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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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18화
18화
혁무천은 그들이 싸우든 말든 안으로 들어갔다.
백도강과 염호량, 관악, 고군상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를 따라갔다.
“어? 함께 가세.”
동대안이 뒤늦게 그들 쪽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서기의 욕설이 계속 들렸다.
“너 이 새끼, 어디 두고 보자! 그 쥐 눈깔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십여 명이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두어 사람은 조금 전에 봤던 자들이었다.
덕분에 시험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건물 앞에는 무사 둘이 입구 양쪽에 서 있었다. 아마도 그 건물 안에서 시험을 치르는 듯했다.
백도강이 앞장서고, 염호랑과 관악, 고군상, 혁무천, 동대안이 뒤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험은 단순했다.
자신이 지닌 무공을 펼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럼 시험관이 지원자들의 실력을 판단해서 합격여부를 가렸다.
혁무천 등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시험관은 사십 대 중반쯤 되는 중년인이었다.
대낮부터 술을 진탕 마신 것처럼 얼굴이 불콰한 그는 들어선 사람들을 보며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대충 자신 있는 거 오 초 정도만 펼쳐 봐.”
이 장 넘는 거리가 있는 데도 그의 입에서 진득한 술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저런 자가 시험관이라니.
백도강은 기분이 상했지만 표내지 않고 검을 뽑아들었다.
“제가 먼저 검을 펼쳐보겠소.”
눈 똑바로 뜨고 잘 보라는 듯 큰 소리로 말한 그는 냉홍십팔검 중 전 육식을 펼쳤다.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검초가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상대가 약점을 보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파고들 것처럼 날카로운 초식이었다.
의자에서 넘어질 듯 건들거리던 시험관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백도강의 검에서 약하나마 검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 일류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호오, 제법인데?’
냉홍검법 전 육식을 모두 펼친 백도강이 검을 갈무리하고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서 염호랑, 관악, 고군상이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했다.
비록 백도강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시험관은 그제야 흥미가 인 듯 몸을 탁자 위에 숙이고 손으로 턱을 바친 채 구경했다.
다섯 번째 순서는 혁무천이었다.
검을 빼든 그는 기초적인 검법 중 하나인 칠성검을 펼쳤다.
검로가 단순한 칠성검은 삼류무사들이 많이 익히는 검법 중 하나였다.
그가 칠성검을 다 펼치고 물러서자, 마지막으로 동대안이 나섰다.
그는 섬혼을 놔둔 채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간단한 금나수를 펼쳤다.
갈지자로 이동하면서 허공을 이십여 번 휘저은 그는 두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나름대로 멋지게 마무리를 지었다.
한쪽에 서 있던 백마궁의 무사 네 명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삼류 검법에, 어린애도 잡기 힘든 금나수였다.
저런 무공으로 백마궁에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미친놈들!
그러나 시험관은 웃을 수가 없었다.
칠성검이 비록 삼류검법이긴 하나 실낱같은 빈틈조차 없는 완벽한 검로였다.
또한 동대안의 금나수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피할 방위를 모두 막고 있었다.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일까? 낮술을 너무 마셨나?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취해서 그렇게 보인 것이겠지.
자신이 누군데! 칠성검 따위쯤이야!
술이 확 깬 그는 결론을 내렸다.
“모두 합격! 객당으로 가서 배치를 기다리게. 이봐, 이 사람들을 객당으로 데려다 줘.”
“예? 예, 단주.”
조소를 짓고 있던 무사 중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백도강 등은 그제야 술주정뱅이 시험관이 백마궁의 단주라는 사실을 알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단 오당은 백마궁의 핵심 전력이었다. 단주라면 그 중 하나를 맡고 있는 고수라는 뜻.
주정뱅이 같은 저자가 그런 고수일 줄이야.
하지만 백마궁의 용마단주 철중탁은 그들의 경악 따위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는 건물을 나서는 여섯 사람의 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씨바, 진짜 내가 잘못 본 걸까?’
***
혁무천 일행은 일단 객당으로 안내되었다.
객당에는 그들 외에도 이십여 명이 더 있었다.
“그대들은 이쪽 방을 사용하시오.”
안내를 맡은 백마궁 무사가 방을 하나 내주었다.
방 안에는 침대가 여덟 개나 있어서 여섯 명이 쓰기에는 충분했다.
“유시 말에 식사 종이 울리면 배식을 받아야 하오. 술시 정까지 식사를 못하면 굶어야 하니 명심하시오.”
안내 무사가 마저 설명을 마치고 방을 나가자, 일행들은 각자 침상을 하나씩 차지하고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백도강과 염호랑, 관악은 다른 방의 사람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심지어 동대안도 심심한지 은근슬쩍 그들을 따라다녔다.
혁무천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방 안에서만 지냈다.
워낙 조용히 있으니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졌다.
그날 밤.
혁무천은 뒷간에 가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약간의 차이를 두고 동대안도 슬그머니 그의 뒤를 따라 일어났다.
“뒷간 가나?”
갑작스런 목소리에 동대안의 몸이 굳었다.
염호랑의 목소리였다. 자는 줄 알았는데 깨어 있었나 보다.
‘짜식이, 그냥 모른 척 할 것이지.’
그래도 겉으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몸이 무거우면 잠이 잘 안 오는 체질이거든.”
“큰 거 보러 가는 거 아니면 이 뒤쪽에서 봐도 될 거야.”
“아무리 밤이라 해도 아무 곳에나 싸지를 순 없지. 그럼 나는 급해서…….”
동대안은 대충 얼버무리고 방을 나섰다.
염호랑이 상체를 일으키고는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가늘어진 눈매에서 싸늘한 광채가 번뜩였다.
