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 2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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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파계 205화
파계 9권 - 5화
파파파파파팍!
황보강패는 맹렬하게 회전하며 얼굴로 날아오는 수십 개의 발끝을 손으로 걷어내면서 연이어 뒤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회전하는 발끝이 아주 잠깐 멈춘 순간 꽉 움켜쥔 주먹을 도끼처럼 아래로 내리쳤다.
펑-
다시 회전하려는 발과 내리쳐지는 주먹이 격돌하며 커다란 충격음이 터져 나오고, 담성은 휘청거리는 몸을 이리저리 틀면서 재빨리 균형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며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을 연달아 정면으로 내질러야 했다. 자신을 향해 밀어닥치는 일파만파의 강맹한 권력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퍼펑! 퍼퍼퍼퍼펑!
“큭!”
담성은 충격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고통스런 숨을 내뱉었다. 처음 그가 막아낸 일파만파와 지금의 일파만파는 그 위력부터 너무나 달랐다.
‘내게는 아직 벅찬 상대였던가.’
아무리 담성의 재능이 뛰어나 소림 무공을 정심으로 수련했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경험과 공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끝이다!”
황보강패는 좌우로 크게 원을 그린 양손을 힘찬 고함과 함께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일파만파의 강맹한 권력이 소림보리신공을 주먹에 실어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을 펼쳐 맞대응하려는 담성의 전신을 뒤덮어갔다.
과과과과광-
공간이 출렁이고, 담성의 신형은 땅을 질질 끌며 뒤로 밀려났다.
“대사형을 도와라!”
굉진 대사 등의 장로들이 오대세가의 수장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사파 고수들을 상대하느라 담성을 도울 수가 없자, 십팔나한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상대하던 적들을 밀어내고 담성의 뒤쪽으로 내려섰다.
“합!”
굉진 대사의 첫째 제자이며 십팔나한(十八羅漢) 중 빈도라발라타사인 담웅이 담성의 등 뒤로 양손바닥을 밀착시키고 공력을 주입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 역시 차례로 이어서 등 뒤에 달라붙어 공력을 쏟아 부었다.
“후웁!”
밀려나기만 하던 담성의 신형이 우뚝 멈추고, 그의 두 주먹에 눈부실 정도로 환한 빛이 응어리졌다. 다른 제자들의 공력이 합해지면서 소림보리신공의 힘이 수배로 늘어나고, 그 힘이 고스란히 아라한신권을 펼치는 담성의 주먹에 실린 것이다.
“……!”
황보강패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세찬 바람이 불기라도 하는 것처럼 옷깃이 크게 펄럭이다가 불룩 팽창했다. 수미천왕신공이 극성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후욱- 후욱- 후욱-
때에 맞추어 담성의 두 주먹이 연달아 앞으로 내질러지고, 묵직한 권력을 분출시켰다. 그 순간, 황보강패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하압!”
황보강패의 주먹 크기가 두 배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주먹이 천왕삼권 이초 벽력천풍(霹靂天風)으로 펼쳐지며 그에게 분출되어오는 아라한신권의 권력을 마주쳐갔다.
콰콰쾅!
격돌의 충격음과 그 파장으로 생겨난 엄청난 바람이 주변을 휘몰아쳤다.
“…….”
뒤에서 등을 받쳐주고 있는 사제들 덕에 밀려나지는 않았지만, 담성의 입가로 진한 핏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그의 순수한 공력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극대화된 공력을 무리하게 운용한 데다, 벽력천풍의 강맹한 위력을 감내하다 보니 기혈이 잠시 역류한 것이다.
“나한진을 펼쳐라!”
격돌의 충격으로 공허해진 단전을 다독이고 있던 나한승들은 저 뒤쪽에서 들려오는 굉진 대사의 음성에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라는 물음이 떠오르기 전에 그들은 수련의 습관대로 나한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후웅- 콰쾅!
나한승들이 빠른 시간 안에 나한진을 구성하고 진의 보이지 않는 힘이 주변을 맴도는 순간, 황보강패가 쏘아 보낸 권력이 그 무형의 방어막을 강타했다. 잠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틈을 보였던 나한승들과는 달리 황보강패는 어느새 신형을 추스르고 진기를 모아 공격한 것이다. 굉진은 그런 상황을 재빨리 예견하여 나한진을 펼치라 소리친 것이고 말이다.
“개진(開陣), 행진(行陣)!”
적지 않은 충격으로 내기를 완벽하게 다스리지 못한 담성 대신에 담웅이 나한진의 중심이 되어 진을 움직였다.
퍼퍽- 퍽! 퍼퍼퍽!
“아악!”
“크악!”
나한진은 방어와 공격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합격진. 주변에 있던 사파 무림인들이 순식간에 그 위력을 몸으로 경험하며 비명을 터트리고 쓰러졌다.
