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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천화 15화

무료소설 귀환천하: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56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귀환천화 15화

15화

 

 

혁무천은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은설만 데리고 나가면 되었다.

앞을 막는 자가 있으면 모조리 죽이리라!

내심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는데, 은설이 말했다.

“오빠는 풍양표국의 임시표사예요, 소궁주님.”

임시표사?

금가휘의 일행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임시표사에게 백마궁의 정예들이 나가 떨어지고, 혈마수 조홍의 팔이 부러졌단 말인가?

금가휘의 입에서 실소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설마 그 말을 믿어달라는 건 아니겠지, 꼬마 아가씨?”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정말 저자가 임시표사란 말이냐?”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저, 꼬마 아니에요.”

은설이 당돌하게 말을 받자, 금가휘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그때 몇 사람이 다급한 걸음으로 오층에 올라왔다. 유철응과 풍양표국의 표사들이었다.

그들은 살얼음이 낀 것 같은 분위기에 흠칫했다.

하지만 곧 소항진과 소하민이 무사한 걸 보고 안도했다.

백마궁의 소궁주 일행과 싸움이 일어났다고 해서 간이 떨어질 뻔했거늘.

“풍양표국의 유철응이라 하오. 백마궁의 소궁주께 인사드리오.”

유철응이 먼저 금가휘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상대는 백마궁의 소궁주. 그가 나이는 스무 살 연상이라 해도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금가휘요.”

“혹시 우리 표국 쪽 사람이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소이다.”

“저 친구도 귀 표국의 사람이오?”

금가휘가 눈짓으로 혁무천을 가리켰다.

유철응은 긴장한 표정으로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임시표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외다.”

꼬마아가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금가휘는 더 어이가 없었다.

“오늘 풍양표국이 왜 장강에서 힘을 쓰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소. 시간을 쪼개서 여기 온 게 헛걸음은 아니었던 것 같소이다.”

“별 말씀을.”

조금 전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유철응으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금가휘는 더 이상 유철응을 상대하지 않고 혁무천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그만 가봐야겠네. 언제 다시 만났으면 싶군. 한번 만남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서운하니까 말이야.”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을지도.”

혁무천은 짧게 대답하고 은설을 향해 손짓했다.

은설이 강아지처럼 쪼르르, 그에게 다가왔다.

금가휘가 그 모습을 묘한 눈으로 보더니 입술 끝을 비틀었다.

“다음에는 친구로 만났으면 좋겠군.”

그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서 황학루를 내려갔다.

 

***

 

객잔으로 돌아온 소항진은 식사 대신 술을 마셨다.

충격이 큰 밤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하찮은지 확실하게 알게 된 밤.

“나도 한잔 줘, 오빠.”

소하민이 잔을 내밀었다.

소항진은 술병을 들어서 그녀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포기했냐?”

“내가 왜 포기해?”

“그럼 왜 잘 안 마시던 술을……?”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서 마시는 거야.”

“쉽지 않을 거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사람이었어.”

그건 그렇다. 소항진 역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나는 돌아갈 생각이다. 그동안 너무 나태했어.”

소하민이 피식 웃고는 한마디 했다.

“아버지 좋아하시겠네.”

“그럼 더 좋지.”

나직이 대답한 소항진이 술잔을 비웠다.

소하민도 술잔을 들었다. 천천히 술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소항진을 보며 말했다.

“나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오빠가 아버지에게 조금 늦을 거라고 말해 줘.”

“정말 안 돌아갈 거냐?”

“응.”

그때 유철응이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다.

“만약 무천이란 자 때문이라면 집으로 돌아가라.”

“유 숙부…….”

“그는 조금 전에 다른 곳으로 갔다.”

“예?”

“백마궁과 엮인 이상 어쩔 수 없다. 그가 계속 남아있으면 백마궁이 우리를 좋게 보지 않을 거다. 그래서 임금을 모두 주고 보냈다.”

소하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철응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이 숙부는, 네가 강호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일단은 형주로 돌아가라.”

“숙부…….”

