는 오칠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앞에서는 웃고 싶었기에, 진정 기뻐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똑똑.
“들어오세요.”
지금 시간은 인시(寅時:새벽 3~5시) 말. 이렇게 이른 시간에 누군가 문병을 올 리는 없고, 아마도 새벽이면 찾아오는 경모혁이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온 거라고 생각하며 목운교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실례하겠소, 목 소저.”
공야 각주였다. 뒤쪽을 살피며 문을 여는 것이나,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는 모양새가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사실 이 새벽에 찾아온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찾아왔소이다.”
공야 각주는 손에 열기가 느껴지는 작은 찻주전자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리를 권하는 목운교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이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