사실, 이러한 위력의 나한진을 진작 펼치지 않은 것은 상황에 따른 효용성 때문이었다. 십팔나한진은 백팔나한진(十八羅漢陣:소나한진 여섯이 진을 구성한다)과 달리 광범위한 방어진이 아니라, 그들 소수만의 합격진이었다. 방어에도 탁월하기는 하지만 진을 형성하는 시전자들에게만 그럴 뿐, 다른 동료들을 방어해줄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진 합격진인 것이다. 그래서 순식간에 전력의 절반이 희생된 정파인들 전체의 요소요소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나한진을 펼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정체 모를 협력자들이 흑천맹의 뒤를 공격하므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이곳의 공격이 느슨해진 것이다. 나한진을 통해 적들을 공격하고 혼란시키는 데 딱 적절한 시기라는 뜻이다. 더구나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절정의 고수 황보강패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진을 펼치는 수밖에 다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맹주님을 보좌하라!”
나한진이 발동된 것을 본 제갈 원주가 좌우로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황보세가의 고수들과 제갈세가의 일부 고수들이 황보강패를 중심으로 넓게 포진하며 나한진을 둘러쌌다.
견고한 나한진과 틈을 찾아 공격하는 사파 고수들. 그들은 순간순간의 승패를 코앞에 둔 채 맹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 * *
“꽤 버티는데.”
오칠은 저 멀리 한곳에 밀집하여 싸우는 산서 정파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하지만 곧 그 조롱기 어린 표정을 내면으로 감추었다. 이제부터 그는 무적 정의파의 장문인으로서 철저한 정파의 열혈협객, 혹은 정의감 넘치는 대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좌측으로 간다.”
오칠은 왼쪽을 가리켰다. 철기단은 좌우를 오가면서 계속해서 흑천맹의 전력을 분리시키는 데 주력했고, 광명우사 화웅섭을 선두로 한 천여 명의 무리는 정말 성난 황소처럼 적들을 공격하는 데 반해 광명좌사 경모혁은 소극적인 공격을 지향하고 있었다.
‘정파인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모양이군.’
경모혁이 무공이 낮아서, 혹은 진취적이지 못해서 저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강하고 잔혹하게 싸우면 정파인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칠은 그런 경모혁 쪽으로 움직였다.
“죽어라!”
등 뒤로 길현초가의 무사들을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오칠의 정면으로 두 명의 사파 고수가 달려들었다. 아마도 오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홀로 말을 타고 있으니 무턱대고 덤벼드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칠을 신경 쓰기 전에 그들의 얼굴로 날아오는 초열홍과 초유강이 던진 수부(手斧:손도끼)를 먼저 막았어야 했다.
퍽! 퍽!
각기 얼굴에 수부가 박힌 두 사파 고수는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그리고 오칠은 느긋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퍽! 퍼퍽! 콰직! 콱직!
오칠의 정면에 나타나면 수부에 맞아 고꾸라지고, 좌우 뒤쪽에선 길현초가의 무사들이 내리치는 양날도끼의 섬뜩한 파육음이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철기단의 돌격과 광명좌사, 우사 등의 공격에 정신이 없던 사파 무림인들도 오칠과 그 무리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그 담담한 진격과 잔혹한 공격에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경 보주, 잘되고 있어?”
오칠과 그 무리는 어느새 경모혁과 그 무리의 뒤까지 다가갔다. 경모혁은 막 사파 고수 하나의 목을 베어버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우리에게 시간은 금이야.”
오칠은 그를 돌아보는 경모혁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경모혁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오칠을 향해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정파인들의 시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싸우라는 뜻을 이해한 것이다.
슈아악-
월광검(月光劍)의 투명한 검신이 청살진기(靑殺眞氣)를 머금고서 천붕십이절(天鵬十二絶)의 섬뜩한 그림자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일순간에 세 명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신형은 월영보(月影步)의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좌우사방을 오갔다.
“이제야 분위기가 사는군.”
경모혁의 달라진 기세를 따라 무리 전체가 공격적으로 변했다. 사두문(四頭門)의 왕공단 등을 비롯한 네 명의 대장들과 현격하게 그 기세가 달라진 하오배 무리들, 힘뿐만이 아닌 오칠에게서 전수받은 심법을 바탕으로 상승의 권각술을 펼치는 금철산과 철근문(鐵筋門)의 문도들, 그리고 매소옥 문주와 매 자매를 비롯한 열락문의 아리따우면서 강한 여인들까지, 무리 전체가 경모혁의 공격적인 성향을 따라 사파인들을 맹렬하게 몰아쳐갔다.
“한번 시작해볼까.”