“너로 인해서 풍혼문이 어려움에 처하는 건 너도 바라지 않을 거다.”

“그건 그렇지만…….”

“백마궁과 척을 지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너도 모르지는 않을 거다. 내 말대로 해.”

소하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알았어요. 숙부 말씀에 따를게요.”

“잘 생각했다.”

그제야 유철응은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돌려보내려 했는데 이제는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안도하는 바람에, 고개 숙인 소하민의 눈빛이 묘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

 

혁무천과 은설은 다른 객잔에서 밤을 보낸 후,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배를 탔다.

선객이 십여 명쯤 있었다. 대부분 무창에서 물건을 구해 다른 지방으로 팔러가는 보부상들이었다.

두 사람은 피곤에 절어 있는 눈빛을 받으며 선실의 한쪽 구석에 앉았다.

그런데 막 출발하기 전에 한 사람이 더 선실로 들어왔다.

동대안이었다.

혁무천은 그를 보고도 별다른 내색을 안했다. 따라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러나 은설은 그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왜 이 배를 타셨어요? 표국의 배는 저쪽 위에 있는데.”

“하, 하, 하. 나도 좀 빨리 가려고…….”

동대안이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선실 한쪽에 앉았다.

 

배는 사흘 뒤 오후 구강에 도착했다.

혁무천과 은설이 배에서 내리자, 동대안도 따라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은설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했다.

“어? 동 아저씨도 구강에 볼 일이 있어요?”

동대안은 이제 은설에게 ‘동 아저씨’였다.

배에 탄 후 “왜 저 친구는 오빠고, 나는 아저씨냐?”라고 따져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서른세 살이라면서요. 열다섯 살 차이면 당연히 아저씨죠.”라고 말하는데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동 아저씨’가 되었다.

그래도 덕분에 사흘 동안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는 사이가 되었으니 별 손해는 아니었다.

“응? 하하, 뭐 급한 일도 아니고, 함께 다니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동대안이 슬그머니 눈을 돌리며 얼버무렸다.

“남경에 가신다면서요?”

“그거야 뭐, 천천히 가면 되지.”

“은설.”

한발 앞서 가던 혁무천이 은설을 불렀다.

“예, 오빠.”

“안 갈 거냐? 아버지 친구 찾아간다면서?”

“가요.”

혁무천이 이번에는 동대안에게 말했다.

“동 형이 따라오겠다면 막진 않겠소. 대신 동 형의 숙식은 동 형이 알아서 하시오.”

“하, 하, 하. 그거야 당연하지.”

어색하게 대답한 동대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쪼잔하기는. 한 사람 숙식비가 얼마나 된다고.’

 

은설의 아버지 친구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강수평.

구강 남쪽 마을에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었다.

혁무천과 은설이 찾아갔을 때도 그는 붉게 달구어진 쇠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땅딸막한 체구는 쇳덩이처럼 단단해 보였다. 망치가 쇠를 내리칠 때마다 단단하고 거무스름한 근육이 춤을 췄다.

은설은 그가 망치질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강수평은 세 사람의 집중된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망치를 내려놓았다.

‘뭐하는 것들인데 저렇게 쳐다 봐? 망치질 하는 거 처음 보나?’

신경질적으로 망치를 한쪽에 던지듯 내려놓은 그가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오?”

은설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은석추라는 분을 아시나요?”

 

강수평은 은설을 대장간의 구석진 곳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혔다.

혁무천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 와중에도 동대안은 뭐가 그리 구경할 것이 많은지 작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장간의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꼭 장난감 가게에 온 어린애 같았다.

“네가 정말 은 형의 딸이란 말이냐?”

“예, 제가 설아예요.”

“하아, 그 친구. 이렇게 예쁜 딸과 부인을 두고 왜……?”

강수평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저씨, 아버지가 어디로 가셨는지 아세요?”

“그게…….”

강수평은 대답을 망설였다.

은설은 그의 입이 열릴 때까지 뚫어지게 바라보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한참 동안 망설이던 강수평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는…….”

은설의 아버지는 정파의 비밀단체에 가입했다고 했다.

