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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217화

무료소설 파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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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파계 217화

파계 9권 - 17화

 

 

 

 

 

“그래, 덤벼라! 이놈들아!”

 

발목이 잘린 고통에도 정파 무사는 크게 고함을 내지르며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그런 그에게 십수 명의 혈천신교 무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곧 억눌린 신음과 함께 잘린 머리 하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군.’

 

정면을 막고 선 혈천신교 무사들에게 강맹한 권력을 날린 광죽 노승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공격에 피를 내뿜으며 적들이 쓰러졌지만, 곧 또 다른 적들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광죽 노승의 앞을 막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걸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적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스악-

 

“크윽!”

 

또 한 명의 정파인이 적의 칼에 맞고 무리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빨라졌다. 그만큼 적들이 많아지고 포위망이 조밀해졌으며, 공격이 집요해졌다는 뜻이었다.

 

‘백 장!’

 

백천맹까지의 거리는 처음의 사분지 일밖에 남지 않았다. 다만 문이 단단히 닫혀 있는데 어떻게 들어가느냐가 문제였다. 광죽 노승 자신이야 그대로 성벽을 타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정도가 가능한 고수들도 피로와 부상 때문에 그만큼의 경공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차창- 퍽! 콰직!

 

“으아악!”

 

격렬한 쇳소리와 타격음, 그리고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비명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차합!”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힘찬 기합성과 함께 달리던 광죽 노승의 왜소한 신형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꽉 쥐어진 그의 양 주먹이 정면 아래, 그리고 좌우 뒤쪽 아래를 향해 맹렬하게 내질러졌다.

 

우웅- 우우웅- 웅웅-

 

무형의 권력이 사방으로 짓쳐들어오는 적들에게 뿜어져나갔다.

 

펑펑펑펑펑!

 

“크악!”

 

각 방향마다 대여섯 명의 혈천신교 무사들이 입에서 울컥울컥 피를 뿜어내며 나동그라졌다. 그것으로 잠시나마 그들 무리를 죄어오던 포위망이 느슨해졌다.

 

휘리리릭-

 

공중에서 핑그르르 회전하던 광죽 노승의 신형이 무리 뒤쪽으로 떨어지고, 뒤쪽에 있던 녹음월 등의 고수들은 좌우를 막아서며 앞쪽으로 이동했다. 앞뒤로 전환하면서 전체적인 방어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만 쫓아와라, 이놈들아!”

 

광죽 노승이 뒤를 맡자 쫓아오던 적들의 접근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하지만 그가 뒤쪽에 있음으로 해서 무리 전체의 이동 속도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제 성까지의 거리는 오십여 장으로 줄어들었고, 상대적으로 느려진 속도라고 해도 촌각이면 당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대사님!”

 

앞을 막고 있던 녹음월이 갑자기 소리쳤다. 광죽 노승은 혹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해서 황급히 고개를 앞쪽으로 돌렸다.

 

‘저들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백천맹의 성벽을 타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어두운 밤중에도 달빛을 반사시키는 대머리 중들이었다.

 

“사백님!”

 

소림 방장 굉덕을 비롯한 소림 고수들과 무승들, 속가제자들은 곧 광죽 노승 등과 조우하여 함께 힘을 합쳐 적들의 포위를 뚫었다. 그리고 성벽 위에서 궁수들이 적들의 접근을 막는 사이에, 살며시 문을 열어놓은 백천맹의 성문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 * *

 

 

 

 

 

곳곳에 화롯불과 횃불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혹시라도 혈천신교가 어둠을 틈타 암습을 감행할 것에 대비해서 시야를 확보해둔 것이었다. 그러나 광죽 노승은 그런 백천맹 본성의 내부가 전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불안감이 가득한 얼굴로 모여 있는 정파인들 때문이었다. 무림의 신승이자 모든 정파인들의 스승이라고 하는 광죽 노승의 합류에 조금은 분위기가 밝아진 듯하지만, 불안한 기류는 여전히 주위를 휘어감은 채 풀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백천맹이 사시현에서 크게 패해 이곳으로 황급히 후퇴하고, 혈천신교에 의해 포위를 당한 것이 벌써 열흘이 넘었다. 더구나 그 사이에 마을을 경유하여 합류한 정파 무리는 고작 둘이었다. 첫 번째는 환도신군 상관승을 필두로 한 이백여 명의 호남 정파인들이었고, 두 번째는 지금 합류한 광죽 노승과 녹음월 등의 무리였다. 그러니 성내에 있는 정파인들의 분위기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인 것이다.

 

“진작 나가서 사백님을 모셨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되었다. 내가 오는 것도 알지 못했는데 어찌 방장에게 잘못이 있다 할 수 있겠느냐.”

 

수십 년 동안 소림사엔 발길도 주지 않던 광죽 노승이었다. 그런 노승을 알아보고 도우러 나온 것만 해도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인 것이다.

 

“가시지요, 사백님. 지금 대총부에서 각파의 수장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헹, 지금과 같은 상황에 대책이 어디 있어! 우선은 이곳의 포위를 벗어나야 할 것이 아닌가!”