달조차 구름에 가려진 백마궁의 밤은 고요하다 못해 음산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음산한 밤하늘을 두 줄기 바람이 휘젓고 다녔다.
그렇게 이각. 백마궁 내의 건물 위치가 두 사람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염호랑의 설명은 정확했다.
이십여 채 건물의 위치는 그가 그렸던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염호랑이 말했던 곳을 가보세.>
동대안이 전음을 보냈다.
이제 염호랑이 말했던 ‘비밀스런 곳’만 남은 상태였다.
혁무천은 동대안의 말에 대답하듯 후면 쪽으로 이동했다.
유령 같은 움직임이었다. 곳곳에 경비무사들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은밀한 움직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백마궁의 후면 쪽은 절벽이 있는 곳과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혁무천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곳을 응시했다.
누가 봐도 감옥이 있을 만한 위치는 절벽 쪽이었다.
그런데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무거우면서도 강한 기운. 고수가 아니면 지닐 수 없는 강맹한 기운이 최소한 다섯 줄기 이상 되었다.
그가 주시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그 기운의 주인들과 맞닥뜨린다면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으니까.
‘마도십문이 팔대마세와 견줄 만하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가 보군.’
그때 동대안이 전음으로 말했다.
<감옥은 절벽 쪽에 있을 것 같은데?>
혁무천은 동대안의 전음에 슬쩍 고개만 끄덕이고 절벽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어차피 이곳까지 들어온 이상 다른 선택이 없었다.
부딪쳐 보는 수밖에.
절벽 아래에는 단층으로 된 건물 세 채가 삼각형을 이루며 지어져 있었다.
혁무천과 동대안은 건물에서 십여 장 떨어진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건물을 살펴보았다.
앞쪽의 건물 두 채는 일반 건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뒤쪽, 절벽에 바짝 붙어 있는 건물은 들어가는 입구 외에는 창문이 보이지 않았다.
벽은 마치 성벽을 쌓은 것처럼 돌을 깎아서 만들어져 있고, 벽 맨 위쪽에 한 뼘이 채 안 되는 폭의 구멍만 뚫려 있을 뿐이었다.
사람을 가두기 위한 건물 치고는 조금 작았지만, 뇌옥이 꼭 지상에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어떻게 할 건가?>
동대안이 전음으로 물었다.
마당에서 타오르는 화톳불에 주위에 경비무사 넷이 모여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우겠다는 듯 긴장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순찰이 지나가고 나면 내가 안으로 들어갈 거요.>
순찰을 도는 무사가 있긴 하나 한번 지나가고 나면 다음 순찰과는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었다.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있겠나? 문도 입구밖에 없는데.>
게다가 문은 굳게 잠긴 상태였다.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요.>
마침 건물을 살펴보는 사이 순찰무사 다섯이 앞쪽을 지나갔다.
화톳불 근처에 있던 경비무사 중 하나가 손을 들어서 그들을 향해 건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수고 많네.”
순찰무사들은 힐끔 쳐다보기만 했을 뿐 건물 앞을 그대로 지나갔다.
혁무천은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두었던 검은 천을 꺼내서 얼굴을 눈만 내놓고 감쌌다.
동대안도 천을 꺼내더니 얼굴을 가렸다.
준비가 끝나자, 혁무천이 바닥에서 작은 돌조각을 집어 들었다.
<저들이 돌아서면 즉시 제압해야 하오. 최대한 빨리, 소리 나지 않게. 그리고 제압한 자들을 어둠 속으로 옮기시오.>
“……?”
동대안이 흠칫한 순간, 혁무천이 돌조각을 던졌다.
십여 장을 날아간 돌조각이 감옥으로 보이는 건물의 문에 맞았다.
딱! 하는 소리가 나자, 화톳불 주위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건물 쪽으로 돌렸다.
순간, 거대한 어둠이 그들의 뒤를 덮쳤다.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단숨에 경비무사 넷을 제압한 혁무천과 동대안은 축 늘어진 자들을 양 옆구리에 끼고 건물의 구석진 곳으로 옮겼다.
그 직후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의 문이 열렸다.
“뭐야? 왜 문을 두들긴 거야?”
한 사람이 짜증내듯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곧 화톳불 근처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고개를 눈을 치켜 떴다.
“이것들이 어딜 간 거야? 구석에서 자더라도 한 사람은 남겨 두어야……. 컥!”
그자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머리를 뒤로 젖히며 눈을 뒤집어 깠다.
혁무천이 쓰러지려는 그를 재빨리 붙잡아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동대안도 후다닥 뒤따라 들어가서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단단한 원목에 철판을 덧댄 한 뼘 두께의 문이 묵직하게 닫혔다.
역시나 굵은 나무에 철판을 두른 빗장으로 문을 봉쇄하고 돌아선 그는 뒤늦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어쨌든 들키지 않고 안으로 들어왔다.
밖에 숨겨 놓은 자들이 발견되면 소란이야 일겠지만, 최소한 억지로 들어온 것보다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그는 점점 혁무천이 무서워졌다.
혁무천은 건물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 개별적으로 분리된 방이 있긴 했지만 어디에도 죄인을 가두어둘 만한 곳은 없었다.
간수의 방, 잡다한 물건을 보관하는 방 등.
방을 살펴본 혁무천이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이곳 같군.”
제법 커다란 철문이 있었다.
검게 칠해진 철문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튼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무쇠로 만든 걸쇠의 고리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방향이 절벽 쪽이었다.
“혹시 동굴을 감옥으로……?”
“그런 것 같소.”
혁무천은 동대안의 의견에 동의하며 널브러져 있는 자의 허리에서 열쇠를 빼냈다.
절벽에 있는 동굴을 감옥으로 쓴다면 건물을 절벽에 붙여서 지은 이유가 설명되었다.
끼이이익.
철문이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