오칠은 그들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그 중앙에 백설총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묵철곤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무림의 평화를 지키자!”
내공이 응집된 오칠의 커다란 고함이 주변을 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아주 잠시, 사파 고수들 사이로 냉랭한 분위기가 휩쓸고 지나갔다. 어떤 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배화교 무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오칠의 외침을 따라 똑같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무림의 평화를 지키자!”
“무림의 평화를 지키자!”
대도를 휘두르고, 검을 찌르고, 도를 올려치고, 채찍을 돌리고, 철조를 내리긋는 중에도 배화교 무사들은 함성을 멈추지 않았다. 오칠이 하늘로 뻗어 올린 묵철곤을 빙빙 휘두르며 계속해서 무림 평화를 외칠 동안은 그들도 절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뭐야, 이것들은!’
마치 길거리 유랑극 속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듯한 광경에 주변은 기이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몇몇 사파인들은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낄낄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오칠이 내지르는 고함을 연호하는 배화교 무사들의 공격은 너무나 강력했고,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맹렬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하지 마라!”
하나의 구령처럼 되어버린 연호를 또렷한 음성 하나가 뒤흔들어 정파인들의 혼란을 일순간에 잠재웠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진용이었다.
“사파 천하를 위해 싸우자!”
마치 오칠이 외치는 무림 평화를 비꼬는 듯한 남궁진용의 고함에 사파인들이 호응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들도 사파 천하를 위해 싸우자는 구령을 외치며 기세를 드높이려 했다.
‘어라!’
오칠은 사파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배화교도들을 죽이고 있는 남궁진용의 외침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말 등을 박차 올라 남궁진용을 향해 몸을 날렸다.
후우웅-
단번에 칠 장여를 뛰어넘은 오칠은 그대로 묵철곤을 내리쳤고, 오칠의 존재를 발견한 남궁진용은 황급히 검을 휘둘러 묵철곤에서 뿜어지는 힘을 분쇄하려 했다.
“……!”
하지만 남궁진용은 그의 검을 밀어내며 계속해서 내리쳐지고 있는 묵철곤을 피해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펑-
조금 전까지 남궁진용이 있던 땅 위로 묵직한 폭음이 생겨나고, 흙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오칠이 그 사이에서 뛰어나와 남궁진용의 좌측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스악-
남궁진용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검을 비껴 올렸다. 오칠의 허리부터 어깨까지 검이 베고 지나가는 선 안에 걸려들었다.
스아악-
“……?”
남궁진용은 검끝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순간 당황했다. 분명 피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남궁진용은 등 뒤에서 묵직한 압력을 느꼈고, 그는 앞으로 튀어나갈 것처럼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훙-
묵철곤이 훑고 지나간 빈공간이 묵직하게 밀려나고, 간발의 차이로 피한 남궁진용은 재빨리 몸을 틀어 오칠을 마주 보았다.
“넌 누구냐!”
남궁진용은 척 보아도 어려 보이는 데다,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오칠이 누구이기에 양천에서 그들을 곤욕에 빠트렸던 길현초가 무리를 거느리고 나타난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다.
“무적 정의파 장문인 오칠이라 하오.”
오칠은 가식이 철철 흘러넘치는 진중한 얼굴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무적 정의파… 무한의 무적 정의파!”
남궁진용은 무적 정의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일 년여 전에 무한의 정사 세력 판도가 갑작스럽게 변하고, 제갈 원주가 직접 찾아가게 만든 문파를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남궁진용은 혹시나 싶어 이쪽으로 달려오는 아우 남궁관보를 돌아보았다. 그는 제갈 원주와 함께 무적 정의파에 가서 오칠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우가 오칠을 발견하고 놀라는 것을 통해 눈앞의 사내가 무적 정의파 장문인임이 확실해졌다.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젊은 사내군. 거기다 미녀에 버금가는 외모를 가졌다고 하더니… 가만, 혹시?’
남궁진용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입을 열었다.
“네가 사풍단을 이끌고 있는 것이냐? 세가의 장원과 분타를 공격한 것이 네놈의 소행이냐?”
“그렇소.”
오칠은 당당히 대답했다. 그리고 무림의 안녕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그런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등등의 고리타분한 주장을 펼쳤다.
당연히 남궁진용은 어이가 없었다. 너무도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고작 약관을 넘은 듯 보이는 오칠이 전전 대의 노고수들이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군.’
“닥쳐라! 정파인이라는 놈이 비겁한 짓을 하고도 어찌 그리 당당할 수 있단 말이냐!”
“협을 행함에 있어서는 난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소.”
“애송이 놈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나불거리는구나!”
“정의란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이놈!”
남궁진용은 더 이상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떠한 말로도 오칠의 고리타분한 주장을 당해낼 수 없었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검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