그 후 임무를 맡아서 어디론가 떠났다고 했다.

다만 그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강수평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떠난 지 육 개월이 넘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라.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강수평은 희망에 찬 말로 은설을 다독이려 했다.

그러나 은설도 눈치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죽지 않았을 거다. 그 친구는 나처럼 멍청하지 않거든.”

“저도 그랬으면 싶어요.”

은설이 힘없이 말했다. 말끝이 가늘게 떨렸다. 슬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가슴이 울컥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녀의 기다란 눈썹 끝에 이슬이 맺혔다.

커다란 눈에 고인 눈물이 금방이라도 둑을 넘어서 쏟아질 듯했다.

그 모습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강수평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 친구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예?”

“은 형이 덕안에 있는 호가 추천으로 그 단체에 가입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사실이라면 은 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도는 호가가 알고 있지 않을까 싶구나.”

“그 호씨 성을 지닌 분은 덕안 어디에 살아요?”

그때였다.

“와우! 이거 기가 막힌데?”

대장간 구석에서 동대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쇳가루를 뒤집어쓴 그가 뭔가를 들고 있었다.

혁무천과 은설, 강수평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그를 일제히 노려보았다.

동대안은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작은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나름대로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저기, 이거 얼마요?”

그런데 강수평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파는 물건이 아니니 내려놓으시오.”

동대안이 들고 있는 물건은 석 자 길이의 꼬챙이처럼 생긴 검이었다.

끝이 뾰족했고, 폭이 한 치도 안 될 것 같은 좁은 몸체에는 칼처럼 날이 서 있었다.

“그러지 말고 나에게 파쇼.”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잖소?”

“내 손에 딱 맞아서 그러는 거요. 여태 내 손에 맞는 무기를 보지 못해서 항상 빈손이었단 말이오. 좀 파쇼.”

동대안이 사정하듯 말했다. 평소의 그를 생각하면 의외의 행동이었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무기를 만났다는 뜻.

“손에 딱 맞다고?”

“그렇다니까.”

그제야 강수평이 몸을 일으켜서 동대안에게 다가갔다.

동대안이 들고 있는 물건은 그의 대장간에 대대로 전해진 무기 중 하나였다.

워낙 특이한 검이어서 팔리지도 않았고,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어서 억지로 팔려 하지도 않았다.

동대안 앞에 선 그가 말했다.

“어디 그걸 어떻게 쓰실 생각인지 말해보쇼.”

“어떻게 쓰긴? 이렇게 쓰려고 하는 거지.”

동대안이 그렇게 말하고는 꼬챙이 같은 검을 쑥 내밀었다.

일직선으로 내밀어진 꼬챙이 검 끝에서 검화가 피어났다.

아니, 그것은 검화라기보다 점이라고 해야 옳았다. 점은 찰나에 허공을 일곱 번이나 구멍 낸 후 사라졌다.

앞에 있던 강수평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검첨에서 거리가 석 자나 떨어져 있는 데도 자신의 몸에 구멍이 나는 느낌이었다.

‘칠점사(七點死)…….’

아주 오래 전 그에 대해서 들은 말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때 들었던 전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으로.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후 숨을 내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섬혼을 그대에게 팔겠소.”

동대안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오! 고맙소! 이름이 섬혼인가 보군.”

“그렇소. 값은 은자 스무 냥이오.”

“……스, 스무 냥?”

그러잖아도 작은 동대안의 눈이 썩은 동태 눈알처럼 흐릿해졌다.

그에게는 은자 스무 냥이 없었다.

탈탈 털어도 다섯 냥 정도나 될까?

그는 구원의 눈빛으로 혁무천을 바라보았다.

돈 좀 빌려줘, 그런 표정.

하지만 혁무천의 돈주머니에 있는 돈도 다섯 냥이 전부였다. 임시표사로 받은 돈.

굶기 싫은 그는 돈을 빌려줄 마음이 없었다.

그때 강수평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돈이 없으면 대신 일을 하나 해주시오.”

동대안의 표정이 곧바로 펴졌다.

“일? 어떤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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