 

광죽 노승은 답답하다는 듯 호통을 터트렸다.

 

“그것보다 방장, 우선 나와 같이 온 사람들을 치료해주게.”

 

“알겠습니다, 사백님.”

 

하지만 소림 방장은 달리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의 무리가 노백 등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성벽 위에서 화살을 쏘아 적들의 접근을 막았던 천궁토교군(天弓土敎軍) 담씨 일가(譚氏一家)와 일심목교군(一心木敎軍)인 녹류산장(錄流山莊)의 무리였다. 그리고 그들 무리에는 노백을 알고 있는 목운교도 섞여 있었다.

 

“길을 잡게.”

 

노백 등이 도움을 받는 걸 보고 안심한 광죽 노승은 소림 방장과 함께 각파의 수장들이 있다는, 실제로는 거대 문파의 수장들만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는 대총관으로 향했다.

 

 

 

 

 

* * *

 

 

 

 

 

백천맹이 있는 은시의 중심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혈천신교의 무력단이 진을 치고 있는 숲의 한쪽.

 

큼직하게 잘 다듬어서 굵은 쇠꼬챙이에 꽂은 사슴을 향해 이글거리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세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혈천교주의 사제들인 공병악, 원등곡, 그리고 야율도동이었다. 그러나 사제들 간에 있어야 할 정다운 분위기는 세 사람 사이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가 무기를 빼들고 겨누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니까 강서를 내가 가질 수 없다는 겁니까?”

 

원등곡은 덥지도 않은 날씨에 부채를 흔들며 공병악을 노려보았다.

 

“지금 누가 어디를 갖는다는 말이 나올 시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병악은 원등곡을 마주 노려보며 품에서 소도를 꺼내들었다. 평소에 잘 갈아둔 모양인지 칼날이 모닥불에 반사되어 날카롭게 번득거렸다. 원동곡은 흔들던 부채를 멈춰 세우고 공병악의 의도를 파악하겠다는 시선으로 소도를 힐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공병악은 위협하기 위해 소도를 뽑아든 것이 아니었다.

 

푹. 스아악.

 

노릇하게 익은 사슴의 뒷다리에 소도를 박아 넣은 공병악은 매끈하게 뿌리를 잘라내어 손에 쥐었다.

 

“잘 익었군. 먹어라.”

 

호리호리한 몸매에 창백한 인상까지, 그리 식성이 많아 보이지 않는 공병악이었지만, 사슴의 뒷다리를 먹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겉모습과는 꽤나 대비적이었다.

 

으드득.

 

아무 말도 않고 있던 야율도동은 칼도 쓰지 않고 큼직한 손으로 사슴의 나머지 뒷다리를 뜯어냈다. 그리고 먹기 시작하는데, 그 모양이 맹호(猛虎)처럼 사납기 그지없었다.

 

“시기를 찾다가는 내 밥그릇도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둘째 사형.”

 

원등곡은 두 사람이 게걸스럽게 먹는데도 사슴 고기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는 지금 식욕보다는 지배에 대한 탐욕 쪽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초강지옥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에서 이리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요즘 대사형이자 교주인 위지무성이 이전의 냉철하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아 더욱더 실제적으로 손에 무언가를 쥐어야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 다른 누군가가 지금껏 들인 그의 노력과 공로까지 모조리 독식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그의 둘째 사형이자 교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공병악이 말이다. 혹은 고의로 이곳에 부르지 않은 장로들도 가능성이 있었다.

 

“우린 이제야 중원의 절반을 손에 넣었다.”

 

공병악은 입에 묻은 기름기를 소매로 닦아내며 말했다. 그리고 수하가 가져온 술병을 입으로 기울여 목을 축이고는 원등곡에게 내밀었다.

 

“싸워야 할 적들은 많고, 우리가 밟고 올라서야 할 땅은 아직도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때에 너의 이득을 챙겨야 하겠다는 거냐?”

 

원등곡은 공병악이 내민 술병을 받아들지 않았다. 대신 야율도동이 술병을 낚아채서 단번에 입에 쏟아 넣었다.

 

“빠져나가지도 못할 구덩이에 몰아넣은 저 오합지졸들이 사형이 말하는 적들이란 말입니까? 흥, 길어봐야 오 일이면 한 놈도 남김없이 모두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사형, 그런 변명 말고 좀 더 그럴듯한 걸 말해보십시오.”

 

원등곡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공병악이 고의로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병악은 잠시 날카롭게 원등곡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슴 고기를 으적으적 씹어 삼키고는 분노를 내리누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오합지졸이라고는 하지만 그 숫자가 아직도 이천여 명이 넘는다. 거기다 잡졸들이 아닌 알짜배기 고수들만으로 이천이야. 더구나 소림사의 중들까지 합류해 있다. 반면에 우리의 상황을 봐라. 우리의 숫자도 삼천이 넘지만 그 대부분은 칼 하나 차고, 몸만 재빠른 야만족들이다.”

 

“우리 외에도 목숨을 바쳐 싸울 신도들이 삼천오백이 넘습니다.”

 

“그래, 삼천이 넘지. 하지만 원래 북상을 하고 있던 이만 오천여 명의 신도들이 관군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면 더욱 큰 전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늙고 병든 신도들로 가득한, 고작 삼천여 명만이 우리의 전력으로 남았다. 이게 무얼 말하는 것 같으냐? 북경으로 갔다는 견봉생과 백 명이나 되는 혈령대가 암살에 실패했다는 뜻이야. 게다가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모두 죽었다고 봐야 한다. 혈령대 백 명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원등곡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혈령대의 능력을 모르는 이는 혈천신교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무공의 경지가 높아서가 아니라 살인과 암살, 그리고 적에게 혼란을 주는 기술에 능한 자들이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대규모 싸움에서는 더할 수 없이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관지옥대가 오지 않고 있다. 해적 나부랭이라도 병자들만 가득한 신도들보다 열 배는 더 강한 이천여 명이나 되는 싸움꾼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어. 냉 사매와 태산지옥대, 그리고 츠바사란 자를 견제하기 위해 같이 보낸 이 장로님은 어떻고. 우리보다 더 빨리 도착해 있어야 할 그들이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이 어찌 되었을지는 짐작하기조차 꺼림칙해서 말을 않겠다. 만약 우리가 나머지 혈령대를 움직일 수만 있었어도 상황을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겠지만, 우리에겐 그럴 권한도 없다. 오직 교주님만이 혈령대를 움직일 수가 있으니까. 우리는 누가 혈령대 소속의 인물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이 유리하다고 보는 거냐? 넌 진정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

 

창백한 공병악의 얼굴은 서리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원등곡은 대꾸할 말이 없어 침묵을 지켰다. 대신 지금껏 말도 없이 사슴 고기와 술만 먹어대던 야율도동이 그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정파 쥐새끼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 그때는 내 몫을 챙길 수 있는 겁니까?”

 

“…….”

 

원등곡을 향해 있던 공병악의 날카로운 시선이 야율도동에게 직선으로 꽂혔다. 하지만 야율도동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사형이 하는 말의 요점이 그거 아닙니까? 저기 성안에 처박혀 있는 놈들은 아직도 위험하고, 우리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하니, 지금은 밥그릇을 챙길 때가 아니다. 그럼 쥐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면 사형이 말하는 문제는 없어지는 게 아닙니까?”

 

공병악은 가슴 가득 서늘한 기분을 느꼈다.

 

‘언제나 철혈 무인처럼 굴더니…….’

 

지금껏 공병악은 야율도동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었다. 전대 교주를 배반하고 다음 대 후계자였던 원래의 대사형을 죽이는 데 야율도동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동참했었다는 것은, 그도 뭔가 크나큰 욕심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저 충성심이 맹목적으로 강하고 시키는 대로 싸움만 할 줄 아는 무인이었다면, 절대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배반과 반역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하지만, 공병악이 아는 한 야율도동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혈천신교 교도로서의 신앙을 거론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고 말이다.

 

“그러네. 야율 사제의 말대로야. 저들만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던 원등곡은 공병악에게 싱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얼른 덧붙여서 말했다.

 

“언제까지고 포위만 하고 있을 겁니까?”

 

“교주님이 오시면 그때 결정될 것이다.”

 

“우리끼리 공격해서 저 성을 무너뜨리고, 정파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면 교주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결론은 뻔한 것이니 더 이상 기다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공병악은 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사슴 고기를 씹어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교주님은 기다리라 하셨다.”

 

“교주님이 타고 계시는 그 쇳덩어리가 이곳까지 오는 걸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교주 위지무성은 삼십 마리의 소가 끄는 거대한 철 마차를 제작하도록 했고, 그걸 타고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게다가 위지무성과 함께 하는 것은 그의 친위대라 할 수 있는 오도전륜지옥대(五道轉輪地獄隊) 백 명뿐. 그들이 합류한다고 해서 전력에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들이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한 해가 다 가고 말 겁니다. 아니지, 저 성에 있는 놈들이 그때가 되면 모두 굶어죽게 되니, 그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군요.”

 

슥.

 

“……!”

 

어느새 뽑혔을까. 공병악의 검이 원등곡의 목젖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힘이 들어가면 그대로 원등곡의 목은 검에 꿰뚫리고 말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원등곡도 그냥 당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채 끝이 서너 치 앞에서 공병악의 심장을 겨누고 있었으니까. 부채에는 기관이 설치되어 있어서 원등곡이 원하기만 한다면 극독이 묻어 있는 부챗살이 튀어나가 공병악의 심장에 박혀 들어가고 말 것이다.

 

“교주님에 관한 어떠한 불경스런 언행도 용서치 않는다.”

 

공병악은 살기에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원등곡을 바라봤고, 원등곡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결코 좋은 의미의 웃음이 아니었다.

 

“웃자고 한 말에 너무 과민하시네요, 둘째 사형.”

 

“농담도 가려 해. 한 번 경고했으니, 두 번은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어라.”

 

“그러지요. 이 어리석은 사제는 사형의 말씀을 각골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공병악은 검을 원등곡의 목에서 치웠고, 원등곡은 부채 끝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살기는 좀처럼 사그라지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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